진정한 답은 문제의 원인을 짚어주는 것부터 강신주 박사를 따라다니는 수식어들은 일련의 공통분모를 가진다. 독설가, 돌직구, 직설화법. 확실히 그는 남의 시선이나 평가엔 신경 쓰지 않는다. 그에게 상담 받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며 뛰쳐나간다 해도 그는 잘못이 없다고 이야기한다. 언뜻 차가운 말만 툭툭 뱉어내는 한 철학자에게 많은 사람들이 이토록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누구나 힘들고 어려운 시대. 누군가가 막연하게 던지는 ‘잘될 거야.’ 한 마디로는 더 이상 위로가 되지 않는 시대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재다. 강신주는 막연한 한 마디보다 우리가 처한 문제의 원인을 콕콕 짚어준다. 가려진 진실이 드러날 때 우리의 가슴은 콕콕 아프기 시작한다. 그래서 그가 SBS <힐링캠프>에 나와 “힐링은 미봉책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라는 말을 했을 때, 우리 모두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던가.
강신주가 대중에게 이름을 알린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학부에선 화학공학을 전공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하고 싶은 공부를 찾아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가 저자로서 장자 철학을 비롯한 동양사상에 대한 책을 집필했을 당시엔 많은 사람들이 그에 대해 알지 못했다. 그런 그가 대중들에게 이름을 알린 건 2011년 <딴지일보> 총수 김어준이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 <색다른 상담소>에 출연하면서부터였다. 김어준으로부터 ‘무려 철학박사’라는 별명을 얻은 그는 사연을 올리는 사람들에게 신랄한 상담을 전개하며 유명세를 탔다. 독설과 비판이 섞인 그의 말은 곧 대중의 인구에 회자되며 갑갑한 현실에 대한 카타르시스로 작용했다.
이후 강신주의 책도 재조명 받기 시작했다.
『장자, 차이를 횡단하는 즐거운 모험』,
『철학 VS 철학』 같은 철학 서적은 물론이고, 강신주가 직접 대중과 만나 진행한 상담을 책으로 엮은
『강신주의 다상담』 시리즈도 인기를 얻었다. 지난 4일, 대학로의 한 공간에서 그의 마지막 강연회가 진행되었다. 그곳에서 강신주는 조금은 갑작스러운 상담계 은퇴를 밝히며,
『강신주의 다상담』 에 담긴 추억과 회포를 풀어내었다.
“최소한 저는 2013년을 살았던 인문학자예요. 모든 사람이 2013년을 살지만 각자 다르게 살잖아요. 누군가는 아직 조선 시대에 살고 있고, 누군가는 독립운동을 하며, 누군가는 전쟁 직후에서 사는 사람도 있어요. 그런데 이런 우리 모두가 다 같이 지내기 위해서는 2013년에 모두 모여야 하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2013년 현재를 살고 있는 제가 여러분의 삶과 고민에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마지막 상담 자리. 그는 섭섭하거나 서운한 감정은 조금도 내비치지 않았다. 많은 사람과 부딪히며 상담을 진행해온 지난 2년 동안 그는 자신이 더욱더 많은 것을 배웠다며 말을 이었다. 그의 인기가 높아질수록 그를 향해 손가락질하는 시선들도 생겨났다. 그의 독설과 고집 센 태도를 비꼬며 사이비 철학자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러나 이날 만난 강신주는 그 누구보다도 충만한 삶의 열정과 용기를 지닌 사람이었다.
스스로의 검열에서 벗어나는 삶 추구해야
많은 사람들이 고민을 나누기 위해 그를 찾는다. 이날 강연회에도 교복을 입은 여고생들부터 나이 지긋한 노부부까지 다양한 세대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이들이 가져온 고민은 모인 사람들만큼이나 다양했다. 강연회는 세 부분으로 나뉘어 진행됐다. 1부에서는 지난 시간들에 대한 강신주의 회고, 2부는 공적인 것에 대한 고민, 3부는 사적인 것에 대한 고민으로 이루어졌다.
생활의 사소한 것에서부터 현 시국에 대한 고민까지, 각자 품고 있는 고민은 다양했지만 강신주는 이를 행복이라는 하나의 명사로 치환했다. 결국 우리의 고민은 우리가 행복하지 않을 때 생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먼저 우리 사회를 뿌리 깊게 지배하고 있는 행복 신화에 대해 말문을 열었다.
“오늘 우리는 행복합니까? 수많은 억압과 견딤의 시간 속에서 과연 행복했을까요? 우리는 ‘집은 행복한 곳이다.’라고 계속해서 외워야만 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라고 시키니까 그렇게 하는 거죠. 행복하지 않은 모습도 볼 줄 알아야 해요. 제 역할은 도화지에요. 강신주라는 도화지 위에 여러분들의 모습이 찍히는 거예요. 뱃살 같은 그런 치욕적인 모습. 그런 모습을 그리세요. 사람들은 처음엔 착각에 빠져요. 제가 사람들을 그렇게 바라본다고요. 하지만 저는 여러분들을 평가하지 않아요. 제가 원하는 건 여러분들이 정직한 거예요.”삶의 정직성을 추구해야 함을 지적하면서, 그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의 모습에 정직하지 않은지 역설했다. 우리가 우리 자신과 정직하게 대화하지 못할 때 우리의 삶은 불행의 나락으로 추락하기 마련이다.
“제일 훌륭한 사람은 항상 정직한 사람입니다. 그는 강자를 만나든 약자를 만나든 변함이 없죠. 이런 사람이 가장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다음으로 훌륭한 사람은 가끔 비겁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정직한 사람입니다. 결정적 순간에 정직하게 원하는 것을 말할 수 있어야 하죠. 마지막으로 가장 좋지 않은 사람은 매사에 부정직한 사람입니다. 싫은데 좋다고, 좋은데 싫다고 하는 사람들이요. 이러다 보면 불행해지기 시작해요.”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자신을 가두고 있는 스스로의 검열에서 벗어나야 하는 것이다. 강신주는 사회와 집단이 개인에게 요구하는 수많은 행복의 신화들을 나서서 깨뜨려야 함을 강조했다. 그런데 우리는 오랜 시간 그 단단한 껍질 안에만 있어서 껍질을 깨고 나온 스스로의 모습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 수십 년간 가면의 뒤편에 숨겨둔 자신의 굴욕적인 모습이 가감 없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숨기고 싶은 내면의 ‘나’와 만나기 위해선 용기가 필요하다. 그 중에서도 가장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자신 안의 정직한 이야기가 흘러나올 수 있는 장에 참여하는 것이다. 지난 2년간 진행해 온 강신주의 다상담은 이러한 모든 정직한 이야기들을 가능하게 만든 담론의 종합이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누구에게도 말 못할 고민을 입 밖으로 꺼낼 수 있었던 건 자신 내면과 마주할 용기 덕분이었다고 말을 이었다. 지난 2년간 다상담에서 다루었던 주제들은 이제 누구나 겪는 고민들에 대한 어느 정도의 해답이 될 것임을 기대하며, 그는 이제 그가 없어도 이러한 담론의 장이 이어져야 한다는 희망과 충고를 남겼다.
사적(私的)인 문제에 너무 몰입하는 시대강신주는 개인의 삶이 팍팍하고 어려운 지금일수록 오히려 공적인 문제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함을 강조했다. 사적인 문제에 너무나도 몰입해 문제의 근본적 원인을 보지 못한다는 그의 말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한 철학자의 예리한 시각을 엿볼 수 있었다.
“우리는 사적인 문제에 너무 몰입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사실은 공적인 문제가 더 중요할 수도 있는데 말이죠. 공적인 사건의 먼 결과가 사적인 것이니까요. GDP는 상당히 올라갔는데도 우리 대부분은 더 윤택하게 살지 못하잖아요? 결국엔 공적인 문제들이 사적인 것에 영향을 미치니까 공적인 것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이죠.”한 참가자가 고민을 털어놓았다. 강신주가 역설했던 공적인 문제에 대한 관심과 관련된 고민이었다. 그는 쌍용차 해고자들을 언급하며 밖으로 나가 정의를 세우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과 달리 자신은 너무나도 편안히 살고 있는 것 같은 죄책감이 고민이라고 했다. 강신주는 이를 ‘이상한 비겁’이라며 우리 사회를 가득 메우고 있는 무기력감과 그를 극복할 수 있는 용기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건 이상한 비겁이에요. 진보주의자들의 비겁이기도 해요. 다 아는데 못한대요. 무기력하니까요. 왜 무기력함을 느끼느냐. 저 멀리 있는 걸 보면서 결과적으로 내 앞의 한 걸음을 안 걸으려고 할 때 그때 무기력함을 느껴요. 중요한 것은 일보(一步)에요. 그 한 걸음이 여러분을 정상까지 데려다 줘요. 그런데 한 걸음도 떼지 않으면서 두 걸음, 세 걸음을 생각하면 한 걸음이 무가치 해 보이는 거죠. 거꾸로 보면, 우리가 그 한 걸음을 생각하지 않게 하려고 다들 두 걸음, 세 걸음을 바라보는 거예요. 두 걸음, 세 걸음, 그리고 n 1걸음을 말하는 사람들을 조심하세요. 그들이 우리를 무기력하게 만드니까요.”자녀 교육에 대한 고민을 가져온 참가자도 있었다. 강신주는 왜곡되어버린 교육의 일차적 목표에 대해 먼저 입을 열었다.
“교육의 일차 목적은 아이들이에요. 지금의 교육은 반인간적이죠. 부르주아 사회에서 추구하는 사회는 시민 사회잖아요. 그런데 우리가 추구하는 사회는 인간적인 사회란 말이에요. 시민 사회는 법에 기초해서 문제를 해결하는데, 이때 법을 제정하면서 어린이들을 포함한 힘없고 약한 자들은 배제되거든요. 시민사회는 결과적으로 어른이라는 기득권자들이 만들었어요. 인간적인 사회는 아이가 공부를 못 하거나 대학을 못 가도 잘 살 수 있는 사회여야 해요.”강신주가 꿈꾸는 사회는 어떤 사회일까. 상담계 은퇴를 밝힌 그인 만큼, 더 이상 사람들이 삶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 사회가 오기를 바라는 건 아닐까.
“사실 상담을 그만두게 된 데에는 제가 육체적으로 힘든 이유도 있었지만, 어느새 뒤돌아보니 제가 교주처럼 되어 있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교주가 아니라 그냥 한 명의 인문학자일 뿐이에요. 우리가 하는 고민은 다 비슷비슷해요. 다상담 같은 이런 정직한 담론의 장으로 나오세요. 책을 보셔도 좋고요.”강신주. 그는 2014년 현재 가장 뜨거운 사람 중 하나이다. 그가 지난 2년간 진행한 다상담은 많은 사람에게 갑갑한 현실 속에서 숨 쉴 수 있는 틈을 제공했다. 작년 여름엔 강연회 도중 실려나가는 사람이 있었을 정도로 그의 인기는 여느 아이돌 가수 못지않다. 그의 독설과 신랄한 언술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우리가 용기 있게 나서서 말하지 못하는 사회에 대한 고발을 대신해주기 때문이리라. 비록 비겁하고 나약한 우리 자신의 맨 얼굴과 마주쳐야 한다 할지라도 말이다. 그래서 그는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비겁하고 졸아있는 모든 것들이여. 뒤로 물러서는 대신 정직해지자. 우리 자신에게 정직해지자. 그리고 앞으로 나와 이야기하자. 우리 모두가 행복해지는 그때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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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신주의 다상담 강신주 저 | 동녘
독설과 직선적인 표현으로 인해 질문자로 부터 원망을 듣기도 하지만 강신주는 산파처럼 그 모든 불평과 불만을 참아내고 더 강하게 고민자들을 다그치고 채찍질한다. 그렇기에 강신의 다상담은 회가 거듭할 수록 자정을 넘겨 끝내는 회가 늘어나고 질문의 수준이 높아만 간다. 1권과 2권에서는 생활과 밀접한 질문들이 많았다면 3권에서는 조금 더 심오한 상담들이 담겨 있다. 어느 것 부터 읽어도 상관은 없다. 지금 가장 고민 되는 것을 찾아서만 읽어도 속이 시원해 지는 경험을 할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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