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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남자, 10년 후 모습도 알고 싶다면...

영화 <아메리칸 사이코>의 패트릭 베이트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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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사이코>라는 영화가 만들어진 건 2000년이었다. 크리스천 베일이 연기한 인물은 패트릭 베이트먼이다. 스물일곱 살, 하버드 MBA 출신, 월스트리트 금융합병사의 최고경영자, 잘생긴 얼굴, 완벽한 몸매, 최고급 명품을 척척 골라 입는 감각과 그렇게 할 수 있는 경제력을 모두 갖추었다. 자본주의 사회에 사는 한, 패트릭이라는 존재에 대해 부러워하지 않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적어도, 아 세상에 저런 인간도 있구나, 라는 경탄을 보내는 것은 당연하게 느껴질 정도다.


J는 ‘특별한 남자’인 것처럼 보였다. 180센티미터가 훌쩍 넘는 키에, 몇 명의 남자 배우를 섞어놓은 것 같은 외모 때문만은 아니었다. 잘 재단된 진회색 캐시미어 수트와, 바짓단 아래로 보일 듯 말 듯 드러나는 세련된 패턴의 청록색 양말 때문만도 아니었다. 아이비리그 명문 대학 출신이라는 배경, 비교적 젊은 나이에 꽤 큰 사업체를 일구었다는 이력 때문만도 아니었다. 구태여 따지자면 그 모든 것에 ‘문화적 취향’을 더해 만들어진 J의 독특한 분위기 때문이었다.

우연히 모임의 옆자리에 앉은 나의 직업이 소설가라는 걸 알게 되자 그는 자신이 소설을 꽤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러곤 작가들의 이름을 줄줄 읊어대기 시작했다. “어릴 때 가장 좋아했던 작가는 어니스트 헤밍웨이예요.” 나는 좀 당황했다. 보통은 그저 헤밍웨이라고 하지 풀네임으로 말하는 경우는 거의 보지 못했던 탓이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디 올드맨 앤 더 씨’를 대표작으로 생각하지만 말이죠.” 그러니까 『노인과 바다』 를 의미하는 것 맞겠지? “사실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쇼트 스토리 쪽이 더 나아요. 그가 얼마나 냉정한 스타일리스트인지 알 수 있죠.” J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내 일천한 경험에 의하면, 타인의 전문 분야 앞에서 자기 의견을 저렇게까지 단정적으로 드러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자신감이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요즘 관심을 두는 작가는 줄리언 반스라고 했다. ‘더 센스 오브 디 엔딩’을 보았는데, 그만하면 괜찮은 소설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나는 겨우 그것이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라는 우리말 제목으로 번역되어 나온 책임을 알아챘다. 뭐 그의 견해에 반박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러나 나 또한 줄리언 반스를 좋아하고, 그 소설을 좋아한다는 의견을 표명할 기회는 유감스럽게도 생기지 않았다. 그 소설을 헐리웃에서 영화로 제작한다면 투자할 용의가 있으며, 어울릴만한 배우들도 생각해두었다는 말을 J는 연이어, 오로지 혼자서만 말했다. 나에게는 그에 관련한 어떤 질문도 전혀 던지지 않았다. 그는 대화를 나누는 것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이야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예기치 못한 작은 사고가 일어났다. 비어버린 유리잔을 채우려던 식당 직원이 살짝 균형을 잃었고 그 바람에 탁자 위로 약간이 물이 쏟아졌던 것이다. 소량의 물이었다. 누구라도 쉽게 할 수 있는 실수였다. 직원은 즉각 죄송하다며 사과했고, 탁자 위에 놓여있던 종이 냅킨으로 탁자의 물기를 허둥허둥 닦았다. 내가 괜찮다고 대답하려는 찰나,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방금 전 우아하고 교양 있는 음성으로 소설의 세계에 대해 이야기하던 J가 버럭 소리를 지른 것이다. “아이 씨, 똑바로 못 해!”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나는 눈을 껌벅였다. 직원이 또 다시 죄송하다며 머리를 조아렸다. J는 아랑곳하지 않고 더욱 목소리를 높였다. “너 이게 어떤 셔츠인 줄 알아?” 셔츠라니. 물이 쏟아질 때 J의 셔츠 소매 끄트머리에도 한두 방울쯤 튄 모양이었다. “이거 에르메네질도 제냐 2011 한정판이야. 이제 못 구한다고. 어떻게 책임질 건데?” 나는 바삐 그를 만류했다. “저기 그거 금방 마를 것 같은데요.” 그가 내 쪽을 쳐다보지 않고 다시 소리쳤다. “야, 이거 실크거든!” 그가 특별한 남자라는 건 분명했다. 특별하게 이상하고 특별하게 무서운 남자.


<아메리칸 사이코>라는 영화가 만들어진 건 2000년이었다. 크리스천 베일이 연기한 인물은 패트릭 베이트먼이다. 스물일곱 살, 하버드 MBA 출신, 월스트리트 금융합병사의 최고경영자, 잘생긴 얼굴, 완벽한 몸매, 최고급 명품을 척척 골라 입는 감각과 그렇게 할 수 있는 경제력을 모두 갖추었다. 자본주의 사회에 사는 한, 패트릭이라는 존재에 대해 부러워하지 않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적어도, 아 세상에 저런 인간도 있구나, 라는 경탄을 보내는 것은 당연하게 느껴질 정도다.

그는 철저히 ‘이너서클’ 안에서만 산다. 패트릭의 생활권에는 비슷비슷한 스타일을 한 멋지고 잘난 사람들로 가득하다. 성공한 뉴요커들, 이른바 ‘핫 피플’이다. 패션잡지에서는 ‘설레브러티’라고 불리는 사람들. 그들은 새로운 레스토랑과 새로운 바, 새로운 파티와 새로운 애인을 찾아 나비처럼 떠돈다. 앞에서는 예의 바르게 반가워하고 너는 나와 같은 편이라는 무언의 미소를 보내지만 돌아서면 바로 표정을 바꾼다. 상대에 대한 험담에서조차 팩트가 부정확하기 일쑤인데, 때론 자신들이 험담하는 이의 이름과 얼굴을 헛갈리기도 한다. 이것은 그들이 타인 혹은 자신 외의 대상에게 얼마나 무성의한지를 보여주는 일화이다. 말과 말이 오가지만, 허공에 흩뿌려지는 건 각자의 방백뿐이다.


하나의 욕망이 충족되었다고 느끼는 순간 또 다른 욕망들이 솟구치고, 그 허위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한 어떤 욕망도 완전하게 채워질 수 없다. 패트릭은 거기서 탄생한 일종의 괴물, 또는 그 세계의 적자다.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을 납치해 죽이는 두 얼굴의 연쇄살인마, 패트릭의 첫 범행 대상은 동료 폴 앨런이다. 폴의 잘못은, 패트릭이 예약에 성공한 적 없는 잘나가는 레스토랑을 예약했다고 자랑한 것, 그리고 완벽하게 디자인된 새 명함을 들고 나타난 것이다. 그것들은 좁고 폐쇄적인 ‘그들’ 사이에서만 통용되는 것이기에 더 치명적으로 중요한 것이 된다.

패트릭이 폴의 시체를 넣은 커다란 가방을 끌고 가는 모습을 우연히 본 동료는 그에게 묻는다. “오, 그 가방 멋진데! 어디서 샀어?” “장 폴 고티에.” 동료는 ‘역시’라는 표정을 지으며 사라진다. 가방 안에 들어 있는 것이 무엇인지는 묻지 않는다. 상대방의 ‘속’에는 아무 관심이 없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감정에 전혀 관심이 없으며 죄책감과 동정을 모르는 ‘반사회적(안티소셜) 인격장애자’ 혹은 ‘아메리칸 사이코’다. 요즘에는 그것이 패트릭으로 상징되는 일부 ‘뉴요커’만의 특징이 아닌 것 같다.

결국 매장 매니저와 사장까지 소환하며 난리를 떨었던 J와, 그의 한정판 실크셔츠는 어떻게 되었을까? 아름다운 여자와 결혼을 했으며, 사업은 여전히 승승장구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지금 내 앞에서 깍듯하고 친절한 이 남자가 과연 십년 후에도 그럴지 알고 싶다면, 식당에서 종업원을 대하는 그의 태도를 보면 된다는 말을 들었다. 웃어넘길 소리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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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정이현(소설가)

1972년 서울 출생으로 단편 「낭만적 사랑과 사회」로 2002년 제1회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나왔다. 이후 단편 「타인의 고독」으로 제5회 이효석문학상(2004)을, 단편 「삼풍백화점」으로 제51회 현대문학상(2006)을 수상했다. 작품집으로 『낭만적 사랑과 사회』『타인의 고독』(수상작품집) 『삼풍백화점』(수상작품집) 『달콤한 나의 도시』『오늘의 거짓말』『풍선』『작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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