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 김어준, 대화록 전문 읽고도 NLL 포기를 말한다면
유시민 『노무현 김정일의 246분』 출간 기념회
정계 은퇴를 선언한 유시민이 제목부터 정치적인 책을 냈다. 『노무현 김정일의 246분』이 바로 그 책. 11월 5일 대학로 벙커1에서 열린 ‘2007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독해특강’은 책 출간 기념회를 겸한 자리였다. 이날 행사에는 저자인 유시민을 비롯해 김어준이 자리를 빛냈다.
선거일이 다가오면 흔히 들리는 말이 있다. ‘정치에 무관심’. 무관심에는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정치적인 사건이 벌어졌을 때 그 현상을 일반인이 이해하기가 쉽지 않아서다. 지지난 대선의 BBK나, 지난 대선의 국정원 선거 개입 의혹 등이 그러한 예다. 이런 사건에는 얽힌 이해 당사자가 많으므로 입체적으로 한눈에 조망하기가 쉽지 않다. 시간이 지나면서 의혹은 많아지는 반면, 언론의 보도는 줄어간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대중들의 관심도 잦아든다. ‘NLL 포기’도 비슷하다. 대화록을 두고 벌어지는 여야간 공방이 1년째 계속되면서 많은 사람이 사태를 이해하기보다는 뉴스 읽기를 포기하고 있다.
2012년 10월 8일, 정문헌 새누리당 의원이 의혹을 제기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7년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대담에서 NLL을 포기한다는 발언을 했다는 것. 곧이어 두 달 뒤, 한창 대선 정국이 뜨거워지던 부산 서면 유세에서 당시 박근혜 대통령 캠프의 요직에 있던 김무성 의원이 정상회담 대화록을 공개했다. 김 의원도 노무현 대통령이 NLL을 포기한다는 요지로 대화록을 읽었다. 문제는 대화록 전문을 보면 노무현 대통령이 NLL을 포기했다고 할 만한 발언이 없었다는 점이다. 이는 남재준 국정원장이 대화록 전문을 공개하면서 확인됐다.
대화록 논쟁이 1년째 이어지는 오늘(6일) 검찰에 출석한 문재인 민주당 의원은 “이 사건의 본질은 대화록을 여당과 국정원이 빼돌리고 대선에 악용한 것”이라 밝혔다. 이에 민현주 새누리당 대변인은 6일 기자회견에서 대화록 보관과 삭제와 관련해 핵심 관련자가 다른 말을 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문 의원이야말로 본질을 왜곡하고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대화록을 읽는 시선 1, 누가 대화록을 유출했나
이런 복잡한 정황에서 정치인이 아닌, 자연인 유시민은 5가지를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첫째, 대화록을 유출한 주체다. 자신이 만약 수사 검사라면 최초 폭로자인 정문헌 의원, 서면 유세에서 대화록 일부를 읽은 김무성 의원, 권영세 주중대사, 원세훈 당시 국정원장에 혐의를 둘 것이라 말했다. 대화록 전문을 공개한 남재준 원장도 공공 기록물이 아닌 대통령 기록물을 공개한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심증은 있지만 물증은 없는 이명박 대통령이나 박근혜 대통령도 참고인 자격으로는 소환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대화록을 읽는 시선 2, 노무현 대통령은 NLL을 포기했나
둘째 사안, 과연 노무현 대통령이 NLL 포기 발언을 했는가다. 대화록을 살펴보자.
그것(NLL)이 국제법인 근거도 없고 논리적 근거도 분명치 않은 것인데, 그러나 현실로서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북측 인민으로서도 아마 자존심이 걸린 것이고, 남측에서는 이걸 영토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군사회담 넣어 놓으니까 싸움질만 하고요. 위원장께서 제기하신 서해 공동어로 평화의 바다, 내가 봐도 숨통이 막히는데 그거 남쪽에다 그냥 확 해서 해결해버리면 좋겠는데.
이걸 풀어나가는 데 좀 더 현명한 방법이 있지 않겠느냐. 말하자면 NLL 가지고 이걸 바꾼다 어쩐다가 아니고, 그건 옛날 기본합의의 연장선상에서 앞으로 협의해나가기로 하고 여기에는 어떤 공동의 번영을 위한 그런 바다 이용 계획을 세움으로써 민감한 문제들을 미래지향적으로 풀어나갈 수 있지 않겠느냐. (『노무현 김정일의 246분』, 40쪽)
노무현 대통령이 말한 ‘옛날 기본합의’란, 1991년 체결한 「남북기본합의서」와 「남북불가침 부속합의서」다. 기본합의서 제2장 제11조는 “남과 북의 불가침경계선과 구역은 1953년 7월 27일 자 군사정전에 관한 협정에 규정된 군사분계산과 지금까지 쌍방이 관할하여온 구역으로 한다.”이다. 이어 부속합의서 제9조는 “남과 북의 해상 불가침경계선은 앞으로 계속 협의한다. 해상 불가침구역은 해상 불가침경계선이 확정될 때까지 쌍방이 지금까지 관할하여 온 구역으로 한다.”라고 명시한다. 즉, 노무현 대통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공동어로로구역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유시민은 “만약 대화록 전문을 읽고 ‘노무현 대통령 NLL 포기’라는 답안을 적는다면 언어영역에서 0점을 받을 것”이라고 말한다.
대화록을 읽는 시선 3, 자주론
유시민은 2007년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은 한국 현대사를 읽을 수 있는 훌륭한 교재로 본다. 대화록에서는 두 정상이 ‘자주’를 두고 갑론을박을 펼치는 장면이 그런 대목이다. 북은 노무현 대통령에 자주 공세를 펼치며 회담 초반부터 압박했다. 대한민국이 비자주적이라 남북관계가 잘 개선되지 않는다는 비판에 노 대통령은 그 지적을 일부 받아들인다. 곧이어 노 대통령은 영국의 사회학자 엔서니 기든스를 인용하며, 영국조차 친미국가라는 말을 듣는데, 북의 잣대로 자주국가를 본다면 자주국가는 북밖에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대한민국도 점진적으로 자주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게 노무현 대통령의 말.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작전계획 5029 재검토, 미군 기지 이전 등을 근거로 들었다. 대한민국의 친미는 국제 질서 속에서 살아가려는 방편이며, 북도 국제 관계로 들어와 고립에서 벗어나자고 제안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노무현 대통령의 말을 이해하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오후 회담을 갖기로 한다. 그렇지만 전작권 환수 계획은 미뤄졌고, 작전계획 5029는 부활했다. 이 시점에서 유시민은 청중에 물음을 던진다.
“계속 전작권을 미룰 것이냐? 전작권을 미군 사령관에 맡겨둔 상태에서 작계 5029를 추진할 것이냐? 이런 문제가 여전히 있다. 우리 사회 내부에서 충분히 토론해야 할 문제다.”
대화록을 읽는 시선 4, 북핵
대화록에서 김계관 단장이 했던 말을 보면 핵무기에 관한 북측의 기본 입장을 알 수 있다.
내용적으로 볼 때 신고에서는 우리가 핵계획, 핵물질, 핵시설 다 신고합니다. 그러나 핵물질 신고에서는 무기화된 정형은 신고 안 합니다. 왜? 미국하고는 우리하고는 교전상황에 있기 때문에 적대상황에 있는 미국에다가 무기상황을 신고하는 것이 어디 있갔는가. 우리 안 한다. (『노무현 김정일의 246분』, 112쪽)
북이 핵을 가진 이유는 미국과 관계 때문이지, 대한민국과 관계 때문이 아니다. 미국이 북한을 여전히 적성국가로 보고, 교전 국가로 대하는 한 북한은 핵무기를 파기할 의지가 없다. 이런 면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비핵 개방 3000’은 잘못된 접근이며 “상대방을 완전히 무시하는” 처사다. 유시민은 북핵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전협정에서 평화협정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서는 2가지를 해결해야 하는데, 하나가 NLL이고 하나가 미군 주둔 문제다. 두 문제 모두 난제고, 특히 미군 철수는 국민 정서상 받아들이기 어려운 실정이다. 어쨌든 이런 정황을 알고 북핵에 접근해야 한다는 게 유시민의 진단이다.
대화록을 읽는 시선 5, 두 정상의 인격적 특성
남북 정상 회담은 노무현 대통령 임기 말기에 이루어졌다. 이 때문에 정치쇼라는 비판도 많았다. 유시민 저자는 두 정상의 인격적 특성을 분석하며, 정상회담이 임기 말기에 이뤄져야 했던 이유를 추측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자수성가형 아웃사이더인데,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권력을 상속받은, 소신형 절대 권력자다. 창업자가 아니라 상속자라 의사 결정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어쩌면 이러한 소심함 때문에 김대중 대통령 때도 남북관계가 많이 진전되지 못했고, 노무현 대통령 때도 임기 말기에 정상회담이 잡힌 게 아닐까, 하는 게 유시민의 짐작이다.
대화록에도 이러한 소심함이 드러난다. 노무현 대통령의 초대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자신의 신변을 보장할 수 없기에 남을 방문할 수 없다고 말한다. CIA와 같은 미 공작기관은 물론이고 극우단체들의 시위 등으로부터 안전을 확신할 수 없다는 속내다.
김어준이 말하는 유시민
1부의 특강이 끝난 뒤, 2부에는 초대 손님이 등장했다. 『닥치고 정치』의 저자이자 나꼼수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어낸 김어준. 자칭 ‘유시민 전문가’라는 그는 유시민이 정계를 은퇴한 감회를 밝혔다.
“은퇴 소식, 안타까웠다. 이렇게 한 시대가 마감되구나, 하고 짠하기도 했다. 권력욕이 아닌, 옮음으로 정치하려 했던 정치적 낭만주의자가 사라졌으니. 반갑기도 했다. 말과 글이 동시에 되는 사람이 2명인데 그 중 한 명이니까. 그 두 사람은 김근태와 유시민. 이들의 말은 녹취를 풀면 글이다. 대한민국에서 아무리 복잡한 사안이 발생해도 누구나 알기 쉽게 해설할 수 있는 능력으로는 두 번째 사람 아닌가. 1위는 나다. (웃음) 이런 사람이 민간 영역으로 돌아왔다.”
정계 은퇴를 번복할 생각이 없냐는 물음에 유시민은 그런 일은 없다고 못 박는다. 자연인으로 책 읽고 글 쓰는 지금의 시간이 즐겁다고 밝혔다. 앞으로 10년 동안 쓸 책 10권을 이미 구상하고 있다는 그는 의외로 요리책이나 여행책에 욕심을 나타냈다. 두 책 모두 김어준은 안 팔릴 것이라고 예측했지만 두고 볼 일이다. 이외에도 둘은 통합진보당 정당해산심판 및 역사 교과서 등 굵직한 정치 사건을 두고 의견을 내놓았다. 장장 3시간에 걸쳐 진행된 행사는 청중 모두가 자연인 유시민이 앞으로 정치 이외의 새로운 도전을 하도록 응원하면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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