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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위해 노래 만드는 게 얼마나 행복한지!

‘노래와 피아노의 이중창’ 슈만 <시인의 사랑>(Dichterliebe op.48) “아름다운 5월, 새들이 노래할 때 나는 그대에게 내 마음을 고백한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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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사랑>은 슈만의 여러 가곡집 중에서도 단연 걸작으로 꼽히는 명편입니다. 모두 16곡으로 이뤄져 있지요. 클라라와 결혼식을 올린 것이 9월 12일이었는데, 이 가곡집은 그보다 약 4개월 전에 작곡됐습니다. 9일 만에 일사천리로 쓰였다고 하는데, 슈만은 이번에도 역시 열에 들뜬 모습으로 클라라에게 이런 글을 남기지요. “나는 너무 기뻐서 웃다가 울다가 하면서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선율과 반주는 나를 미치게 합니다. 하지만 클라라! 노래를 만든다는 것이 내게는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모릅니다.”


로베르트 슈만(Robert Schumann) [출처: 위키피디아]

1810년 작센 주 츠비카우에서 출판업자의 아들로 태어나 라이프치히 대학과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법률을 배우다가 뒤에 작곡과 피아노를 배우는 등 피아니스트가 되려 하였다. 그러나 손가락을 다쳐서 작곡을 하게 되었고, 평론가로서도 활약하게 되었다. 중학 시절에 바이런ㆍ리히터 등의 낭만주의 작품을 애독하여 큰 영향을 받았다. 1834년 <음악 신보>를 창간하고, 1840년 클라라 비이크과 결혼하였다. 그 후 수많은 가곡을 작곡하고 멘델스존의 라이프니츠 음악원에서 강사, 드레스덴 합창단의 지휘자가 되어 활약하였다. 그 뒤 정신 이상으로 라인 강에 투신 자살을 기도했다가 구조되었으나 2년 후 1856년, 46세에 현재 본으로 편입된 엔데니히의 병원에서 죽었다.
-[출처] 위키피디아
슈만은 마음 씀씀이가 넉넉한 사람이었습니다. 3주 전 칼럼에서 소개했던 브람스 얘기 기억나시지요? 1853년 9월 30일, 슈만은 자신의 집을 찾아온 스무 살 청년 브람스의 연주를 듣고 진심으로 탄복합니다. 그날 일기장에 “천재가 다녀갔다”고 쓴 것은 물론이거니와, 잡지 <음악신보>에 생면부지의 청년을 열렬히 옹호하는 평론을 발표하면서 앞날의 무운장구를 기원하지요. 어디 브람스뿐인가요. 슈만은 동갑내기 음악가 쇼팽에 대해서도 그랬습니다. 슈만이 쇼팽의 자작곡 악보를 처음 접한 것은 1831년이었는데, 그때도 슈만은 자신의 스승(훗날 장인이 되는) 프리드리히 비크에게 흥분한 어조로 외쳤다고 합니다. “당장 이 사람을 불러와 클라라와 함께 피아노를 공부하게 하십시오.”

자신도 피아니스트를 꿈꿨으면서도, 경쟁과 질투심을 갖기보다는 훌륭한 음악가를 발견했다는 기쁨에 환호작약하는 것.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요. 하지만 슈만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삿된 마음을 찾아보기 어려운 순수한 사람이었습니다. 아마 그래서였을 겁니다. 그렇게 순수한 열정을 가진 사람이었기에 정작 자신과는 타협하거나 절충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그의 정신을 옭죄었던 갖가지 불안증, 환청과 환각, 급기야는 라인강에 몸을 던질 정도로 심해진 우울증은 결국 슈만을 죽음으로까지 몰고 갔습니다.

슈만의 정신병 증세는 집안 내력과 무관치 않아 보입니다. 출판업자였던 슈만의 아버지는 오래도록 신경쇠약을 앓다가 1826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같은 해에 슈만의 손윗누이인 에밀리에도 자살했습니다. 슈만이 열여섯 살이 되던 때의 일이었습니다. 기록에 따르자면 슈만은 스물세 살이던 1833년부터 정신병 증세를 보였다고 합니다. 증세를 한두 가지로 특정하기가 어려운, 아주 복합적인 증세를 보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예컨대 그는 고소공포증을 앓았고 죽음에 대한 공포에 노상 시달렸습니다. 죽은 아버지가 눈앞에 보인다고 헛소리를 하는가 하면, 귀에서 음악소리가 들린다고 호소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슈만의 귀에는 A음의 환청이 계속 들렸다고 합니다. 불면과 두통도 거의 달고 살다시피 했습니다.

그렇게 정신질환 증세를 보이기 시작하던 무렵에 슈만이 처해 있던 상황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됩니다. 첫 번째는 손가락 부상으로 피아니스트의 꿈을 접어야 했던 것, 두 번째는 좋아했던 큰형 율리우스와 형수의 죽음, 그리고 세 번째는 음악평론가로서의 삶을 계획하면서 잡지 <음악신보>의 창간을 한창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당시의 슈만은 좌절과 슬픔에 빠진 채 불안증을 드러내기 시작했지만, 그와 동시에 몇몇 친구들과 함께 새로운 일을 구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음악평론가 슈만은 두 개의 필명(筆名)을 사용했습니다. 하나는 ‘오이제비우스’(Eusebius)였고, 또 다른 하나는 ‘플로레스탄’(Florestan)이었지요. 무슨 뜻이었을까요? 오이제비우스는 명상적이고 우울한 인물, 그러니까 울증에 시달리는 인간을 상징합니다. 반면에 플로레스탄은 열정이 넘치는 사람, 즉 조증에 휘둘리는 인간을 뜻합니다. 한 마디로 슈만은 극단적인 조울증 환자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이 두 개의 상반된 캐릭터를 자신의 필명으로 사용했던 겁니다. 불행히도 그는 그렇게 분열된 자아를 갖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오이제비우스와 플로레스탄은 슈만이 작곡한 피아노곡 <사육제 op.9>에도 등장하지요. 실재인물과 가공인물들을 음악으로 묘사하면서 흥겨운 무도회의 분위기를 그려내고 있는 곡인데, 모두 21곡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그중에서 5곡이 ‘오이제비우스’, 6곡이 ‘플로레스탄’이지요.


클라라 슈만(Clara Josephine Wieck Schumann) [출처: 위키피디아]

그렇게 정신질환에 거의 평생을 시달렸던 슈만에게도 꿈처럼 달콤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언제였을까요? 아마 이 글을 읽을 당신도 금세 짐작하실 겁니다. 그렇습니다. 스승이었던 프리드리히 비크의 반대를 무릅쓰고 그의 딸인 클라라와 결혼했을 때였습니다. 두 사람은 약 5년간의 열애 끝에 1840년에 결혼식을 올리는데, 이해에 슈만은 자그마치 약 140곡의 가곡을 일사천리로 작곡해냅니다. 정말 엄청난 생산력이었지요. 그래서 슈만의 생애에서 1840년을 이른바 ‘가곡의 해’라고 부릅니다.

한데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지요. 그 폭풍 같은 에너지의 반대편에는 무엇이 있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완전한 무기력’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열에 들떠서 열정적으로 곡을 써내려가는 슈만의 반대편에는 완전히 탈진한 모습으로 멍 때리고 있던 슈만도 공존했다는 것이지요. 슈만은 그렇게 극단적인 열정과 우울 사이를 오가며 살았습니다. 그것이 바로 슈만의 이중성, 이름하여 ‘오이제비우스’와 ‘플로레스탄’이었습니다.

1840년에 작곡된 슈만의 가곡들은 그야말로 주옥같은 걸작들입니다. <리더크라이스> <여인의 사랑과 생애> <미르테의 꽃> 등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습니다. 오늘은 그중에서도 하이네의 시에 곡을 붙인 <시인의 사랑>(Dichterliebe)을 듣겠습니다. 슈만의 여러 가곡집 중에서도 단연 걸작으로 꼽히는 명편입니다. 모두 16곡으로 이뤄져 있지요. 클라라와 결혼식을 올린 것이 9월 12일이었는데, 이 가곡집은 그보다 약 4개월 전에 작곡됐습니다. 9일 만에 일사천리로 쓰였다고 하는데, 슈만은 이번에도 역시 열에 들뜬 모습으로 클라라에게 이런 글을 남기지요. “나는 너무 기뻐서 웃다가 울다가 하면서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선율과 반주는 나를 미치게 합니다. 하지만 클라라! 노래를 만든다는 것이 내게는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모릅니다.”


<KBS 명작스캔들> 中

16곡 중에서 첫곡을 동영상으로 감상해보시기 바랍니다. ‘아름다운 5월’이라는 제목입니다. “아름다운 5월, 꽃들이 피어날 때 내 마음에는 사랑이 싹튼다네. 아름다운 5월, 새들이 노래할 때 나는 그대에게 내 마음을 고백한다네.” 슈만은 이 가곡집에서 피아노의 위상을 한껏 끌어올립니다. 단순한 반주라기보다는 하나의 연주로 격상시키지요. 그래서 이 가곡집은 ‘노래와 피아노의 이중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첫곡을 여러 차례 들어 익숙해지시면 음반을 통해 나머지 곡들도 음미해보시길 권합니다.



프리츠 분더리히(Fritz Wunderlich), 후베르트 기젠(Piano)/1966년/DG

36세의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난 프리츠 분더리히의 음역은 테너다. 이른바 ‘미성(美聲) 테너’라는 호칭이 그처럼 어울리는 성악가도 드물다. 정확한 가사 전달과 흔들림 없는 음정, 동시에 부드러우면서도 그윽한 서정성을 잃지 않는 목소리는 <시인의 사랑>과 제격으로 어울린다. 세상을 일찍 떠난 탓에 남겨놓은 녹음은 별로 많지 않지만, 슈만의 <시인의 사랑> 외에 베토벤과 슈베르트의 가곡들 중에서 귀에 익숙한 곡들을 커플링한 이 음반은 ‘필수적 콜렉션’이라고 평할 만하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깨끗하고 부드럽게 처리되는 분더리히의 음색에 불만을 가질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좀더 낮고 묵직한 느낌을 전해주는 디스카우의 음반을 선택하는 것도 좋겠다.


디트리히 피셔-디스카우(Dietrich Fischer-Dieskau), 크리스토프 에센바흐(Piano)/1977년/DG

<시인의 사랑>은 감정의 진폭이 크고 넓다. 사랑을 둘러싼 갖가지 희로애락을 절절하게 표현하고 있는 절창이다. 디스카우의 바리톤은 그 다양한 감정의 넘나듬을 마치 한 편의 드라마처럼 그려낸다. 아울러 이 거장의 표현력은 역시 담백하다. 16곡이 저마다 지닌 노랫말의 의미와 감정을 드라마틱하면서도 격조 있게 표현한다. 지난해 타계한 그는 생전에 <시인의 사랑>을 모두 여섯 차례 녹음했다. 외르크 데무스가 반주를 맡은 1965년 녹음이 빼어난 연주로 손꼽히지만, 국내에서 구입이 쉽지 않은 것이 아쉽다. 1977년에 에센바흐와 함께 연주한 녹음도 수작이다. 나이가 들면 더 비통하고 무거워 질 것 같지만 오히려 그 반대다. 전작에 비해 좀더 환하다.


이안 보스트리지(Ian Bostridge), 율리우스 드레이크(Piano)/1998년/EMI

가장 젊은 느낌을 전해주는 <시인의 사랑>이다. 디스카우가 들려주는 균형잡힌, 혹은 중용적인 감정 표현과는 맛이 다르다. 매우 직선적으로 감정을 토로하는 가창이다. 보스트리지의 가창은 사랑의 기쁨을 노래하는 가곡집의 전반부(1~6곡)보다는 실연의 아픔을 노래하는 7~14곡에서 한층 빛난다. 연약한 남자의 애절한 느낌을 매우 선명하게 전달한다. 깨끗하고 부드러운 분더리히, 담백하면서도 묵직한 디스카우의 가창과 비교하자면 좀더 젊은이다운 방황과 고뇌가 느껴진다. <그라모폰>에서 베스트 솔로 보컬상을 수상한 음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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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문학수

1961년 강원도 묵호에서 태어났다.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에 소위 ‘클래식’이라고 부르는 서양음악을 처음 접했다. 청년시절에는 음악을 멀리 한 적도 있다. 서양음악의 쳇바퀴가 어딘지 모르게 답답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서구 부르주아 예술에 탐닉한다는 주변의 빈정거림도 한몫을 했다.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부터 음악에 대한 불필요한 부담을 다소나마 털어버렸고, 클래식은 물론이고 재즈에도 한동안 빠졌다. 하지만 몸도 마음도 중년으로 접어들면서 재즈에 대한 애호는 점차 사라졌다. 특히 좋아하는 장르는 대편성의 관현악이거나 피아노 독주다. 약간 극과 극의 취향이다. 경향신문에서 문화부장을 두차례 지냈고, 지금은 다시 취재 현장으로 돌아와 음악담당 선임기자로 일하고 있다.

2013년 2월 철학적 클래식 읽기의 세계로 초대하는 <아다지오 소스테누토>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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