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김현진의 책 뒤집어보기
단 5권의 책만 소장할 수 있다면, 시드니 셀던
버려야 하지만 차마 버릴 수 없는 책
90년대 중후반 이후 출간된 책은 다 버렸지만, 시드니 셀던의 절정기 작품이라고 내가 생각하는 소설들은 차마 버리지 못했다. 2007년 시드니 셀던의 부고를 듣고 잘 아는 동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처럼 마음이 서글펐는데, 1917년생이니 만 90세라는 천수를 누렸는데도 아쉬웠다.
책 좋아하는 사람 치고 책 욕심 없는 사람 없다. 물론 나도 그런 사람으로, 몇 년 전 아르바이트의 대가로 책을 받을 수 있었을 때 몹시 행복했다. 그런데 욕심 내서 갖고 싶어해도 무방하고, 누가 놀러왔을 때 자랑스럽게 책등을 손님에게 보일 수 있는 그런 책 말고, 은밀한 책 취향은 없으신지? 많이 마이너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30대 이상의 여성이라면 옛날 지경사의 『말괄량이 쌍둥이』 시리즈나 『외동딸 엘리자베스』 시리즈, 혹은 『들장미 소녀 캔디』 , 『유리가면』 같은 일본 명작만화를 결말도 희한하게 지어낸 소설판으로 바꾸어 출간했던(『베르사이유의 장미』 같은 경우, ‘마리 스테판하이트’라는 저자 이름에 스웨덴에서 기숙학교를 운영하는 학교 교장이라는 그럴싸한 프로필까지 만들었다! 덕분에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베르사이유의 장미』 가 이케다 리요코 원작의 만화가 아니라 ‘마리 스테판하이트’라는 서양 작가의 소설 원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상당했다.) 동광출판사의 ‘파름문고’ 시리즈 같은 걸 아직까지 간직하고 있거나 헌책방 등에서 사서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누가 우리집에 왔을 때 책장에 꽂혀 있는지를 고민하게 하는 애증의 상대다. 나는 그게 특히 심한데, 글에 관심 많은 사람들이 누구나 한 번 읽었을 법한 스티븐 킹의 글쓰기 작법에서 절대 읽지 말라고 한 책을 모조리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게 나란 말이다.
연인의 집을 처음 방문했을 때 몇 년 전 초 베스트셀러였던 자기계발서 몇 권을 책장에서 발견한 후 건방지게 “라면 자주 끓여 먹나봐? 냄비받침이 많네?” 요딴 소리나 지껄인 주제에(제가 써제낀 책들은 생각도 안하는 이 오만함! 지금은 깊이 반성 중이다) 겉으로 우아한 척 하면서 몰래 트렁크에 처박아 감춰 둔 책들을 최근 일년 사이 정리해야 할 사정이 생겼다. 원래 뭘 버리는 걸 주저하는 성격이 아님에도 책 앞에서는 오래 고뇌했다. 남 보기 부끄러운 책을 가지고 있는 것이 정말 맞을까? 앞으로 몇 번 정도는 이 남 보기 부끄러운 독서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 싶다. 영양가도 없고 그리 대중적으로 재미있는 이야기도 아니니 독서에서 효율과 영감, 감명을 바라시는 건전한 독서가들은 살며시 브라우저의 뒤로가기를 눌러 주실 것.
내가 지금 하려는 것은 책에 관한 실없는 이야기들이라서. 벽장 속의 해골처럼 남 보이기 부끄러워 꽁꽁 감춰 두었던 책, 그 중에서 이번에 용기를 내어 버린 시리즈는 스티븐 킹이 절대 읽지 말라고 언급했던 책 중 하나인 『다락방의 꽃들』 을 비롯한 V.C 앤드류스의 책들이다. 아, 정말이지 이런 책들이란… 모든 한국 막장 드라마의 공식을 뛰어넘으면서도 스스로의 강건한 공식을 가진 V.C 앤드류스. 이 사람 책들의 마력은, 한 번 읽을 때마다 그간 대학원에서 서사창작을 공부하기까지 하며 김경욱 교수님(『위험한 독서』 를 비롯한 그야말로 훌륭한 작품을 썼으며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훌륭한 취향의 소유자일 뿐 아니라 훌륭한 외모를 가지기도 한)의 도움으로 애써 쌓아 놓았던 훌륭한 취향, 간신히 필립 로스를 가장 좋아하는 작가라고 말할 수 있게끔 쌓아 놓은 취향들이 와르르 무너지는 것을 처절하게 느끼게 만드는 그런 힘이 있다! 읽고 나면 그간 억지로 읽어 둔 훌륭한 문학작품들은 후르륵 날아가 버릴 정도로 강한 독성이 있다. 하지만 으아 머리가 썩는 것 같다, 하면서도 읽게 되는 것이 바로 V.C 앤드류스. 이 작품들의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내가 버리지 못한 책을 이야기하겠다.
시드니 셀던(Sidney Sheldon, 1917~2007) [출처 : 위키피디아] |
| ||||||||||
관련태그: 시드니 셀던, 게임의 여왕, 내일이 오면, 천사의 분노, 영원한 것은 없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라는 오래된 캐치프레이즈를 증명이라도 하듯 '88만 원 세대'이자 비주류인 자신의 계급과 사회구조적 모순과의 관계를 '특유의 삐딱한 건강함'으로 맛깔스럽게 풀어냈다 평가받으며 이십 대에서 칠십 대까지 폭넓은 독자들에게 사랑받는 에세이스트. 『네 멋대로 해라』, 『뜨겁게 안녕』, 『누구의 연인도 되지 마라』, 『그래도 언니는 간다』, 『불량 소녀 백서』 등을 썼다.
7,200원(10% + 1%)
11,700원(10% + 5%)
5,850원(10% + 5%)
12,150원(10% + 5%)
12,150원(10% + 5%)
7,200원(10% + 5%)
8,320원(20% +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