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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이청준을 찾아서 - 전남 장흥 진목 마을과 사라진 포구

사라진 진목 포구에는 여전히 파도가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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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청준 선생은 나를 만난 적이 없으며, 그는 나를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를 안다. 그가 태어난 마을과 돌담길을 알며, 바다를 바라볼 수 있는 작은 초가집을 안다. 그의 소설이 된 마을과 포구, 그가 생전에 가졌지만 두고 간 병명들과 소설들을 나는 안다. ‘안다’라는 과오는 이해의 척도 중 가장 낮은 부분이지만 그럼에도 나는 가감 없이 그를 안다고 말하고 있다. 이야말로 그를 긍정하는 나의 마음이며, 이 글을 쓰는 이유이자, 그를 찾아가는 길이라 믿기 때문이다.



문우란 모름지기

이 짧은 에세이는 두 가지의 경험에서 비롯한 것이다. 첫 번째는 문학과지성사의 산 증인이라 할 수 있는 김병익 선생님을 만난 일이며, 두 번째는 그의 벗이자 한국문학의 거목인 이청준 소설가의 생가와 장흥의 포구 일대를 다녀온 것이다. 내가 김병익 선생을 만난 것이 2009년이니, 이청준 소설가가 작고한지 일 년이 지난 가을이었다. 부산 동아대학교에 특강 차 내려오신 김병익 선생을 마중하기 위해 함정임 교수와 조교인 내가 부산역으로 나가 있었다. 선생은 검은 지팡이를 짚으며 느긋한 미소로 걸어 나왔다. 사진에서만 보아온 크고 굵은 안경테를 한번 슬쩍 옮기는 것을 나는 한발 뒤에서 바라보았다. 특강까지는 두어 시간이 남았으므로 우리는 점심 식사를 한 후에 부산을 둘러볼 작정이었다. 연로하신 선생을 위해 메뉴를 정하는 것은 제법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우려에 불과했다. 선생이 직접 나서서 우리를 역 앞 국밥 골목으로 인도했다. 6ㆍ25 피난 시절의 부산을 떠올리며 몇몇 자리를 지팡이로 가리키기도 했다. 그러면서 피난 이후 부산에 터를 잡은 누이의 집에 들를 때마다 역 앞에 있는 국밥집을 간다는 말을 해 주었다. 기억을 되짚는 그의 발걸음을 나는 묵묵히 지켜보았다.

선생과의 만남 이후 경건하면서도 한층 무거워진 마음으로 며칠을 보내고 있었는데, 불현 듯 오성은 형제라는 이름으로 책 한권이 도착했다. 『기억의 타작-도저한 작가 정신을 위하여』라는 김병익 비평집이었다. 그 책에는 「이청준 다시 만나기」라는 글이 실려 있었다. 이청준 선생이 타계한 이후, 쓰인 글이었다. 나는 옥고를 천천히 살폈다. 소제목의 한 단어인 ‘다시’라는 말은 잠시 숨을 멈추게 했다. 비평가의 시선과 문우의 마음이 이청준을 우리의 삶 속으로 다시 끌어들이고 있었다. 이는 문학이 해낼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일임에 틀림없었다. 한낱 문청에 불과한 내가 그들의 글과 이름을 함부로 부르기에 부끄럽기 이를 데 없지만.

이청준 소설가의 문체를 두고, 후배 이인성 소설가는 이렇게 말한 적 있다. ‘우연의 개입을 어쩔 수 없이 수락하는 허탈감이 번져나오.’ 이 말은 이청준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하여’라는 단어의 근원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것이 단순한 해석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 것은 그 글을 읽은 지도 한참 후다. 그러니까 지금에야 비로소 ‘하여’가 문장 밖으로 툭 튀어나와 나의 무언가를 긁고 있는 것이다. 이청준 선생은 나를 만난 적이 없으며, 그는 나를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를 안다. 그가 태어난 마을과 돌담길을 알며, 바다를 바라볼 수 있는 작은 초가집을 안다. 그의 소설이 된 마을과 포구, 그가 생전에 가졌지만 두고 간 병명들과 소설들을 나는 안다. ‘안다’라는 과오는 이해의 척도 중 가장 낮은 부분이지만 그럼에도 나는 가감 없이 그를 안다고 말하고 있다. 이야말로 그를 긍정하는 나의 마음이며, 이 글을 쓰는 이유이자, 그를 찾아가는 길이라 믿기 때문이다.




사라진 진목 포구에는 여전히 파도가 친다

전남 장흥 회진면의 진목 마을로 가기 위해서는 고속도로를 벗어나고서도 사십 여분을 더 달려야 했다. 간혹 차창 밖으로 바다 고유의 짠 내가 풍겨오기도 했다. 하지만 몇 개의 산을 굽이돌고 오르내리는 동안에도 제대로 된 바다는 볼 수 없었다. 매미의 고성과 풀벌레의 소란이 익숙해질 즈음에는 쇠똥과 퇴비의 냄새도 맡을 만 해 졌다. 모든 게 푸르고 무성한 7월이었다.

산허리를 둘러 마을의 초입에 들어서니 여물을 뜯는 두어 마리의 소를 마주칠 수 있었다. 소가 엉덩이로 꼬리를 찰싹거리는 건 벌레를 쫓기 위해서겠지만 그조차 반가움으로 다가오는 걸 보니 새삼 여행길이 가벼워졌다. 이번 여행이 남다른 것은 이청준 선생님의 고향을 방문하는 것은 처음이기 때문이었다. 그가 유년기에 보았을 풍경을 살피고, 어머니와 보낸 시간을 돌이키며, 이제는 고인이 된 그의 흔적을 매만지는 것은 나에겐 큰 의미이자 지표가 되었다.

선생의 생가로 가는 길은 사뭇 긴장이 되었지만 고즈넉한 풍경이 양팔 벌려 나를 이끌었다. 낮은 돌담과 세 갈레로 굽어진 골목길, 소들이 밟아 파인 흙바닥과 그 옆으로 자그맣게 피어있는 들꽃, 나의 눈길은 평소보다 낮게 깔렸다. 왜 그랬을까. 지금에서 돌이켜 보면, 알 수 없는 부끄러움이 앞섰던 것 같다. 그 높고 푸르렀던 진목의 하늘을 바라보기에 존경하는 소설가의 유년기가 얼마나 고되고 아팠던지 헤아릴 수 없어서였을까.

‘기꺼운 마음으로 고향에 돌아갈 수 있는 자 그 누구인가’ 가방에 챙겨온 소설집 『눈길』의 표지에는 이 말이 적혀 있었다.

초가집에 남색 기와지붕을 얹어 수리해 둔 소박한 한옥은 정남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과거에는 생가 앞까지 바닷물이 밀려들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매립을 해 농사땅이 되어버렸다. 진목 포구도 사라져버려 가까운 삭금 포구가 그 역할을 대신하게 되었다. 하지만 기분 탓일까. 예의 그 풍경이 펼쳐진 듯 바람을 타고 바다의 짠 내가 밀려왔다. 사라진 진목 포구에는 여전히 파도가 쳤다. 이청준 선생의 기억에 비롯한 것이겠지만 우리는 그의 작품으로 옛 시절의 풍경을 되찾을 수 있는 것이다.

선생이 유년기에 바라보았던 그 바다가 막힌 것은, 마치 그의 운명과도 같았다. 그는 소년기에 4년 동안, 아버지와 형 동생 등 가족 넷을 잇단 잃었다. 이후로도 역사의 굵직한 비극들을 수차례 온몸으로 겪은 고통은 결국 소설 쓰기를 향했다. 명문인 광주일고 학생회장을 지내면서도 법대나 의대를 가지 않고, 서울대 문리대 독문과로 진학한 것은 그 시절 누구도 이해하지 못한 진로였다.

진목 마을에 남아 그를 기억하는 팔촌형 이종칠 씨는 지금에서도 그 속내를 모두 이해할 수는 없다고 하지만 마을의 자랑이 되고 손님들을 찾아오게 하니 청준의 뜻이 자신보다는 더 깊었을 거라고 말했다. 바다를 좋아했던 철부지 소년은 어느 순간부터 말이 없어지고 대신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고 했다. 40여 년 동안 120여 편의 작품을 써냈으니, 그가 한 말보다는 써낸 것들이 더 많은 셈이다.

대청마루에는 생가를 찾은 이들이 고인에게 남기는 방명록이 있었다. 방 안에는 그가 남겼던 원고들과 외국에 번역된 원고, 각종 상들과 사진들이 벽마다 걸려 있었다. 『서편제』『천년학』 등 그의 작품은 많은 영화로 만들어졌다. 『시발점』, 『석화촌』, 『축제』, 『이어도』, 『밀양』 등 영화의 포스터가 드문드문 보이기도 했다. 쉽게 지나치기 힘들었던 것은 수납 쪽문 안쪽에 자리한 예닐곱 개의 광주리였다. 수십 년은 족히 되어 보이는 물건들이 잘 정돈 되어 있었다. 이청준 선생의 어머니가 썼을 그 유품을 빛이 들게 하고 바람을 쐬게 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음직했다. 평생 밭일을 해 오신 어머니를 위해 선생이 밭을 갈아 묘소로 만든 것도 그 마음과 다를 바 없었다. 그 생가는 비단 이청준 선생만을 위한 공간이 아닌 것이다. 선생은 단편 『눈길』의 작가노트에 이렇게 쓴다.

“그런데 다시 몇 년 뒤(1977년 이른봄) 그간의 서울살이에 지칠대로 지친 심신을 더 버텨낼 길이 없어 한동안 시골 자형네한테로나 내려가 방을 하나 빌려 지내며 글을 써보다가 사정이 괜찮으면 아예 그대로 주저앉아 버리고 말 작정으로 아내까지 동행해간 길에 그 어머니의 헌 오두막 거처에서 하룻밤을 먼저 지내게 됐을 때였다. (중략) 『눈길』은 그러니까 나 혼자 쓴 소설이 아니라 내 어머니와 아내 셋이서 함께 쓴 소설인 셈이다.”


다섯 갈매기와 파도와 시간의 기억

이청준 선생이 끝내 숨을 거둔 것은 2008년 7월 31일 새벽 4시 삼성의료원 암병동에서 였다. 고인은 8월 2일 남해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낮은 언덕, 그의 어머니 무덤 바로 아랫자리에 모셨다. 내가 그곳을 찾았을 즈음에는 한여름의 소나기가 묘소를 적셔 주었다. 무덤 가까이에는 누군가 두고 간 막걸리 병이 놓여 있었다. 빈 병임을 확인한 나는 치울까 망설였지만, 결국 그대로 두었다. 빗발울이 병 속을 다시 채워 넣을지도 몰랐다. 무덤 곁에는 동료, 후배 작가들이 마련한 비석과 문학 지도가 그와 함께 득량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높이 2m 가량의 비석에는 남도연작 중 한 편인 「해변 아리랑」의 한 대목이 새겨 있었다.
그는 늘 해변 밭 언덕 가에 나와 앉아 바다의 노래를 앓고 갔다 노래가 다 했을 때 그와 그의 노래는 바다로 떠나갔다 바다로 간 그의 노래는 반짝이는 물 비늘이 되고 먼 돛배의 꿈이 되어 섬들과 바닷새와 바람의 전설로 살아갔다.
-이청준, 「해변 아리랑」 中에서
이청준 선생이 문우들과 고향을 찾을 때면 꼭 먼저 강진의 마량 포구에 들렀다고 했다. 단골횟집에 들러 맛을 찾고, 바다를 보고 갔다는 말에 그 식당을 찾게 되었다. 김병익 선생 역시 “먹어본 어죽으론 최고”라는 그 횟집에 들러 방명록을 남겼다고 했는데, “미백의 흰머리와 함께 마량의 노을을 보며”라는 그의 글귀를 나는 마량의 한 횟집에서 찾을 수 있었다. 나는 작은 액자의 앞뒤로 채워진 그 방명록을 보며, 처음으로 친구가 생긴 아이의 기분처럼 상기되었고 무척이나 감명을 받았다. “어머니 앞에서는 차마 흰 머리카락일 수 없어” 미백(未白)이라는 호를 쓴 이청준 선생의 글귀 역시 볼 수 있었다. “다섯 갈매기와 파도와 시간의 기억”이라는 글 아래로 未白이라 적혀 있었다. 문우들의 글과 후배 화가 김선두의 그림, 그리고 차마 채우지 않은 종이의 여백은 마치 마량과 진목을 사이에 둔 바다와도 같았다. 그곳에는 선학동을 노니는 두 마리의 학과 산 그림자가 그려져야 할까, 이제는 사라진 진목 포구로 몰아치는 파도가 그려져야 할까, 어쩌면 어머니의 이름이, 아니 그저 작은 광주리 하나가 그려지면 좋을까.

언젠가는 나도 진목의 하늘을 자신 있게 바라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 넓은 여백에, 존경하는 소설가의 이름을 새겨본다. 누군가 두고 간 빈 막걸리 병이 생각나는 밤이다. 그러고 보니, 무덤 앞에서 좋은 작품을 남겨서 감사하다는 말도 제대로 드리지 못했었다. 오늘 밤에는 그의 책을 가까이 둬야겠다. 오늘은 그의 기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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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오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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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필
문학청년
어쿠스틱 밴드 'Brujimao'의 리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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