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여울은 21세기 한국에서 활동하는 대표적인 젊은 글쟁이다. 2004년 봄 ‘문학동네’에 ‘암흑의 핵심을 포복하는 시시포스의 암소 - 방현석론’을 발표하며 평론가로 데뷔. 이후 여러 매체에 기고하며 자신의 글쓰기를 끊임없이 발전시켜 오고 있다. 특히 2013년에는 『마음의 서재』,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을 연달아 발표하며 어느해보다 활발하게 집필활동을 하고 있다.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은 정여울이 20대에게 건네는 글로, 이전에 발표한 평론적 성격의 글과는 다른 편한 에세이다.
몸
청춘의 키워드 20개를 뽑았다. 혹시 책에는 쓰지 못했지만 20개 외에 청춘을 대표하는 키워드가 더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
이 20개의 키워드 전체를 받쳐주려면, ‘몸’이 중요하다. 사랑도, 우정도, 재능도, 방황도, 모두 ‘신체’가 없이는 불가능하니까. 단지 ‘건강하게, 웰빙하자’는 의미가 아니다. 몸이 속삭이는 무언의 메시지를 잘 들어봐야 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20대는 몸에 대해서 가장 자신감이 넘치는 시기일 것이다. 하루 이틀 정도는 밤을 새도, 그 다음날 멀쩡하게 또 다시 돌아다닐 수 있는 눈부신 체력은 20대의 전유물이니까. 하지만 그런 만큼 몸의 메시지를 읽는 데 둔감한 시기일 수도 있다. 몸은 우리에게 수많은 말을 건다. 그런데 우리는 ‘세상의 메시지’를 듣느라 ‘몸의 메시지’를 읽지 못하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나는 20대에 몸이 좀 아플 때도 ‘그냥 괜찮겠지’, 하고 넘어가는 때가 많았다. 내 강한 체력을 너무 믿고 몸을 혹사시킨 적이 많았는데, 그렇게 자신을 학대한 여파가 이제야 나타나는 것 같다. 우리 몸은 다양한 활동을 필요로 한다. 단지 자기가 의식적으로 좋아하는 일만을 하지 말고, 우리 신체의 새로운 리듬을 개발할 수 있는 다양한 활동들을 해보았으면 한다. 나는 20대에 너무 정적으로 살았던 것 같다. 좀 더 적극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몸을 많이 움직일 수 있는 취미를 갖는 것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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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확 미쳐야만 알아지는 것들이 있다. 한 쪽 발만 담근 채는 결코 알 수 없는 것들. 의무감 때문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몸을 던져야만 알 수 있는 것들, 머리만이 아니라 몸 전체가 흠뻑 빠져야 깨달을 수 있는 것들이 있다. 단지 ‘전문가’란 타이틀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다. 정말 힘겨운 시간이 닥쳤을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만은 지겹지 않은 그 무엇. 인생의 아무런 흥미가 없어질 때조차도 그것만 생각하면 왠지 기적처럼 위안이 되는 그 무엇. 언제든 나의 가장 순수한 열정을 아낌없이 쏟아 부어도 전혀 아깝지 않은 그 무엇. 그 순수한 탐닉의 대상을 찾는 것이야말로 20대의 행복한 미션이다. 그러려면 많은 사람들을 만나봐야 하고, 다양한 공간 속에 나를 던져야 하며, 어떤 상황 속에서도 기죽지 않는 배짱도 필요하다. 우리에게는 ‘간판을 위한 전공’이 아니라 ‘마음의 전공’이 필요하다. 우리에게는 학점을 따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전공을 넘어서, 평생 함께 할 영혼의 동반자로서 ‘마음의 전공’이 필요하다.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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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
최근 ‘마음의 서재’에 이어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을 연달아 냈다. 단기간에 2권의 책을 내면서 힘든 점은 없었나.
<마음의 서재>는 오래 전에 이미 원고를 완성해 두었기 때문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그때>를 매주 연재하는 것이 아무래도 힘들었다. 특히 월요일 아침까지 원고를 보내야 하기 때문에 일요일이 가장 긴장되는 날이 되어버렸다. 가장 쉬고 싶은 일요일이 가장 늦게 취침하는 날이 된 것이다. 작년 7월부터 ‘주말’이라는 개념이 없어져버렸던 것 같다. 주말만 되면 ‘<그때> 원고 써야 하는데’, 하는 긴장감이 몰려왔다. 하지만 힘든 것에 비하면 기쁨이 훨씬 컸던 것 같다. 아마 예전처럼 ‘공부하는 느낌’으로 글을 썼다면 이렇게 오래 버틸 수 없었을 것이다. 그냥 ‘내 이야기를 하는 느낌’으로 글을 썼기에 힘든 것도 잘 참아낼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 이야기’를 하면서 내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이 참 좋았다. 내게 소중한 추억들을 함께 불러낼 수 있어서, 내가 잃어버린 시간의 애틋함을 다시 되찾을 수 있어서. 이 책을 만들었던 시간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독자
채널예스에서 연재한 글을 모은 책이다. 연재하면서 있었던 에피소드가 있다면 알려 달라.
독자들의 댓글과 편지가 많은 힘이 되었다. 누군가 내 글을 잊지 않고 매주 찾아와 읽어준다는 것은, 만나지 않았어도 그들을 직접 만난 느낌을 주었다. 독자들 개개인의 인생사는 잘 모르지만, 서로 글을 쓰고 읽는 몸짓을 통해 마음 깊은 곳에서 친밀감을 나누는 느낌을 주었다. 미국에 사시는 독자분이 일부러 이 글을 읽기 위해 매주 채널 예스를 방문하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정말 감사했다. 더 열심히 써야겠구나, 더 많이 나를 던져야겠구나, 그런 생각을 많이 하며 쓴 글이었다.
자의식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은 후반부로 갈수록 본인의 사적인 이야기가 많이 등장한다. 불특정 다수의 독자를 상대로 처음에는 잔뜩 경계를 하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마음을 많이 여는 느낌이었다. 이러한 느낌을 의도하며 썼나.
그럴 리가 있겠나. 잔뜩 경계하며 시작한 건 아니다. 처음부터 마음의 문을 열려고 많이 노력했다. 하지만 그게 의지만으로 되는 게 아니었다. 이런 글쓰기가 처음이었기 때문에 곧바로 적응이 안 된 것 같다. 내 마음 깊은 곳에 딱딱하게 굳어버린 감성이 빙하가 녹듯이 천천히 풀려나오는 느낌이었다. 후반부로 갈수록 점점 마음이 편해진 건 사실이다. ‘자의식의 감옥’에서 탈출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이런 사람이다’, ‘나는 이렇게 살아왔다’, ‘나는 이렇게 살아야 한다’, 이 모든 ‘자기규정’이 무거운 자의식을 만든다. 이 글을 쓰면서 나는 그동안 나를 스스로 가둬왔던 자의식의 감옥으로부터 조금씩 해방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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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돌라의 뱃사공, 곤돌리에(Gondolier)가 되기 위해서는 운전실력 뿐 아니라, 베네치아의 역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 뛰어난 노래실력까지 필수라고 한다. 모든 사람들에게 평등하게 작업을 거는 듯한 그들의 과장된 다정함이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저 모퉁이만 돌면, 지금까지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 것만 같다. 새로운 세계의 눈부심을 전달하는 아름다운 메신저, 곤돌리에들을 보며 나는 지금 그곳에 없지만 그곳에 이미 있는 듯한 멋진 착시를 선물 받는다. 뱃사공은 새로운 세계를 향한 설렘을 창조하는 사람이다. 나도 그런 글을 쓰고 싶다. 너무도 가고 싶지만 차마 갈 수 없었던 그곳으로, 당신을 사뿐히 데려다줄 수 있는, 그런 글을. 앉은 자리에서도 당신과 함께 온 세상을 여행할 수 있는, 그런 글을 쓰고 싶다.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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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여행하는 걸 매우 좋아한다. 다음 여행 장소로 어디를 생각하나.
이제는 여행의 장소보다도 여행의 마음가짐이 더 중요한 것 같다. 지금까지는 마치 정해진 미션을 처리하는 것처럼 ‘꼭 가고 싶은 여행지’를 정해놓고 그곳에서 되도록 많은 볼거리, 많은 경험을 쌓고 싶다는 느낌으로 여행을 다녔다. 하지만 지금은 정말 ‘제대로 쉴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몸만 쉰다고 쉬는 게 아니다. 마음까지, 무의식까지 쉴 수 있어야 진짜 쉬는 것 같다. 쉬는 몸짓에도 엄청난 기술이 필요하다는 걸 알았다. 난 지쳐 쓰러질 줄은 알아도, 의식적으로 쉬는 행동을 잘 못했다. 일을 안 하는 순간에도 항상 일에 대한 생각에 시달렸다. 이제는 글을 써야 한다는 의무감 없이, 강의에 대한 부담감도 잠시 벗어던지고, 그냥 완전한 휴식을 해보았으면 한다. 그래도 활자중독증은 고치지 못할 것 같으니,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책 한 권만 들고.^^ 그래도 쿠바에는 꼭 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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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종일 거기 있어도 ‘왠지 다른 데로 가고 싶다’는 충동이 일지 않는 곳들이 있다. 예컨대 비엔나의 MQ(Museums Quatier: 박물관 광장)가 그랬다. 이곳에는 에곤 쉴레와 클림트를 비롯한 수많은 화가들의 명작이 전시되어 있을 뿐 아니라, 사진처럼 그저 아무런 목적 없이 웃고 떠들고 낮잠 자고 먼산바라기를 하는 사람들이, 살아있는 명작의 파노라마처럼 눈앞에 펼쳐진다. 이런 곳에 있으면 공간의 배치라는 것이 얼마나 삶의 가치를 결정적으로 좌우하는지를 깨닫게 된다. 모든 것이 공짜인 것은 불가능하지만, 저렇게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무료공간’을 곳곳에 배치할 수 있는 삶의 여유가 바로 건축의 철학이 아닐까.
저곳에서 나는 처음으로 ‘음주 관람’을 했다. 맥주 한 잔만으로도 쉽게 인사불성(?)이 되는 나는 혼자 맛있는 맥주 한 잔 원샷하고, 카라얀의 특별 사진전을 관람했다. 카라얀의 음악과, 카라얀이 남긴 명언들과, 카라얀이 사랑한 사람들을 술과 함께 들이켰다. 그곳에서 술의 힘을 핑계로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는데 그건 슬픔의 눈물이 아니라, 이 찬란한 세상을 냉큼 혼자만 즐기고 있는 것이 못내 안타까워서였다. 나는 두고 온 모든 그리운 사람들을 생각했다. 더 많은 사람들과 이런 기쁨을 함께 누릴 수 있는, 그런 세상에서 살고 싶다.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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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만약 다시 20대로 돌아갈 수 있다면 가장 먼저 어떤 일을 하고 싶나.
너무 급히 ‘조로’해버린 것이 내 20대의 서글픔인 것 같다. 어려보이는 게 싫어 얼른 마음으로라도 나이 들어버리자고 결심했던 순간이 있었다. 어려보이는 건 곧 유치해 보이는 것이고, 무력해 보이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나이에 맞는 삶’이란 게 어떤 건지 잘 몰랐다. 물론 어떤 나이엔 꼭 뭘 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십대에 누릴 수 있는 감정들, 유치해서 더욱 애틋한 감정들, 미숙해서 더 사랑스러운 감정들을 많이 놓쳐버렸다는 것을 서른이 다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스스로의 감정에 정직해지고 싶다. 하고 싶은 말은 빙빙 돌리지 말고 그냥 해버리고, 가고 싶은 곳은 앞뒤 재지 않고 그냥 가버리고, 만나고 싶은 사람은 누가 뭐라고 해도 당당히 만나고. 이런 평범한 행동에도 왜 그렇게 복잡하고 서글픈 금기들이 많았는지. 지나고 나면 아무 것도 아닐 일을, 너무 많이 눈치 보면서 살았던 것 같다. 미래를 생각하면서 현재를 희생하는 습관도 버릴 걸 그랬다. 상처받을까봐 고백하지 못하고, 버림받을까봐 붙잡지 못하고, 나중에 힘들어질까봐 그 순간 하고 싶은 일을 못했던 기억들이 오랫동안 발목을 잡는다.
꼭 꼭 눌러왔던 욕망들, 잠재된 무의식은 정말 언젠가는 ‘사건’이 되는 것 같다. 그 억압된 기억들이 뜻하지 않은 순간에 내 뒤통수를 치기 전에, 사랑하고 싶을 땐 사랑하고, 미워하고 싶을 땐 미워하고, 그렇게 순간순간의 감정들에 솔직해지고 싶다. 그리고 20대로 돌아간다면 가장 해보고 싶은 일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각오를 하고 외국으로 떠나, ‘여행’이 아니라 ‘삶’을 살아보는 것. 완전히 새로운 곳, 아무도 날 모르는 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해보는 것. 그런데 내가 이런 이야기하면 주변의 어른들이 그러신다. 지금도 할 수 있다고. 그분들이 보기엔 난 아직 ‘어린 애’라고. 그래서 그 ‘아직 늦지 않음’에 용기를 얻는다.
재능
책에서 막심 고리키의 말을 인용했다. ‘재능이란 자기 자신의, 즉 자기의 힘을 믿는 것’이라고 했는데 정여울 평론가 스스로가 믿는 자신의 힘은 무엇인가.
20대엔 나에 대한 믿음이 별로 없었다. ‘내가 뭘 잘한다’는 생각을 의식적으로 하지 못했다. 아주 깊은 무의식 속에서는 자신감이 있었을지 몰라도, 내가 기억하는 내 모습은 항상 어딘가 주눅들어 있었다. 오랫동안 ‘자신감 없는 나’와 싸우면서 깨닫게 된 것은, 내 무의식 아주 깊은 곳에는 나를 가장 믿고, 나를 사랑하고, 나를 이해하는 또 다른 내가 있다는 것이다. 내 안에서 가장 당당하고, 멋지고, 사랑스러운 나를 꺼내어 그 모습을 좀 더 의식적으로 표현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자신감을 가지게 되는 길인 것 같다. 지금도 계속 찾고 있다. 자신 없는 나, 우울증에 걸리기 쉬운 나, 슬픔에 빠지기 쉬운 나를 헌신짝처럼 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런 ‘어두운 나’도 인정해야 한다. 지혜는 그 극단적인 나의 이미지들을 통합하는 데서 오는 것 같다. 나는 그렇게 여러 겹의 나를 다독이고, 구슬리고, 보듬어주는 데 조금은 소질이 있는 것 같다. 그렇게 무작정 믿어버리기로 했더니, 정말 거짓말처럼 마음이 편해졌다. 여러분들도 그렇게 어느 순간 자신을 믿어버렸으면 좋겠다. 자신의 능력을 ‘계산’하지 않고 ‘신뢰’하는 것이야말로 재능이 꽃피는 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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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도 모르게 나 자신을 속이고 있었다. ‘내가 재능이 있든 없든, 난 열심히 글을 쓸 거야’라는 것이 ‘의식’의 선택이었다면, ‘무의식’의 진심은 이런 것이었다. 정말 열심히 글을 쓴다 해도, 인정 받을 수 없으면 어떡하지? 나는 누가 뭐래도 나의 길을 갈 만큼 용기 있는 사람이 아니지 않을까? 칭찬 받으면 금세 기분이 날아갈 듯 하고, 비판 받으면 언제라도 절망할 준비가 되어 있는 나는, 정말 나약한 인간이 아닐까. 도대체 나는 글쓰기에 재능이 있기는 한 걸까. 나는 그 두려움과 정면으로 맞서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에, ‘아, 그냥 글쓰기는 취미로 삼아야지’라는 식의 비겁한 비상구로 도망치고 있었던 것이다.
나의 뿌리 깊은 두려움을 인정하고 나자,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해졌다. (…)인정받지 못해도 좋다. 돈을 벌지 못해도 좋다. 누가 뭐라 하든, 내 마음이 가리키는 꿈의 화살표를 따라가자. 그때부터는 재능보다도 열정이 관건이었다. 어느 순간에는 재능보다 열정이 중요했고, 열정보다 성실함이 중요했다. 재능과 열정과 성실이 하나 되는 순간이야말로, 우리의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이다.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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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다독가로 알려져 있다. 책은 주로 어떤 자세로 읽나. 지금 읽고 있는 책은?
많이 읽기보다는 천천히, 깊이 읽으려고 노력한다. 틈 날 때마다 읽기 때문에 정해진 자세는 없다. 누워서도 읽는데, 그러다보면 곧 잠이 들어버린다. 약간은 긴장도 하고, 펜과 메모지를 들고 읽는 것이 여러 모로 많은 도움이 된다.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도 많이 읽는데, 시력이 나빠진다는 단점은 있지만 집에서보다 오히려 집중이 잘 된다. 지금은 마크 롤랜즈의 <철학자와 늑대>라는 책을 읽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자꾸 커다란 동물과 함께 살고 싶은 낭만적인 환상에 빠지곤 한다. 이 책은 너무 따뜻하고 아름다운 감성을 지닌 책, 그러면서도 최고의 지성을 함께 느낄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길을 걸어다니면서 읽기도 했다. 걸어다니면서 읽다가 건물벽에 부딪힐 뻔하기도 했다.^^
엄친딸?
보잘 것 없는 스펙이나 재능에 기죽지 말라는 메시지를 많이 전해줬으나, 실제로 본인은 대한민국에서 인정받는 대학을 나왔다. 그런 점이 글쓸 때 걸림돌이 된 적은 없나.
내가 좋아하는 내 모습이 있다. 그건 내가 어떤 학교를 졸업하거나, 어떤 일을 해냈기 때문이 아니라, 졸업장이나 스펙과는 전혀 상관없는 곳에서 내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는 순간들이다. 나를 아껴준 사람들의 공통점은 내가 무엇을 가졌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가지지 못한 것들에도 불구하고 내가 용기와 희망을 잃지 않는 모습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나를 ‘그래도 가끔은 좀 괜찮다’고 느끼는 뿌듯한 순간은, 내가 누릴 수 있는 어떤 편안함을 버리고 새로운 길을 개척할 때였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그냥 내가 좋아하는 일을 선택하고, 그 일에 최선을 다할 때의 희열은 그걸 해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다. 그건 공식적인 스펙이나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는 순간의 기쁨이다. 그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는 엄청난 고통도 따른다. 고통이 따르지 않는 기쁨은 우리를 성숙하게 하지 못하는 것 같다.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해방되는 최고의 기쁨을 20대에 누릴 수 있는 사람은, 정말 큰 용기를 가진 사람이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
청춘이나 나이듦, 2013년의 대한민국 같은 시공간을 벗어나 사람이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는 데 가장 필요한 단어나 마음가짐으로 무엇이 가장 필요할까?
상처받지 않기 위해 계산하지 않기. 미래를 계산하거나 예측하지 말고, 내 진심의 화살표가 가리키는 바로 그곳으로, 자기 안의 가장 빛나는 힘을 믿고 담대하게 나아가라. 그렇게 말해주고 싶다. 요새 나 자신에게 거는 주문이기도 하다. 요새는 ‘담대하다’라는 형용사가 마음에 비수처럼 꽂힌다. 우리를 괴롭히는 갖가지 장애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길, 그것은 내 스스로 용기를 가지는 길밖에 없기 때문이다. 담대하게 나아가자. 우리를 아프게 하는 그 모든 것들과 당당하게 싸우며. 살며, 사랑하고, 싸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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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의 가슴에 안겨주고 싶은 20개의 키워드를 정리하면서, 스스로에게 물어보았다. 이 모든 단어들이 내게는 소중하지만, 이 스무 개의 키워드를 딱 세 개로만 요약한다면? 나는 세 가지를 꼽고 싶다. 바로 사랑, 혁명, 우정이다. 내가 소중하게 가꿔온 청춘의 키워드들은 이 세 가지와 어떤 방식으로든 아름답게 연결되어 있다. 사랑, 우정, 혁명을 향한 순수한 열정이 우리의 20대를 빛나게 하는 힘이다. 세상은 점점 각박해져 20대의 키워드가 ‘생존, 스펙, 취직’으로 변해버린 것 같다. 하지만 그런 가치들은 ‘상황’이지 우리가 스스로 지켜내야 할 ‘가치’가 아니다.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내 마음 속의 별처럼 빛나는 이 세 단어의 가치는 바뀌지 않을 것 같다. 사랑, 혁명, 우정. 이루어지지 않아도, 끝없이 실패해도, 소유할 수 없어도, 변함없이 아름다운 가치들이다. 바보 같아 보여도, 철 지난 이상처럼 보여도, 난 그것들이 미치게 좋다. 사랑, 혁명, 우정을 향한 변함없는 짝사랑이 나를 여전히 지켜주는 보이지 않는 힘이다. 그 따스한 낱말 3총사가 여러분의 삶도 환하게 비춰주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우정은 나를 바꾸고, 사랑은 너와 나를 바꾸고, 혁명은 세상을 바꾼다.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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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정여울 저 | 21세기북스
어른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세상에 내던져진 청춘에게 대학, 학점, 스펙, 취업 같은 단어들에 둘러싸여 살아가는 20대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저자 정여울은 방황, 여행, 타인, 직업, 배움, 행복, 탐닉, 재능, 멘토, 죽음 등 20대가 가슴속에 품어야 할 20개의 키워드를 제시하고, 청춘이라는 터널을 지나면서 그 속에서 우리가 한번쯤 고민해봐야 할 인생의 메시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자신의 20대를 반추해보며 풀어놓는 저자의 개인적인 경험과 인문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한 풍부한 이야기들은 단순한 위로와 공감을 넘어 삶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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