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한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기어코 자기 입으로 ‘로다주’라는 한국식 별칭을 발음하게 할 정도로 이제 한국에서 배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아이언 맨이자 토니 스타크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토니 스타크-아이언 맨은 이제 삼위일체라 할 만하다. 하지만 영화 <아이언 맨>은, 영화팬들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1963년에 시작한 『아이언 맨』 시리즈라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영화 <아이언 맨>은 코믹스 『아이언 맨』 시리즈를 가장 대중적으로 편집한 버전이다. 코믹스의 토니 스타크는 영화처럼 오만하지만 마냥 귀엽거나 유쾌하지만은 않다. 자신의 오만함 때문에 여러 비극적인 대가를 치르면서 죄책감에 시달리는 모습은 영화 <아이언 맨 3>에서 신경쇠약에 시달리는 토니 스타크에 비할 바가 아니다. <아이언 맨 3>의 토니 스타크가 전작 영화 <어벤져스>에서 겪었던 일 때문에 신경쇠약에 시달린다면 코믹스의 토니 스타크는 자신이 판매한 무기 때문에 고통 받는 이들 때문에 죄책감에 시달린다. 그리고 코믹스 『시빌 워』 시리즈를 먼저 읽은 독자들이라면 토니 스타크가 무기 판매 말고도 더 심각한 사건 때문에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음을 알고 있을 것이다.
영화도 전작에 비해 보다 심각하고 어두운 분위기의 토니 스타크가 등장할 것이라는 예측이 개봉 이전부터 지배적이었다.
<아이언 맨 3>의 감독인 셰인 블랙은 2011년 인터넷 영화 사이트 Ain't It Cool News(
www.aintitcool.com)와의 인터뷰(
www.aintitcool.com/node/48768)에서 “강철 슈트를 입은 두 인물의 싸움보다는 아이언 맨을 현실적인 악당과 싸우게 하는 톰 클랜시 스릴러 소설 같을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3편에서도 영화
<아이언 맨> 시리즈의 인기에 가장 큰 축이 된 오만하고 냉소적이지만 유쾌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토니 스타크 캐릭터는 폐기되지 않았다. 전작에 비해 상대적으로는 심각해졌지만 여전히 웃을 만한 부분이 상당한 작품이다. 극장 이곳저곳에서 터져 나오는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귀여워.”라는 즐거운 목소리는 여전했다.
영화
<아이언 맨 3>에서 아이언 맨은 전작들과는 차원이 다른 적들을 마주하게 된다. 바로 익스트리미스라는 물질을 통해 생성된 초인병사들이다. 익스트리미스는 영화
<아이언 맨 3>의 고유한 설정이 아니라 한국에서 2010년 출간된
『아이언 맨: 익스트리미스』에서 처음 등장했다. 미국에서는 2005년 1월부터 2006년 4월까지 연재된 이 작품에서 등장한 익스트리미스 개념 때문에
『아이언 맨: 익스트리미스』는 영화
<아이언 맨3>의 원작으로 지목받는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 영화와 코믹스 사이에 너무나 많은 차이가 있어 똑같지는 않더라도 원작과 유사한 이야기를 기대하는 이들을 당황하게 한다. 아이언 맨 영화 시리즈는 이미 코믹스와 다른 캐릭터의 결을 선택한 데다가 수년에 걸쳐 연재된 코믹스를 두 시간 안팎으로 담아내다 보니(거기에 미국 외 세계 시장에서 흥행도 해야 하고!) 원작격인 코믹스들을 영화를 위해 크게 다듬었다. 그저 다듬었다는 표현이 부족할 정도로 여러 작품들을 분해하여 재조립했다. 그래서 영화의 원작이 되는 코믹스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편이 좋다. 더 나아가서는 영화와 코믹스를 아예 별개의 작품으로 생각하는 편이 더욱 좋다. 코믹스를 원작으로 하고 영상으로 옮겼다고 생각하는 것보다는 코믹스의 몇몇 요소를 갖고 전혀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 낸 셈이다. 매체별 맞춤 전략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이 글은 바로 영화가 가져온 코믹스의 몇몇 요소들을 설명하고 그 요소들이 코믹스의 어디에서 등장하며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설명하고자 한다.
“하정우가 맡을 뻔한 아이언 맨의 최대의 적수” 만다린
아이언 맨 시리즈의 가장 유서 깊은 악당 만다린은 국내 출간된
『아이언 맨: S.H.I.E.L.D. 국장』과
『아이언 맨: 헌티드』에서 본격적으로 등장해 아이언 맨과 대립한다.
영화 포스터에서처럼 만다린은 열손가락에 한 개씩 총 열 개의 반지를 끼고 있다. 영화에서 만다린은 텔레비전 방송을 통해 미국 대통령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전하는데 그 해적방송 서두에 붉은 바탕에 열 개의 고리가 엮인 로고가 등장한다. 영화
<아이언 맨1>에서도 이 열 개의 고리를 상징으로 한 텐 링스(Ten Rings)라는 테러리스트 조직이 등장하였다. 영화에서 만다린과 텐 링스는 이슬람 계통의 테러조직으로 묘사되지만 코믹스에서는 예나 지금이나 아시아계 악당이다. 영화배우 하정우도 2007년경 영화
<아이언 맨1>의 만다린 역으로 오디션을 본 경력이 있다.
코믹스
『아이언 맨: S.H.I.E.L.D. 국장』과
『아이언 맨: 헌티드』의 만다린은 영화와는 달리 원래의 설정인 아시아계로 돌아갔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 흉계를 꾸미는 전통적인 악당을 벗어나 가명을 사용하고 직접 세상으로 뛰어든다. 보다 안정적이고 강력한 익스트리미스를 얻기 위해 가명을 쓰고 중국계 사업가로 미국 깊숙이 숨어든 만다린은 손가락에 낀 열개의 반지가 가진 초능력을 이용해 아이언 맨과 대등한 싸움을 펼친다. 영화에서는 그저 상징이었던 열 개의 고리가 코믹스에서는 만다린을 초능력을 가진 슈퍼 빌런으로 만들어 준 것이다.
만다린은 여전히 서구에 자리 잡은 오리엔탈리즘(동양에 대한 신비주의적 시각)과 황색 공포(아시아인에 대한 서구의 공포)를 반영하는 캐릭터이다. ‘만다린’이란 중국 왕조에서 관료(혹은 관료들이 사용한 표준중국어)를 의미하는 단어지만 아이언 맨의 악당 만다린은 자신의 후손을 칭기즈 칸이라 일컫고 있다. 몽골과 한족의 중국을 구분하는 아시아 문화권 입장에서 아이언 맨의 만다린은 뭔가 어색하게 섞인 잡탕의 악당인 셈이다.
이런 부분을 감안해서인지 이번
<아이언 맨 3>의 만다린은 인도계 영국 배우 벤 킹슬리가 맡았다. 손가락에 열 개의 반지를 낀 것을 제외하고는 코믹스의 만다린과 유사한 부분을 찾을 수 없다. 왜 아시아계 악당이 이슬람계 악당이 되었을까? 영화를 보면 이 변화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코믹스
『아이언 맨: 익스트리미스』에서는 비중이 미미했던 알드리치 킬리언(가이 피어스)이 영화
<아이언 맨3>에서 차지한 비중과 영화의 만다린과 코믹스의 만다린의 위상 변화를 잘 살펴보면 전 세계 시장 어느 한 곳도 놓치지 않으려는 할리우드의 교묘함을 엿볼 수 있다.
“엑스트라에서 최대의 적수로” 알드리치 킬리언과 마야 한센
영화
<아이언 맨 3>에 등장하는 익스트리미스의 개발자 알드리치 킬리언(가이 피어스)과 마야 한센(레베카 홀)은 원작으로 지목받는
『아이언 맨: 익스트리미스』에도 등장한다. 영화에서는 큰 비중을 갖고 있는 알드리치 킬리언이 코믹스에서는
『아이언 맨: 익스트리미스』를 끝으로 등장하지 않는 반면, 영화에서 킬리언에 비해 상대적으로 비중이 적었던 마야 한센은
『아이언 맨: 익스트리미스』뿐 아니라
『아이언 맨: 엑시큐트 프로그램』,
『아이언 맨: S.H.I.E.L.D. 국장』,
『아이언 맨: 헌티드』에도 꾸준히 등장하여 익스트리미스와 관련된 사건에 엮이게 된다. 아울러 아이언 맨의 비서이자 연인인 버지니아 ‘페퍼’ 포츠(기네스 팰트로)가 코믹스에서는 등장하지 않는다. 그래서 마야 한센이 ‘페퍼’ 대신 연인이 된다. 하지만 익스트리미스의 개발자로 익스트리미스와 관련된 음모에 꾸준히 얽히면서 토니 스타크와 마야 한센의 관계는 영화의 페퍼 포츠와 토니 스타크보다 훨씬 복잡한 관계가 된다.
“모든 재앙의 원인” 익스트리미스
영화
<아이언 맨 3>에서의 익스트리미스는 아이언 맨을 궁지에 몰아넣은 초인병사들을 만들어 낸 물질 정도로 등장했지만
『아이언 맨: 익스트리미스』에서 익스트리미스는 토니 스타크에게 또 다른 능력을 부여했다. 익스트리미스를 통해 초능력을 갖게 된 테러리스트 말렌에 의해 초죽음 상태에 이르게 된 토니 스타크는 자신의 신체기능을 되살리기 위한 최후의 선택으로 스스로에게 치사량이 97.5%에 이르는 익스트리미스를 주사하게 된다. 그리고 새로운 능력을 얻었다. 예전에는 직접 갈아입어야 했던 아이언 맨 내피(코믹스에서만 볼 수 있는 내복 같은 옷으로 영화에는 등장하지 않는다)가 신체에서 직접 솟아난다. “난 이제 아이언 맨의 필수 내피를 몸 안에 저장하게 된 거라고.” 그리고 강철 슈트를 자신의 의지로 불러들여 입는 능력을 갖추게 된다. 영화에서는 마크 43이라는 새로운 이름의 슈트를 수차례의 시도 끝에 성공시킨 그 기술이 코믹스에서는 익스트리미스를 통해 가능해진 것이다.
이뿐 아니라 별도의 접속 없이 자신의 뇌를 모든 기계에 접속시키는 능력도 갖는다. 컴퓨터나 휴대기기 없이도 인공위성에 접속하여 원하는 정보를 얻어 내는 등 진짜배기 슈퍼 히어로로 거듭난다. 하지만 익스트리미스로 얻은 엄청난 이 능력에는 만만찮은 부작용이 따랐으니, 이 부작용 속에서 토니 스타크는 슈퍼 히어로에 대한 새로운 입장을 정하게 되고 “슈퍼 히어로는 모두… 잠재적인 총인 거예요. …그리고 내가 아는 한, 총은 반드시 등록을 해야 하죠.”(
『아이언 맨: 엑시큐트 프로그램』), 이런 토니 스타크의 입장은 마블 슈퍼 히어로 사이의 내전인
『시빌 워』를 촉발시킨다.
익스트리미스와 그로 인해 생겨난 초인병사들은
『아이언 맨: 익스트리미스』 이후의 작품들에서 꾸준히 등장하여 토니 스타크에게 갖은 역경을 안겨 준다. 그리고
『아이언 맨: 헌티드』에서는 결국 만다린의 손에 들어가 세계 멸망의 기폭제가 된다.
“어린이들의 꿈! 어른들의 눈물! 떼거지 아이언 맨!” 아르고노트
<아이언 맨 3> 예고편에서 하늘에서 날아온 여러 대의 아이언 맨들은 많은 이들을 열광시켰다. 하긴 천재 과학자인 데다가 갑부인 토니 스타크가 아이언 맨을 여러 대 만들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는가. 영화에서 토니 스타크는 익스트리미스를 통해 대량 생산된 초인병사들과 맞서기 위해 여러 다양한 형태의 아이언 맨들을 떼거지로 출동시킨다. 이 장면에서 극장 안의 어린이뿐 아니라 겉만 어른인 이들도 환호했지만 이 다양한 아이언 맨들이 모두 완구로 출시될 것을 예감한 부모들은 순간 눈앞이 아찔했을 것이다. 어쨌든 스크린 속 토니 스타크는 미리 준비해 두었던 떼거지 아이언 맨들의 활약 덕에 무시무시한 익스트리미스 초인병사들과 겨우 맞설 수 있었지만 코믹스에서는 오히려 이 떼거지 아이언 맨들로 구성된 ‘아르고노트’ 프로젝트 때문에 궁지에 몰린다.
『아이언 맨: 엑시큐트 프로그램』에서 한 의문의 해커가 이 떼거지 아이언 맨들을 꼭두각시로 만들어 토니를 공격하게 한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영웅 이아손은 황금 양털을 얻기 위해 아르고 호라는 배를 타고 원정을 떠난다. 이 아르고 호에는 이아손뿐 아니라 헤라클레스, 테세우스 등 쟁쟁한 영웅들이 탑승하는데 이렇게 아르고호에 탄 선원들을 ‘아르고노트’라고 부른다. 토니 스타크의 아르고노트에도 여러 비상 상황을 상정하고 제작한 갑옷들이 포진해 있는데 이들 중에는 헐크와의 싸움을 위해 제작한 갑옷인 ‘헐크버스트’ 이고르도 포함되어 있다. 이런 아르고노트들이 공격해 오는 아찔한 상황을 토니 스타크가 어떻게 정리하는지를
『아이언 맨: 엑시큐트 프로그램』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동시에 영화와 코믹스의 아이언 맨 갑옷 디자인을 비교해 보는 재미도 놓치지 말자.
그래도 “나는 아이언 맨이다.”
영화가 코믹스의 주요 설정을 그대로 이어받지 않았다는 것에 실망하는 코믹스 팬들의 반응을 종종 보게 된다. 영화가 보다 폭 넓은 대중들을 겨냥한 매체이기 때문에 영화에 적합한 내용을 위해 코믹스의 내용을 생략하고 재조합하다 보니 이런 아쉬운 상황이 발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니 스타크는 코믹스에서든 영화에서든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최종 결제 사인처럼 어떤 대사를 덧붙인다.
영화에서 소년이 갑옷을 가리키며 “저게 아이언 맨이에요?”라고 물어보았을 때 “엄밀히 따지면 내가 아이언 맨이지.”라고 대답한 것처럼 영화 속 토니 스타크도 코믹스와 애니메이션의 토니 스타크도 모두 아이언 맨이다. 언제나 “나는 아이언 맨이다.”라는 문장으로 자신의 활약을 마무리 짓는 토니 스타크처럼 특정 상황에 맞는 갑옷들(영화나 코믹스, 애니메이션)이 아이언 맨이 아니라 토니 스타크가 아이언 맨이고 그것으로 충분하다. 각 매체의 차이에 서운해 하기보다는 그 차이들을 즐기는 것이 아이언 맨뿐 아니라 마블 코믹스와 그것을 기반으로 한 모든 매체를 즐기기에 더 적합한 마음가짐일 것이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