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 노벨 평화상 후보였다
히틀러가 노벨 평화상 후보로 추대받은 해는 유대인 탄압이 자행되던 해
그가 죽은 뒤, 히틀러에 대한 여러 가지 풍문이 끊이지 않았다. 동성애자라는 설, 여성이라는 설, 유대인이라는 설, 자살은 위장이고 남미로 도피했다는 설 등등이 그것이다. 한편, 흥미롭게도 히틀러는 1939년 노벨 평화상 후보에도 오르기도 했었다.
모든 전쟁은 논쟁거리지만 그중에서도 세계2차대전은 정도가 심하다. '세계대전'이라는 이름에서부터 유추할 수 있듯, 많은 나라의 이해관계가 얽힌 전쟁이었다. 이해 당사자가 많은 탓에 전쟁의 기원에서부터 전개, 결과까지 모든 게 논란거리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이 세계2차대전을 설명할 때 예외 없이 거론하는 인물이 있다. 바로 아돌프 히틀러. 1945년 4월 30일은 아돌프 히틀러가 자살한 날이다.
1889년에 출생한 그는 청년 시절에 예술가를 꿈꾸었다. 하지만 1차 세계대전 전후의 혼란한 독일 사회는 젊은 히틀러가 정치인으로 성장하는 토양을 제공한다. 1차 대전 패전 이후 국제사회가 독일에 내린 굴욕적인 처사는 많은 독일인에게 좌절과 분노를 일으켰다. 히틀러도 그중 한 명이었다.
1933년 히틀러는 독일 총리에 오른 뒤, 독일의 재무장을 선언한다. 1936년 라인라트 점령. 독일 민족의 구원자가 되겠다는 그의 환상은 많은 지지자를 끌어모았다. 이 과정에서 그가 이용한 극단적인 인종주의는 홀로코스트라는 참상을 빚어냈다. 하지만 소련과 미국이 독일의 반대편에 서면서 전세는 독일에 불리하게 기울기 시작, 히틀러는 끝내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그가 죽은 뒤, 히틀러에 대한 여러 가지 풍문이 끊이지 않았다. 동성애자라는 설, 여성이라는 설, 유대인이라는 설, 자살은 위장이고 남미로 도피했다는 설 등등이 그것이다. 한편, 흥미롭게도 히틀러는 1939년 노벨 평화상 후보에도 오르기도 했었다. 1939년은 유대인 탄압이 진행되던 시점이었으나, 한 국가의 입법부 의원이면 노벨 평화상 후보를 추천할 수 있었기에 이런 일이 가능했다고 한다. 히틀러를 노벨 평화상 후보로 추천한 인물은 스웨덴의 한 국회의원이었다.
히틀러가 바꾼 세계
매튜 휴즈,크리스 만 공저/박수민 역 | 플래닛미디어
이 책은 단순히 독일의 권력 상위 계층의 이야기나 전범戰犯들에 대한 이야기, 즉 히틀러로 상징되는 반인륜적 범죄에 대한 틀에 박힌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삼류화가였던 히틀러가 유럽의 강력한 국가였던 독일의 수장에 오를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이었으며, 그를 선택했던 독일인들의 실제 삶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어떻게 독일시민들이 그 시대를 살고 견뎌냈는지에 대해 가장 솔직하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제3국가를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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