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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고당하지 않았다면, 살인도 없었을 텐데 - 『죽은 자들의 방』

평범한 소시민이 ‘괴물’이 되어가는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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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크 틸리에의 『죽은 자들의 방』은 전형적인 스릴러라고 할 수 있다. 정확히 말하면 미스터리 스릴러다. 범인의 마음과 행동을 보여주기는 하지만 ‘괴물’이라는 식으로 호칭하면서 후반부까지 정체를 숨겨둔다. 형사들이 여러 단서를 통해서 범인의 정체를 추정하고 찾아가는 과정들도 대단히 중요하다. 그리고 『죽은 자들의 방』에서 더욱 흥미로운 것은 단지 범인의 정체가 아니라, 소녀의 납치를 둘러싸고 엮인 사람들의 비극적인 운명이다.

스릴러란 무엇인가, 라면 계속해서 긴장감을 자아내는 이야기, 앞으로 벌어질 사건들을 궁금하게 만드는 이야기 정도라고 말할 수 있다. 이미 벌어진 사건의 수수께끼를 파헤치는 것에 역점을 두는 것이 미스터리라면, 스릴러는 연쇄적으로 벌어지는 상황들이 더욱 중요한 것이다. 스릴러에서는 처음부터 범인을 노출시켜도 별 문제가 없는 경우가 많다. 추적하는 자 혹은 무고한 사람들과 범인이 어떻게 얽히고 충돌하는가가 더욱 중요해지니까. 물론 ‘미스터리 스릴러’라는 말처럼, 연속으로 수수께끼를 풀어가며 범인의 정체에 조금씩 다가가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프랑크 틸리에의 『죽은 자들의 방』은 전형적인 스릴러라고 할 수 있다. 정확히 말하면 미스터리 스릴러다. 범인의 마음과 행동을 보여주기는 하지만 ‘괴물’이라는 식으로 호칭하면서 후반부까지 정체를 숨겨둔다. 형사들이 여러 단서를 통해서 범인의 정체를 추정하고 찾아가는 과정들도 대단히 중요하다. 그리고 『죽은 자들의 방』에서 더욱 흥미로운 것은 단지 범인의 정체가 아니라, 소녀의 납치를 둘러싸고 엮인 사람들의 비극적인 운명이다. 그들이 변하고, 갈등하고, 배신하는 과정들이 『죽은 자들의 방』을 더욱 흥미진진하게 만든다.

멜로디라는 이름의 소녀가 유괴되고, 그녀의 아버지가 몸값을 가지고 나섰다가 행방불명된다. 수사에 나선 경찰은 멜로디의 아버지가 차에 치어 죽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하지만 그를 죽이고 몸값을 챙겨 뺑소니친 범인과 멜로디를 납치했다가 죽인 범인은 다른 인물로 추정한다. 아이가 감금된 현장 바로 앞에서 멜로디의 아버지는 차에 치어 죽었다. 그렇다면 범인은 차의 번호판을 보았을 것이고, 그들 또한 위험에 처해 있을 가능성이 있다.

비고와 실뱅은 6개월전 해고된 실업자다. 한밤중에 회사 건물에 낙서를 하러 갔던 비고와 실뱅은 아무도 없는 공장지대에서 자동차로 질주하다가 사람을 치고, 200만유로가 든 가방을 발견한다. 아무도 본 사람은 없으니 시체만 감추면 추적당할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멜로디를 납치한 범인이 그 광경을 지켜본다는 사실은 상상도 하지 못한 채. 비고와 실뱅은 돈을 숨겨 놓고 경찰의 용의선상에서 완전히 벗어날 때까지 기다리기로 하며 백만장자가 될 꿈을 꾼다.

『죽은 자들의 방』의 주인공은 홀로 쌍둥이 딸을 키우는 뤼시 엔빌 형사다. 밤마다 아이들을 돌보느라 수면부족에 시달리지만, 언젠가는 직접 현장에 나가 연쇄 살인범을 잡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진 형사. 멜로디가 유괴 살해된 사건에 우연히 개입했다가 엔빌은 유력한 단서를 발견한다. 죽은 멜로디의 모습이 70, 80년대 유행했던 ‘뷰티 이턴’이란 인형과 똑같다는 점을 발견한 것이다. 그 공으로 수사팀에 합류하게 된 앤빌은 놀라운 직감으로 범인의 정체에 조금씩 다가간다.

어렸을 때부터 프로파일링, 해부학, 범죄학 등은 물론 흑마술과 신비주의에도 이끌렸던 엔빌의 개성적인 캐릭터는 『죽은 자들의 방』을 이끌어가는 원동력이 된다. 직감적인 수사 능력을 지녔지만 지극히 위태롭고 불안해 보이는 캐릭터. 선배 형사는 엔빌을 보면서 이렇게 생각한다. ‘면도날 위에서 외줄을 타는 듯한....그랬다, 면도날 위에서 외줄을 타듯 위험해 보였다.’ 정확하다. 엔빌 자신도 죽음, 원초적인 어둠 같은 것들에게 끌린다는 것을 알고 있다. 위험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빨려 들어가는 것을 어쩔 수 없다. 범인과 홀로 대면하는 가장 위험한 순간, 그녀는 흥분에 빠져든다.

뤼시는 그렇게 숨어있던 악마들과 대면하게 되었다. 두려움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 아예 원초적인 형태의 막이 내린 그 뿌리까지 뽑아버릴 생각이었다…아 이순간이 영원히 지속되면 얼마나 좋겠어! 정말 짜릿하잖아……미쳐도 단단히 미쳤구나! 넌 지금 사악한 존재를 없애려고 온 거야! 이 순간을 즐기려고 여기까지 온 게 아니라고!

멜로디의 입안에서는 늑대의 털이 발견되고, 가죽냄새가 진동하고 있었다. 근처의 동물원에서는 늑대, 원숭이, 왈라비 등이 도난, 살해당하는 사건들이 연속으로 벌어지고 있었다. 엔빌은 그 모든 것들이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고 점점 진실에 다가간다. 그 과정들이 흥미롭고, 해부학과 박제 등에 대한 지식들도 풍부하게 설명되어 있다. 하지만 『죽은 자들의 방』에서 흥미로운 것은 그것만이 아니다.

6개월 전, 그랑드 생트에서 평범한 회사원 두명이 실직자 신세로 전락한 일은 다섯 명의 목숨을 앗아가는 참극을 빚어냈다……연쇄 살인범의 소행에 버금가는 살육이었다. 이미 연쇄 살인범이라고 해도 무방하지 않은가.

비고와 실뱅은 실업자다. IT 기술자였던 그들은, 경제위기에 휩쓸려 해고당했다. 그리고 하류층으로 굴러 떨어졌다. 명품을 살 돈은커녕 당장 난로를 고칠 돈도 없고, 다음 달 생활비도 없다. 취업을 할 때만 해도, 아니 사회에 들어오기 전에는 그들에게 이런 미래가 기다릴 것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들에게 더 이상 미래는 없다. 취업을 해도 임금은 깎일 것이고, 언제 해고될지도 알 수 없다. 취업과 해고를 반복하다 보면 더 이상 취업조차 할 수 없는 날이 올 것이다. 그래서 200만 유로를 보았을 때, 그 돈이 수중에 들어온다고 믿었을 때, 그들은 변해간다. 단지 그들의 마음이, 인간성이 변해가는 것만이 아니라 주변에 폭풍을 일으키며 모든 것을 파괴해 간다.

애초부터 사악했을 것만 같은 끔찍한 살인자. 죽은 자들의 방을 만들어가며 더욱 완벽한 제물을 찾는 악마들. 뤼시 엔빌이 추적하는 범인은 바로 그들이다. 하지만 그 ‘괴물’과 비고는 과연 다른 존재일까? 해고당하지 않았다면, 우연히 차로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면 아마도 비고는 평범한 소시민으로 살아갔을 것이다. 그러나 운명은 그를 비극적인 죽음의 연쇄 고리 속으로 끌고 들어가며, 괴물로 만들었다. 자신의 선택에 의해서. 기꺼이 운명을 택하고, 악행들을 저지르게 된 비고는 그 ‘괴물’들과 다른 존재였을까?

『죽은 자들의 방』은 IT 기술자였던 프랑크 틸리에의 데뷔작이다. 데뷔작답게 야심차면서도 조금은 허술하다. 그럼에도 데뷔작이 흔히 그렇듯이 단점은 더욱 큰 장점들에 충분히 가려진다. 마음속의 어둠, 잔혹한 범죄에 연관된 해부학과 동물학 등에 대한 해박한 지식들과 함께 소시민들의 삶이 일그러지는 과정을 ‘괴물’과 접합시키는 놀라운 직조술을 보여준다. 흥미롭고, 다음 작품이 기대되는 데뷔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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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들의 방 프랑크 틸리에 저/이승재 역 | 노블마인
극심한 경제 위기로 황폐해진 프랑스 북부, 멜로디라는 시각장애를 앓는 소녀가 납치되고, 딸아이의 몸값을 가지고 가던 아버지마저 살해된다. 몸값이 담긴 돈 가방은 사라지고, 소녀는 환한 미소를 띤 시체로 발견된다. 유일한 단서는 죽은 아이의 목에서 발견된 늑대의 털뿐. 야수의 직감을 지닌 여형사 뤼시 엔벨은 수사 중 아버지를 죽이고 몸값을 가로챈 자와 아이를 살해한 자가 전혀 다른 인물이라는 사실을 알아챈다. 두 사건의 접점을 추적하던 뤼시는 마침내 기괴한 매혹과 공포로 가득 찬 ‘죽은 자들의 방’의 문을 열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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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봉석

대중문화평론가, 영화평론가. 현 <에이코믹스> 편집장. <씨네21> <한겨레> 기자, 컬처 매거진 <브뤼트>의 편집장을 지냈고 영화, 장르소설, 만화, 대중문화, 일본문화 등에 대한 글을 다양하게 쓴다. 『하드보일드는 나의 힘> 『컬처 트렌드를 읽는 즐거움』 『전방위 글쓰기』 『영화리뷰쓰기』 『공상이상 직업의 세계』 등을 썼고, 공저로는 <좀비사전』 『시네마 수학』 등이 있다. 『자퇴 매뉴얼』 『한국스릴러문학단편선』 등을 기획했다.

죽은 자들의 방

<프랑크 틸리에> 저/<이승재> 역12,420원(10%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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