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의 진짜 힘? 자살도 망설이게 할 만큼 큰 재미! - 『자살을 할까 커피나 한잔 할까』 엘리엇 부
문장으로는 콜라주 해볼 수 없을까?
『자살을 할까, 커피 한잔을 할까?』의 저자 엘리엇 부. 그는 지난 10년간 세상에서 최고로 바쁜 비즈니스맨이었고, 200여 명의 직원을 거느리는 잘나가는 건축 사무소 CEO였다. 그 바쁨이 한계치에 도달했고, 그는 문득 자신이 원하지 않은 길 위에 서 있다는 걸 깨달았다. 고객이 싫고, 바쁜 게 싫고, 그보다 가족과 친구를 사랑하고, 읽고 쓸 때 즐겁다는 걸 발견했다.
남의 문장만을 모아 내 이야기를 하다?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이면, 안철수 원장님 계신 그곳 맞죠?
네, 저는 안철수 원장이 오기 전부터 있었어요. 사람들이 안철수 원장이 대선에 나가느냐고 많이 물어보는데, 저 안철수 원장 몰라요. 보통 이렇게 답합니다. 글쎄요?(웃음) 안철수 원장을 만나본 적도 없지만, 한 가지 이런 변화는 있어요. 학생들이 되게 편해졌대요. 예전에는 집에서 부모님이 이런 공부 관두고 로스쿨 가든지 의대 가라고 닦달했는데, 요즘에는 ‘어 원장님 학교 나오시냐. 아래서 잘 배워라.’ 실제로 그렇든 아니든, 우리 아들이 안철수 원장 밑에서 공부한다고 자랑하고 다니신다고, 편하대요.(웃음)
‘인문공간정보융합’은 어떤 강좌인가요? 무엇을 가르치시나요?
정보와 인문과 기술의 융합을 공부하는 거예요. 기술은 컴퓨터 교수가 가르치고, 정보는 신방과 교수가 가르치고, 인문은 미학, 국문학과 교수가 있지만, 융합은 그 자체로 가르치는 사람이 없잖아요. 제가 정보와 인문, 기술 세 가지를 융합하는 뼈대를 만들었어요. 인문공간, 사회공간, 기술공간이 있는데, 이 세 공간 속의 정보를 융합하는 방법론이죠.
공간이라는 말이 낯설고 어려워요. 왜 공간인가요?
공간적으로 생각하는 게 편해요. 인문이 뭘까? 고민하다가 이렇게 생각해봤어요. 프루스트가 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산맥이고, 톨스토이는 바다고, 하늘에는 고흐의 별들이 떠다니고, 전원교향곡이 흐른다고 상상해보세요. 그게 인문공간이에요. 거기를 실제로 들어갈 수 있는 거예요. 이렇게 생각해보는 거죠. 『안나 카레리나』를 읽을 때도, 그 공간을 만들어 놓고, 거기 들어가는 방식으로 읽는 거죠. 누구나 등산을 하지만, 에베레스트 산에는 아무나 오르지 못하죠. 프루스트에 관해서 누구나 얘기는 많이 하지만, 실제로 읽은 사람은 없잖아요. 체력단련을 해야 등반을 할 수 있듯이, 인문 공간도 체력단련이 되어 있어야 더 많이 얻을 수 있어요.
이때 필요한 체력단련이란, 독서인가요?
네. 꾸준히 많이 읽어야죠. 마라톤과 똑같아요. 자전거를 타는데, 처음에는 10킬로를 타고 헉헉거리지만, 매일 타면 점점 느는 것처럼요.
융합공부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이 강의 제안을 받았을 때, 어떤 공간을 꿈꾸셨어요?
인쇄술이 발달해서, 책이 보급되고 문맹률이 낮아지면서 사람들이 소설을 많이 보기 시작했어요. 그게 19세기 말의 일이죠. 그전에는 최고의 커뮤니케이션 도구는 건축이었어요. 노트르담의 사원이나 옛날의 고전 건축물들이 지금으로 치면 책 또는 아이패드의 역할을 한 거죠. 저는 노트르담을 책처럼 읽어낼 수 있어요. 예를 들자면, 그리스 로마시대 양식이 있잖아요. 양식은 영어로 오더(order)라고 하죠. 고딕 오더, 이오니아 오더. 질서란 뜻이잖아요. 로마인들이 다른 나라를 정복하고, 그곳의 사람들을 통치할 법을 정했는데, 아무도 읽지를 못하니까 건물을 지을 때 질서를 새긴 거예요.
법원은 도릭 오더(doric order)로 그곳에서는 경건하게 행동해야 한다. 욕실은 코린시안 오더(Corinthian order)로 화려하게 해도 좋다. 이런 식인 거죠. 미켈란젤로가 인류 역사의 최고 건축가 중 한 명인데, 그가 직접 설계해서 지은 집은 하나도 없어요. 그는 외곽 디자인만 냈어요. 그게 커뮤니케이션 전광판 같은 거에요. 커뮤니케이션은 그 사회의 철학, 생각이 어떻게 교류되는가가 중요해요. 저는 그 훈련을 받았고요. 매체가 바뀌고 나니, 20세기 건축물은 인프라가 돼버렸어요. 프랑스 대문호 빅토르 휴고가 『노트르담의 꼽추』에서 건축은 죽었다고 얘기했어요. 커뮤니케이션은 이제 책으로, 컴퓨터로 스마트폰으로 점점 빨라지잖아요. 지금은 도시가 아니라 아고라 같은 광장, 소셜 스페이스가 그 역할을 대신하죠. 그런 걸 정보융합학과에서 연구하는 거예요.
결국 정보융합은 지금 혹은 다음 세대의 커뮤니케이션을 연구하는 셈이네요. 이 책 역시 기존의 텍스트를 통해 다른 방법으로 커뮤니케이션 한 결과물이고요.
얼마 전에 이런 일이 있었어요. 카뮈의 『이방인』 첫 문장에서 ‘엄마’라는 단어를 프랑스어로 ‘Maman’이라고 하는데 그걸 ‘mother’로 번역하느냐 ‘mom’으로 번역하느냐 문제 때문에 뉴욕타임스에 토론이 있었어요. 그런 걸 얘기하는 게 인문’학’이죠. 제가 휴대폰을 항상 쓰지만, 그 전자회로의 원리는 모르잖아요. 전기공학자의 일이죠. 이런 별개의 학문을 존중해요. 그 결과물을 즐기고요.
제가 관심 있는 건, 학문의 결과물이 어우러진 인문공간을 공부해요. 문학보다는 문예라고 할까요. 문학이 문예에 관한 학문이라면, 문예는 창작의 즐거움, 창작품을 읽는 즐거움에 가까운 거죠. 저는 인문학자도 아니고, 프루스트나 하루키 같은 천재 작가도 아니죠. 그러니까 그들의 것을 비슷하게 흉내 내느니 그냥 그 사람들이 드러나게 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고민하다, 아예 100퍼센트 인용을 하기로 한 거죠.
위험하다거나 산만해지겠다, 염려한 건 없나요?
처음엔 되게 위험하다고 생각했어요. 논문 표절이 문제 되는 건, 원작자를 인정하지 않고 자기가 쓴 것처럼 굴어서 그런 거잖아요. 그래서 철저하게 각주를 다 달았어요. 아예 사진을 크게 박은 것도 이 말이 이 사람이 한 말이라는 걸 알려주고, 나는 이 사람을 보니까 이렇게 좋은데, 당신도 좋지 않아요? 얘기한 거죠.
다른 조각을 모아 모자이크를 해도, 멀리서 보면 하나의 그림이 나오잖아요. 작가님도 그걸 염두에 두신 거죠? 이렇게 남의 문장을 모아놔도, 전체적으로 엘리엇 부의 메시지나 그림이 나올 것이란 걸요.
정확한 지적이에요. 모자이크라기보다 콜라주라고 생각했어요. 문장으로는 미술처럼 콜라주를 할 수 없을까? 한번 해본 거에요. 기법이 완전히 똑같죠. 이 책은 저에게 인생 참고서에요. 내가 괴로울 때, 스스로 자기 객관화를 하기 위해서, 큰 이슈들을 놓고, 계속 책을 찾아본 거예요. 마음에 드는 구절에 줄을 치면서, 내 의도와 글쓴이의 글을 섞어가면서 한편의 글을 완성한 거죠. 내가 동의하는 구절만 옮겼으니, 전체적으로는 제 생각을 드러낼 수 있는 글이 된 거죠.
이런 작업이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작업 과정을 좀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세요. 책에는 비선형독서라고 말씀하셨는데요.
제가 도서관 가는 걸 좋아해요. 도서관에 가서 보고 싶은 책이 있으면, 그 책과 같은 칸에 있는 책을 같이 꺼내요. 듀이식 분류방법론에 의하면 비슷한 책은 모여 있거든요. 같은 주제의 책을 열 권 스무 권씩 한꺼번에 보는 겁니다. 그럼 하나의 주제를 두고, 엄청나게 다양한 시각을 접할 수 있어요. 한 권의 책을 읽으면, 그게 정답처럼 보이지만 다른 책은 또 완전히 다른 답을 말하고 있거든요.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야 하는 부담감이 무의식 중에 있잖아요. 이전에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으려고 샀는데, 괴롭기만 한 거예요. 나중에 깨달았어요.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는 걸. 필요한 부분만 찾아 읽는 거죠. 저는 첫 페이지부터 끝페이지까지 다 읽지 않습니다. 영화 <해리와 샐리를 만났을 때>에도 나오는 얘긴데, 저도 첫 페이지와 마지막 페이지는 제일 먼저 읽습니다.
제목이 ‘자살을 할까, 커피나 한잔 할까’입니다. 쿼터를 모으면, 좋은 문장을 많이 모았을 텐데, 그중에 제목을 카뮈의 말로 꼽으신 건, 이 문장이 그만큼 상징적이라고 생각하셨나 봐요. 제목은 어떻게 고르셨어요?
이게 제일 위험한 제목이었어요. 자살이라는 단어도 그렇고요. 이걸 쓰면, 기업들이 스폰서 하거나 강연하라고 초청을 하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했어요.(웃음)
자살에 비견되는 커피 한 잔이란 무엇인가요?
자살 대신에 선택할 수 있는 삶의 즐거움이 아닐까요. 고전에 답이 있다고 하잖아요. 기업이 잘되고, 성숙한 인간이 된다고 하는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돈키호테』를 읽는 데 정말 재미있는 거죠. 내 상황은 괴롭고 죽겠는데, 이걸 읽을 때만은 너무 행복하고 좋은 거야. 인문공간에 가 있는 거죠. 오늘도 이렇게 대화하는데 기자님이 이 책이 콜라주 된 글이라는 걸 발견해내고, 제가 사실 글은 못 쓰지만 대단한 편집자라고 지적해 낸 게 너무 좋아요.(웃음) 그러면 오늘 하루 즐거운 거잖아요. 그게 바로 커피인 거죠.
우울해져서, 며칠이나 방바닥을 긁었던 때가 있었어요. 답을 찾고 싶어서 독서를 많이 했어요. 공부가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어요. 다만, 어느 순간 『돈키호테』를 읽으면서 깔깔 웃고 있는 나를 발견했어요, 내가 돈키호테구나. 그런 생각이 들면서, 감정 이입이 되는 게 정말 흥미로운 거예요. 그다음부터는 고전이 하나도 안 어려웠어요. 자기가 내가 잘났다는 생각을 버리고, 이 작품을 통해서 뭘 배우겠다는 생각을 버리면 술술 읽혀요. 한 권을 통째로 다 읽을 필요도 없거든. 자기가 느끼는 대로만 읽으면 돼요.
재미있게 독서를 하게 된 것도 건축 사무소를 정리하고 나서의 변화인가요?
이전에도 물론 책을 많이 읽었어요. 그땐 어려운 책만 많이 읽었어요. 잘난척해야 하니까.(웃음) 어디 갈 때는 『정의란 무엇인가』 정도는 들고 있어야 하잖아요. 읽지 않더라도 한마디 할 수 있어야 하니까.(웃음) 너 마이클 포터가 낸 신간 봤니? 퍼플카우 봤니? 좀더 잘난 척 하려면, 요즘에 나오는 예술, 철학 계통 책을 알아야 해요. 데리다나 푸코 등 이름은 무조건 외워 놔야 합니다.(웃음) 그런 짓을 했죠. 그 당시에는 영업을 위해서 사람을 만나고, 영업을 위해 책을 읽고, 인생이 영업이 되더라고요.
‘불안이 나를 미치게 한다’는 구절도 있잖아요. 책 읽고 글 쓰는 작업은 즐거웠겠지만, 상황은 썩 즐겁지 않았었군요.
지독하게 힘들었어요. 책 읽을 때는 좋아요. 딴 곳에 있는 것 같으니까요. 그런데 이 작업을 이제껏 한 사람도 없고, 해낼 수 있을까 불안하기도 하고. 또 이렇게 삐딱한 시각의 글을 출판해도 될까 자기 검열도 많이 했죠. 맨 첫 장에 ‘난 고객이 싫다’고 썼잖아요. 예전에 저와 비즈니스 했던 분은 그걸 보고 깜짝 놀랐대요. 책 보고 아내에게 전화한 사람도 있대요. ‘너 힘들겠다. 앞으로 어떻게 할 거니?(웃음)
굉장히 절박하게 작업을 하셨겠네요.
그 전에 책을 다섯 권이나 썼어요. 근데 출판을 못 했어요. 만들긴 만들었는데 내가 하고자 하는 야기가 아닌 것 같았어요.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가 썼음에도 남의 생각들의 조합이었던 것 같아요. 이 책은 남이 쓴 문장들의 조합인데 내가 쓴 것 같고요. 정말 아이러니하죠.
여섯 개의 테마가 있습니다. 가장 많은 문장을 모은 챕터, 가장 관심이 많았던 챕터는 무엇이었나요?
제일 힘들었던 챕터가 우울증 부분이었어요. 주변에 우울한 사람이 매우 많더라고요. 자기 얘기를 겉으로 드러내놓고 하기 쉽지 않은 사회 같아요. 직책이나 사회적 위치가 자기 고민을 털어놓지 못하게 하는 경우도 많고요. 힘든 모습을 보이면 다 무너져 버릴 것 같아서 혼자서 우울증으로 괴로워하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그런 분들에게 그냥 보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자기가 먼저 보이면 분명 ‘그래, 나도 그렇다’고 나오는 사람이 하나 정도는 있을 거다.(웃음)
‘어려움에 봉착했을 때 나에게서 돌파구를 찾으라’고 했어요. 지금은 하와이에서 어떻게 지내세요?
하와이는 휴양지로 가면 되게 비싼데, 사는 데는 생각만큼 돈이 많이 필요하지 않아요. 두어 달 전부터 직장을 찾고 있어요. 직장 찾는 기준이 이전하고 달라졌어요. 하와이에서 택시를 운전하면 1년에 5만 불 정도 벌 수 있어요. 서울 택시 운전을 하면 매우 고단하잖아요. 하와이에서는 공항에서는 온종일 손님을 기다리다가 한두 명 정도 태우는 식이에요. 기다리는 동안에 나는 킨들로 책을 보고! 최고죠!(웃음)
하와이는 참 독특해요. 저처럼 도망 온 사람이 많아요.(웃음) 어떤 아저씨는 여자친구와 싸우고 하와이에 도망 왔는데, 돈을 벌려고 수영장 청소를 시작했대요. 지금은 수영장 600개를 청소하고 있어요. 직원을 두고 일하는데, 자기는 일주일에 두어 번 감독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배타고 낚시하더라고요. 사람 사는 방법은 참 여러 가지가 있더라고요. 예전보다 그런 옵션에 대해서 관용이 넓어진 것 같아요. 어떻게 살 것인가? 제 답 역시 아직 모르겠어요.
이곳을 떠나려고 했을 때, 하와이를 떠올리셨어요?
여기서 제일 먼 곳은 어디일까? 고민했어요. 하와이가 신들의 휴양지라고 그러는데, 농담이 아니라, 자연이 정말 커서 치유가 되는 곳이에요. 집에서 은하수가 보여요. 우리는 결국 자연 공간의 일부에요. 그래서 자연을 느낄 때 치유가 돼요. 그런 걸 발견하면서 저도 인문 공간이라는 걸 생각하게 되었고요.
마지막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책 속에 한 경구에서 ‘인생이 지루한 것은 자기 책임’이라는 말이 있어요. 우리는 어떻게 해야 책임을 잘 질 수 있을까요?(웃음)
잘은 모르겠어요. 다만 아픈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아요. 서로 위로해주면서 사는 게 중요할 것 같아요. 그 사람에게 ‘야, 힘든 사람 많아. 너만 그런 거 아니야.’ 이런다고 위로가 되지 않잖아요. ‘괜찮아. 잘 될 거야.’ 이런 것도 아니죠. 힘들 때, 별거 묻지 않고 ‘그래? 그러면 술이나 한잔 하자.’ 그런 친구가 좋지 않을까요. 그런 친구가 많으면 삶이 지루하지 않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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