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아이두 아이두>에서 다수의 여성 팬(특히 여주인공 역에 감정이입이 잘 되는 기자 포함 30대 여성)을 사로잡았는데 아직 드라마의 환상 속을 헤매는 여성들이 받아들이기엔 너무 과감한 변신 아니었을까?
“배우는 관객들에게 그런 놀라운 선물을 줄 수 있어 직업이라 행복한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관객들에게 행복한 선물이 되었으면 좋겠다. 전작에서의 이미지와 <헤드윅>은 방향성이 다르다. 그런데 나도 고등학교 때 여장하면 예뻤는데….ㅋㅋㅋ 사람들이 다들 왜? 네가? 건장한 네가? 이런 반응들이더라 하지만 내게는 마초와 가녀린 DNA가 공존하고 있다!”
싸구려 의사로 인해 성전환 수술에 실패한 동베를린 출신의 트렌스젠더 락커 헤드윅의 자기고백적 공연. 그게 바로 뮤지컬
<헤드윅>의 골격이다. 언뜻 소박한 듯 보이나 파격적이고 강렬한 퍼포먼스, 역동적인 락 음악을 무기로 일곱 번 째 시즌을 맞이한 뮤지컬
<헤드윅>은 2005년 초연 전회매진이래 총 6회 시즌 평균 유료객석점유율 96%를 자랑한다. 게다가 올해 시즌 일곱번째
<헤드윅>은 특히 박건형이라는 건장한 청년의 가녀린 변신이 돋보이는 바.
“20대 때에 <헤드윅> 캐스팅 제의가 들어왔었다. 그 때는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다. 헤드윅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제의가 들어왔을 때 지금 아니면 안 될 것 같았다. 이번에도 거절한다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았다. 정면 돌파 해보기로 결심했다.”
드라마와 뮤지컬 사이를 맹렬히 오가는 배우 박건형, 그러다보니 드라마에서 뮤지컬 연기를 한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고. 드라마가 끝나자마자 다시 뮤지컬 연기로의 전환 작업엔 무리가 없었을까?
“드라마, 뮤지컬을 왔다 갔다 하는 것이 힘드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이번에는 휴식기 없이 바로 뮤지컬 무대에 서게 돼 육체적으로 힘든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뮤지컬 무대를 생각하면 에너지가 샘솟는다. 싸워야 할 게 많다. 드라마를 할 때는 뮤지컬 할 때 내뿜는 버라이어티한 느낌을 줄여야 한다. TV에는 과한 것으로 보여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대에 올라오면 특유의 에너지를 발산해야 한다. 이 둘을 오가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행복하다.”
2005년 초연 이후 꾸준한 사랑을 받으며 새로운 헤드윅이 탄생할 때마다 팬들은 묘하면서도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박건형의 헤드윅… 우선 스타일은 단연 돋보일 것 같다. 곱기도 하고^^; 박건형의 헤드윅은 어떤 모습으로 그려질까?
“'건형이가 여장을 하는 헤드윅이야.'라는 것을 벗어나는 게 목표다. 그냥 ‘헤드윅’이었으면 좋겠다. 나를 얼마만큼 숨길 수 있느냐가 관건일 것 같다. 나를 모르는 객석의 남자들이 내가 여자인 줄 알고 반하게 만들 수 있었으면 좋겠다.”
<헤드윅>의 열혈팬들은 배우의 이름을 따 헤드윅을 달리 부른다. 7년 만에
<헤드윅>으로 돌아온 오만석은 오드윅으로, 그렇다면 이번엔 형드윅을 기대해도 좋을까? 형드윅이 바라보는 오드윅은 어떨까?
“연습할 때보니 역시! 만석이 형이더라. 형에게 배울게 정말 많다. 섬세하면서도 원숙함을 가진 헤드윅이다. 만석이 형은 모르겠지만 많이 의지하고 있다.”
오드윅과 형드윅, 실제로 누가 더 내재된 여성스러움이 많을지 살짝 궁금해졌다.
“기자님이 보시기엔 어떤가.”
음, 친하지 않고서야 겉으론 도저히 알 수 없는 바, 우선 오드윅과 형드윅의 공연을 보고 판단하는 걸로 하자. 그렇다면 여성으로 변신하기 위해 외모도 잘 다듬고 계신 건지?
“외적으로 준비를 많이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텍스트가 나의 외적인 것 때문에 방해되면 안 된다. 나의 벌어진 어깨가 거슬린다. 뼈를 깎아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웃음) 근육을 빼려고 노력하고 있다. 치마와 브래지어를 입어봤다. 여자들은 이런 걸 어떻게 입나? 브래지어는 갑갑하고 치마는 허한 느낌이 너무 이상했다.”
기자는 부연 설명 굳이 안 하는 걸로.
참, 뾰족구두는 신을 만하고? (맞는 게 있을까?)
“뾰족구두는 이미 드라마 <아이두 아이두> 포스터를 촬영할 때 신어봤다. 뾰족구두는 어렵다.”
한 번 출연한 작품엔 웬만해선 다시 출연하지 않는다는 소문도 있던데 나중에 다시
<헤드윅> 제의가 들어온다면?
“생각해보지 못했다. 지금 아니면 안 될 것 같다는 마음에서 출연을 결정하게 됐지만 여전히 <헤드윅>은 나에게 도전이자 즐거움이다. 즐겁지만 한편으로는 두려운 마음으로
<헤드윅> 준비를 하고 있다. 지금 최선을 다하고 그 이후 일은 나중에 생각해보겠다.”
어딜 봐도 엄친아인 준수한 외모, 주인공감 이미지로 뮤지컬, 드라마, 영화에서 다양한 삶을 살아온 배우 박건형, 극 중 자신의 삶보다 부러운 삶도 있었을까?
“음... 지금까지 늘 부유하거나 까칠한 면을 보여주는 드라마가 많았는데 최근 드라마 <아이두아이두>에서 부잣집 로얄패밀리 가족으로 나왔다.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차를 타고 그런 역이라 드라마 촬영할 때 왠지 모르게 신이 나더라.(웃음)”
<헤드윅> 중 “Origin of love”라는 노래에도 담겨있듯 인류는 원래 한 쌍으로 되어 있다. 오만한 인간에 대한 신의 분노로 짝과 헤어져 여태 자신의 짝을 찾고 있다는 설이 있다. 인간 박건형은 어떤 짝을 찾고 있을까?
“점점 분명해지는 생각은 중요한 것은 외모적인 부분이 아니라는 것이다. 말이 통하는 사람이었으면 착한 사람이었으면 한다.”
뜬금없지만 던져보고 싶던 질문이 있다. 박건형은 지금 이대로도 좋은가, 지금보단 나아야겠는가?
“'미리 자기 인생에 대한 줄거리를 짜지 마라.'라는 드라마 <아이두 아이두> 조은성의 대사는 평소 내 생각이 반영된 것이다. 미래에 대한 계획보다는 오늘을 재미있게 살고 싶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지금 이 순간을 즐겁게 감사히 여기며 살고 싶다.”
왠지 키 커 싱거울 것만 같던 박건형, 속은 이리 깊다. 그래서 김민정 연출가는 배우 박건형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나 보다.
“터지기 일보 직전의 활화산 같은 사람”이라고. 아직 보여줄 뜨거움이 많은 남자, 박건형. 당분간 뾰족구두를 신고 혹독한 여성의 삶을 살아야 할 그에게 응원의 박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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