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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에게 매맞는 경찰, 어쩌다가 이 지경일까?

‘경찰’이 ‘경찰’로 보이지 않는… 경찰을 우습게 아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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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어떠한 권력도 엉뚱한 데 쓰이거나(오용ㆍ誤用) 함부로 사용되어서는(남용ㆍ濫用) 절대 안 된다. 그러나 공권력을 행사하는 경찰이 시위 당사자나 국민들에게 ‘죄인’ 취급을 당하는 현실이라면, 어떻게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킬 힘을 발휘할 수 있겠는가?

# 로드니 킹과 백인 경찰들

‘LA 폭동’의 도화선이 되었던 로드니 킹이 6월 17일 숨졌다. 1991년 3월 흑인 로드니 킹은 경찰의 정지 명령을 무시하고 차를 몰다 백인 경찰관 4명에게 무자비하게 폭행당했다. 인근 주민이 촬영한 로드니 킹의 폭행 영상이 공개되며 흑인 사회가 분노에 휩싸였고 이듬해 백인ㆍ히스패닉계ㆍ아시아계로 구성된 배심원단이 경찰관들에게 실질적인 무죄 평결을 내리자 로스앤젤레스 흑인들이 폭동을 일으켜 3일간 55명이 숨지고 2000여명이 부상당했다. 특히 LA에 거주하는 한인들이 큰 피해를 입었다. 한인 1명이 숨지고 46명이 부상당했으며 한인타운의 90%가 파괴됐다. 전체 피해 업소 1만여개 중 2800여개가 한인 업소였고, 피해액의 절반이 넘는 4억달러가 한인 타운에서 발생했다.

킹이 집단 구타 당하는 모습은 지금 다시 봐도 잔인하기 짝이 없다. 전형적인 공권력의 남용이며 인종차별행위(racism)의 극치다. 그러나 ‘백문이 불여일견(百聞 不如一見)’이라고, 그가 두들겨 맞아 사망에 이르렀다 해도 사건 현장의 동영상이 없었다면 사건이 그렇게까지 커지진 않았을 것이다.

# 고(故) 이청호 경장과 중국 어부들

지난해 말 서해상에서 불법조업 중국어선 나포작전을 벌이던 해양경찰관 2명이 중국 선장이 휘두른 흉기에 찔려 1명이 숨지고 1명이 다쳤다. 사건 당일 오전 인천시 옹진군 소청도 남서쪽 85km 해상에서 경찰특공대원 이청호(41) 경장은 동료 특공대원 7명과 함께 경비함정 3005함에서 고속단정 2척에 옮겨 탄 뒤 어둠 속에서 섬광탄을 투척하며 불법조업하던 66t급 중국어선에 올라 선원 8명을 제압했다. 이 경장은 특공대원 3명과 조타실로 진입하다가 유리창을 깨며 거세게 저항하는 선장이 휘두른 흉기에 변을 당했다. 중국어선에는 선장을 포함해 모두 9명이 타고 있었다. 대원 모두는 방검조끼를 입은 상태였지만 조끼가 덮지 않은 부위인 옆구리와 배를 찔렸다.

세상에 안타깝지 않은 죽음이 없지만, 남들은 이제 막 잠자리에서 일어날 오전 7시에, 거친 파도와 야삽과 쇠꼬챙이ㆍ죽창이 난무하는 좁은 선상에서 비명횡사(非命橫死)한 고(故) 이 경장의 죽음은, 같은 40대로서, 참으로 비통하다. 내국인도 아닌 이국(異國)인에게 난도질 당한 공권력 운운 이전에, 대체 가장(家長)의 책임감이 뭐기에 이 21세기 첨단 과학ㆍ기술의 시대에 목숨을 담보로 사선(死線)을 밟으며 밥벌이를 해야 한단 말인가.

로드니 킹은 청력을 잃고 몸이 많이 망가질 정도로 맞은 대가로 380만달러(43억여원)의 보상금을 받았다. 공무를 집행하다 순직한 이 경장의 유족은 연금으로 월 276만7000원, 일시금으로 3억7600만원의 금전적 보상을 받았다.

로드니 킹은 사건 발생 이전 강도 유죄 판결을 받고 가석방된 상태였으며 사건 당일엔 만취 상태에서 차를 몰다 경찰의 정지 명령을 무시하고 도주했었다. 그러나 그는 이후 인종간 갈등의 상징처럼 대우받았다. 미국 내 흑인들은 킹 사건을 제 일처럼 받아들였고, 그동안 담아두었던 사회적 불만을 폭동으로까지 폭발시키는 도화선으로 삼았다. 이청호 경장이 순직한 지 6개월이 지났지만 중국이 공식 사과했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으며, 중국 어선의 불법 조업이 중단됐다는 얘기도, 분노한 대한민국 시민들이 대규모 규탄 집회를 가졌다는 얘기도 들어보지 못했다. 광우병이나 정권의 무능 등등에 대해서는 꼭 때맞춰 한마디씩 비아냥거리는 그 숱한 작가ㆍ연예인ㆍ교수들의 코멘트도 기억에 없다.

두 사건이 이런 극명한 차이를 보이는 건 두 가지 이유다. 로드니 킹은 ‘민간인(civilian)’인 반면 이청호 경장은 ‘경찰’이었기 때문이다. 대중들은 시위하던 시민(그 시민이 온갖 불법행위로 점철된 범법자라도)의 죽음엔 민감해도 시위를 막던 경찰(그 경찰이 원칙과 사명감이 투철한 모범 경관이라도)의 죽음엔 무감(無感)하게 마련이다. 게다가 킹은 ‘미국의 민간인’이었지만, 이 경장은 ‘한국의 경찰’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킹이 한국의 민간인이었거나 이 경장이 미국의 경찰이었다면 얘기는 전혀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두 사건의 결과가 극명한 차이를 보인 더욱 주된 요인은 “한국인들이 경찰을 우습게 보는 탓”이다. 요즘 주요 언론에서 ‘주폭(酒暴)’의 문제점을 연일 보도하고 있지만, 아무리 술에 취했다고 해도 일선 파출소에서 온갖 난동을 피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과연 우리나라만큼 경찰을 우습게 아는 국민들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다.

나도, 젊은 시절엔 그랬다. ‘정권의 하수인(下手人)’으로 여겼으니까. 탱크를 앞세워 권력을 잡은 집단, 부정(不正)과 불의(不義)의 잡배(雜輩)들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정권의 수족(手足)이었으니까. 박종철을 물고문으로, 이한열을 최루탄으로 죽인 ‘민중의 몽둥이’, ‘짭새들’이었으니까. 더구나 나는 사복을 입은 무장경찰들과 함께 등교하고, 함께 학생회관 식당에서 밥을 먹어야 했고, 바로 그 식당 식탁 위에서 기습적으로 유인물을 뿌리던 여학우가 머리채를 잡혀 고꾸라지던 모습을 지켜봐야 했고, 교내 건물에서 퇴로(退路)를 잘못 잡아 무장경찰들에게 혼자 집단 구타를 당하기도 했던 세대니까.

그러나 그건 30년 전 얘기다. 1961년 5ㆍ16 군사 쿠데타 이후 최초로 군인이 아닌 민간인 출신 대통령이 들어선 ‘문민정부’가 출범한 게 1993년 2월이니 짧게 잡아도 20년 전 얘기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은 PC와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정보화 사회’ 이전, 산업사회 때나 통하던 말이다. 5년, 짧으면 3년 만에도 생활 환경이 급변하는 IT 혁명의 시대(페이스북ㆍ트위터가 주도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스마트폰이 우리 삶에 끼치고 있는 영향력을 떠올려 보시라)에 20년 전 경찰관(觀)과 경찰상(像)을 견지하고 있다는 게 가당키나 한가.

일부에서 현 정부의 대표적인 공권력 남용으로 규정하고 있는 이른바 ‘용산 참사’가 2009년 1월 발생했다. 서울시 용산 재개발 보상대책에 반발하던 철거민과 경찰이 대치ㆍ충돌하던 중 화재가 발생, 철거민 5명과 경찰특공대 1명이 사망하고 23명이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다. 검찰은 사건 발생 3주 만에 철거민의 화염병 사용이 화재의 원인이었고, 경찰의 점거농성 해산작전은 정당한 공무집행에 해당한다는 수사 결과를 발표해 경찰의 과잉진압 책임은 묻지 않고 철거민 대책위원장 등과 용역업체 직원 7명을 기소한 바 있다.

그로부터 3년 5개월이 지난 2012년 6월 말 다큐멘터리 영화 <두 개의 문>(감독 김일란ㆍ홍지유)이 개봉됐다. 영화에서 크레인을 통해 건물 옥상에 내려온 경찰특공대원들은 철거민들이 농성을 하고 있는 망루로 진입해야 하지만 웬일인지 허둥대기만 할 뿐이다. 두 개의 문 중 어디가 망루로 통하는 문인지 몰랐기 때문이다. 작전의 기본정보인 건물의 내부구조조차 알지 못한 채 투입됐다는 얘기다.

이 영화에는 “망루는 칠흙같이 어두웠고, 유독가스와 화염에 싸여 고통을 호소하는 상황은 생지옥과 비교될 정도였다”, “시너가 몇 통이었는지, 망루의 구조가 어떠한지 어떠한 설명도 듣지 못했다”는 경찰특공대원의 생생한 증언이 담겨 있다. 경찰특공대의 진술을 통해 사건을 재구성한 이 영화는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이분법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새로운 관점을 제공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야말로 바로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시각이 아닐까?

현재 우리나라 경찰은 조직의 질적ㆍ양적인 확대에도 불구하고 경찰인력의 부족과 열악한 근무환경 및 이직률 증가 등의 난제를 안고 있다. 외국의 경우와 비교해보면 한국의 경찰공무원이 얼마나 격무에 시달리고 있는지를 확연히 알 수 있다. 우리나라는 경찰관 1인당 분담 인구수 600명으로 미국 385명, 이탈리아 344명, 일본 300명, 프랑스 298명 등과 비교해 2배나 많은 부담을 갖고 있다. 이는 근무시간의 연장과 과로로 이어지고 사기 저하와 경찰행정의 질적 저하를 야기한다.

뒤떨어진 근무조건에 비하면 급여ㆍ후생수준이 미흡한 까닭에 상대적 박탈감ㆍ빈곤감이 만연케 된다. 이는 다시 젊고 유능한 인력의 이직(移職)으로 나타나 절대적 인력부족 현상을 겪고 있는 경찰조직은 결국 악순환의 고리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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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상황에서 일반 국민들마저 툭하면 경찰관에게 삿대질하고 멱살을 쥐고 흔드는 지경이니 경찰 노릇 할 맛이 나겠는가. 다문화 사회를 맞아 상주 외국인 수가 100만명에 달하는 시대에 외국인들마저 공권력을 우습게 본다는 사례도 속속 보도되고 있다. 외국인 집단거주촌의 각종 범죄율이 증가하고 있으며, 경찰이 외국인들을 검문할 때 고분고분하기는커녕 노골적으로 저항하는 모습을 보인다고도 한다. 한국에서 생활하며 저들도 보고 들은 게 있으니 그러는 게 아니겠는가.

지구대나 파출소에서 근무하는 경찰관들에게 대한 욕설과 폭행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으나 ‘인권보호’라는 명분에 묶여 뚜렷한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공무집행 방해로 연행되더라도 간단한 조사만 마친 뒤 귀가하는 일이 반복돼 경찰관에 대한 상습적 폭력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10월 인천의 한 장례식장에서 조폭들이 난투극을 벌였고, 출동한 경찰 앞에서 칼부림까지 했다. 경찰은 제대로 된 공권력 한번 행사하지 못하는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다. 여론이 악화되자 당시 조현오 경찰청장은 ‘적극적 총기 사용’ 지침을 내렸다. 그러나 일선 경찰관들은 “청장이 현장을 너무 모른다”라며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는 것이다.

경찰의 총기 사용은 규정상 쉽지가 않다. 경찰 매뉴얼에 따르면 총기 사용 여부는 위기 상황에서 경찰 개인이 판단해야 한다. 사용을 해도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허벅지를 쏘도록 되어 있다. 총기를 사용한 후에는 ‘사유서’를 내야 한다. 만약 총기를 사용해서 용의자가 죽거나 시민이 다칠 경우에는 책임을 지고 옷을 벗을 수도 있다.

현재 경찰서의 외근 형사들은 정기 사격과 특별 사격을 포함에 1년에 4차례 실탄 사격을 한다. 정기 사격은 한 번에 35발씩 총 70발을, 특별 사격은 50발씩 100발을 쏜다. 1년에 총 170발을 쏘는 셈이다. 60점에 미달할 경우에는 교육을 시킨 다음 재사격을 하게 한다. 강력계 형사 생활을 오래한 어느 전직 경찰 간부는 “경찰관들은 총기 사용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다. 다리를 겨누어서 맞출 수 있는 경찰관이 10%도 채 되지 않는다. 그만큼 총기 사용에 숙달되지 않았다. 다리를 겨누었는데 머리를 맞출 수도 있다. 그러면 뒷감당을 할 수가 없다. 어떤 상황에서도 총을 쏴서 국민의 생명을 구할 수 있고, 사람의 생명을 빼앗지 않는 훈련을 자주 시켜야 한다”라고 토로했다.(‘시사저널’ 1150호) 유사시에 경찰밖에 믿을 대상이 없는 일반 시민의 입장에서 너무 황당하고 두려운 얘기가 아닌가?

맹자(孟子)는 사람의 본성은 선천적으로 착하다는 성선설(性善說)을 편 사상가다. 누구든 길을 가다 우물에 빠지려는 아이를 보면 황급히 달려가 아이를 구하게 마련이다. 이것이 사람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측은지심(惻隱之心)’으로, ‘인(仁)’의 단서가 된다고 맹자는 말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아이의 부모로부터 보상을 받기 위해서도, 동네 사람들에게 칭찬을 듣기 위함도 아니다.

여기에 빗대 말하자면, 길을 가다 A에게 일방적으로 두드려 맞고 있는 B를 목격하게 되면 어느 누구든 이를 일단 중단시키고자 하는 충동을 갖게 된다. 저녁 TV 해외 뉴스에서 진압 경찰의 곤봉에 맞고 있는 아랍 시위대를 볼 때도 마찬가지다. 나는 이를 ‘의(義)’라고 본다. 맹자의 사단설(四端說)에서는 이를 ‘수오지심(羞惡之心)’, 즉 의롭지 못한 일을 부끄러워하고 미워하는 마음이라 불렀다. 그러나 아이를 구하는 것과 달리 무단 폭력의 현장에 홀몸으로 무작정 개입하기는 현실적으로 용이하지도, 현명하지도 않다. 그런 때 우리는 경찰로 대표되는 공권력에 의지ㆍ의탁하는 것이다.

한국 경찰관이 불법 조업을 하고 있는 중국어선을 단속하던 중에 흉기에 찔려 죽었다. 나는 이것이 대한민국 공권력의 현주소라고 본다. 중국인들의 대책 없는 오만(傲慢)을 감안한다 해도, 우리가 우리의 경찰을 우습게 알기에 중국 어부들도 한국 경찰을 홍어 숫놈 생식기처럼 만만하게 보는 것이다. 그동안에도 그들의 불법을 단속하던 우리 해경의 부상이 여러 차례 반복되어 왔고 그들의 수법도 점점 악랄해져 가고 있었는데, 우리의 공권력이 그들을 더 강력하게 다스렸다면 과연 그런 끔찍한 일이 일어났겠는가?

물론 어떠한 권력도 엉뚱한 데 쓰이거나(오용ㆍ誤用) 함부로 사용되어서는(남용ㆍ濫用) 절대 안 된다. 그러나 공권력을 행사하는 경찰이 시위 당사자나 국민들에게 ‘죄인’ 취급을 당하는 현실이라면, 어떻게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킬 힘을 발휘할 수 있겠는가?

한국 청년에게 고한다. 경찰은 법률의 틀 안에서 ‘의(義)’를 집행하는 기관이다. 게다가 다른 어느 조직보다 건강한 시민정신으로 무장한 우수한 인력으로 충원되어야 할 기구다. 경찰의 ‘불의(不義)’를 두 눈 부릅뜨고 감시하되, 공권력의 권위를 두 팔 높이 들어 인정하고 신장(伸張)시켜야 한다. 경찰도 국민이며 전경(戰警)도, 의경(義警)도 여러분과 똑같은 대한민국 청년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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