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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만 알던 속물 변호사 할러의 정의 찾기 -『탄환의 심판』

‘속물’ 변호사와 ‘열혈’ 형사가 만났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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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코넬리의 『탄환의 심판』은 영화로도 각색된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에 이어지는 법정물이다. 지난 사건의 충격 때문에 2년여를 방황했던 변호사 미키 할러가 드디어 현장으로 돌아온다. 『탄환의 심판』은 미키 할러가 변호사 일을 갓 시작한 1992년 시점의 에피소드를 프롤로그로 제시한다…

미국 범죄 드라마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시리즈는 예나 지금이나 <로 앤 오더>다. 스핀오프로 나온 <로 앤 오더: 성범죄수사대> 역시 최고다. 20년 넘게 방영된 <로 앤 오더>는 범인을 잡는 경찰과 기소를 하는 검사의 이야기를 모두 그린다. 보통의 수사물은 범인이 잡히는 것으로 사건이 마무리되지만, <로 앤 오더>에서는 범인이 재판을 받고 형이 확정되거나 풀려나는 것까지 모두 다룬다. 그래서 드라마를 보면서 더욱 화가 나거나 절망적인 기분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범인이 분명한데도, 수사 과정의 실수나 착오 혹은 증거 보전 과정의 문제 때문에 범인이 풀려나는 경우가 있다. 인종차별이나 정신이상 등으로 사건의 논점을 흐리며 배심원들을 호도하는 경우도 있다. 권선징악의 원칙이 무참하게 무너지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법’에 대한 회의가 들기도 한다. 악인을 변호하는 변호사에게 악감정이 들기도 한다. 그들에게 도대체 ‘정의’란 무엇인지 묻고 싶어진다. 미국에서 가장 싫어하는 직업인이 변호사라는 말에도 공감이 간다. 소송공화국이라 불릴 정도로 소송을 남발하며 먹고 사는 기생충이라는 이유와 함께.





마이클 코넬리의 『탄환의 심판』은 영화로도 각색된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에 이어지는 법정물이다. 지난 사건의 충격 때문에 2년여를 방황했던 변호사 미키 할러가 드디어 현장으로 돌아온다. 『탄환의 심판』은 미키 할러가 변호사 일을 갓 시작한 1992년 시점의 에피소드를 프롤로그로 제시한다. 그 시절의 미키 할러는 야심만만했다. 악인들을 변호하는 것으로 악명 높았던 아버지의 대를 이은 미키 할러는 거물이 되고 싶었다. 정의를 수호한다거나 범죄를 뿌리 뽑고 싶다거나 하는 마음은 없었다. 미키의 목적은 이런 것이다 ‘두 청년을 죽였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것은 내가 알 바 아니었다. 내 능력을 최대한 발휘해서, 검찰이 우드슨을 제대로 기소했는지 시험하는 것이 내 임무였다.

그리고 거짓말을 한다.

누구나 거짓말을 한다. 경찰도 거짓말을 하고, 변호사도 거짓말을 하고, 증인도 거짓말을 하고, 피해자도 거짓말을 한다. 재판은 거짓말 경연장이다. 법정 안의 모든 사람들도 그 사실을 알고 있다. 판사도 알고, 심지어 배심원도 안다. 그들은 법원 건물 안에 들어설 때부터 앞으로 거짓말을 듣게 될 것임을 알고 있다. 그들이 정해진 자리에 앉는 것은 거짓말을 듣겠다는 동의와 같다....그것이 내가 하는 일이다. 칼을 벼리는 것. 날카롭게 다듬는 것. 자비심도 양심도 없이 그 칼을 휘두르는 것. 모두 거짓말을 하는 곳에서 진실이 되는 것.

세월이 흐르면서 미키 할러도 많이 변했다. 아무래도 겨우 목숨을 건진 지난 사건의 여파가 컸다. 미키 할러는 돈이 가장 중요하다고 믿는 변호사였다. 세 대의 링컨차를 사무실처럼 굴리면서, 어떻게 의뢰인에게 더 많은 돈을 뜯어낼 것인지 만을 고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키 할러는 결코 악인이 아니었다. 절대악이 분명한, 그 사악한 인간을 내버려둔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했다. 그래서 미키는 정의를 택했고 상처받았다. 『탄환의 심판』은 현장에 돌아올 준비를 하던 미키에게 연락이 오는 것으로 시작된다. 변호사 제리 빈센트가 살해당했고, 자신의 사건을 대신 맡을 변호사로 미키를 지정했던 것이다. 빈센트의 사건 중에는 아내와 정부를 쏴 죽인 혐의를 받고 있는 거물 영화제작자 월터 엘리엇이 있었다.

지금까지 내가 변호를 맡거나 만나 본 살인범은 20여 명쯤 된다. 이런 경우 유일한 법칙은 바로 아무런 법칙도 없다는 것이다. 살인자들은 저마다 다르다. 부자도 있고, 가난한 사람도 있고, 겸손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오만한 사람도 있고, 범행을 후회하는 사람도 있고, 뼛속까지 냉혹한 사람도 있다....하지만 이 첫 만남에서 그가 정말로 살인자인지 확신할 길은 없었다. 언제나 그랬다.

월터 엘리엇은 폭군이다. 허상의 세계를 다루는 제작자답게, 거짓말도 능숙하고 강압적인 명령에도 일가견이 있다. 워터는 자신의 지위를 절대 내놓으려 하지 않는다. 미키 할러는 법정, 즉 자신의 세계에서도 군림하려는 월터를 끌어내리는 것부터 시작한다. 그의 거짓말을 들어주고, 하나씩 검증한다. 변호사를 속일 수 없다면, 검사도 속일 수 없다. 배심원도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하지만 방법은 있다. 법을 제대로 활용하면, 증거를 숨기거나 거짓말을 해도 죄가 되지 않을 수 있다. 아슬아슬하게 합법과 불법의 경계를 넘나드는 것. 그것이 바로 유능한 변호사가 되는 길이다.

월터 엘리엇은 살인자일까? 전작의 질문은 『탄환의 심판』에서도 반복된다. 하지만 똑같은 질감으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전작의 미키는 그야말로 속물이었다. 그가 범인이어도 상관없다, 는 기분으로 시작했지만 점점 흔들리고 뒤틀린다. 그 혼돈과 각성의 과정이 흥미로웠다. 『탄환의 심판』의 미키 할러는 이미 그런 경험을 했다. 그렇기에 똑같은 질문이라도, 지금 미키의 마음에는 다르게 들린다.

지난 48시간 동안 새로 맡게 된 사건들의 무게가 나를 짓누르기 시작했다. 내가 다시 유혹을 느끼는 것이, 약이 내게 줄 수 있는 포근한 세계로 가고 싶은 욕망이 느껴졌다. 약은 지금 내가 서 있는 곳과 벽돌담 같은 현실 사이에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 주었다. 나는 그 공간을 점점 갈망하고 있었다.

미키 할러는 자신이 이미 변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과거의 사건이 엄청나기도 했지만, 애초에 미키라는 인간 자체에 변화의 동인이 숨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월터 엘리엇을 변호하면서, 그와 대화를 나누면서, 그에게 속아가면서 미키는 깨닫는다. ‘죄 지은 사람들이야말로 내 전문이었다. 내 감정에 멍이 든 것은 너무나 훌륭하게 이용당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또한 내가 기본적인 법칙, 즉 모든 사람이 거짓말을 한다는 법칙을 잊어버리고 있었다는 생각 때문이기도 했다.’ 자신이 누구였는지 깨달으면서, 그가 지켜야 할 원칙이 무엇인지 확인하면서 미키는 제자리를 찾게 된다.

마이클 코넬리는 LAPD의 형사 해리 보슈 시리즈에 이어 변호사 미키 할러 시리즈도 성공적으로 안착시켰다. 『탄환의 심판』은 능숙하게 진행된다. 전직 서퍼에 대한 친절, 딸에 대한 애정, 사건을 대하는 태도의 미묘한 변화 등등 속물 변호사가 어떻게 충격적인 과거에서 벗어났고, 지금 어떻게 싸우고 있는지를 매력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해리 보슈와 『시인』의 주인공 존 맥커보이 기자를 『탄환의 심판』에 등장시키며, 마이클 코넬리의 팬에게 확실한 서비스도 한다. 비록 조연이기는 하지만, 그들의 이름이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 국내에 출간된 마이클 코넬리의 저서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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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환의 심판 마이클 코넬리 저/김승욱 역 | 랜덤하우스코리아

한 번 잡으면 손을 놓을 수 없는 재미와 함께 현실적이고 진지한 사회범죄에 대한 내용을 다루는 크라임 스릴러의 마스터 마이클 코넬리. 에드거, 앤서니, 매커비티, 셰이머스, 네로 울프, 배리 상 등 수많은 추리문학상을 휩쓸며 작품성 또한 인정받고 있는 보기 드문 스릴러 작가인 마이클 코넬리의 새로운 작품이 출간되었다. 『탄환의 심판』은 2009년 앤서니 상을 수상했으며 출간되자마자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와 USA 투데이 20주 연속 베스트셀러를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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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봉석

대중문화평론가, 영화평론가. 현 <에이코믹스> 편집장. <씨네21> <한겨레> 기자, 컬처 매거진 <브뤼트>의 편집장을 지냈고 영화, 장르소설, 만화, 대중문화, 일본문화 등에 대한 글을 다양하게 쓴다. 『하드보일드는 나의 힘> 『컬처 트렌드를 읽는 즐거움』 『전방위 글쓰기』 『영화리뷰쓰기』 『공상이상 직업의 세계』 등을 썼고, 공저로는 <좀비사전』 『시네마 수학』 등이 있다. 『자퇴 매뉴얼』 『한국스릴러문학단편선』 등을 기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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