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기자, 이런 소설가도 있다
김어준 총수는 <나는 꼼수다>에 주진우 기자를 영입한 과정을 소개할 때마다 “대한민국에 이런 기자도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철없고 수줍은 17세’ ‘누나 전문 기자’ 시사IN 주진우 기자는 꼼꼼한 디테일로 <나는 꼼수다>가 제기하는 갖가지 ‘소설’들을 팩트로 의심하게 한다.
검은돈 안 받고 황색기사 안 쓰는 기자, 소신 있고 원칙 있는 기자. 불의에 굴복하지 않는 건 물론, 비리를 파헤치기까지 하는 기자는 영화에만 나오는 줄 알았건만, ‘이런 기자’가 있었다. 억울한 사람들은 가장 만나고 싶어 하는 기자, 윗분(!)들이 가장 잡고 싶어하는 주진우 기자가 <나는 꼼수다>에 합류하고, 그간에 한 일이 알려지면서 대단한 관심과 인기를 얻었다.
우리 시대의 성역이라고 불리는 삼성, 순복음교회 고발 취재, 에리카 김 단독 인터뷰, 내곡동 땅 특종까지 10년 전부터 <나는 꼼수다>로 사랑받는 지금까지 한결같은 모습으로 기자의 본분을 지켜왔다. 몇 년 차 기자였든, 어느 소속 기자였든 그는 강자에게 더 강했고, 약자에겐 (편파적으로) 약한 모습이었던 주진우 기자는 독자와 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이런 기자가 있다면, 이런 소설가도 있다. 인권 문제, 사형수, 성범죄 등 어둠에 관한 이야기를 쓰면서도 매번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작가 공지영 말이다. 공지영 작가는 수많은 베스트셀러를 써냈고, 이슈를 만들어내며, 기사 머리 제목에 숱하게 이름을 올렸다. 최근에는 장편소설
『도가니』가 오랫동안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영화화되면서 아이들 성범죄에 관한 ‘도가니법’을 제정하기까지 했다.
<나는 꼼수다> 콘서트로 인연을 맺은 두 사람이지만, 닮은 점이 많다. 어두운 때일수록 더 어두운 면을 파고들어 글을 써 왔다. 가는 펜으로 벌린 그 틈새에 사람들의 관심이 닿을 때까지, 부지런히 발로 뛰고 글로 외쳐왔다. 때론 그들의 글이 법을 바꾸기도 하고, 선거에 영향을 끼치기도 했지만, 그보다 실패가 더 많았다.
그래서 그들은 여전히 쓴다. 말 한마디, 트위터 한 줄이 기사가 될 만큼, 이들이 시대의 뜨거운 감자라는 공통점도 있다. 너무 많은 말이 보태져서 주진우 기자, 공지영 작가의 어떤 면은 이미지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이 해온 일은 팩트다.
말하고 들을 수 있는 통로는 예전보다 훨씬 늘어났는데, 진실이나 본질에 그만큼 가까워졌는지는 의문이 드는 시대다. 알려고 노력하고, 품을 팔아야만 진실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을 두 사람은 글로 삶으로 방증해왔다. 2월 3일 홍대에 또 하나의 이야기 장이 열렸다. <창비 인문 카페>가 처음 열린 날, 두 사람이 만났다. 2층 카페를 꽉 채운 독자들은 그 둘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시대가 빠를수록 글쓰기의 중요성은 더해져
주진우(이하 ‘주’):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도가니』 무거운 소설이잖아요. 왜 이렇게 무거운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공지영(이하 ‘공’):
원래 무거운 걸 썼어요. 88년 「동트는 새벽」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할 때부터 문학은 무거워야 품위 있고 지적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때는 열악한 시절이었고, 친구들이 끌려가고 실려가고 죽기도 하던 때였어요. 혼자 글을 쓰는데, 러브 스토리 같은 건 너무 나이브하다고 생각해서 수배된 친구 대신에 무언가 써야 한다는 과잉된 부채감이 많았어요. 그렇게 문학을 시작했어요.주: 어렸을 때부터 글을 잘 썼어요?
공:
모르겠어요. 어느 날, 학교 밖에서 하는 백일장에 나갈 사람을 두 명 뽑았는데, 제가 뽑혔어요. 다 깜짝 놀랐죠.주: 저는 글 쓰는 게 싫어요. 어떻게 해야 해.
공:
그건 타고나는 거예요. 우리 애들도 글쓰기 싫어해요. 저도 돈을 안 주면 일기도 쓰기 싫어요.(웃음) 어렸을 때 왕따를 많이 당했어요. 초등학교 1학년 때 친구가 모함해서 도둑으로 몰리는 경험을 한 이후부터 낙이 없었어요. 책 보고 끄적끄적할 땐 외롭지 않고 좋았어요.주: 외로움을 글로 승화했군요.
공:
나가서 연애를 했으면 인생이 바뀌었을 텐데(웃음) 혼자 앉아서 사각사각 글을 쓰고 지우는 게 너무 행복했던 것 같아요. 그때 쓰던 노트가 아직 있거든요. 여태까지 통틀어서 그때가 글 쓰면서 가장 행복했던 것 같아요.주: SNS 시대입니다. 시대가 빨라질수록 글쓰기의 중요성은 더해지는 것 같아요. 많이 읽고 쓰고 생각하는 거 말고 실질적인 팁을 주세요.(웃음)
공:
우선 많이 읽어야 하고요. 예수 석가, 소크라테스는 자기 글을 안 썼는데, 일반인 중에 뛰어난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 책을 썼어요. 메모가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오늘 같은 날도, ‘7시 반, 창비 카페 2층’ 수첩에다 메모해둬요. 그렇게 사실만 간단히 기록하려고 시작하면, 계속 살을 붙이게 돼요. 주진우 기자도 많이 메모하잖아요.『도가니』로 알게 된 문학의 힘
주: 저는 기자로서 펜을 안 가지고 다니는 걸 미덕으로 생각해요.(웃음) 제가 대학 때 <쉰들러 리스트>를 보고, 영화와 문학의 힘을 깨달았어요.
『도가니』는 우리 사회에 근 십 년간 큰 영향을 끼친 소설로 남지 않을까 싶어요. ‘도가니법’도 생겼잖아요.
공:
실제로 장애인과 13세 미만 아동에 대한 성폭행 공소시효가 폐지됐어요. 형량 15년에서 20년으로 늘어났고, 무기징역까지 처벌할 수 있게 됐어요. 제가 계속 주장했던 것은 어린이 성폭행은 살인죄보다 더 무섭게 다뤄야 한다는 거였어요. 최근 ‘서울대 대학원 성폭행 사건’이며 ‘고대 성추행 사건’들이 너무 아슬아슬하게 넘어가고 있어서 안타까워요.
이 소설이 영화화 되면서, 온 국민이 각성할 수 있었고, 그 아이들이 주축이 된 카페가 열리기도 했어요. 아이들이 얼마나 예쁘게 컸는지. 아이들은 망가질 때 일순간에 망가지지만, 사랑해주면 또 그만큼 회복하는 속도도 빠른 것 같아요.주: 문학의 힘이 어디까지인가, 다시 한번 생각해봤어요.
공:
네. 저도 그랬어요. 하지만 어떤 글을 이렇게 써서 선동해야지 한적은 한 번도 없어요.주: 저는 편파적으로, 영향을 미치려고 기사를 씁니다.(좌중 웃음) 제가 100개의 기사를 쓴 것보다, 한 편의 문학이 이룬 게 훨씬 커요. 이게 영화화돼서 많은 사람이 봤고요.
공:
기자와 작가는 또 다르잖아요. 내곡동 특종 같은 건 소설을 쓸 틈이 없잖아.(웃음) 사람들에게 ‘아, 문학이 이렇게 무력하지 않군요’라는 얘기를 들을 때 굉장히 뿌듯했어요. 문학을 무엇에 쓰기 위해서 하는 건 아니지만, 우리 삶의 본질적인 것들을 건드려주는 매체라는 걸 새삼 알게 됐어요.글쓰기의 압력을 버티는 게 관건
주: 요새 가장 큰 관심사는 뭐예요?
공:
다음 소설이죠. 연애소설 쓰겠다고 얘기했는데, 이 정권하에서는 도저히 연애 감정이 안 생겨요. 이렇게 말했더니, 어떤 분이 저더러, 천안함에 간 애인이 죽어서 천안함의 비밀을 파헤치는 소설을 써보래요. 어둠 전문에서 벗어나서 밝은 사랑 얘기 쓰는 작가가 되려고 했는데 정말 힘들어요.
연애소설은 그때그때의 감성에 의존해서 쓰는데, 이 정권하에서는 정말 힘들어요. 하루 자고 일어나면 크레인에 사람이 올라갔다고 하고, 쌍용차 노동자가 또 자살했다는 소식이 들리고, 강정마을에 가면 강정마을 이야기를 소설로 써달라고 하고요. 사랑의 소유와 자유의 본질에 관해 쓰고 싶은데 정말 힘겹습니다.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래서 사랑을 해야죠. 제가 대학교 1학년 때, 페미니즘 소설이 많이 나왔어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부터 해서…… 그때 『아담이 눈뜰 때』 이런 소설을 보면서, ‘이런 건 저녁에 하나씩 쓸 수도 있어.’ 해서 ‘아담이 눈 감을 때’ 하일지의
『경마장 가는 길』 대신 ‘경마장에서 오는 길’ 같은 걸 하루 저녁에 쓰기도 했는데(좌중 웃음)
『도가니』는 얼마나 걸렸습니까.
공:
7월 초쯤이었던 것 같아요. 우연히 기사를 접하고 광주에 내려갔을 때 매우 더운 여름이었거든요. 4개월 정도 취재했고, 11월 1일부터 4월까지 5개월간 연재했어요. 연재는 시간을 맞춰야 해서 그랬고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은 5개월 정도 취재를 하고 두 달 만에 썼어요. 그 두 달 동안 딱 두 번만 외출했고요.
글을 쓸 때는 통째의 시간이 주어져야 해요. 30분도 못쓸 수도 있는데, 그 30분 쓰기 위해 오래 앉아있어요. 수많은 정보가 쫙 압축돼서 명주실처럼 가늘게 나와야, 그걸 직조해서 쓰잖아요. 그때마다 그 압력이 정말 싫어요. 그래서 항상 글쓰기 전에 책상 치우고, 갑자기 편지 쓰고(웃음)
주: 저는 최대한 빨리 쓰고 도망가요.
공:
그 압력이 너무 높아서 글쓰기가 그렇게 괴로운 것 같아요. 한번 실이 나오면 기분이 좋죠. 잘 풀리면 100매씩 써요. 제가 폭풍 집필하는 편이에요. 생각 속에서 모든 디테일을 만들어내요. 머릿속에 한 편의 영화를 대충 그리고 써요. 어느 부분을 정점으로 두고 다가갈 것인가. 『도가니』 같은 경우는 연두가 법정에서 손을 드는 장면을 정점에 뒀어요.
그걸 중심으로 모든 에피소드를 배치하는 거예요. 연두가 손들 때 긴장감이 많이 들지 않았어요? 실제 장면이었는데, 저도 정말 깜짝 놀랐어요. 청각 장애가 있어도 약간씩은 들을 수 있다는 걸 몰랐고, 20년째 청각장애인 학교를 운영하는 사람도 전혀 모르고 있었어요. 여러분이 블로그에 많이 써두었던 대사 ‘우리가 싸우는 건 세상을 바꾸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세상이 우리를 바꾸지 못하게 하기 위한 것이에요.’도 그렇고, 편지 글도 이전에 배치해 둔 거였고요.
주:
『도가니』를 읽는 데 너무 고통스러웠어요. 50번은 끊어 읽었을 거야. 영화가 나왔을 때, ‘그래도 이런 영화를 봐줘야 세상이 좋아지겠지’하고 들어갔는데, 아… 너무 고통스러웠어요. 영화 딱 시작할 때부터 괴롭고 도망가고 싶었어요.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을 알아야 해요”
주: 트위터를 잘 안 열어 보거든요. 모르는 사람이 던지는 말에 너무 상처받아요. 치유가 잘 안 돼요.
공:
어렸을 때 곱게 자라서 그런 거 아냐? 인기 많았죠?주: 많았죠. 근데 저를 찾아오는 사람은 정상적일 때 안 옵니다. 지거나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하나 남았는데, 그게 목숨이라는 사람들이 많이 와요. 그 사람들한테 옆에서 기운을 북돋아 주고, 옆에서 좋은 얘기해줬는데, 막상 내가 상처를 받으면 아무것도 하기 싫어. 어떻게 이겨내야 해?
공:
연습해야 해요. 저 사람이 나를 미워하는 데 내가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는 걸 인정해야 해요. 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데 정말 많은 시간이 걸려요. 저를 가장 많이 변화시킨 말은 ‘내가 할 수 없는 일은 빨리 포기하고, 할 수 있는 일을 하자’는 말이었어요. 누가 나에게 상처 주는 일은 어쩔 수 없어요. 하지만 내가 나의 상처를 치유하는 일은 내가 어찌할 수 있어요.
공격자나 포식자들은요, 제일 약하고 잘 잡힐 것 같은 존재를 기가 막히게 알아채요. 자기를 비난하고 약한 사람들이라는 걸 빨리 알아봐요. 동물의 왕국에서, 큰 암사자가 약하고 작은 것부터 잡아먹는 것처럼요. 자기를 용서하고, 늘 사랑해줘야 하죠. 이미 내가 받은 상처를 내가 처리해야 하고, 처리할 수 있다는 두 가지 생각만 하고 노력해야 해요. 저도 한 십 년 훈련했던 것 같아요. 공짜가 없어. 마음 근육을 단련해야 돼요.주: 약자 편에 안 서고, 이기는 쪽에 서 있으면 대접도 받고 주어진 혜택도 많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그쪽으로 다 걸어갑니다. 나이 먹으면서 점점 더 약자 쪽으로 걸어가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요?
공:
원래 그랬어요. 이런 생각은 해요. 우리나라에 정말 존경할 수 있는 부자, 권력자가 있었다면 그 사람 옆에 찰싹 붙어있을지 몰라요. 그런 사람을 못 만나서 그래요. 내가 뭘 하겠다고 주변 사람들한테 욕을 먹으면서까지 이런 일을 할까 싶지만…… 요샌 말리는 사람도 없어요. 포기한 것 같아.(웃음) 제가 어렸을 때부터 원만한 사람이 아니었고, 늘 따돌림을 당했고, 아주 어렸을 때부터 사랑을 버리는 연습을 많이 했어요. 타인의 시선을 떼어놓는 연습을 많이 해서 더 약자 쪽에 공감하게 되는 것 같아요.주: 저도 중학교 1학년 때 그런 생각을 했어요. 나이를 먹는 것은 사람을 버려가는 과정이구나. 요새도 그런 생각 하세요?
공:
사실 사랑 받고자 하는 욕망은 사실 굉장한 지옥이거든요. 예수도 다수결로 처형당했잖아요. 누가 와도 어쩔 수 없으니까 나 좋을 대로 살자. 내가 누군가에게 크게 폐를 끼치거나 손해 끼치는 게 아니면 나 좋을 데로 살자는 게 나의 욕망이에요. 그게 재미있어요. 매일매일 누구 의식하고, 살았다면 괴로웠을 거야.
주: 꽃피는 봄이 오면 읽기 좋은,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 있나요?
공:
희곡도 좋아해요. 예전에 『벛꽃 동산』 『유리 동물원』 되게 좋아했어요. 아직도 잊지 못하는 연애소설 중 하나는 산도르 마라이의
『열정』. 그 소설을 아직도 잊지 못해요. 이런 대목이 있어요. 언제나 은혜를 입거나 받은 사람이 있을 때, 은혜를 받은 사람이 은혜를 준 사람의 뒤통수를 치는 게 인생의 법칙이다. 너무 무서운 말이에요. 왜냐하면 은혜를 받은 사람은, 은혜를 준 사람을 볼 때마다 은혜를 받을 수밖에 없는 자신의 처지를 상기하고 그것이 인간에게 끝없는 분노를 일으킨다는 거예요. 소름이 쫙쫙 끼치지만, 이런 게 책을 읽을 때만 느낄 수 있는 통찰 같아요.
주: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한마디 해주세요.
공:
글 쓰는 게 좋아서 글을 쓰기 시작했고요. 지금도 글 쓰는 게 사실 정말 좋아요. 아침에 일어나서 창 밖을 보고 추위를 묘사하는 괜찮은 표현을 생각해낼 때, 기분 되게 좋거든요. 그날 트위터에 ‘아침에 일어나서 유리 벽처럼 서 있는 초겨울에 살짝 이마를 찧었다.’라고 썼어요. 이렇게 재미있는 표현을 생각해낸 날은 한나절이 즐거운 거예요.
이제 다음 소설은 취재가 끝났고요. 아직도 글을 쓸 때 두근두근하고, 구상할 때 많이 울어요. 그 사람 심정으로 들어가서 상상하는 일이 아직도 설레요. 어떤 연애가 저를 20년 넘게 이렇게 설레게 하고, 한나절이나 기분 좋게 할 수 있겠어요? 내가 정말 소설을 사랑하긴 사랑하나 봐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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