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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에서 음악이 걸어 나오다 - 김영하의 도드리

도드리는 '되돌아간다'는 어원을 가지고 있다. 총 7장으로 구성된 악곡의 1장과 4장이 같고 6장과 7장이 거의 비슷한 것이 자신의 어원과 닮았다. 7장의 끝맺는 가락을 찾지 못하면 영영 곡을 끝내지 못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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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 저 | 문학동네
세계적인 작가로 발돋움하고 있는 김영하의 첫 소설집 『호출』의 개정 3판. 데뷔작인 「거울에 대한 명상」을 비롯해 「나는 아름답다」「전태일과 쇼걸」「도드리」「도마뱀」 등 모두 열한 편의 작품이 실려 있다. 1994년 11월부터 1997년 7월까지, 약 삼 년 동안 쓴 것들이다. 『호출』은 첨단의 상상력과 날렵한 호흡, 차갑고 세련된 감수성 등 김영하 문학의 특장들이 원형 그대로 남아 있는 90년대 한국문학의 뛰어난 성과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는다. 등단 이후 발표하는 작품마다 독자들의 열렬한 지지 속에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작가로 우뚝 올라선 김영하의 신세대적 패기와 비범한 역량이 녹아 있는 초기작들은 지금 읽어도 여전히 새롭고 매혹적이다.
‘금요일의 문학 이야기’는 문예진흥원에서 열리는 행사로 작가와 독자의 즐거운 만남을 표방한다. 참가한 사람들이 한 시간 가량 자유롭게 이야기를 풀어놓은 작가와 대화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는 비교적 느슨한 대중적 모임이다. (지금도 하는지는 모르겠다) 어느 금요일 문예 진흥원에서 그를 처음 보았을 때 그는 작가였지만 객석에 앉아 있었다. 빈 자리를 찾고 있는 나의 시야에 들어온 그. 백색으로 물든 머리 끝에 반짝이는 귀고리가 살짝 보였다. 그는 자신만의 조용함에 파묻혀 책을 읽고 있었다. 책 읽기가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편안함처럼 보이는 그런 자세와 표정이었다.

‘도드리’는 국악에 폭넓게 쓰이는 장단의 이름으로 이 장단이 쓰이는 악곡 이름으로까지 의미의 폭을 넓혔다. 시간이 지나면서 기존 곡을 변주한 상현도드리, 하현도드리, 밑도드리 등으로 파생되었고, 대금을 연주하는 사람이면 가장 처음 연주하게 되는 평이한 가락을 갖고 있다.

도드리는 ‘되돌아간다’는 어원을 가지고 있다. 총 7장으로 구성된 악곡의 1장과 4장이 같고 6장과 7장이 거의 비슷한 것이 자신의 어원과 닮았다. 7장의 끝맺는 가락을 찾지 못하면 영영 곡을 끝내지 못할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들이 7장에서 끝맺는 가락을 찾지 못해 애를 먹곤 한다. 도드리를 닮은 인생 탓인지도 모른다.

도드리에 대한 전설이 있다. 조선시대 말엽, 어느 대금의 고수가 매일같이 인왕산 꼭대기에 올라 도드리를 불었고, 그 때마다 나막신에 모래 한 알을 던져 놓고 내려오곤 했다. 어느덧 나막신에 모래가 빼곡히 찰 무렵, 그 속에서 꽃 한 송이가 피어났다고 한다. 대금의 고수가 평생을 바쳐도 다할까 말까 한 단순하지만 어려운 곡인 것이다.

많은 작가들이 자신을 닮은 작품을 쓴다. 일본의 사소설까지는 아니더라도 누구에게나 개인적 체험이 작품에 영향을 미칠 것은 뻔하다. 하지만 김영하는 좀처럼 작품에서 자신의 냄새를 풍기지 않는다. 한 인간을 ‘지금까지 읽어본 책의 총체’로 여기는 지식애가 그의 경험이고 상상을 즐기는 그의 취미가 소설을 쓰게 하는 것 뿐이다. 그런 면에서 ‘도드리’는 이례적인 작품이다. 그는 대학 재학 중 국악 동아리 활동을 했다고 한다. 소설을 읽는다고 하면 인상을 쓰는, 투쟁에 모든 것을 바친 선배들을 피해 김영하는 교정의 언덕에 올라 도드리를 불지 않았을까? 끝도 없이 곡조를 이어가지나 않았을까?

김영하는 영상적인 글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TV세대, 즉 신세대 문학의 징후로 여겨지며 90년대부터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정작 자신은 전혀 영상적인 혜택을 받지 못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밝힌다. 군인인 아버지를 따라 이리저리 산골만 다니느라 ‘가장 교훈적인’ KBS 1TV만 겨우 볼 수 있었다고 한다. 마치 소설이라곤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았던 통신사 직원 마루야마 겐지의 혜성 같은 등단처럼, ‘디 아더스’를 연출하고 음악까지 담당한 천재 감독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가 극장이나 TV와 동떨어진 생활을 했던 것처럼… 그리고 때론 CD가 아니라 책 속에서 음악이 걸어 나오는 수도 있는 것이다. 행간을 채우고 있는 絃과 琴이 책장 넘기는 손끝에 타고 운다. 황병기의 「산운(山韻)」, 산의 운치다.

소설 속에서 ‘산운’은 망가졌다. 어떻게 망가졌는지 궁금하다면 소설을 읽어보자. ‘산운’에는 정취와 풍류가 흐른다. 어떤 것인지 궁금하다면 들어보자. 기왕이면 전라남도 담양의 식영정에 올라 한 시간쯤 쉬어보는 것도 좋겠다. ‘산운’은 송강 정철의 가사 ‘성산별곡’의 운치를 음악으로 표현한 것이라 한다. 정철이 식영정에서 바라보며 즐겼을 경치는 댐 공사로 잠겨 남은 것이 거의 없으니 ‘산운’이 이끄는 대로 눈을 감고 당시의 운치를 느껴볼 따름이다.

책 속에 파묻힌 듯 앉아 있던 그가 성큼성큼 강단으로 걸어 나간다. “안녕하세요. 김영합니다”라고 말하는 순간 그는 독자에서 작가로 돌아갔다. 그리고 재미있는 연사이기도 했다. 염색에 귀고리까지 한 작가를 알아보지 못한 주최 측은 당황한 후 곧 안도했고, 독자들은 즐거웠다. 그의 소설처럼 재미있는 순간이었다.



김영하
보편성을 담보하는 소설의 주제의식과 트렌디한 소재를 통해 동시대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저자 특유의 통찰력과 문제의식으로 전세계 독자들의 주목을 끌고있는 소설가 김영하. 단편들에서 현대인의 고독과 단절, 타인과의 연대에 대한 무능 등에 대한 이야기들을 명쾌하고도 아이러니하게, 또한 유머러스하게 그려내며 독특한 상상력의 세계를 보여주었다면, 장편들에서는 독자들에게 늘 새로운 실험을 선보여왔다.
강원도 화천에서 군인의 아들로 태어나 진해, 양평, 파주, DMZ, 잠실 등 전국을 주유하며 성장했다. 연세대 경영학과와 경영대학원을 졸업한 후 헌병대 수사과에서 군역을 마친 그는 단편 「거울에 대한 명상」을 가지고 95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를 두드려본다. 첫단추는 낙선. 그러나 그 해 봄 그는 문화비평지 『리뷰』에 이 작품을 보내 바로 "등단해버린다".
두 권의 작품집과 한 권의 장편 소설을 내면서 기발하고 만화적인 상상력, 인간소외, 죽음, 사이버 시대의 일상성 등을 다룬 묵직한 주제들, 소설의 전통적 원칙을 파괴하는 도전성, 자학과 조롱에 섞여드는 번뜩임 등으로 가장 주목받는 젊은 작가 중 한 명이 되었다. 그의 소설들은 미국, 프랑스, 독일, 일본, 이탈리아, 중국, 네덜란드, 폴란드, 터키 등에 판권이 수출되어 세계 각국에서 번역 출간되고 있다. 2004년에는 한 해 동안 동인문학상, 이산문학상, 황순원문학상을 수상해 화제가 되었다.
소설집 『호출』『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오빠가 돌아왔다』, 장편소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아랑은 왜』『검은 꽃』『빛의 제국』 , 산문? 『포스트잇』『랄랄라 하우스』『퀴즈쇼』, 영화산문집 『굴비낚시』『김영하ㆍ이우일의 영화 이야기』가 있다. 최근에는 전 세계 여덟 개 도시를 여행하고, 각 도시에서 쓴 짧은 소설과 직접 찍은 사진, 여행 일화를 한 권의 책에 담는 『여행자』시리즈를 집필하고 있다.



김희조 (인문, 역사와문화, 사회 담당)

인문, 역사와문화, 사회 담당. 한 해 한 해 흘러갈수록 깜짝 놀랄 일도 많지 않고, 매우 기쁘거나 엄청 슬픈 일도 별로 없는 것 같지만, ‘책’이 안겨주는 무한한 감동만은 놓치지 않으려고 애써 노력 중이다. 그림이 예쁜 그림책을 편식하는 편이고, 요즘은 아날로그적인 어떤 것들에 부쩍 열광하며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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