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의 모든 문제는 어찌 보면 소통의 문제다. 세상을 사는 일이 힘든 게 아니라 사람과 소통하는 게 힘들다. 소통에 실패하면 ‘왜 이렇게 내 마음을 몰라 주냐’며 마음을 닫고 등을 돌려버리기도 한다. 실제 세상의 멋진 것은 죄다 등 뒤에 있는 데 말이다. 특히 2012년은 정치?문화적으로 소통이 최대의 화두가 될 것이다. 말은 많아졌지만 대화는 줄어든 시대. 관계는 넓어졌지만 외로움은 커져만 가는 시대에 신경숙 작가를 만나 소통에 관한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신경숙 작가를 만나기로 한 날은 올겨울 들어 가장 추운 날이었다. 약속장소인 평창동의 미술관은 한산했다. 미술관에 딸린 카페의 포근한 소파에 안전하게 안착해서야 주위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따듯함이 주는 안도감으로 창밖을 응시한다. 추위에 조난된 이들의 소리 없는 아우성이 모네의 그림처럼 평화로워 보인다.
그 단절감에 안도하며 입김을 부니 유리창은 금세 뿌연 도화지가 된다. 그 위에 불필요한 낙서들을 해본다. 그러는 사이 빨간 스웨터를 입은 신경숙 작가가 카페의 문을 열고 들어와 말을 건넸다.
“오늘은 정말 몸서리쳐질 만큼 춥네요!”세계인의 마음을 울린 작가소설가 신경숙은 2008년 발표한 장편
『엄마를 부탁해』가 세계 32개국에 판권이 팔리며 세계적 작가로 주목받았다. 그리고 2010년 8월부터는 1년간 미국에서 생활하면서 북미 7개국과 유럽 8개국을 순회하며 세계의 독자들과 만났다.
“제가 다 경험한 게 아니라 객관적 기준을 말하기는 어렵겠지만, 세계가 냉소적인 기계문명 위주로 흘러가는 추세이다 보니 한국 문학에 담겨 있는 인간관계의 회복이나 희망 같은 것들이 감명을 주는 거 같아요. 그리고 최근엔 국내의 젊은 작가들 작품도 꾸준히 번역되고 있어서 한국문학에 대한 세계인의 관심도 예전에 비해 많이 높아진 거 같아요.”
1년간의 미국생활을 마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신경숙 작가는 전북 정읍의 고향집을 찾아 부모와 시간을 보내고, 그간 썼던 단편들을 모아 8년 만에
『모르는 여인들』이라는 소설집을 펴냈다.
“부모님은 우리 형제들이 태어난 집에서 아직 살고 계세요. 젊은 날에는 병이 손님인데 부모님 연세 정도 되면 병이 친구가 되는 거 같아요. 병을 친구 삼아서 살고 있는 부모님을 보면 마음은 편치 않지만, 두 분이 제가 태어난 집에서 함께 살고 계신 건 큰 복이기도 하죠. 부모님께 전화는 자주 드리는데, 어머니는 항상 모자라신가 봐요. 전화 안 한다고 항상 야단이세요. 저는 전화를 참 자주 하는 거 같은데 말이죠. 전화하면 거의 첫 말씀이 ‘왜 전화 안 하냐!’에요. 그럼 제가 ‘어제 했잖아요’라고 대답하고 어머니는 ‘음…’하고 한동안 말이 없으시죠(웃음).”동시대인들과의 연결고리를 찾아가는 여정『모르는 여인들』에는 신경숙 작가가 마음이 혼란스럽고 어딘가에 구멍이 나버린 듯한 느낌이 들 때 쓴 단편이 많다고 한다. 그리고 각각의 소설에는 인간관계에 대한 진지한 물음들이 담겨 있다. 신경숙 작가는 소설을 쓰며 서로 연결되어 있지만, 연결된지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움과 오류를 자신의 삶에서도 발견할 수 있었다고 한다.
“우리가 동시대를 살아간다는 건, 모르는 사이에 서로가 서로에게 깊이 관련되어 가는 것이 아닐까요. 서로의 삶이 보이지 않는 고리로 연결되어 있어서 삶의 어느 순간에 전혀 알지도 못하던 사람에게 위로나 치유를 받기도 하죠. 허물어지고 부서지는 삶에서 살아갈 이유를 서로에게 순간순간 비춰주기도 하고요. 제가 작품을 통해서 다른 시간 속으로 나아갈 수 있었듯이 읽는 분들도 그랬으면 좋겠어요.”동시대인들과의 연결고리를 찾는 일은 물음표뿐인 삶의 퍼즐에서 감춰진 첫 글자를 열어보는 것과 같다. 그 첫 글자를 시작으로 수많은 어휘가 쏟아져 나오고 무궁무진한 상상이 시작된다. 신경숙 작가가 열어준 퍼즐에는 ‘엄마’라는 두 글자가 쓰여 있었다.
“『엄마를 부탁해』 같은 경우에는 한국 독자들이 읽어내지 못하는 다른 지점들을 외국 독자들이 읽어내는 경우가 많았어요. 『엄마를 부탁해』를 그 안에 숨겨진 사회적 상황이나 세대 간의 갈등으로 해석하거나 전통과 현대의 소통으로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었죠. 하지만 무엇보다 세계인이 공통적으로 공감하는 것은 우리가 ‘엄마’라는 상징을 잃어버린 세계에 살고 있다는 점이었어요. 우리는 자기가 태어난 곳에서 살지 못하고 교육이나 경제적인 이유로 유목민처럼 이동하며 살 수밖에 없잖아요.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을 잃어버렸을 때의 당혹감을 이미 경험하고 살고 있었던 거죠. 그러니 공감할 수 있었던 거고요.”스스로 생각해서 재발견해내는 힘이 필요하다시대가 변하면서 소통의 방법도 획기적으로 변했다. 이제는 SNS가 소통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다. 일부 작가들은 SNS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기도 하지만, 또 일부 작가들은 SNS에 대한 우려를 표하기도 한다. SNS에 대한 신경숙 작가의 생각은 어떨까.
“저는 SNS는 안 해요. 사실은 안 하는 것과 못하는 것의 중간 정도에요. 뭔가를 바로바로 보여주고 또 바로바로 말하는 것에 익숙지가 않아요. 저는 무엇이든 생각하고 느끼는 데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는 타입이에요. 그리고 SNS라는 게 갑자기 생긴 게 아니고 삐삐에서 휴대폰으로 넘어왔듯이 발전의 과정 중에 있는 거잖아요. 그런 과정에서 적응기를 거쳐 탄생한 것들이니 분명히 장점이 있겠지요. 사실 외국에 있을 때는 가끔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낄 때도 있었어요. SNS는 국경 너머에 사는 사람들의 최근 소식을 들을 수 있는 유용한 소통수단인 거 같아요.”그러면서 신경숙 작가는 기자의 의견을 물어보았다. 기자라는 특성상 주로 묻는 것에 익숙했기에 신경숙 작가가
“어떻게 생각해요?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라며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볼 때는 당황하기도 했다. 사실 신경숙 작가는 거의 모든 질문에 기자의 느낌과 생각을 물어보고 신중히 경청했다. 어수룩한 답변에도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웃어주는 작가의 정겨움에 기자는 본연의 신분을 잊고 금세 수다스러워지곤 했다. 기사에는 신경숙 작가의 말만을 옮겼다.
“SNS로 인해 무엇을 보고 자기화시키는 힘이 줄었다는 느낌은 들어요. 저는 무엇이든 간에 자기화시키는 힘이 굉장히 필요하다고 보거든요. 그런데 자신의 생각조차도 정보를 통해서 얻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고, 자신만의 생각으로 결정짓거나 합리화시키는 과정 없이 그냥 휩쓸려 가는 거 같은 느낌도 들어요. 무언가를 끝까지 붙들고 생각해서 스스로 새로운 의미를 얻어내는 힘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요.”상대방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진정한 소통이다소통이란 듣고 말하는 것을 아우르는 용어다. 하지만 우리는 듣기와 말하기가 이분화되어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신경숙 작가가 말하는 소통이란 ‘내 이야기를 하는 만큼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이러한 균형이 적절하게 유지되지 않을 때 갈등은 더욱 심해지고 대화를 하기보다는 체념해버리기 쉽다. 균형 있는 소통을 위해 신경숙 작가는 대화의 ‘정성스러움’을 강조한다. 뭔가를 꼭 전달하고 싶을 때는 그것을 표현하고자 하는 정성스러움이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상대의 이야기를 정성스럽게 듣는 것이다. 이런 것들이 어디에서나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
“갈등을 풀자고 만나자고 해놓고 자기 이야기만 늘어놓으면 갈등이 더 심해지죠(웃음). 내 이야기를 하고 싶으면 당연히 상대방의 이야기부터 귀담아들어야지요. 소설도 말하는 힘보다 듣는 힘이 더 중요해요. 동시대인들과 같은 순간을 살며 많은 것을 전해 듣고 느끼면서 얻게 된 감각적 성찰이 문장으로 만들어지는 거라고 생각해요. 소설가는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서 듣는 사람의 역할을 하는 경우가 더 많아야 하죠.”우리는 말은 많아졌는데 정작 대화는 줄어든 시대에 살고 있다. 소통에는 사실 특별한 기술이 필요 없다. 자신의 말을 좀 줄이고 상대의 이야기를 조금 더 들어주는 것이면 충분하다. 그리고 대화의 중간 중간에 신경숙 작가의 표현을 그대로 빌려서 써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어떻게 생각해요?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세상의 기울어진 추에 균형을 맞추다신경숙 작가의 소설집
『모르는 여인들』에 수록된 <어두워진 후에>라는 단편은 연쇄살인범에게 가족을 잃은 한 남자가 처음 만나는 여자에게 위로받고 삶의 빛을 보게 되는 내용이다. 사실 여자가 베푸는 호의는 대단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처음 보는 타인에게 과연 그럴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기자가 이런 생각을 말했더니, 신경숙 작가는
“그럼 연쇄살인범 같은 사람은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라고 반문한다. 연쇄살인범 이야기는 뉴스나 영화에서 익히 봤다. 하지만 아무런 조건 없이 지나가는 사람에게 온정을 베푸는 사람의 이야기는 마땅히 기억나는 게 없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전자는 사건이고 후자가 일상이어야 맞다. 무엇이 더 자연스러운가.
“사실은 타인에 대한 선의가 판타지처럼 느껴지는 게 이상한 거예요. 실제로는 그게 우리 인간들이 살아야 하는 삶이고 우리 인간들이 지니고 있는 본모습이잖아요. 타인에 대한 온기는 본래 다들 가지고 있어요.”신경숙 작가는 오랫동안 요가로 건강을 다져왔다. 미국에서 1년간 거주할 때도 요가만은 빼먹지 않았다. 손쉽게 물구나무를 설 수 있다는 신경숙 작가의 말에 기자가 감탄사를 터트리자,
“그거 어려운 거 아니에요. 몸의 균형만 맞으면 누구나 할 수 있어요”라고 대답한다. 비유가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어찌 보면 물구나무서기가 불가능할 만큼 균형이 무너진 세상에서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다 보니 오로지 한 가지 관점에서밖에 볼 수 없게 되어버렸다. 사회의 균형이 맞으면 한 번쯤은 물구나무를 서서 거꾸로 된 세상을 볼 수 있으련만. 정말 거꾸로 된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가늠해보기 위해서 말이다.
“우리 사회의 추가 너무 한쪽으로 기운 게 아닌가 싶어요. 저는 타인에게 베푸는 환대의 풍경들을 쓰고 싶었어요. 선의를 가진 평범한 사람들이 그려내는 빛나는 순간들. 그것을 제 식으로 말하자면, ‘개인이 이루어내는 신화의 순간들’이죠. 개개인의 삶은 사실 다 신화적이에요.”“타인에 대해서 조금 더 너그럽고, 타인의 내면에서 빛나는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어요.”신경숙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읽고 독자들이 타인에게 마음을 연다면 더 바랄 게 없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신년소망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서로를 발견해야 하는 그런 시대에 살고 있는 거 같아요. 서로 등만 보고 앉아서는 각자 고독하다고 말하죠. 그냥 돌려 앉으면 될 텐데(웃음). 새해에는 타인에 대해서 조금 더 너그럽고, 타인의 내면에서 빛나는 아름다움을 발견해내는 새해가 되었으면 좋겠어요.”신경숙 작가와의 대화는 긴 여운과 적당한 아쉬움을 남겼다. 이제 모네의 그림 같던 창밖 풍경이 현실이 되고 유리창에 끼적인 낙서는 사그라질 단어로 남았다. 카페를 나가기 전 유리창에 다시금 입김을 불어본다. 차가움과 따스함 사이. 그 마법과 같은 불투명의 조화에 글자들이 부끄러운 듯 모습을 드러낸다. 다시는 그 사소한 기억을 찾지 않을 줄 알았다는 듯.
신경숙 작가는 새로운 것을 꾸며내지 않는다. 신경숙 작가는 우리 마음속의 숨겨진 글자에 입김을 불어넣을 뿐이다. 신경숙 작가의 입김이 닿으면 의미를 잃고 잊혔던 글자들이 새로운 의미의 옷을 입는다. 신경숙 작가의 책을 펼치면 우리가 잊고 살았던 삶의 소중함을 되짚어 볼 수 있다. 그것이 우리가 신경숙 작가의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 중의 하나다. 외롭다 하지 말고 등을 돌려 보라. 더 좋은 세상이 있으니.
- 모르는 여인들 글 신경숙 | 문학동네
팔 년 만에 출간되는 여섯번째 소설집 『모르는 여인들』은 세계로부터 단절된 인물들과 그들을 둘러싼 사회적 풍경들을 소통시키기 위한 일곱 편의 순례기로, 익명의 인간관계 사이에서 새롭게 발견되는 것들로 가득 차 있다. 작가는 특유의 예민한 시선과 마음을 집중시키는 문체로, 소외된 존재들이 마지막으로 조우하는 삶의 신비와 절망의 극점에서 발견되는 구원의 빛들을 포착해내어 이 시대 진정한 사랑의 의미와 바닥 모를 생의 불가해성을 탐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