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루마 음악’이라고 했을 때, 금방 떠올릴 수 있는 선율, 분위기, 느낌이 있다. 뉴에이지나 클래식이라는 거창한 장르로는 정확하게 말해지지 않는, 그보다 소박하고 그보다 좀 더 따뜻한 느낌의 음악. 여러 광고나 드라마에 쓰일 만큼 친숙하나, 대중적이라고 말하기에는 훨씬 서정적인 그런 음악 말이다.
이루마가 우리 곁에서 연주했던 시간이 벌써 10년이다. 그동안 정규앨범과 스페셜 앨범을 합쳐 열세 장의 스페셜 앨범이 나왔다. 많은 리스너들에게 사랑받았던 음악, ‘Kiss the rain’ ‘Maybe’ 같은 곡들은 여전히 뉴에이지 부분 상위권 순위에 속해있다.
“그동안 사랑받았던 음악들을 골랐어요. 2집, 3집의 ‘Indigo’, ‘Chaconne’도 있고, 1집에서는 ‘Wait There’를 골랐고요. <오아시스> 이미지 앨범에 있는 곡 중에서 ‘Do you?’도 팬들이 많이 좋아해주셨어요. 최대한 다양한 음악을 넣으려고 했고, 새롭게 연주해서 녹음했어요. 아무래도 예전보다 조금은 더 성숙한 연주였던 것 같고요. 그래서인지 마치 새 앨범 같다는 평을 듣기도 해요.”
10년 동안, 이루마에게는 많은 일이 있었다. “군대도 다녀왔고, 결혼도 했고, 아이도 생겼죠. 그간 투어도 참 많이 했고요. 그런 경험들이 저를 조금씩 변하게 했을 거예요. 하지만, 언제나 내 음악을 누군가가 들어줄 때 행복했다는 얘기를 이 앨범으로 전하고 싶었어요.”
“제 음악은 공기 같았으면 좋겠어요”
이루마는 지난 11월 27일 부산 공연을 시작으로 전국투어 콘서트를 이어가고 있다. 서울, 광주, 대전 13개 도시에서 진행되는 이번 공연은, 전 소속사와의 분쟁 승소 후 2년간의 공백을 깨고 무대 위로 돌아왔다는 점, 데뷔 후 10년을 기념한다는 점에서 이루마에게 남다른 의미가 있다.
전국 투어 준비 때문에 밤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다는 이루마를 강남의 소니 뮤직 사무실에서 만났다. “이런저런 걱정도 앞서고, 긴장도 돼요. 관객분들이 더 좋아하는 곡도 있고, 제가 연주할 때 아쉬운 곡도 있어서 공연 중에도 포맷이나 선곡을 바꾸기도 하거든요.”
데뷔 10년을 기념하는 앨범, 아무래도 선곡을 하거나 다시 연주할 때 감회가 남다르지 않았을까. “녹음하면서 눈물이 났어요. 피아노 앞에 앉아 있는데, 드디어 녹음하는구나 싶어서요. 옛날 곡들을 녹음하면서 옛날 생각도 많이 나고요. 녹음하는 상황은 좋았지만, 한편 빨리 끝내고 싶은 마음도 있었어요. 대부분 한 번에 녹음이 되었어요. 그만큼 많은 공연을 해왔고, 많이 연주했던 곡들이었으니까요.”
이루마는 스스로 음악을 “감상용이라기보다는 배경음악, 인테리어 뮤직”이라고 평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제 음악? 공기 같았으면 좋겠어요. 나를 영화 속의 주인공으로 만드는, 그런 배경음악이었으면 좋겠어요. 불면증이 있는 어떤 분은 제 음악을 수면제 삼아 잔대요. 맞아요. 그런 쉴 수 있는, 위로해주는 음악을 하고 싶었어요.”
더불어 앞으로의 포부도 밝혔다. 이제까지의 10년이 배경음악, 공기 같은 음악이었다면, 앞으로의 음악은 그보다 구체적인 가지, 열매를 구상하고 있는 듯했다. “지금까지는 스케치였을 뿐이에요. 이번 앨범은 그전 음악을 정리하는 의미가 있고요. 이 음악을 토대로 다른 가지를 치고,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많은 분이 ‘이루마’라고 하면 피아노부터 떠올리시는데, 이제부터는 작곡가라는 말이 먼저 떠오르게끔 하려고, 여러 활동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지나온 10년, 그리고 앞으로 10년에 대한 이루마의 이야기, 차근차근 들어보기로 했다.
이루마, 지나온 10년과 앞으로의 10년
이루마가 지나온 10년의 세월을 그래프로 그려본다면 어떨까?
“2001년에 데뷔를 하죠. 2005년까지 굉장히 평탄하게 상승곡선을 탑니다. 그러다 군대에 가면서 확 떨어집니다.(웃음) 음악을 할 수 있는 곳으로 가고 싶어서 군악대를 지원했는데, 제가 생각했던 곳은 아니었거든요. 그러다 적응하면서 그래프가 상승해요. 힘들었지만, 가치 있는 시간이었어요. 하지만 지금 아내인 여자친구 생각에 마음이 아주 무거웠어요.
일병 때 결혼을 하지만, 그래프는 더 하강합니다.(웃음) 심적으로 힘들었거든요. 결혼 1년 후에 아이가 생겼는데, 같이 있어주지도 못했고, 해줄 수 있는 게 없었으니까요. 그나마 버틸 수 있었던 건, 제가 제대를 하게 될 것이고, 다시 활동할 수 있다는 희망뿐이었어요. 2008년 7월 즈음, 아기가 태어났고, 제대하고, 6집 앨범이 나와요. 투어를 시작하게 되고요. 그래프가 상승하죠.
오랜만의 투어라 많은 분이 찾아왔어요. 그래프가 쭉 올라갈 무렵, 소속사와의 마찰이 시작되죠. 회사와 틀어지면서부터 앨범을 내지 못했고, 그때부터 곡도 나오지 않았어요. 많이 힘들었어요. 소속사였던 스톰프뮤직과 정리를 했고, 계약 해지 통보를 했어요. 2010년 11월 즈음에, 지인 중 한 분이 제 사정을 듣고 지금 소니뮤직을 소개해 주셔서 다시 계약하게 되었고요. 그때 전 소속사에서 이중계약 소송을 걸어 변호사를 만나야 했어요.”
10년의 세월, 다사다난했다. 결국, 승소했고, 소니 뮤직에 둥지를 틀었다. 소속사를 옮기면서, 이루마는 꿈꿔왔던 해외진출의 목표에도 가까워졌다. 독일의 유명한 프로듀서가 이루마의 음악을 하우스 풍으로 편곡해 클럽 음악으로 사용했고, 연주곡 ‘River Flows In You’가 영화 ‘트와일라잇’에 사용되어 유튜브에 상위랭킹 되기도 했다.
“독일에 제 음악을 알고 있는 분들이 많대요. 내년 1월에 독일 프로모션이 준비되어 있어요. 유럽 쪽 방송에도 배경음악으로 많이 쓰여서 한류를 실감해요. 기쁘고요. 내년에는 해외 공연도 계획하고 있어요.”
“누구라도 쉽게 연주할 수 있는 음악, 만들고 싶었어요”
“두 가지 약이 있는데 하나는 시간이고, 하나는 모르는 것이다.” 『이루마-더 베스트: 10년의 회상』 앨범에 담겨 있는 포토 에세이의 한 구절이다. 그가 보낸 시간을 떠올려보니, 그저 인상적인 문구라고 생각했던 저 구절이 조금 더 절절하게 다가온다. 포토 에세이에 실린 글에는 시간에 대한 그 나름의 사유가 많았다.
그 10년 동안 이루마 가장 가까이에 있었던 것은 피아노가 아니었을까. 그의 6집 정규 앨범의 제목은 <P.N.O.N.I.>다. 소리 나는 대로 읽어 피앤오엔아이. ‘피아노와 나’라는 뜻이다. 10년의 세월을 묶을 수 있는 제목이다.
“그 앨범에 실린 곡들은 군대에서 썼던 곡들이에요. 곡 제목을 보면 아시겠지만, 굉장히 단순해요.(웃음) 피아노, 러브, 스카이, 조이……. 일부러 그렇게 한 단어로 정했어요. 연주도 단순하게 가려고 했고요. 군더더기를 빼고, 가장 근본적인 것, 가까이 있는 것을 놓치지 말자는 메시지였죠. 가까이 있는 걸 챙기고 사랑하자는 제 다짐이기도 했고요.”
‘피아노와 나’라고 했을 때, 이루마는 어떤 기분이 들까. 피아노는 어렸을 때부터 늘 이루마 곁에 함께 있었다. 이루마가 항상 자신의 음악이 ‘공기 같은 음악’이 되길 바라는 것도 이 때문이 아닐까.
낡항상 가까이 있었던 악기죠. 어렸을 때부터 제게는 장난감 같은 존재였어요. 다른 사람들에게도 제가 느끼는 이 즐거움을 전해주고 싶었어요. 제 음악이 가요 순위에 나올 수 있는 음악은 아니지만, 다른 사람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없을까? 고민하다가, 피아노를 한번 쳐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쉽게 연주할 수 있는 곡을 쓰자고 생각했죠.
‘Kiss the rain’이나 <P.N.O.N.I>에 실려 있는 곡들이 그런 곡들이에요. 어렵진 않지만, 듣기에 좋고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곡. 그 곡을 다 소화할 수 없더라도 누군가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곡을 쓰고 싶었어요. 그게 현실화됐어요.
인터넷에 제 이름을 쳐보면, 셀 수 없이 많은 악보가 돌아다녀요.(웃음) 그게 저한테는 기뻤어요. 어떤 분들은 저작권법 문제가 있지 않느냐고 하셨지만, 내버려뒀어요. 내 음악을 공유하는 한 방법이라고 생각했고, 아주 어렸을 때, 몇백 원짜리 악보를 사서 연주하던 제 모습을 떠올렸거든요.”
“음악을 하면, 저부터 위로받아요”
“거짓된 음악은 하지 말자.” 작곡가 이루마의 원칙이다. “억지로 뭔가 쓰려고 하지 말자. 충분히 느끼고 났을 때 작곡을 하자고 생각해요. 억지로 앉아 뭐라도 써야지 하면, 그게 고스란히 듣는 사람에게도 전달되거든요. 내가 가장 자연스러울 때 음악을 쓰려고 노력해요. 그래서 음악이 많이 나오지 않아요.(웃음)”
흥얼거리다 피아노 앞에 가서 앉는다. 피아노가 없을 땐 허밍을 녹음해둔다. 그 다음 날 다시 들어봐도 좋으면, 악보를 그린다. 음악가의 일상이다. 기쁠 때도, 힘들 때도 그런 시간을 보냈다. 그에게 곡을 만들고, 앨범을 내는 것은 마치 어린 시절 때 프라모델을 모으고, 미니카를 모으며 흐뭇해하는 기분과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음악은 내가 뭔가 남길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어렸을 때도, 미니카, 탱크, 프라모델을 모으곤 했거든요.”
한 장 한 장의 앨범이 남기는 건, 결국 이루마의 시간과 이야기다. “제 앨범을 일기라고 생각해요. 나만의 기록, 개인적인 기록이죠. 때때로 그런 것들을 보여주고 싶을 때가 있잖아요. 위로받고 싶은 마음 때문인 것 같아요. 내 이야기를 듣고 ‘어, 나도 그런데?’라는 반응을 들었을 때, 위로가 되거든요. 저 사람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구나. 그런 기분. 어쩌면 저 스스로 위로를 받기 위해 계속 음악을 만드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2011년, 한 해가 또 간다. 10주년 기념 베스트 앨범, 전국투어<The Best>를 통해, 이루마는 올해를, 지난 10년을 나름의 방식으로 정리하는 중이다. 새로운 음악에의 포부, 해외 진출 등으로 그는 이제와는 다른 그래프를 그려나갈 것이다.
“저는 빨리 나이를 먹었으면 좋겠어요. 시간이 갈수록 제가 하는 음악이 더 깊이 있어질 거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고, 그때 가면 더 좋은 음악을 쓸 수 있겠지 생각해요. 지금은 내공이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아직도 내가 어떤 음악을 써야 할까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봐요. 마흔다섯쯤? 그쯤이면 찾지 않을까요? 그때쯤이면 더 많은 사람이 제 음악을 좋아해 줄 수 있을 것 같아요.”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 이루마는 5세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하여 11세에 영국 유학길에 올라 유럽 음악 영재의 산실인 퍼셀 스쿨에서 작곡 및 피아노 최고연주자 과정을 졸업하였고, 이후 런던대학교 킹스컬리지에 입학하여 현대음악의 거장 해리슨 버트위슬을 사사했다. 2001년 대학 졸업 후 한국으로 돌아와 발매한 첫 정식 앨범 「Love Scene」에서는 그동안 한국에서 볼 수 없었던 스타일의 서정적이면서도 친근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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