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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소가 최고야 이시즈 치히로 글/야마무리 코지 그림/엄혜숙 역 | 천개의바람 |
‘채소를 많이 먹어야 해. 그래야 건강해져.’라는 말은 한마디도 없습니다. 그런 뻔한 훈계는 아이들에게 지루할 뿐입니다. 아이들이 채소를 잘 먹기 위해 필요한 건 먼저 채소가 만나면 반갑고 재미있는 친구가 되는 게 아닐까요? 이 책을 본 아이들은 갖가지 채소들과 함께 달리고 응원하면서 이야기의 재미에 흠뻑 빠질 거예요. 그러다 보면 어느새 자연스럽게 채소를 내 친구로 여기게 됩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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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글 통통 토마토와 방금 닦은 당근을 넣고 꿀을 듬뿍 더해 주스를 만듭니다. 어린 시절 저에게 당근을 먹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지요. 지금에 와서 보면 그냥 맛있는 음료입니다만, 당시에는 토마토와 당근의 비율을 지킨다는 전제 하에 큰맘 먹고 엄마를 위해 마셔드렸던 겁니다. 그렇고말고요. 아이들에게는 (생각보다 많은 수의 어른들에게도 역시) 아무리 마음을 꾹꾹 다잡아도 도저히 먹을 수 없는 ‘채소’라는 것이 존재하는 법이지요.
알록달록 그림과 재잘재잘 말놀이『채소가 최고야』는 그런 채소를 흥미로운 놀이거리로 만들어줍니다.
“알고 보니 채소는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었구나. 이제부터는 매일 채소를 먹고 튼튼해질 테야.”를 말하게 하기에 앞서 채소와 친해질 자리를 마련해줍니다. 알록달록 싱싱한 채소를 사실감 있게 묘사하면서도 재치 있는 표현으로, 당근, 가지, 양파라고 말하는 순간 웩 소리가 나오는 대신 키득거리게 만들어 주지요. 저 표지의 싱글싱글 웃고 있는 채소들을 보고 어떻게 눈살을 찌푸릴 수 있겠어요. 흠, 이것 또한 어른의 시각일 뿐일까요?
채소들의 달리기 시합이 있는 날. 출전 선수들이 잔뜩 긴장한 모습, 들뜬 표정으로 출발선에 서있습니다. 나란히 나란히 누에콩도 준비를 하고, 인기 만점 마늘은 알통이 올통볼통 자신감이 넘칩니다. 파릇파릇 파슬리도 질 수 없지요. 후다닥 달려나갈 채비를 합니다. 네 맞습니다. 작가는 이렇게 채소들이 펼치는 스펙터클 레이스의 장면 장면을 입에 착착 붙는 귀여운 말놀이로 중계해줍니다. 등장하는 채소들의 개성을 짧고 간단한 말 속에 십분 담아냈고, 리듬감도 있어 입 밖으로 소리 내 함께 읽기에 좋습니다.
책 구석구석에 채소들의 이야기가 숨어있어요!하지만 이 시점에 재미있는 말놀이 책, 아기자기한 그림책 한 권 잘 읽었다고 만족하고 덮기엔 아직 이릅니다. 이 얇고, 글이라고는 몇 줄 없는 그림책에는 의외로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으니까요. 부지런하고 꼼꼼한 작가는 책 속 곳곳에 등장인물(?)들의 드라마를 숨겨놓았어요. 경기 초반 1등으로 달려 나간 순무는 과연 끝까지 순위를 유지할 수 있을지, 야무지게 다문 입매에서 잘 해야겠다는 의지가 엿보이는 호박은 얼마나 선전할지, 토마토는 출발선에서 달릴 준비는 안하고 왜 두리번거리고 있는지. 궁금하시겠지만 이들의 이야기는 책을 읽어야 알 수 있지요. 후후.
또, 지면 관계상 미처 소개하지 못했던 다른 채소들의 이야기를 직접 만들어보는 것도 이 책을 알차게 읽는 방법이 될 겁니다. 아이들의 기발한 상상력과 창의력을 엿볼 수 있는 기회랄까요? 아니 그보다는, 항상 낮은 곳에서 든든하게 우리를 지켜주는 땅과 건강한 식재료에 대해 지루하지 않게 대화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좋은 소재라고 하면 적당할 듯 합니다. 조금 거창한가요?
“꺅 귀여워!”로 시작했는데, 마지막엔 너무 많은 생각을 하고 말았네요. 그래도 읽고 또 읽어도 거부감 들지 않을 책이니 마음 놓고 보셔도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