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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것은 추하고 추한 것은 아름답다 - 『이케부쿠로 웨스트 게이트 파크』

욕망을 미워할 수는 없다, 다들 말없이 그대로 빛나기만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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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다 이라는 거리에서 살아가는 젊은 세대를 보면서도 결코 두둔하거나 비난하지 않는다. 단지 바라볼 뿐이다. 그리고 자신이 본 것을, 마코토를 통해 우리에게 들려준다. 그들은 사회의 시스템에 쉽게 동조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모두 제멋대로만 사는 것은 아니다. 그들에겐 나름의 규율이 있고, 나름의 도덕이 있다.

‘허무하다거나 공허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저건 모두 인간이 지닌 욕망의 빛이다. 욕망을 미워할 수는 없다. 다들 말없이 그대로 빛나기만 하면 된다. 아름다운 것은 추한 것, 추한 것은 아름다운 것.’

마시마 마코토도 한때는 이케부쿠로의 불량 청소년이었다. 하지만 인생이란 건 의도치 않은 곳에서 방향을 바꾸기 마련이다. 우연히 거리에서 만난 여자애 중 하나가 살해당한다. 아마도 ‘스트랭글러’라고 불리는 여고생 연속 교살 사건의 용의자가 범인인 것 같다. 범인 색출에 나선 마코토는 스트리트 갱단의 보스인 다카시의 도움으로 ‘범인’을 잡기는 한다. 그런데 이상하다. 진범을 알고 나니, 기분이 더 우울해지고 세상은 더욱 알 수 없는 곳이 된다. 이 밝고 화사한 세상 어딘가에서는 날마다 근친 성폭행, 은둔형 외톨이, 원조교제, 스토커, 거대 기업의 불법 행위 등 끔찍하고 잔혹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그 모든 것들을 지켜보면서, 마코토는 인정한다.

‘우리는 모두 회색으로, 태어났을 때부터 빛과 어둠을 같은 분량만큼 나누어 가지고 있다……산다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닐까.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그릇된 일이나 올바른 일을 자기도 모르게 저지르면서, 그다지 특별할 것도 없는 매일을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마시마 마코토가 해결한 사건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이 하나 둘 찾아와 부탁을 한다. 사람을 찾아달라거나, 트러블을 해결해 달라거나, 복수를 해달라거나. 그렇게 마시마 마코토는 이케부쿠로의 탐정이 된다. 마코토는 누구보다 머리 회전이 빠르고, 스트리트 갱 G 보이스의 두목 안도 타카시와 친구이고, 이케부쿠로에서 1, 2위를 다투는 하자와 조직의 중간 보스와도 친구다. 여기에 이케부쿠로 경찰서장과는 어릴 때부터 막역한 사이이고, 인터넷에서 모든 정보를 빼 올 수 있는 해커와도 친하다. 정보, 무력과 공권력 그리고 판단력과 적당한 싸움 기술까지 마코토에게는 탐정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 있다. 단 하나 여자친구는 좀처럼 생기지 않지만, 그것도 시간문제다. 매일 과일가게를 지키면서, 거리의 일을 한 달에 한 번 컬럼으로 쓰고, 가끔 골치 아픈 사건들을 해결한다. 세상에는 이런 탐정도 있다.


『4Teen』으로 나오키상을 받은 이시다 이라의 연작 소설 『이케부쿠로 웨스트 게이트 파크』는 이케부쿠로에서 벌어지는 각양각색의 사건을 마코토가 해결해가는 이야기다. 각종 범죄라던가 기묘한 사건을 해결해나가니 미스터리라고는 할 수 있지만, 그보다는 청춘활극이라는 편이 훨씬 잘 들어맞는다.『이케부쿠로 웨스트 게이트 파크』는 2000년 드라마로 만들어졌을 때, 일본의 젊은 세대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키사라즈 캣츠 아이> <타이거 & 드래곤> 등의 각본을 쓰면서 젊은 세대의 아?콘이 된 시나리오 작가 쿠도 칸쿠로의 힘도 컸지만, 원작의 매력을 간과할 수는 없다. 이시다 이라가 쓴 원작 『이케부쿠로 웨스트 게이트 파크』의 생생함과 쿠도 칸쿠로의 재기가 어우러진 드라마 는 신세대의 교본이 되었다.

이시다 이라는 거리에서 살아가는 젊은 세대를 보면서도 결코 두둔하거나 비난하지 않는다. 단지 바라볼 뿐이다. 그리고 자신이 본 것을, 마코토를 통해 우리에게 들려준다. 그들은 사회의 시스템에 쉽게 동조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모두 제멋대로만 사는 것은 아니다. 그들에겐 나름의 규율이 있고, 나름의 도덕이 있다. 『이케부쿠로 웨스트 게이트 파크』는 고정된 시스템의 사선(斜線)에서 살고 있는 젊은 세대의 좌충우돌을 화려하면서도 잔인하게 그리고 있다. 그냥 있는 그대로, 꽤나 낭만적이지만 결코 현실의 어둠을 외면하지 않으면서.

사실 이케부쿠로에 사는 마시마 역시, 사회적 통념으로 본다면 패배자라고 할 수 있다. 변변한 직업도 없고, 그렇다고 어둠 속에서 군림하는 것도 아니다. 미래 같은 것도 전혀 보장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마코토가 알고 있는 것은, 지금 살아가는 일이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자신이 해야 하는 일, 주어진 일에 대해서만은 언제나 당당하게 부딪친다. 패배자라고 해서, 다 같은 패배자가 아니다. ‘전자의 별’에 나오는 시골에서 올라온 청년은 자신을 ‘루저’라고 인정한다. 취직할 곳도, 장사할 것도 제대로 없는 시골에서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청년. 그는 단지 도쿄에서 산다는 이유만으로 마코토가 패배자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 말도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코토가 시스템의 패배자에서 탈출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내가 패배자라는 ‘사실’ 자체가 아니다. 친구를 위해 마코토에게 도움을 청하러 온 청년은, 자신의 전력을 쏟아 부어 복수를 완수한다. 그리고 말한다.

지금은 돈도 없고 직장도 없어요. 미래의 일 같은 건 전혀 상상이 안 되지만 돌아가면 이제 모두에게 말할 수 있어요. 나는 한 번은 해냈다고 말이에요. 정말 자신의 힘으로 싸웠어요. 이제부터는 가슴을 펴고 당당히 패배자라고 말할 수 있어요.

이시다 이라는 고정된 장르 소설을 쓰는 작가가 아니다. 순문학 작가도 아니다. 이시다 이라는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일면을 그린 소설을 쓴다. 작가의 예리한 안테나에 걸려드는 중요한 이야기를, 철저한 조사와 분석을 거쳐 만들어낸다. 소년 범죄를 다룬 『아름다운 아이』, 증권시장을 무대로 자본주의라는 정글을 그려낸 『빅 머니』, 디지털 세대의 도래를 예언적으로 설파한 『아키하바라 딥』 등 굵직한 사건들을 그리는가 하면 연상의 여자와 연하의 남자간의 사랑을 그린 『잠들지 않는 진주』, 남창을 주인공으로 한 『렌트』등 사회의 일상적인 단면을 날카롭게 포착한 작품도 있다. 하나의 소재와 주제에 천착하기보다는, 지금 필요한 이야기를 잡아내고 만들어내는 게 이시다 이라의 장기다. 이시다 이라는 계속해서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세계의 어둠을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가를 말하고 있다.


연작 단편집 『LAST 라스트』는 궁지, 막다른 길에 몰린 사람들의 이야기다. 이시다 이라는 리얼리스트다. 그는 사회의 어두운 면을 보면서도 극단적인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냉정하게 관찰하면서, 그들의 상황을 예리하게 드러낼 뿐이다. 의외로 그런 차가움에서 희망이 새어나온다. 단지 감싸 안는 것만으로 문제는 해결되지 않으니까. 『아름다운 아이』에서 14살의 소년은, 한 살 아래인 동생이 끔찍한 엽기살인을 저지른 범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의 가족은 깨지고 일그러진다. 『아름다운 아이』가 말하는 것은 비난이나 동정이 아니다. 소년은 그의 동생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그건 혈연으로 이어진 운명이다. 타인들은 그를 비난하고 외면하면 끝나지만, 소년은 그럴 수가 없다. 소년은 현실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도망치거나 부정하는 것으로는 결코 끝나지 않는다. 단편집 『푸른 비상구』는 절망에 빠졌던 사람들이 희망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말 그대로 비상구를 발견하는 이야기. 인생이란 고통스러운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절망에 빠지거나, 회복불능이라고 생각하는 순간까지 다다르게 된다. 하지만 어떤 순간에도 비상구는 있다. 조금만 시선을 돌리면, 희망이라는 비상구는 보일 수 있다. 그 곳을 빠져나온다고 해서 갑자기 세상이 희망으로 가득차거나,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살아갈 힘을 얻게 된다. 아니 애초에 자신에게 있었던 힘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만으로 족하다.

마시마 마코토가 살아가는 힘도 그것이다. 첫 번째 사건을 해결하면서, 마코토는 알게 된다. ‘직접 부딪치면서 깨달은 것도 있다. 나만이 쓸 수 있는 게 있다는 것을.’ 그리고 칼럼을 쓰고, 탐정 역할을 하게 된다. 나만이 할 수 있는 것을 하기 위해서. 그것이 아무리 보잘 것 없어 보인다 해도, 그것이 바로 나다. ‘우리는 아무리 사소한 이유로도 자살할 수 있고, 그 반대로 아무리 시시한 목적으로도 살아갈 수 있다’는 말처럼, 살아가는 것 자체가 용기이고 승리다. 그게 시스템에 굴복하지 않아도 ‘상쾌한 패배자’로 살아가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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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봉석

대중문화평론가, 영화평론가. 현 <에이코믹스> 편집장. <씨네21> <한겨레> 기자, 컬처 매거진 <브뤼트>의 편집장을 지냈고 영화, 장르소설, 만화, 대중문화, 일본문화 등에 대한 글을 다양하게 쓴다. 『하드보일드는 나의 힘> 『컬처 트렌드를 읽는 즐거움』 『전방위 글쓰기』 『영화리뷰쓰기』 『공상이상 직업의 세계』 등을 썼고, 공저로는 <좀비사전』 『시네마 수학』 등이 있다. 『자퇴 매뉴얼』 『한국스릴러문학단편선』 등을 기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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