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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만 “무한도전 출연했다가 배고파서 혼났다” - 『식객, 팔도를 간다 - 경기편』허영만과 함께 떠나는 식객맛여행

식객, 이야깃거리 더 있으니 3년 후 다시 만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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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알지? 진수. <포인트> 잡지 기자 김진수. 국민만화 『식객』을 안다면, 날 모를 리가 없지. 물론 나보다 내 남자, ‘성찬’이 더 유명하고, 친근하단 건 알아. 뭐, 상관없어. 이날만큼은 성찬을 빼고, 몰래 갔으니까.

(※ 『식객』 ‘진수’의 이야기로 재구성됐음을 알립니다.)

나, 알지? 진수. <포인트> 잡지 기자 김진수. 국민만화 『식객』을 안다면, 날 모를 리가 없지. 물론 나보다 내 남자, ‘성찬’이 더 유명하고, 친근하단 건 알아. 뭐, 상관없어. 이날만큼은 성찬을 빼고, 몰래 갔으니까. 도대체 뭐였기에 그랬냐고? 국민만화가, 나와 성찬의 조물주, 허영만 선생님과 특별하게 맛여행을 떠난 하루였거든.

지난해 12월17일. 알다시피, 『식객』이 27권으로 일단락됐잖아. 많이, 엄청, 눈물 나게, 아쉽지? 나도 그래, 흑. 그렇다고 울지 마. 그런 사람들을 위해 『식객』 시리즈 중 독자에게 사랑받은 에피소드를 각 지역별로 엄선한 『식객, 팔도를 간다 - 경기편』(허영만 지음|김영사 펴냄)이 나왔어, 짜잔.

“방방곡곡을 누비며 신토불이 산해진미를 찾아 우리나라 맛 지도를 그리겠다”는 취지래. 덕분에 나는 또 나오지, 호호. 우선 경기도 편이 첫 선을 보였어. 부대찌개, 빙어 회, 황복 회, 오미자 화채, 자장면 등 다섯 음식의 구수한 이야기와 김치만두, 꿩 만둣국, 더덕구이, 육회, 장어구이, 초교탕, 오이선, 대추단자 등 14가지 음식의 요리법이 사진과 함께 설명돼 있어.

뭣보다, ‘취재 일기와 못 다한 이야기들’을 읽는 재미도 빼놓을 수 없지. 나, 진수도 함께였거든, 흠흠. 음식 요리법을 그림으로 설명한 ‘허영만의 요리 메모’가 함께 따르기도 하지. 그러니, 『식객』의 팬이라면, 어찌 반갑지 않겠어. 이에 그날, 책 출간기념으로 ‘허영만과 함께 떠나는 식객맛여행’이 마련됐다고! 나, 빠질 수 없잖아. 테드 오 박사 내한 때도 그 난리를 치면서 성찬씨 덕분에 만나긴 했지만, 이번엔 영만 오빠와 몰래 데이트하고 싶어서 혼자 따라갔어, 유후~. 그러니 부디, 성찬씨에겐 비밀로 해줘, 쉿.

장소는 어디였냐고? ‘통일의 관문’이자, ‘급감하는 황복어 어획량을 늘리기 위해 치어 방류 사업을 한’ 경기도 파주시. 물론 이번 책에 나온 황복 전문점 ‘임진 큰 집’은 아니고, 『식객』 12권에 나온 메밀 전문점, ‘오두산 막국수’ 통일동산점. 50여 명의 독자들이 추운 날씨에도 아랑곳없이 100% 참석률을 자랑한 이날의 행사.

결론부터, 이날 어땠냐고? 좋아, 말해줄게. 내 남자, 성찬씨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지.

음식엔 맛이 있어야 한다!
음식엔 멋이 있어야 한다!
음식엔 품위가 있어야 한다!
음식엔 클라이맥스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도박이 있으면 안 돼!

아무렴, 나는 내 남자의 미각과 식감을 언제나 믿어. 그 남잔, 맛으로 멋을 만들 줄 아는 사람이야. 그 남자를 직조한 허영만 선생님은 오죽하겠어. ‘요리사는 말이 아니고 음식으로 손님과 대화하’듯, 화백은 말이 아니고 그림으로 독자와 대화하는 법이지만, 이날만큼은 말로 독자들과 대화하면서 더 깊은 음식의 맛으로 빠져들었다지. 약간 과장을 붙여, 감동은 기본으로 덤으로 즐거움으로 얻었으며, 서비스로 눈물까지 가능했던 이날의 서정적인 맛 여행.

식객이 추천한 맛도 궁금하고, 허영만도 궁금하다. “오늘, 세금과 여자관계 빼고는 다 말해주겠다.” (웃음) 허 선생님의 장담에 맞춰, 이야기와 메밀이 익어가는 풍경. 성찬씨 없이도 좋았던 하루. 물론 함께였으면 ‘사랑’이라는 최고의 양념이 더해져 더 좋았겠지?

실상 음식이란 영화와 같아서 개인의 미각에 쌓인 기억의 편차에 따라 각양각색의
평가가 나오기 마련이다. 다만 그 기억의 편차에도 몇 가지 공통분모가 있으니
바로 사랑이 담긴 음식이 아닐까 한다.

“사랑이 최고의 양념 아니겠습니까. 어머니 음식이 맛있듯 손님을 향한 사랑과
정성이 담겨 있다면 그걸로도 산해진미가 부럽지 않을 겁니다.” (p.103)


식객, 아직 끝나지 않은 이름


그러니까, 『식객』은 왜 끝났어? 식객이 끝난데 대한 아쉬움부터 묻어나와. 미국드라마엔 시즌이 있잖나. 혹시 『식객』도 시즌제로, 네? 아쉽게도, 허 선생님은, “일간지 2개 연재는 힘들다. 나이도 있고.” 한 스포츠신문과 웹을 통해 ‘테무진(칭기즈칸)’을 다룬 <말에서 내리지 않는 무사>(이하, <말무사>)의 연재를 이미 시작한 마당. 젊어도 일간지 2개는 힘들단다. 나도 더 이상 나올 수 없어서 아쉽긴 한데, 그래도 나도 좀 쉬자. 2000년부터 햇수로 11년, 대한민국 맛 지도 그리는 걸 취재하느라, 나도 지쳤다, 지쳤어. (그래도, 슬프긴 해.)

그렇다고 희망을 꺼뜨리진 말 것. 여운을 남기는 이 말씀. “<말무사>가 3년 계획인데, 이게 끝난 뒤 생각해 볼 수 있다.” 오호, 3년 후를 기약해보자는 말씀. 50년도 더 될 것 같은 지금 정권 5년도 버틸 텐데, 그쯤이야, 암. 더구나, 아직 더 할 얘기가 많이 남았다. “오랜 기간 연재했지만, 내 생각엔 1/3, 1/5 정도 한 것 같다.”

그러니, 식객에게 안녕이라고 말하지 마. 이 맛 칼럼니스트가 장담하건대, 세상은 넓고 먹을 것은 많아! 새로운 맛에 대한 호기심을 계속 가져보자고. 그동안의 『식객』을 복습하면서. “시즌 4가 될지, 맛의 달인과 같은 제목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식객’이라는 타이틀이 워낙 사랑을 많이 받아서 그 타이틀 그대로 가야 하지 않나 싶다.” 아! 안심이다! 사실, 허 선생님이 이젠 그만할 거라고 말할까봐 얼마나 조마조마 했던지… (그러면, 나도 못 나오잖아!)

아예, 50권까지 만들어 달라는 요청. 빙고~ 27권의 2배가량인 50권이라. 헌데, 허 선생님은 한술 더 뜨시네. 100권. 그리고 유머 작렬. “100권을 목표로 그리다가 죽겠지? 하하.” 『식객』을 연재하면서, 가장 좋은 점은 이래. 구석구석 맛있는 음식을 찾아 먹었을 때, 꼭 보석을 찾는 기분이었다고나 할까. 심봤다.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가 그랬지. “새로운 맛에 대한 호기심은 삶의 활력이 된다. 음식의 문화적 장벽 저 너머에 새로운 맛이 있다. 인간은 지구상에서 가장 다양한 음식을 먹는 잡식성 동물이다.”

나도 성찬씨를 애인으로 두니, 그게 좋더라고. 새로운 맛을 보고, 새로운 세계를 맛볼 수 있다는 것. 물론, 성찬씨는 날 만났을 때가 보석을 찾은 기분이었겠지? 그렇지, 성찬씨?

쉿, 그리고 이건 비하인드 스토린데, 당신만 알아. 『식객』의 마지막 편에 개고기를 다루고 도망가려고 음모(?)도 꾸몄다는 사실. 개고기는 우리에겐 중요한 음식이라는 것. 개고기를 다루기 위해 북한도 들리기까지 했다는 것. 물론, 아직은 유보. 하지만 선생님은 예전에 키우던 개가 생각나서 개고기를 드시진 않는단다.

요리에 관심이 많다는 한 앳된 독자가 물었어. “남미에 한식당을 차리는 것이 꿈인데, 좋은 아이템을 알려주세요.” 선생님의 추천 메뉴는 ‘비빔밥’. 그것도 그냥 비빔밥이 아니고, 싱싱하고 좋은 제철 채소를 쓴. 그런데, 선생님이 되물으시네. “왜 남미에? (웃음)” 어쩌면, ‘남미 식객’도 나올지도 모르겠네.

식사가 나오는 막간을 이용, ‘오두산 막국수’ 사장님과의 대화 시간.

『식객』에 소개된 후, 어떤 변화가 있었나.(※ 주. 단행본 12권에 나온다.)

“엄청난 변화가 있었다. 물론 나오기 전에도 안 되던 곳은 아니었다. 다만 인터넷에서 (맛이 있니 없니) 논쟁이 좀 있었는데, 『식객』에 나온 이후 그런 부분이 없어졌다. (웃음) 음식점 홍보 지면이 그전에는 신문 외에는 별로 없었는데, 『식객』에서는 음식에 디테일하게 빠져들 수 있는 모습이 참 좋았다. 다만 신문 연재될 때, 2주 동안 사람 패는 장면이 주로 나왔는데, (웃음) 나중에 음식 등이 디테일하게 잘 나와서 영업적으로 큰 도움을 받았다.”

허구의 스토리 말고 식당 운영에 특별한 사연이 있는지.

『식객』에 보면 대학가에 있다가 시골로 가는 과정이 있는데, 그만큼 어렵고 힘들 때도 있었다. 파주에 가서 음식점을 해 보자, 해서 아이템을 놓고 가족끼리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러다 막국수가 서민적이고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어서, 그걸로 결정하고 막국수 투어를 다녔다. 사실 돈이 없어서 안 갔어야 했는데, 우리만의 막국수를 만들어보자며 그렇게 한 것이 도움이 됐다.”

허 화백님과의 인연은 어떻게 맺어진 건가? 어떻게 나오게 됐고.

“화백님의 속마음을 다 알 순 없으나, (웃음) 우리 음식점이 약간 유명세가 있었는데, 당시 찾아오셔서 시식하시고, 음식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다 얘기가 있겠다 싶어서 소개가 된 게 아닐까 싶다.”

막국수 투어할 때 어디에 중점을 두고?

“메밀 자체의 맛에 집중했다. 투어를 다니다보니 메밀의 구수한 맛을 해치는 양념들이 있었고, 그런 경우 진정한 국수의 맛을 느끼기 힘들었다. 일본보다 우리가 음식 메뉴의 다양성 등에서는 뒤지나 앞으로 일본의 메밀 사랑 정신과 우리의 도전 정신이 어우러져 다양한 메밀 관련 음식이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

만화에 보니 싸움을 잘 하는 것으로 나오던데, 진짜로 잘 하나?

“보기와 달리, 여리고 눈물도 많고… (웃음) 파주로 오기 전, 대학가에서 구두점을 하다가 맥줏집을 했는데, 싸울 일이 생기기도 했다. 나는 유도가 5단이고, 동생은 모그룹 회장실 경호원을 했다. 아직까지 제대로 맞아본 적이 없다. (웃음)”

이윽고, 나온 음식. 개인의 기호에 맞는 메밀국수와 메밀빈대떡 등이 푸짐하게 차려진 밥상. 진수성찬이 따로 없다. 물론 성찬씨는 나, 진수를 위해 이보다 더한 상도 차려줄 테지만. 선생님의 메밀 예찬. “보통 우리나라에서 메밀국수를 먹으면 젖어서 나오는데, 일본은 그렇지 않더라. 지지난달 일본에 갔는데, 그때 메밀 맛을 알았다. 11월~1월에, 추수가 끝나고 바로 먹는 메밀이 제일 맛있다.” 메밀로 행복해지는 시간. 맛있다. 그리고 음식과 세계를 생각한다.

조선의 왕이 수라를 받았을 때의 예의에 대해 전하는 말이 있다. 상 위에 차려진 음식의 재료가
어디에서 온 것인지 상궁이 일일이 이르면 왕은 그 음식을 먹으며 그 산물을 생산한 백성들의
노고를 가슴에 새기면서 그들의 안위를 걱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악어의 눈물 같은 이야기이지만,
음식을 대하는 예법만 보자면 인간이면 누구든 갖추어야 할 덕목이다. (『미각의 제국』, p.51)


‘허영만’이라는 만화


맛있는 식사 후, 허 선생님이 자신의 이야기도 풀어놓으시고, 독자들과 대화도 나누셨어. 우선, 선생님의 이야기. 66년부터 만화를 그리셨다. 손꼽아보니, 우와 45년. ‘거장’이라는 수식이 그냥 나온 게 아냐. 그 후, 오랫동안 문하생을 거쳐 74년 드디어 데뷔. 실은 ‘허형만’이라는 본명이 있었지만, 그것 대신 ‘허영만’으로 썼다.

허나, 당시 어두운 만화판으로 인한 고충 또한 많았어. 지금 10~20대는 잘 모를 테지만, 70~80년대엔 매년 5월이면 어린이회관 앞에서 ‘만화 화형식’을 하곤 했어. 그게, 상상이 돼? 만화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으로 가득했던 시대. 만화가 역시 멸시에 가까운 대접을 받았던 시절.

심의(검열)는 또 오지랖이 왜 그리 넓었는지. 정성 들인 원고에 파란색 줄을 좍좍 그어대는 검열관들이 득세했어. 휘유, 생각만 해도 암울한데, 하긴 지금도 그런 유령이 떠돌지. 인터넷 등을 검열하겠다는 수작들, 있잖아. 어쨌든 90년대 중반 심의가 없어졌어. 허나 이미 사전검열에 길들여진 탓에 자기검열을 하게 되는 부작용도 생긴 거야. 허 선생님은 이걸 푸는 데만 5~6년이 걸렸대. 그 전에 훈련(?)을 받은 후유증이 그리 오래 간 거지.

그렇다면 ‘허영만’이라는 만화의 시작은 어땠을까. 만화를 그린 건, 먼저 아버님 덕분이 컸어. 대소서를 하신 아버님은 방임에 가까운 무간섭주의로 일관하셨대. 그런 아버님 덕에 만화를 그렸고, 대학에도 안 갔어. 대학에 갔음? “아마 미술 교사를 하면서 갑갑한 생활을 하지 않았을까.”

‘만화가 허영만’ 아닌 ‘마도로스 허형만’이 됐을지도 몰라. 그랬다면 난 태어나지도 않았을지도 모르는데, 휴우, 다행이야. 허 선생님은 바다가 좋아서, 한때 외항선원이 되고 싶은 생각도 했거든. 특히 등대지기의 꿈도 키웠대. 일본 만화의 신(神), 데즈카 오사무는, 어떻게 만화를 하게 됐냐는 질문에, “내가 어릴 때 살던 시골이었다”고 답을 했다지. 허 선생님도 이에 맞춰, “나도 거기에 바다가 겹쳐 지금까지 (만화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허영만에게 만화란?’하고 묻는다면. 진부한 말이겠지만, 천직. “나는 정말 만화 외에는 쓸모없는 인간”이라고 털어 놓으셔. 한때 만화가 싫어서 애니메이션을 1년 정도 하셨대. 하지만, 자신과 맞지 않음을 깨닫고, 다시 만화의 길로, 다시 만화만! 그래도 좋아. “평생 하나만 할 수 있는데 대해, 하느님이 있다면 정말 감사드리고 싶다.” 이것이야말로 격정(?) 토로가 아니고 뭣인가. 평생 하나만, 한 사람만 사랑할 수 있다는 것 또한 축복이 아니고 뭐겠어. 성찬씨, 나만 바라보고 사랑할 거지? 아니면, 크왕.

참, 오해는 말아. 스스로 변덕이나 성질 잘 부리고 만화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하셨지만, 변덕스러움은 또한 다양한 스토리를 만들어 나갈 수 있는 동력이래. 심지어 밥을 놓고 숟가락, 젓가락 중 어느 것을 먼저 드느냐에 따라 스토리가 달라진다는 것. “이런 성격이 만화를 그리는데 도움이 된 것 같아.”

‘허영만’이라는 만화의 오랜 팬이라는, 저 멀리 창원에서 왔다는 독자의 오랜 궁금함, “과거 허영만 만화의 대명사였던 ‘이강토’라는 이름은 어떻게?” 그땐 그랬다. 만화가 이름 앞에 주인공 이름이 붙어야 어필할 수가 있었다. 까치=이현세, 독고탁=이상무, 이런 식.

헌데, 사전을 뒤져도 딱히 좋은 이름이 떠오르질 않고. 에라, 모르겠다. 영화나 보러가자. 당시만 해도 영화 상영 전, 애국가가 나오던 시절. 멍하니 듣다보니 어라? 강토, 강산… 그래, 결정했어. 강토. 그러고 보면, 국가에서 점지해준 이름 같아, 그렇지? 물론, 알다시피 중간에 이름이 바뀌었어. 특정 캐릭터로 굳어진 주인공으론 한정된 스토리밖에 나올 수 없다고 여기고, 신석기, 성찬 등의 새로운 인물이 새로운 이야기를 끌고 나간 거야.

사업가가 사업만 생각하듯, 만화가는 밥만 먹고 딴 생각만 한다. 그래야 만화가 나온다는 게 허 선생님의 지론. 딴 생각의 산물이 만화인 셈이야. 그래서 늘 메모하고, 메모지가 없어서 고추장을 찍어 냅킨에 적기도 했던 경우도 있었다. 그 메모가 다시 만화로 나온 거야. 나도 어쩌면 그런 고추장에서 나온 이름이자 캐릭터 아닐까? 진수, 고추장에서 튀어 나오다? 호호. 이어선, 맛 여행에 동참한 독자들과 나눈 이야기를 묶어볼게.

식객, 독자와 말을 나누다


남편이 삼십대 중반인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한다. 최근 평생직장에 관한 책을 읽더라. 지금이라도 꿈을 펼치는 것이 어떠냐고 했더니, 실력이 뛰어나지 않아 힘들 거라는 말을 하더라. 뒤늦게라도 만화가의 길에 뛰어드는 건 어떻게 생각하는지.

“버나드 쇼의 묘비명,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처럼 지금 하고 싶으면 해야 되지 않겠나. 다만 위험 부담은 있지. 만화판에서 밥 굶지 않고 먹고 사는 것은 상위 극히 몇 %에 불과하다. 사실, 삼십대 중반은 좀 늦긴 하다. 일본에서 마흔 넘어 데뷔한 사람도 있지만, 그 사람은 자신만 아는 노하우를 갖고 데뷔한 경우다.

그래도 몸을 던지는 투자가 있으면 된다. 잘 하는 일을 팽개치고, 잘 못하더라도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겠다는 사람을 보면 존경스럽다. 박재동 화백이 그런데, 만평으로 제법 잘 나갔는데, ‘오돌또기’라는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있다. 오래 전에 시작해서 아직 완성을 못하고 계속 하고 있는데, 그런 용기가 부럽다. 그런 분들은 돈 욕심이 크게 없다. 남편도 하고 싶을 때 하되, 리스크를 감안해야 한다고 말해주고 싶다.”


교육?학습 만화를 그리고 싶은 생각은 없는지.

“만날 인기 따지고 연재 잘리는 거 아닌지 전전긍긍하는 것도 힘들어서, (웃음) 교육만화를 해 볼까 생각도 했다. 이호준 팀장(식객 취재팀장)과 직업 만화를 검토했었다. 성격이나 조건에 따라 구체적으로 직업을 제시하는, 그런 직업가이드 만화를 할까 생각했는데, 다른 게 생겨서 젓가락을 옮겼다. 언젠가는 해 보려고 한다.”

만화는 일본보다 뒤진다고 생각한다. 일본 만화를 많이 보는지, 우리나라 만화의 현실과 비전은 어떻게 보는지 궁금하다. 또 엄마들이 어휘력 저하 등을 염려해서 아이들이 만화 보는 것을 제재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솔직히 일본 만화보다 우리 만화가 재미는 물론 전문성이 떨어지는 건 사실이다. 변명 같지만, 과거의 검열 등 시작부터 다른 점도 있었고, 우리 만화가들이 상대적으로 일본 만화가보다 공부를 덜 했던 것 같다. 그러다보니 한 해 한 해 뒤떨어진 게 지금 이렇게 되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원고료도 (일본에 비해) 박하다. 밥만 간신히 먹을 정도다. 가령, 『식객』을 할 때도, 취재를 위해 영덕을 갔다. 4명이 4박5일로 갔는데, 150만원 가량 들더라. 잡지 한 달 연재해서 320만 원정도 받는다 치면 그렇게 취재를 못 간다.

우리나라 만화시장 현실은, 80% 이상이 일본 만화다. 그만큼 일본 만화가 재밌다. 『20세기 소년』, 이런 건 되게 재밌더라. 그밖에 『배가본드』 『군계』도 재밌었고, 일본은 독자 폭이 넓다. 그래서 가부키(주. 일본의 대표적인 고전연극으로, 3대 주요 전통극의 하나)를 다룬 만화도 있고. 우리나라는 대본소가 지금 많이 줄어서 전국에서 800권이 팔린다더라. 그러면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대본소 만화는 차츰 보기 어려워질 거다. 실제로 요즘은 만화방 보기도 어렵고. 나는 88년에 대본소 만화를 때려 쳤다. 문하생으로 23명까지 두고 일했다. 내가 무슨 중소기업 사장도 아니고, 만화가를 하면서 제일 잘 한 일 중의 하나가 그때 때려 친 거다.

어쨌든 지금, 출판만화가 설 자리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일본도 예년 같지 않고, 잘 나갈 때보다 50% 이상 줄어 전전긍긍하고 있다더라. 출판만화가 그렇게 움츠러드는 것도 사실이고, 앞으로 『식객』만큼 많이 팔리는 만화가 나올지 걱정이다. 그래서 밥통을 조금씩 줄이고 있다. (웃음)”


아이의 창의성 개발을 위해 뒷바라지는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창의는, 개천에서 용 난다는 얘기는, 집안 분위기에서 비롯되지 않나 싶다. 수명이나 건강은 80%는 타고 나고 나머지 20%는 관리가 아닐까. 훈련에 의한 것은 어느 정도까지고, 주변 분위기나 이런 것에 좌우될 것이다. 좀 더 두고 봐라. 어렸을 때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모른다.

요즘 대학? 혹은 유학까지 다녀오면 서른넷 다섯인데, 회사에 가도 오십이면 잘린다. 유치원부터 공부해서 고작 15년을 써 먹는 거다. 그건 경제논리에서 맞지 않는 투자다. 내면의 문제를 좀 더 얘기했으면 좋겠다.”


직장을 다니는데, 취미로 웹툰을 그리고 있다. 옛날과 비교했을 때, 그리는 방식이 바뀐 게 있나. 또 편집자들에게 원고독촉에 시달려 본 적이 있는지.

“인터넷 위주로 만화를 그리면 출판을 할 때 모양이 안 나고 두 번을 일해야 한다. 이번 칭기즈칸은 컬러로 그리니까, 초원이 잘 살더라. 앞으로 만화는 계속 컬러로 해야 하지 않나 싶다.

마감은, 신문의 경우 마감 하루 전까지 보내면 된다. 이틀 먼저 보내서 독촉 전화를 안 받는 편이다. 그렇게 하루를 벌면 정말 일하기 싫을 때 하루를 벌 수 있다. 여지껏 펑크를 두 번 냈다. <아스팔트 사나이>를 연재할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그때 지난 이야기로 펑크를 메운 적이 있다. 펑크를 내면 안 되는 게 그건 독자와의 약속이기 때문이다. 쫓기지 말자는 마음으로 하고 있다.”


꿈이나 포부가 뭔가.

“내 꿈은 오토바이를 사서 야영 장비를 싣고 전국을 몇 달 돌아다니는 거다. 그곳이 좋으면 2~3일 텐트치고 있으면서 책 보고 술 마시고, 그러다 떠나고. 가능할지는 모르겠다. 주변에서 오토바이는 위험하다 그러고. 찬 곳에서 자다가 몸이 비틀어질 수도 있고. (웃음) 그래서 조금 연구한 게 캠핑카다. 그걸 하고 싶다.

이 나이에 인기라는 것을 아직 생각하고 그려야 한다는 것, 그게 때론 피곤하다. 45년 동안 이 생각하면서 그리고 있다. 이골이 나야할 텐데, 매번 새 작품할 때마다 생각이 난다. 일의 양을 줄이고, 당분간 힘 있을 때까지 그리고 싶다.”



만화 작화와 스토리를 따로 분리하기도 하는데, 스토리작가 지망생에게 좋은 스토리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조언 부탁한다.

“좋은 스토리가 항상 어디에 있는지 찾고 있고, 전문가가 있으면 함께 힘을 합쳐 잘 만들 수 있다. (그전에 함께 일했던) 김세영씨가 참 잘 했다. 처음과 끝의 힘이 같았다. 지금은 내가 할 수 있는, 그려야 할 만화가 있어서 한 눈 팔 여지는 없다. 이젠 재미만 추구하는 건 나이 때문인지 맞지 않다. 인간적, 사회적으로 도움이 되는 만화를 그리고 싶다.

우리나라는 시장이 좁은 게 사실이다. 경제적으로 스스로 버티려면 1억 이상의 인구가 있어야 하는데, 부지런히 (스토리를) 생산해야 한다. 자기만의 스토리를 만들어야 한다.”


지금은 1등이지만, 70~80년대 스스로도 그렇게 말했는데, 2~3등이었다. 1등 하려고 조바심내고 노력한 시기는 없었나. 『식객』은 철저한 기획?취재에 의한 것인데 반해, 『날아라 슈퍼보드』는 상상력에 의한 면이 강하다. 어느 쪽에 무게를 싣는 편인가.

“지금은 1등이라기보다 무조공산에 혼자 있는 거다. (웃음) 뭐랄까, 지금은 결전의 마당이 없다. 누가 1~2등 따지기도 곤란하고. 옛날 대본소 만화할 때는 1등을 한 적이 없다. 이상무씨(독고탁)보다 2년 늦게 데뷔했는데, 아무리 해도 안 되는 거야. 그 많은 만화가들 중에 3~4등만 해도 겁나게 잘 하는 건데, 나도 열심히 하는데, 출판사 사장이 불이나 지르고. (웃음)

다음 이현세씨(까치)가 나왔는데, 역시나 2등이었다. 그러고 보면 나는 이씨한테 많이 시달린 사람이다. 아내도 이씨거든. (웃음) 그때 도 닦는 법을 배웠다. 잡지에선 5등 안에만 들면 잘리지 않는다는 걸 알았거든. 『각시탈』을 할 때, 잠깐 1등을 했는데, 마냥 1등만 할 순 없다. 1등만 하는 사람은 얼마나 피곤하겠나. 그래서 5위 안에만 들면 된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의 내겐 존경하는 사람은 있어도 라이벌은 없다.

두 번째 질문에 대해 답하자면, 인터넷이 발달해서 아침에 잘못하면 2~3시간 후면 두들겨 맞는다. 음식 이야기는 특히 한 가닥 하는 분들이 많아서 이분들의 입과 눈 이상으로 맞출 수밖에 없다. 음식 만화는 정말 먹고 싶다는 생각으로 그려야 한다. 좀 더 실감나게 하기 위해 파, 마늘, 배추 등만 해도 한 컷을 그리기 위해 책을 쌓아놓고 그렸다.

반면 『날아라 슈퍼보드』는 없는 걸 그리는 것이니, 내가 만들어서 그릴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시비할 사람이 없다는 거지. (웃음) 그런데 진짜 SF는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 『드래곤볼』 때문에, 그런 만화가 쏟아져 나와서 SF가 망했다.”


후배 만화가 중에서 자극 받은, 후배지만 무섭다고 느꼈던 만화가가 있다면. 무한도전 촬영후기도 듣고 싶다.

“후배는, 양영순씨가 잘하고, 윤태호씨도 잘하고, 강풀씨 만화는 보진 못했지만, 여론에 밀려… 잘 한다. (웃음) 양영순씨 만화는 처음 봤을 때, 아메리칸 스타일이라 베낀 것이 아닐까 싶었지만 아니었고, 지금 무척 잘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잘 할 거다. 다만 장편은 잘 안 됐는데, 단편은 아이디어가 빨리 소진될 수 있으니 그걸 컨트롤 잘 해야 한다.

윤태호씨는 우리 화실 출신인데, 재주꾼이다. 『로망스』라는 작품을 참 좋아하고, 정말 발군이었다. 단점이 이걸 하면서 저걸 생각한다는 거다. (웃음) 며칠 후 술 산다고 했으니 또 만나야지.

<무한도전>에는 두 편이 나갔다. 그런 프로그램은 좋아하지는 않는데, 음식을 갖고 이야기한다고 그래서 출연했다. (웃음) 그런데 대본이 없더라. 이게 장점이구나 싶었고. 두 번째 할 때 압구정동에 밤에 나오라더라. 9시라고 해서 아무 것도 안 먹고 갔는데, 아무도 없어. 차가 막혀서 늦는다고 10시 넘어서 왔다. 홀에 혼자 앉아 있었는데, 밥이 안 나오는 거야. 정형돈씨가 대구전을 한다고 포를 뜨는데, 검법도 시원찮고 뭉개서 자르는 거야. 유재석씨는 떡갈비를 만들었는데, 대구전은 너무 짜고, 떡갈비 역시 너무 짜서 못 먹겠는 거야. 그러다 결국 11시에 집에 갔는데, 그 시간에 오면 아내가 좋아하나? 그날 참 배고팠다. (웃음)”


그렇게, 오두산 막국수에서 식사와 함께 한 방담이 끝나고, 헤이리 예술마을로 향했어. 독자들이 허 선생님과 즉석 사진을 찍었고, 각자 헤이리 마을을 누볐어.

우리는 선생님과 함께 방송인으로 활동했던 황인용 선생님이 운영하는 음악감상실 ‘Camerata’로 향했고. 무덤덤한 비어있는 창고의 느낌으로 축조된, 이 음악 공간. 마침 황 선생님도 동석하셨어. 이탈리아어로 작은 방 혹은 동호인의 모임이라는 뜻의 카메라타, 우리는 동호인들처럼 음악을 공유하고 이야기를 나눴어.
라흐마니노프(Rachmaninov)의 ‘Symphony No.2’ 등에 마음을 맡기고 멋을 음미하는 시간. 그래, 맛과 멋이 공존했던 이날의 이야기는 이것으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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