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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너무 멋진 경치에 공부하긴 글렀네!

46번 시내버스 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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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여행 라라라 - 안동 46번 시내버스 투어 : 지난밤 하회마을 감나무집 할머니가 얼마나 뜨끈히 구들장에 불을 놓았는지, 눈을 뜨니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소도시 여행의 로망
고선영 글/김형호 사진 | 시공사
이 책은 일상에 지친 이들에게 일주일에 하루 이틀 정도 시간을 내어 자신을 다독이고 위안하는 여행을 떠날 것을 제안한다. 그리고 그 목적지는 잘 꾸며진 관광지가 아닌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소박하고 정겨운 우리의 ‘소도시’들이다. 그곳에서 푸근한 동네 사람들의 노변정담에 끼어 보고, 맛나는 지역 음식도 맛보고, 역사를 품고 있는 오래된 건축물도 둘러보면서 여행자는 일상에서부터 가져온 묵직한 스트레스를 자신도 모르게 스르르 놓아 버린다. 녹록지 않은 일상에 갑자기 찾아온 휴식같은 시간. 여행자는 길 위에서 새삼 인생의 ‘소소한 행복’을 깨닫는다.
지난밤 하회마을 감나무집 할머니가 얼마나 뜨끈히 구들장에 불을 놓았는지, 눈을 뜨니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본래 시골 마을의 아침은 닭이 홰를 쳐대는 새벽부터 시작되는지라, 부산스레 마당을 오가는 주인집 내외의 발걸음에 자연스레 눈이 떠졌다. 얼추 여섯 시쯤 됐는가 싶다. 김 선생은 하회마을을 에둘러 흐르는 강변 자락에 피어오른 물안개를 찍겠다며 주섬주섬 사진기를 들고 나갔고, 나는 마당에 서서 요리조리 몸을 비틀며 간만의 맨손 체조를 즐기고 있었다.

간밤에 찾아온 손님을 위해 정성스레 아침상을 차리고 있는 할머니의 부엌에서는 고등어 지지는 냄새가 솔솔 풍겨 나왔다. 이놈의 위장은 어째 이리 눈치가 없는지, 일어난 지 얼마나 됐다고 꼬르륵이다. 그 때 벌써 동네 한 바퀴 마실을 다녀온 할아버지가 민박집 대문을 밀치며 들어오신다.

“잘 쉬셨는가? 이리 한번 나와 보시게. 내 보여 줄 것이 있으니.”

풍산 류 씨의 후손인 감나무집 주인 류전하 할아버지의 뒤를 쫓아 나갔더니 초가지붕 아래 매달린 제비집을 가리키신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동전 크기만 한 까만 머리가 들락날락거린다. 하나, 둘, 셋, 넷, 모두 네 마리다. 알을 깨고 나온 지 한 열흘쯤 됐다는데, 제법 앙팡지게 짹짹거리며 머리를 냈다 넣었다 움직여대는 모습이 퍽 귀엽다.

어미 새가 먹이를 물고 나타나면 둥지 안은 꽤나 부산스러워진다. 손톱만 한 부리를 쫙쫙 벌리며 서로 제 입에 넣어 달라 난리다. 할아버지께서 도시에선 좀처럼 보기 힘든 풍경이라며 잘 보고 가라신다. 하긴, 나고 자라며 서울 밖을 벗어나 본 적이 없는지? 산 제비를 이렇게 가까이서 보게 되니 여간 신기한 게 아니다.


찬찬히 하회마을 담길을 따라 산책을 다녀오니 할머니가 툇마루에 아침상을 봐 놓으셨다. 기름기 좌르르 흐르는 큼직한 간고등어 한 마리에 멀겋게 끓인 된장국과 몇 가지 반찬이 올라 있다. 간이 딱 맞는 고등어 뚝뚝 떼다가 밥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운 다음, 할머니를 따라 장에 나가기로 했다.

마을 안 보건소 옆 승차장에서 동춘여객 46번 버스가 출발한다. 전날 고속버스를 타고 안동 터미널에 내린 뒤 하회마을로 들어온 것도 바로 이 버스를 타고였다. 안동 시내에서 하회마을로 오는 버스는 46번 하나뿐인데, 마을 입구에서 내리는 것과 마을 안까지 들어오는 것 두 종류다. 마을 안까지 오가는 버스는 같은 46번 버스인데도 시설이 좀 더 고급스럽다. 고속버스를 시내버스로 바꿔 만든 모양이다.

아침 9시 50분에 시내 방향 버스를 타면 중간에 풍산읍에서 내릴 수 있다. 20분 남짓한 짧은 시간이지만 버스는 하회마을을 거쳐 네댓 개의 작은 마을을 지나며 여러 가지 풍경을 보여 준다. 연잎 덮인 초록 연못을 지나 점점 무성해지는 논을 지나면, 오래된 정미소도 보이고 하회탈이 웃고 있는 담벼락도 보인다. 양철 지붕 이발소며 포도 넝쿨 우거진 가겟집 앞 정자도 지나고, 낡은 교회와 소담한 한옥집 지붕도 거친다. 소박하고 정겨운 시골 마을 풍경에 마음이 흡족하다.

버스에 탔던 하회마을 주민 대부분이 내리는 곳이 풍산읍내 농협 앞이다. 이곳에서 3, 8일에 5일장인 풍산장이 열린단다. 꽤나 이른 시간인데도 장은 이미 들썩이고 있었다. 장터 입구의 도장장이 아저씨가 일찌감치 들어온 주문을 나무 도장에 새기고 있고 만두, 찐빵, 도넛을 파는 장사꾼은 보글보글 끓는 기름에 연신 반죽거리를 넣었다 뺐다 한다. 시장 초입의 ‘중앙다방’은 이날 오픈했나 보다. 조화로 만든 소박한 2단짜리 화환 열 몇 개가 죽 늘어섰는데 어디어디 방앗간, 어디어디 철물점집 이름이 쓰여 있고, 경쟁업소로 보이는 ‘신신다방’에서도 화환을 보냈다.

갑자기 ‘펑’ 하는 소리가 나 놀라서 돌아보니 뻥튀기 기계다. 튀밥 장수 이재화 씨는 풍산장의 명물이다. 53년째 안동과 인근 도시의 장을 돌며 튀밥 장수를 했단다. 이미 단골도 많은지라, 집집마다 가져온 옥수수며 보리, 쌀을 그의 깡통에 부어 놓고 줄을 세운 게 열 개도 넘는다. 깡통 하나에 ‘뉴슈가’ 한 자밤을 넣고 불 피운 기계 안으로 밀어 넣어 뱅글뱅글 돌린다. ‘펑’ 소리 한 번에 그는 3,000원을 버는데 5분, 10분 간격으로 쉴 새 없이 뻥뻥 터지니 보기엔 안동 최고의 부자가 아닐까 싶다.

“식전엔 거의 오꼬시 손님이더니 지금은 강냉이랑 콩 손님이네.”

입담은 또 얼마나 좋은지, 폭죽처럼 터지는 튀밥 기계 소리를 양념 삼아 듣는 그의 구성진 이야기도 재미나다.


46번 버스는 병산서원에도 간다. 하회마을에서 오전 11시 10분, 오후 4시, 총 두 번 버스가 간다. 병산서원은 오늘의 하회마을을 있게 한 서애 류성룡 선생의 제자들이 선생과 그의 셋째 아들 류진의 위패를 모시고 공부를 하기 위해 만든 곳이다. 건축미 또한 대단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런데 병산서원 가는 길이 만만치 않다. 서원으로 찾아 들어가는 길이 비포장 흙길이라 버스는 엄청난 흙먼지를 일으키며 뒤뚱뒤뚱 산길을 오른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주민들이 포장을 원치 않는단다. 도로를 잘 만들어 놓으면 그만큼 찾는 관광객이 많아져 유적이 훼손되고 주민들의 삶에 영향을 끼치게 될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서원은 애초에 공부하는 기관으로 세워진 것이기에 조용해야 한다는 것이 이곳 사람들의 생각이다.

병산서원에 들어선 순간, 나 같은 사람은 이곳에 들어앉아 공부하긴 애초에 글렀다는 생각이 든다. 경치가 너무나도 멋지다. 하회마을을 에두른 낙동강 물결이 서원 앞으로도 흐른다. 강 건너편의 날 선 병산屛山과 어우러지는 풍경 또한 그림이다. 물과 산을 마주한 정문을 지나 높고 넓은 ‘만대루’라는 이름의 정자 위에 올라앉으면 비로소 작품이 완성되는데, 한눈에 담을 수 없어 더욱 가혹하게 느껴지는 그런 풍경이다. 유홍준 선생이 그의 책을 통해 이곳을 극찬해 마지않은 이유를 비로소 알겠다.

정자를 찾은 사람들이 둥글게 모여 앉아 문화해설사의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 자리에 서원을 지키는 류시석 씨가 우연히 끼어 있었다. 해설사는 서애 선생의 후손인 류 씨를 소개하며 서원의 달밤 이야기를 해 달라고 부탁했다.

“병산에는 달이 두 번 뜨지요. 서쪽에서 뜬 달은 병산의 동쪽 자락을 따라 이동하는데, 중간 즈음의 높은 산봉우리에 잠시 가려졌다 다시 뜨거든요. 달이 잠시 사라졌다 다시 나타나니 두 번 뜨는 거랑 매한가지지요.”

사람들의 입에서 작은 탄성이 흘러나온다. 산이 높은 건지 달이 낮은 건지, 병산 자락에 닿을락 말락 바람 따라 흐르는 달의 모습이 얼마나 멋질까 상상해 본다.

- 본문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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