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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거짓말에 짝사랑하던 남자는 결국…

<어톤먼트>, 가장 고통스런 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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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순간의 거짓말로 로비는 군에 징집된다. 그런데 거기서 불운의 도미노는 그치지 않는다. 세계대전이 터지고 로비는 전쟁터로 나갔는데 거기서 병이 들어 죽는다. 세실리아도 전쟁터에서 죽는다. 브라이오니는 이 모든 것을 자신의 잘못으로 거두어들인다.

<어톤먼트>, 조 라이트 감독, 2007

‘쓰는 여자’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우물 같은 곳에서 우물 같은 무게와 질감으로
글을 쓴다.


우물 같은 눈빛을 하고, 때로는 텅 빈 우물소리를 내며 글을 쓰는 것이다. 우물 바깥에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스커트 자락을 날리며 가볍게 튀어 오를 수 있다는 것도 안다. 그러면 잠깐의 쾌락으로 몸을 적실 수 있다는 것도 안다. 그러나 그녀들은 쓰지 않고서는 살 수 없기에, 재능이 아니라 어떤 천형으로 글을 쓰는 것이다.

영화 속에서도 ‘쓰는 여자’는
그렇게 그려진다.


 

실비아 플라스(영화 <실비아>), 아델 위고(영화 <아델 H 이야기>), 수재너 (<처음 만나는 자유>)가 그렇고, <어톤먼트>의 브라이오니도 그러하다. 게다가 브라이오니의 우물에는 죄의식까지 복류하고 있다.

열세 살 ‘브라이오니(시얼샤 로넌)’는 ‘로비(제임스 맥어보이)’를 사랑한다. (사랑일 것이다. 열세 살은 어쩌면 가장 사랑을 잘 할 수 있는 나이인지도 모른다.) 브라이오니는 로비에게 자신의 욕망을 내비치지만 로비에게 그녀는 어린아이이거나 ‘세실리아’의 동생일 뿐이다. 브라이오니는 여러 채널을 통해 신호를 보내지만 로비는 그 신호를 해독하지 않는다. 라이오니의 신호는 의미 없이 로비 바로 앞에서 방전돼버린다.

무작정 보낸 신호의 대가는 로비와 세실리아의 밀애를 훔쳐보는 일로 돌아온다. 브라이오니는 세실리아가 빠져나온 분수대 물 표면에 로비가 손바닥을 대고 그 남아 있는 온기와 물결을 느끼는 것을 보아야 한다. 식사 자리에서 세실리아와 로비가 식탁 밑에서 손의 향연을 벌이는 것도 보지 않을 수 없다.

만약 브라이오니가, 로비가 세실리아에게 보낸 그 노골적인 편지를 보지못했더라면 모든 것이 달라졌을 것이다. 열세 살의 소녀가 그런 편지를 읽으면 자신을 구성하던 에피스테메가 무너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그 편지를 쓴 사람은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이고, 또 그 남자가 사랑하는 여자는 자신의 언니였던 것. 같은 날, 그런 편지를 읽고, 서재에서 로비와 세실리아의 정사를 보게 되고, 자기 또래의 친척이 강간당하는 것을 보게 되고…….

하루 동안 엄청난 일을 경험한 그녀는,
거짓말을 하게 ‘된다’.


강간범은 로비라고 ‘말해진’것이다. 그 거짓말은 의도된 것이라기보다는 그저 튀어나온 것이었다. 튀어나오게 한 촉매는 그녀가 그날 본 모든 것들이었다. 그것들이 화학작용하여 그녀를 말하게 한 것이었다. 언어가 먼저이며, 생각은 나중이었다. 영화에서 처음에는 강간을 하는 남자의 얼굴을 보여주지 않다가 나이가 든 브라이오니의 회상 장면에서는 그 얼굴을 정확히 보여주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한 순간의 거짓말로 로비는 군에 징집된다. 그런데 거기서 불운의 도미노는 그치지 않는다. 세계대전이 터지고 로비는 전쟁터로 나갔는데 거기서 병이 들어 죽는다. 세실리아도 전쟁터에서 죽는다. 브라이오니는 이 모든 것을 자신의 잘못으로 거두어들인다. 열세 살 때 거짓말을 한 것에만 죄의식을 갖는 것이 아니라, 이후 로비와 세실리아에게 일어난 모든 일들에 대해 평생 죄의식을 떨치지 못하는 것이다. 영화 내내 그녀는 단발머리인데, 그 머리모양은 방기할 수 없는 자신의 죄의식의 표상이었을 것이다.

세실리아와 로비의 죽음은 어린 브라이오니가
속죄해야 할 대상이었을까.



세계대전은 브라이오니도 어찌할 수 없었던 절대부정으로서의 변수였다. 나약한 그녀로서는 도저히 해소시킬 수 없는 아비규환의 지옥과 같은 전쟁에서 비롯된 비극까지도 브라이오니는 자신의 ‘속죄’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죄로 귀속시킨다.

브라이오니는 속죄를 위해 간호사를 택한다. 전시에 자발적으로 선택한 간호사라는 것은 브라이오니에게 ‘희생자-되기’ 혹은 ‘매저키스트-되기’에 다름 아니다. 그녀가 자신의 이름, ‘브라이오니’를 접어두고 ‘탈리스’라는 성만 쓴 것도 브라이오니라고 불리던 무렵의 일들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 시절은 또한 그녀가 ‘사랑하고’있었던 유일한 시간이었다. 버릴 수도 가질 수도 없는 시간, 기억할 수도 기억하지 않을 수도 없는 시간이었던 것이다.

브라이오니 앞에 머리에 총을 맞아 뇌가 교란된 프랑스 병사가 죽음에 임박하여 누워 있다. 그는 브라이오니를 자신의 연인으로 착각하고 자신의 사랑을, 진짜 기억인지 아니면 망가진 뇌가 지어낸 것인지 알 수 없는 어떤 이야기를 풀어낸다. 브라이오니는 그 남자 이야기 속의 여자가, 기꺼이, 된다. 되지 않을 수 없다. 남자는 그녀에게 고백한다. 그녀도 고백한다. 모든 상황이 가짜이며 환상이지만 그 순간의, 그 고백이 응축된 그 찰나만은 진실이다. 그 텅 빈, 아무것도 없는, 진공만이 진실인 것이다. 이 장면은 영화의 짧은 부분이었지만, 동시에 영화의 거울이자 축소였다. 이 영화는 그 비어 있는 진실에 관해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 브라이오니의 진실은
어디에 있을까.


브라이오니, 세실리아, 로비에게 일어난 일 자체가 진실은 아닌 것. 그렇다고 그녀가 쓴 그 허구의 이야기가 진실도 아닐 것이다. 진실은 어쩌면, 그녀가 쓴 것과 쓰지 않은 것 사이에 있었다. 혹은 실제 자신이 경험한 것, 그당시의 실제 상황과 그녀가 허구로 만들어 낸 것 ‘사이’에 있었다.

그 사이에서 브라이오니는
머뭇거렸을 것이다.



브라이오니의 바람은 속죄하고 용서되고 서로 사랑하고 세 명이 모두 평화 속에서 지내는 것이었겠지만, 또 그렇게 ‘쓰는’ 것이 일시적으로나마 그녀에게 평온을 주는 것이었겠지만, 그녀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브라이오니는 자신에게 가장 고통을 주는 서사를 택한다. 그녀는 소설 속에서 자신의 고통을 상쇄시킬 수 있는 일종의 가면인 ‘가명’을 이용하지 않고 ‘실명’을 쓴다. 또한 실제로는 로비와 세실리아가 모두 죽지만, 브라이오니는 소설에서 그들이 자신을 끝내 용서하지 않은 채 둘만의 장소에서 행복을 누리게 되는 것으로 설정한다. 이 이야기는 브라이오니의 상상이지만 브라이오니는 그 모습을 마치 과거를 추억하듯이 쓴다.

그래서인지, 영화는 브라이오니의 시점과 객관적 시점을 오간다. 브라이오니의 시선으로 본 세실리아와 로비, 브라이오니의 시선에 잡히지 않은 그들, 브라이오니가 상상한 그들, 브라이오니의 방어기제를 거친 회상 속의 그들, 브라이오니가 스스로를 면죄시키지 않기 위해서 고통 속에서 끄집어낸 그들, 또 브라이오니와 그들을 함께 프레임에 넣는 어떤 제3의 시선, 관객은 그 시선들을 전유하여, 혹은 그 시선들 틈에서 그들의 서사를 또 다시 재구성하게 된다. <어톤먼트>는, 그리하여 중층의 시점을 내재한 큐비즘의 영화가 된다.

이 때문에, 영화는 브라이오니가 만든 서사, 즉 고통 속에 있기를 거부하지않는 브라이오니를 먼저 보여주고, 죽음에 임박한 브라이오니가 인터뷰 중 바로 앞서 보여준 세 명의 재회 장면이 허구였음을 말하는 장면을 보여준다.이 배치는 그녀의 죄의식이 얼마나 지독한지를 관객들에게 확인시킨다. 브라이오니는 자신의 고통을 씀으로써, 그것도 가장 고통스러운 방법으로 글쓰기를 함으로써 속죄하는 것이다. 영화 전면에 삽입되는 그 타이핑 소리는 속죄하고 있는 브라이오니의 끊이지 않는 고통의 절제된 신음인 것.

글쓰기는 그러므로
죄의 변제 비용이었다.


브라이오니의 글쓰기는 끝까지 유예되다가 그녀의 치매와 죽음이라는 필연적 사건 앞에서 일시적으로 봉합된다. 속죄는 완성되지 않고, 다만 속죄의 과정만 지속적으로 열려 있다.


브라이오니가 그녀의 소설에서, 있었던 사실 그대로 세실리아와 로비를 죽은 것으로 서사를 끝냈다면 어떠했을까. 그녀는 그들에게 속죄를 하고 싶어도 더 이상 속죄를 할 수 없는 상황 속에 자신을 배치하여, 속죄 불가능의 원인을 자신이 아닌 타자에게로 영원히 돌릴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였다면 결국 브라이오니는 그렇게 서사를 마무리한 것에 대한 또 다른 죄의식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또, 세 사람이 화해하고 브라이오니가 용서를 받는 것으로 서사화하였다면, 브라이오니는 그렇게 서사를 구성한 자기 자신을 또한 용서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렇게 브라이오니는 죄의식 속에 자승자박하여 스스로 구금된다. 자신이 용서받는 서사를 택하지 않고, 인터뷰에서 공개적으로 자신의 죄를 이야기함으로써 자신을 그 죄의식에 유폐시킨다. 그녀는 익명의 시선들에서조차 용서받는 길을 택하지 않는다. 아마 그녀가 구원되었다 하더라도 자신이 구원받았다는 그 사실 자체에 구원을 받을 수 없을 것이다. 혹은 용서받았다는 그 사실을 스스로 용서하지 못할 것이다.

브라이오니의 죄가 시작된 곳은 거짓말이라는 언어이며, 그녀의 속죄를 위한 과정 또한 글쓰기라는 언어를 통해 이루어졌다. 글쓰기는 분열된 주체를 요구한다. 브라이오니 또한 자신을 대상화하여 글을 썼다. 서사는, 열세살, 열여덟 살, 그리고 80대에 이르기까지 순간순간 결절점을 통과하며 구성된 것이다. 이제, 그녀는 치매로 인해 기억을 잃고 언어를 잃고 자신을 잃을 것이다. 브라이오니는 그 상실을 자신의 죄의 비용으로 지급한 것이다.

***

다시 ‘쓰는 여자’에게, 혹은 ‘쓰는 여자’에 관해
당신에게 묻습니다.


글쓰기의 시원에는 무엇이 있는지……. 혹 용서받는 것을 용서할 수 없다는, 불가피한 죄의식, 혹은 죄 없는 죄의식이 포복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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