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우 작가님. 이름만 들어도 절로 입꼬리가 씨익 올라갑니다. 『캔들 플라워』를 피우며, 2월, 3월 채널예스 독자들에게 생긋 인사를 건네던 작가님, 3월 8일 향긋한 북살롱의 주인공이 되어 또 한번 돈독한 만남을 가졌습니다. 만남 때마다 독자들에게 따뜻한 에너지를 듬뿍 실어 주시는 작가님, 총총한 눈빛으로 등장, 훤한 상상마당을 반짝반짝 빛내던 이날도, 한껏 안고 오신 에너지를 구석구석 앉은 독자들에게까지 아낌없이 나눠 주셨지요. 예쁜, 아주 예에쁜, 그런 에너지를요.
김선우 작가님의 이야기 이전에 민중 가수 단편선의 축하 공연이 있었습니다. 「칼국수, 보쌈, 왕만두」라는, 제목만 들으면 금세 피식 웃음이 새어 나오지만, 철거 지역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처연한 가사의 노래였지요. 작가님은
“비관적인 세계 인식이 우리들 속에 꽃필 때는 이토록 서정적으로, 이토록 흐느끼듯이 오는 것 같다.”며 이어 낭독을 들려주셨습니다. 그러니까 이 대목.
서울에서 분꽃은 자주 볼 수 없지만, 오후 4시는 분꽃이 피기 시작하는 시간. 채비를 해 광장으로 나가면서, 해가 저물녘 피기 시작해 밤 동안 피어 있는 분꽃이 촛불의 행렬과 닮았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필 오후 4시라니! 국민을 상대로 선전포고를 하다니! 이제 촛불은 청계광장에서 흘러넘쳐 서울광장으로 모여들기 시작하고 있었다. (…)
경찰 차량 확성기에서 여자 경찰이 뭐라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불법집회니 빨리 해산하라는 얘기였다. 그때 경찰 차량 가까이 있던 한 할머니가 갑자기 경찰차 차문을 똑똑 두드렸다.
“아아가 산달이 돼야 나오지 아무 때나 쑴벙 나온디여? 순리가 워디 그랴?”
그러더니 반짝거리는 숟가락을 치맛말기에서 쑥 꺼내 들었다.
“해산 고만 허고, 그 짝도 힘들 텐디 노래 한 자락 할텨?”
다음 순간 시위대에서 "노래해! 노래해!" 구호가 터져 나왔다.(p.169)
| “우리의 촛불을 기억하면서, 「캔들플라워」라는 곡을 들려 드릴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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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어 노래가 흘러나왔습니다. 단편선이 들려주는, 「캔들플라워」라는 노래가. 그렇게 우리는 잠시, 캔들 플라워를 피웠지요. 이후, 강연이 이어지겠다는 사회자의 멘트에, 작가님은 낭독한 할머니 말투로
“강연이라고라?” 외쳤더랬지요. 마치 이런 제안처럼. 강연이란 말은 됐고, 어디 이야기 한 자락 들어 볼텨?
여러분, 되게 예쁘세요. 아시나요?
독자와 마주 앉은 작가님, 연신
“예쁘다.”는 감탄사(!)를 터뜨렸습니다.
“예쁘다는 말을 열 번 정도 더 하고 싶어요,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얼마나 예쁜지를 잘 모르면서 사는 것 같아요. 나이를 먹으면서 참 좋은 것은 사람들이 얼마나 예쁜지가 보인다는 점인 것 같아요.
우리가 저마다 얼마나 예쁘게 반짝이는지, 예쁜 구석들을 가지고 있는지, 전부 다 다른 예쁨을 가지고 있는지를 잘 알아채면 좋겠어요. 스스로 예쁜 것을 귀하게 여기고, 다른 사람 예쁜 것을 귀하게 여기면 세상이 참 예뻐질 텐데, 그게 잘 안되죠. 그 벽을 깨느라 힘들고, 그런 벽이 많은 세상을 사는 것 같아요.
『캔들 플라워』는 그렇게 나의 예쁨, 너의 예쁨을 발견할 수 있는 책이었답니다. 우리 모두가 얼마나 예쁜지. 우리가 어떤 힘을 스스로 가지고 있는지 알아채는 책이죠. 내 옆 사람이 얼마나 예쁜지를 빨리 알아채고 열심히 칭찬해 주기.(웃음)”
바로 그것이, 작가님이 촛불 정국에서 발견한, 아주 귀한 것이었고요.
“촛불 속에서, 새로운 생명의 광경을 봤어요. 미래적 가치로서의 생명 감각! 일체의 조건 없이 손 내미는 호혜의 느낌이었죠.” 예쁨을 발견하는 것, 그것은 행복을 발견하는 감각과 상통하는 것이 아닐까요?
“계속되는 경쟁, 끊이없는 수직 상승의 사다리 타기. 그렇게 정신없이 살다 보니 ‘내가 어떨 때 가장 행복한가?’ 마음을 들여다보고, 자기 존재의 충만한 상태를 알아챌 수 있는 기회를 유보하게 돼요. ‘일단 공부해! 일단 대학 가! 일단 취직해! 일단……!’ 이런 말들 때문에, ‘내가 참 예쁘다. 내가 충분하다. 내가 만족스럽다.’ 하는 감각을 강제적으로 빼앗기는 거예요. 그러니 우리가 섬세하게 깨어서 ‘내가 언제 행복한가?’ 끊임없이 물어야죠.”
| “촛불은 예측할 수도 없는 다양한 방법으로, 계속 이어져 나갈 거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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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온전히 당신 안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행복의 기운도 촛불처럼 퍼져 나갑니다.
“내가 행복할 때, 내 옆 사람이 행복해질 가능성이 높아져요. 당신이 행복해야 내가 행복한 거예요. 우리 모두가 행복하다는 일반적 수준을 공유할 수 있어야 내가 행복한 것이라는 거죠. 내가 당신을 누르고 먼저 올라가면 행복하다는 착각 속에서 사는데, 누군가 이겨서 주어지는 행복은 오래갈 수 없는 행복입니다.” 이것 역시 촛불 속에서 발견했던, 퍼져 나갔던 소중한 마음.
“아무 목적 없이 내게 먼저 손을 내밀어 주고, 내 자리를 마련해 주는 사람들이 거기에 있었죠. 행복은 이렇게 감염력이 강해요. 더불어 행복할 수 있는 자세를 보여 줬죠. 그 촛불 광장에서요.” 촛불이 꺼졌다고, 그날의 마음까지 꺼졌다고는 할 수 없을 거예요. 지금까지 여기까지 이렇게 은밀히, 은근히 퍼져 나가고 있으니까요.
“그날의 촛불이 다양한 형태로 우리들 속에서 발화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예측하지 못하는 아주 다양한 방법으로, 촛불을 이어 나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날의 만남 역시 그랬습니다. 작년, 촛불이 막 꺼졌을 때는, 예측할 수 없었던 만남. 촛불을 이어 나가는 만남. 향긋한 북살롱에서 우리는 이런 시간을 보냈습니다.
삶의 감각, 사랑의 감각을 회복하세요
‘바유’를 통해서 보여 주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나요?
“극비인 부분이라 조금만 노출을 할게요.(웃음) 지오가 한국에 가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주요한 동인 중의 하나죠. 지오가 ‘나와 쌍둥이일 수도 있는 누군가를 찾으러 가야겠어.’라고 한 말은, 나와 피를 나눈 사람을 찾겠다는 게 아니라, 나와 열 달 동안 공동체를 이루고 있던 아이를 궁금해 하는 거예요. 우리가 보통 가족이라고 말할 때, 내 피를 나눈 존재를 가족으로 수긍하죠. 이에 대해 사소하지만 중요한 문제 제기. 가족, 식구, 그리워하는 사람이라는 것은 비단 혈통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얘기를 하고 싶었어요.”
마리도 짐작하고 있듯이 내가 한국행을 결정하게 된 가장 큰 이유. 내 마음이 간절히 원한 것. 세상에 나오기 전 엄마 뱃속에서부터 공동체를 이루며 살았던 누군가가 미칠 듯이 그리웠어. 엄마 뱃속의 따뜻한 물속에서 우리가 서로를 만지고 영양분을 나누고 비밀을 얘기하고 세상을 궁금해하던 그 모든 느낌들이 내 한쪽 마음에 오래 묶여 있었나 봐.(p.353)
“공동체적인 삶을 살았다고 하는 것에는 숨결, 심장 소리를 나눈 것이 기본이겠지만, 육체를 부딪치고 존재와 존재가 서로 만날 수 있는 모든 과정을 의미하는 거예요. 마음을 나누고, 몸이 함께하고, 서로의 어깨를 나눠 주는 육체적 공유의 느낌이 있는 거죠. 사람과 관계를 맺는 데 있어, 혈통은 그다지 합리적이지도 않을뿐더러, 그다지 중요하지도 않다고 봐요. 여러 층의 비밀 중에 기본이 되는 비밀입니다.(웃음)”
저는 386세대입니다. 촛불 집회 때 시간 내서 광화문에 갔었는데, 집회가 파티처럼 가볍게 꾸려지는 데에 저는 거부감이 들었습니다. 이 소설 역시 그렇게 다뤄진 점이 아이들에게는 다가가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거부감, 새로움의 몰입, 다양한 반응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것이 자연스러운 것이고. 저는 개인적으로 참 좋았어요. 2000년대 초반까지도 ‘집회’라는 말에서 상상할 수 있었던, 미개적인 질서를 단숨에 뛰어넘은 경험이었어요.
80년대 집회장은 격렬했죠. 그 속에는 어떤 위계라는 게 있었고. ‘나를 따르라.’ 앞서 가는 사람이 있었고 얼마간 수직적인 흐름이 만연해 있었어요. 그런데 드디어 집회 장소에서, 우리가 수직적이 아닌 수평적으로 만나기 시작했다는 거죠. 소년과 소녀가 갖는 말랑말랑한 감성이 이렇게 싹을 틔우는구나!”
사람들은 지치지 않게 싸우는 법을 터득하고 있었다. 이렇게 말할 만했다, 축제가 된 싸움은 이전의 우리 역사에서 경험해 보지 못한 것이었다고.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이 즐거운 싸움에 누구는 섞이고, 누구는 구경하고, 누구는 욕하고, 어디서는 애가 태어나고, 누군가는 소집을 당하고,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거나 이별을 하는 연인들도 있을 것이다.(p.242)
“약간의 거부감이 있을 수 있는 동수와 희영의 모텔 장면이 있죠.(웃음) 신성한 과업을 수행하고 있는 투쟁의 현장에서, ‘뭐라, 사랑을 나누러 모텔로!’ 그런데 2008년에 경험한 촛불 집회에서는 그것이 허용되는 어떤 감성이 있었다는 거예요. 우리가 갖고 있는 능력이 사랑의 능력이라는 걸 발견한 거죠. ‘더 많이 사랑하세요!’라고 외치는 부분에서 저는 짜릿짜릿했거든요.(웃음) 그렇게 쓰면서 어떤 희열과 반면 고민도 있었어요. 어떤 반응이 나올까! 그런 집회 문화가 훨씬 더 많은 창조적인 영감들을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 3월의 북살롱, 『캔들 플라워』와 김선우 작가의 이야기를 마음껏 나눌 수 있는 시간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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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시를 쓰는 습작생인데, 여성성이 넘치는 시를 쓸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요. 어떻게 글을 쓰게 되셨는지, 최종 목표가 무엇인지 작가님의 시 세계를 묻고 싶습니다.
“‘관능적’이라는 말을 좋아해요. 오염되기 이전의 언어로서의 관능. 많은 언어들이 섬세하지 못해서 굉장히 더럽혀지고 있어요. 관능이라는 단어도 그래요. 사회의 건강하지 못한 규범이 강해지면서 말들의 타락이 일어난단 말이죠. 관능은 에로스예요. 생명이 생명으로 존재하는, 아주 기본적인 자기 존재성이에요. 모든 생명체는 태어나고 사랑하고 죽어요. 아주 단순화시키면 이래요. 그 과정 속에서 세분화된 많은 단계들을 거치죠. 우리에게 굉장히 중요한 사랑의 능력, 순도가 높은 생의 에너지로서의 에로스는 우리의 몸과 마음이 일으키는 문제들을 가장 솔직하고 따뜻하게 바라볼 때 발견할 수 있어요.
극단적으로 두 가지의 육체가 있어요. ‘보이는 몸’ ‘보여 주려는 몸’ 그리고 ‘소비하는 몸’. 예쁜 여자, 연예인에게 섹시하다고 찬사를 보내는 몸에는 소비의 대상인 몸이 존재하는 거죠. ‘저것은 가질 수 있고, 살 수 있고, 건들 수 있어.’라고 하는 타자화된 육체가 있는 거예요. 팔려고 내놓은 육체는 내 것이 아니죠. 몸에 대한 정직한 시선은 그것 자체로 굉장히 에로틱하고 관능적이에요. 그것이 어떤 식으로든 다양한 예술로 작업하는 일이 여전히 필요하고, 사방에 육체가 넘치지만 정말로 육체가 없는 시대에서 건강한 우리의 몸을 찾아야 돼요. 이게 자신의 삶의 감각, 사랑의 감각을 누릴 수 있는 일이에요.”
어떻게 글을 쓰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절실하게 시인이 되고 싶었어요. 20대 초반. 스물다섯이라는 시기를 건너는 일이 너무나 힘들었어요. 지금은 ‘왜 이렇게 삶을 과도하게 사랑하는 거야. 왜 이렇게 에너지가 넘치는 거야.’ 싶겠지만, 그땐 사는 게 너무 힘들었고, 삶에 대한 몰입이 소진되어 가는 청춘을 보냈어요. 내 삶에 가장 처절하게 냉소로 뭉쳐 있을 때였죠. 20대 특유의 청춘의 객기가 한몫을 했겠지만, 뭘 봐도 감동하지 않고, 시큰둥하고, 한 발짝 떨어져서 계산하고, 비아냥거리고. 거기에 결정적으로 삶의 목표라고 하는 게 그다지 만들어지지 않는 거예요.
제가 고등학교 때까지는 보여지기에는 모범적인 여학생으로 지내다가 대학 들어와서 굉장히 과격한 운동권으로 지냈어요, 졸업을 할 때쯤, 시민운동들이 퇴조기에 들어갈 때였어요. 우리들이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한 어떤 사회의 비전이 보이지 않았어요. 돈, 자본, 돈의 노예를 끊임없이 생산하고 소비되어야만 존재 가능한 사회 시스템을 보면서, 근원적인 회의에 부딪쳤죠. 그렇게 20대를 지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어느 절에 잠깐 쉬러 왔다고 들렀는데, 한 비구니가 아주 작은 나무 소반 하나를 건네주고 나갔어요. 거기에 반달빗이 하나 있었어요. 그때…… 갑자기 ‘나는 시인이 되어야겠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날의 조합들이 그날의 풍경을 이루었죠. 세상 여자의 상징인 내가 비구니들의 요사채에서 빗 하나를 발견했을 때, 왠지 나는 ‘악착같이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 거죠. 그날부터 등단하기 전까지 꿈에서도 습작을 했다고 할 정도로 습작을 했어요. 2년 동안 제가 쓴 시가, 수천 편 되었을 것 같아요. 밥 먹는 시간에도 시를 생각했던 것 같고, 2년을 오롯이 시를 생각했어요.”
글을 쓸 때 어떻게 그런 묘사가 가능한지 궁금합니다.
“글쓰기의 노하우를 나누잔 말씀이시죠?(웃음) 왕도가 없는 것 같아요. 잘 쓰기 위해서는 정말로 많이 읽어야 해요. ‘다독’ ‘다작’ ‘다상량’. 이것을 벗어나는 글쓰기 왕도는 없어요. 읽어도 읽어도 끊임없이 좋은 것이 있다는 것 때문에 신경질이 나 죽겠어요.(웃음) 하지만 그래서 정말 신나기도 하죠. 글 쓰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이미 다 있는 거예요. 좋은 텍스트를 많이 읽을수록 그것이 자기 것이 되어서 좋은 것으로 나올 가능성은 정말로 많아져요. 얼마나 자기 몸에 좋은 글들의 결이 숨어들어 있느냐에 따라 좋은 문장이 나오는 거죠.
시간과의 싸움이 필요하죠. ‘체화’라는 말이 그래서 나온 거죠. 모든 책 읽기는 사실 오독이에요. 오독을 즐거워할수록 책 읽기가 재미있어져요. 내가 가지고 있는 언어의 결들이 새로운 텍스트와 부딪치면서 스파크를 이루는 걸 즐겨야 내 문장이 탄탄해집니다. 좋은 시집, 좋은 텍스트는 오독의 틈새를 많이 주는 책이에요. 그렇게 창조적인 글 읽기가 먼저이고, 그다음에는 쓰고 또 쓰고 또 쓸 수밖에 없는 거죠. 그 인간적인 고통을 즐겨야 글쟁이라고 할 수 있겠죠.(웃음)”
마지막 인사말을 해주세요.
“여러분 정말 예뻐요. 끝.(웃음)”
이런 말들 속에서 시간은 또 아기자기하게 흘러갔다. 꽃씨처럼 영근 말들이 은빛 솜털을 단 듯 바람이 불 때마다 훅, 날아올라 수평 속으로 스몄다. 당장은 알 수 없어도 깔깔거리며 이렇게 번진 말들이 잔물결 진 수평 어딘가에 닿아서 간질거리는 잔뿌리를 새로 내밀기 시작할 것이었다.(p.367)
모두에게 사랑을 전하며.
레인보우에서 레인보우에게로.
코코돌코나기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