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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역에 초토화 된 대한민국, 송아지 고기 먹으면 야만인? - 백영옥 『스타일』

고기 권하는 사회, 별일 없습니까? - 고기는 가끔씩 툭툭, 불길에 녹은 기름을 떨어뜨렸다. 그때마다 치익, 칙칙 하는 소리를 내고 불꽃이 이글거리며 고기를 감싸안았다. 우리는 고기를 먹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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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오래전 일이다. 이탈리아가 아직 유로 대신 리라를 쓰던 시절이었다. 내가 로마에서까지 ‘정육점 식당’을 만날 줄은 몰랐다. 좋은 고기ㅡ그것이 설사 인류를 멸망으로 이끈다 해도 말이다ㅡ를 찾는 사람은 세계 어디에나 있게 마련이어서, 업자들은 고기 굽는 냄새를 피워 사람들을 끌어들인다. 그런데 한국에서 인기를 끄는 정육점 식당이 로마 외곽의 슬럼가 구석에 진을 치고 있는 걸 보고 나는 깜짝 놀랐다.

로마에 살고는 있지만 시내와 숙소만을 셔틀버스처럼 다니던 내가 맛좋은 식당을 찾아다닌다는 건 언감생심이었다. 그런 내게 스테이크 맛을 보여준 녀석의 별명은 ‘팔뚝’이었다. 운동중독증에 걸려 온몸의 글리코겐을 쥐어짜내야 비로소 행복해 하던 녀석은 온몸이 근육질이었다. 그는, 쇠고기의 근육을 그다지 사랑하지는 않았지만 육식의 광포한 체험을 그리워하던 내게 선물 하나를 안긴 것이었다.

그 식당의 입구에 있는, 붉은 형광등을 켠 고기 쇼윈도에는 동물의 시체가 적나라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사실, 슈퍼마켓의 먹음직스러운 고기는 그들이 걸어온 길을 온전히 숨긴다. 도살되고 가죽과 내장이 발라져서 다시 살코기만 부위별로 해체되기까지의 과정 따위……. 살코기는 그 길을 걸으면서 체온을 잃는다. 마치 공장 생산품처럼 얌전히 플라스틱 필름으로 포장되어 당신의 장바구니에 들어가기 전에 말이다.

쇼윈도의 시체들은 붉은 형광등 불빛에 잘려진 자신의 단면을 드러냈다. 그 단면의 기름진, 마치 대리석처럼 촘촘히 박힌 지방 입자는 유혹적이었다. 마블링이라고 부르는, 미식가들이 탐닉하는 지방은 숯불에 던져져 기름진 향을 풍기며 익어갈 것이다. 안심이며 등심 같은 부위들은 붉은빛을 뿜으며, 그로테스크하게 쇼윈도에 엎드려 있었다. 우리가 부위를 선택하고 손가락으로 가리키면, 푸른빛이 돌도록 잘 벼린 칼을 든 요리사가 살점을 베어낼 채비를 하고 있었다. ‘팔뚝’과 나는 아마도 등심 부위를 선택한 것 같다. 그 고기는 보기에도 묵직해 보였다. 요리사가 고기를 저울에 달고, 곧바로 숯불이 이글거리는 그릴에 던져넣었다. 고기는 가끔씩 툭툭, 불길에 녹은 기름을 떨어뜨렸다. 그때마다 치익, 칙칙 하는 소리를 내고 불꽃이 이글거리며 고기를 감싸안았다. 우리는 고기를 먹게 될 것이다.

사람은 왜 고기를 먹는 것일까. 원시 시대 이후 금지된 카니발리즘의 욕망을 우회적으로 실현하는 것일까. 나는 입술에 기름이 묻어 번들거리는, 고기 먹는 사내들의 모습을 떠올렸고, 조금 식욕을 잃었다.

로마 사람들이 ‘비스테카’라고 부르는 이 고깃덩어리 구이는, 영어로 부르면 그 미감이 더 살아난다. 특히 ‘스테잌’이라고 ‘스s’ 자를 약하게 발음하고 재빨리 혀를 휘감아 막아버리는 미국식 영어로 발음하면 더 그럴듯해진다. 원래 어떤 이름들은 발음하기에 따라 그 화학적 특성까지 완전히 변해버리는 것처럼 여겨질 때도 있다. 기억해 보니, 올리브오일을 ‘얼리브 어여’라고 부르던 손님이 있었다. 내가 일하던 식당의 봉사원들은ㅡ내가 굳이 서버라고 기록하지 않는 것에 불만을 갖지는 마시라ㅡ알아듣지 못했다. 그는 다시 활명수처럼 명료한 한국어 발음으로, “올리브유도 몰라요?”라고 짜증 섞인 말을 뱉었다. 올리브오일이 ‘얼리브 어여’라고 발음되는 순간, 언어의 정체성이 달라졌다고 느꼈다. 모든 명사는 발음하는 주인에 따라 서로 다른 유전자를 얻는다. 그건, 진리다.

‘팔뚝’은 고기를 썰었다. 고기는 잘리면서 피처럼 붉은 육즙을 접시에 흘렸다. ‘팔뚝’은 그 육즙까지 빵에 적셔 남김없이 먹었다. 헤모글로빈 냄새가 났다.

나는 숯불 지옥 속의 요리사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땀으로 소금 간을 해가며 고기를 뒤집는 모습이, 매캐한 연기 속에서 실루엣처럼 비쳤다. 그릴을 담당하는 요리사들은 폐를 고문한다. 고기에 가득찬 기름은 구우면 불꽃 속으로 녹아 떨어진다. 그 기름은 순식간에 연기로 변해 요리사의 폐에 페인트를 칠하듯 들러붙는다. 어쨌든 손님들은 고기를 먹고, 그들은 폐를 학대한다.

숙성이 안 된 소를 ‘신선하다’고 말하는 것만큼 끔찍한 범죄는 없다. 소는 신선한 게 미덕인 샐러드가 아니다. 분명히 말하지만 생선조차 그렇다. (중략) 건강하게 숙성된 소는 적당히 부드럽고, 무엇보다 적당히 질기다. 입에서 살살 녹는 부드러운 스테이크는 말하건대 건강한 소가 아니다.

- 『스타일』 중에서

식당 사장들은 스테이크를 많이 팔려고 한다. 그것이 신선해서 미덕이 있든 숙성되어 입에서 살살 녹든 말이다. 누가 내게 ‘스테이크는 미래 세대로부터 빼앗아 먹는 이기적인 요리’라고 비난한다면 나는 수긍한다. 그러나 어쨌든 내 월급은 식당 사장이 주고, 손님들은 오르가즘처럼 짜릿한 스테이크를 원한다. 나는 손에 피를 묻힌다.

장사꾼이 천국에 들어가는 건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처럼 어렵다는 말은 진실이다. 그렇더라도 요리사는 스테이크를 잘 팔아서 장사를 잘해야 한다. 나는 스테이크로 손님들을 들었다 놨다 하는 법을 안다. 갓 잡아서 아직 단백질 분해가 일어나지 않은 고기는 질기다. 그러면 나는 ‘신선하다’고 호들갑을 떨면 된다. “갓 들어온 고기를 올릴깝쇼?” 하고 눙치면 되는 것이다. 이발사의 면도칼에 턱밑을 내주는 것은 이발사의 흰 가운 때문인지도 모른다. 흰 가운은 신뢰의 상징 아니던가. 나는 요리사이고 흰 가운을 입었으니 그럴 자격이 있는 셈이다.

오래 묵은 고기는 단백질의 결합 끈이 느슨해져서 칼만 대면 스르르 무너진다. 나는 ‘신선’ 대신 ‘숙성’을 판다. 손님들은 숙성이라는 말에 무한한 신뢰를 보낸다. 숙성은 시간의 경과를 의미하므로 변질과 숙성은 깻잎 한 장 차이만큼의 아슬아슬한 간격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나는 고기를 굽는다. 그것은 요리사의 숙명과 같은 것이라고 나는 변명한다. 아마존의 밀림이 초지를 만들려는 불도저의 삽날에 무너지든, 항생제와 성장호르몬이 마블링처럼 고기 속에 촘촘히 박혀 있든 말이다.

스테이크에 대한 집요한 시선은 송아지 고기에 꽂히기도 한다. ‘어린 것’의 연한 육질에 대한 탐닉은 서양에서 일찍이 있어 왔다. 송아지 고기는 연한 분홍빛을 띤다. 어떤 미국의 생산업자는 송아지 먹이에 철분이 들어가지 않도록 제한한다. 송아지 고기가 더 연하고 부드러우며 분홍빛을 잃지 않도록 ‘배려’하는 것이다. 송아지 고기란, 송아지에겐 천형과도 같은 순간의 선택에 의해 결정된다. 즉, 젖을 짤 수 없는 수놈 젖소에게 닥치는 도살의 운명이다.

우리나라는, 고기를 위해 송아지를 도살하지는 못하도록 되어 있다. 뭐, 윤리적인 이유는 아니다. 송아지를 먹게 되면, 쇠고기 수급이 원활하지 않을까봐 걱정하는 까닭일 것이다.

도시 생활을 하는 우리가 먹을거리에 대해 일으키는 착각은 종종 심각한데, 그중에 하나는 젖소는 ‘암소’를 뜻한다는 사실이다. 얼룩송아지가 모두 젖소가 되는 건 아니라는 얘기다. 그러면 마치 젖소인 척 위장하고 있지만, 천부적으로 젖을 못 만들어내는 수컷은 도대체 무슨 쓸모가 있냔 말이다. 그래서 한때 서양의 축산물 연구자들은 가능한 암소만을 잉태하는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땀을 흘리기도 했다. 그들이 진작 한국에 물었다면 해결이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태아 성감별은 정말이지 한국이 한때 최고였지 않은가.

어쨌든 암소로 태어나지 못한 불행한 수소들은 실리콘이나 식염수팩으로 주인들을 속이지 않는 한, 긴 수명을 보장받지 못한다. 한국에서는 그나마 2년 정도 길러진 후 육우라는 이름으로 도살되고 얌전히 스티로폼 팩에 래핑되어 슈퍼마켓에 진열되지만, 서양에서는 3~6개월이면 이미 최후를 맞는다. 송아지 고기를 즐기는 관습 때문이다. 그러니까 암소는 젖을 짤 수 있도록 남겨두고, 수컷은 길러봐야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으니 곧바로 고기가 된다는 거다. 아, 그렇다고 특별히 “송아지 고기를 먹다니! 야만인”이라거나 불쌍하다고 눈물지을 필요는 없다. 2년에 죽거나 2개월에 죽거나, 30년 이상을 사는 소의 수명에 한참 못 미친다는 사실은 비슷하지 않은가. <워낭소리>의 소만큼 오랜 수명을 보장받는 소는, 이제 적어도 우리에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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