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은, 클래식이건 뽕짝이건 상관없이, 참으로 사적인 경험이다. ‘이건 내 음악이야, 내 노래야.’ 했던 경험들, 누구에게나 있는 그런 것. 사람들은 음악을 통해, 노래를 통해, 숨을 쉬고, 공감하며, 나와 같은 누군가가 있음에 안도한다. 물론 아니라도 좋다. 음악은 그저 친구다. 함께 있으면 좋은 친구. 누구나 일상을 살기에, 사람 사는 것, 그다지 다르진 않다. 우리는 어쩌면, 버티고 견딜 뿐이다. 그 와중에 음악이 있다.
건강의 3대 필수 요소. 맑은 공기, 깨끗한 물, 나머지 하나가 노래 부르기란다. 맑은 공기와 깨끗한 물은 글쎄, 도시에서는 아무래도 쉽지는 않다. 물론 돈 많은 이들이야 이런 것들도 화폐와의 거래를 통해 쉽게 얻을 터이지만. 그렇다면 가능한 것은 노래 부르기. 누군가의 노래를 따라 부르기. 흥얼거리기.
노래를 한다. 나는 그것이 참 개인적이면서도,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사회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노래를 ‘잘’하는 사람은 그래서 부럽다. 앨범을 내고, 그것으로 사람들과 만나고 교감하고. 자기 목소리로 누군가와 소통할 수 있다는 사실, 많이 부럽다. 어디 글에선가, 노래는 예술가가 성취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란다. 물론 철저한 상업적 기획에 의해 공산품처럼 생산된 노래는 뭔가 영혼이 빠진 듯해서 왠지 시시하지만.
노래를 듣자면, 그 사람이 보이기도 한다. ‘에브리씽’이 아니라도, ‘어 리틀 빗’이라도 좋다. 특히나 나와 어떤 공감, 특정 교감이 이뤄질 때, 그 노래는 ‘베스트’다.
지은, 신고선수가 되다
여기 누군가에겐 ‘베스트’로 꼽히는 가수가 있다. 약간 과장하자면, 그런 가수 또 없다고 말해도 돌 날아올 확률이 높지 않은. 유희열의 표현을 빌리자면, ‘홍대 인디신의 여왕’ 오지은이다. 한 친구는, 그의 1집을 놓고 이렇게 말했다. “머리가 띵해지면서 아득해지는 소리를 만난다. 정신과 육체가 잘 아울려 있다고나 할까.”
그래, 먼저 1집
<지은>부터 얘기하고 가야겠다. 이 음반은 음악(성)부터 유통방식까지 독특했다. 야구로 말하자면, 그는 ‘신고선수’랄까. 어디에서도 불러주지 않아 직접 구단을 찾아가 테스트를 받은 경우. 혹은 자력갱생이라는 말이 어울릴까.
오지은은 음반을 내고 싶었다. 그러나 음반 제작에 필요한 돈이 없었다. 누구 하나 그를 위해 음반을 제작해줄 사람도 없었다. 무턱대고 저질렀다. 인터넷을 통해 ‘선주문?선입금’을 받았다. 말하자면, ‘내 음악 살 사람, 손들고, 돈을 내.’ 그렇게 모인 돈이 186만 원하고 6달러. 참, 6달러는 뭐였냐고?
“해외에 살고 있는 한 학생이 자필 편지를 보냈다. 6달러를 동봉해서. 맨 처음 가격이 7,000원이었다. EP(Extended Play, 싱글 음반과 정규 음반의 중간에 위치하는, 일종의 비정규음반)를 생각해서 책정했는데, 결국 정규 음반이 됐다. 돈을 더 내라고 하기도 뭣하고, 미국에 돈을 더 들여서 음반을 보냈다. 하지만 나는 그 돈보다 더 큰 마음을 받아서 정말 기뻤다.”
그런 음반이 나오자, 입소문을 탔다. 5,000여 장이 나갔다. 자립형 인디 DIY음반의 깜놀(깜짝 놀랄 만한) 성과였다. 야구로 말하자면, 싱글 홈런. 영화로 말하자면, 인디영화관에 걸릴까 말까 고민하고 있는데, 와이드 릴리즈된. 독특한 음색도 그렇지만, 그의 노랫말과 감수성은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특히 20대 여성들은 ‘내 얘기야.’라면서 환호했다. 노래와 삶이 일치하는 듯한 느낌. 혹자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는 ‘신개념탑재 싱어송라이터’ 혹은 ‘자아충만보컬’.
스스로도 놀랐다.
“듣는 사람에 대한 고려 없이 한 일종의 실험이잖나. 100% 심하게 내 얘기를 했는데, 반응을 보고선 되게 놀랐다. 세상에 허락받은 느낌이랄까. 아싸, 이렇게도 되는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 아마 이런 선례도 없을 거다. 그래도 되게 힘들다. 그런 걸로 화제가 되는 것도 원치 않았다. 필요에 의해 하면 모를까. 다시 돈이 없으면 이렇게 할 수도 있겠지만, 다시 하는 것은……. (웃음) 뮤지션은 돈이나 그런 것에 구애받지 않고 음악을 하는 것이 제일 좋다.” DIY가 좋은 점도 많았지만, 기적이지만, 그게 다는 아니었다는 것.
지은, 적시타를 날리다
2집은 그래서 레이블과 계약을 통해 냈다. 물론 일체의 간섭 없이. 누가 감히 버럭! 계약하기 전에 작업한 음악들로 1집과 마찬가지로 멋대로 만들었다. 그는 무엇보다 이런 계기를 만들어 준 리스너(listener)들에게 무한 감사를 표한다.
“사람들이 CD를 사지 않아서 음반계가 안 된다는 말을 싫어한다. 그건 곧 리스너를 폄하하는 말이잖나. 리스너들 덕분에 음반을 내고 생계를 잇고, 가능성을 봤다. 2집을 낼 수 있었던 원동력도 바로 그들이다.” 정식으로 그라운드에 설 수 있었던 것은 실력을 인정한 관중들의 열띤 응원 덕분. 신고선수의 적시타, 그리고 신화(?)의 시작.
무엇보다 그 응원은 정곡을 찌름이 있기에 가능했다. 너와 내가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구나. 우린 그렇게 서로 교감하고 있구나.
“그날그날 있었던 일을 적는다. 심할 정도로 내 얘기가 많다. 생각나는 것들을 휴대폰 메모에도 적고, 수첩에 적기도 하고. 영수증 뒤에도 적는다. (웃음) 기록을 위한 기록이 되는 것은 싫다. 조금씩 그렇게 기록했다가 작업을 할 때, 그때의 감정을 떠올리면서 덧붙이곤 한다. 1집 타이틀곡은 자려고 누웠다가 가사랑 곡을 바로 쓴 경우다.”
그의 앨범이 일기장 같은 노래들로 채워진 이유다. 2년이 흐른 뒤, 지난 4월에 발매된 2집 음반도 마찬가지다. 어쿠스틱 기타와 건반을 중심으로 한 1집에 비해, 사운드가 확연히 강화됐지만, ‘지은스러움’은 여전하다. 음반 타이틀도
<지은>으로 똑같다. 여지없이 자신의 이야기면서, 또래의 여성들 혹은 청춘이 품음직한 감정들로 충만하다.
1집이 품은 날것 그대로에 비해 못내 아쉬움을 품은 사람도 있겠지만, 2집의 진화에 더욱 반가움을 표하는 사람도 있다. 더구나 타인과 세상과 교감하는 세계가 구축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는 곡들도 있다. 「인생론」「작은 자유」와 같은 곡을 듣다보면 그렇다. 그렇다면 그의 인생론은 어떤 색깔을 지니고 있을까.
“살다보니 알게 됐다. 인생은 어떻게든 꼬이기 마련이더라. 아무리 열심히 해도, 친구끼리도 꼬이는데, 다른 사람과 오죽하겠나. 그래서 사람들에게 상냥하게, 뚱하게 있지 않고, 함께 있는 사람들과 즐겁고 싶다. 그들로부터 위로를 받은 만큼 주고 싶고. 20대가 끝나가면서 다짐한 것이, ‘사람에게 상냥하게 대하자’다. (웃음) 「인생론」은 주변 사람들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시기에 ‘나는 왜 이럴까?’ 하면서 쓰게 됐다.”
그러니까,
“어차피 완벽히는 할 수 없으니 요만큼만 뻥튀기는 하지 말자 그냥 나의 몸집대로 아는 만큼만 말하고 모르는 건 배우면 되지(2집 「인생론」 중에서)”. 특히나 그가 궁핍한 시절을 거쳐 깨달은 그것. ‘헛된 욕구를 가지지 말자.’
20대 초반, 그는 사고 싶은 물건을 사지 못하면 잠을 못 잘 정도였단다. 그랬던 그가, 경제적인 곤궁함에 시달리면서 생각을 많이 하게 됐고, 기름기를 쫙 뺐다.
“일본에 유학 갔다가, 빚을 지게 되면서 된통 뒤집어쓰는 통에 고생을 많이 했다. 교통비를 아끼기 위해 40분~1시간 걷는 것은 예사였고, 사치품 구입은 2~3년 동안 제로였다. 소비 습관이나 인생관이 바뀌게 된 계기였다. 좋은 인생 경험이었던 셈이다.”
지은, 용병술의 귀재
음악도 자신의 깊은 곳에서 자연스레 뛰쳐나왔다. 사실 일본에 간 것도 음악과 작별하기로 한 직후였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시작한 음악이었다. 간절히 원했다기보다 자연스럽게 하고 있었다.
“내 (음악) 언어도 없는 상태에서 하고 있었는데, 답보 상태인 거다. 7~8년이 돼도 답이 안 나왔다. 결국 ‘나는 음악 하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생각하고 일본으로 떠났다. 그렇게 지내다 보니 곡이 스르륵 나왔다. 1집에 있는 「작은 방」이 일본에서 첫 번째 쓴 곡이다. 한국에 돌아오면서 본격적으로 곡을 쓰기 시작했다. 음악을 안 하고 사니까 어색하더라. 자연스럽게 음악이 나오기까지 얼추 10년이 걸린 셈이다. 10년은 곡을 쓰기까지의 고민이었던 셈이고.”
그러니까 야구 유망주가 갑작스레 회의를 품고, 도피성 유학을 떠났다가 자신의 길을 되찾은 경우라고 얘기하면 될까. 막상 떠나고 보니, 막 좀이 쑤셨던 거지. 그의 노래도 이 같은 자연스러운 마음의 흐름과 궤를 같이 한다. 기존의 다른 뮤지션들과는 다른 노래가 나올 수 있었던 이유.
“노래도 끼워 맞춘 것이 아니고 자연스럽게 나온 거다. 내가 해야 하는 음악이 그런 음악이라고 생각한다. (음악을) 만들어야지 작정하고 하면 뒤틀린다. 내면의 흐름에 맡기는 음악을 당분간 하게 될 것 같다. 아마 음악학교를 다녔으면 정형화된 방식으로 나왔을 것이다.”
2집은 1집과 비슷한 맥락에 있으면서도 자신을 변주하고 있다. 그것은 당연히 1집을 만들 때의 그와 2집을 만들 때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을 켜켜이 쌓고 있다. 그는 소설, 미술, 음악, 영화 등 다른 장르의 창작자들에 대한 인터뷰를 유심히 본다. 어떻게 하면 이런 작품들이 나왔나, 그 창작의 비밀이 궁금하단다. 그만한 분석 깜냥은 아니라지만, 그는 기본적으로 호기심이 많고 창작욕이 들끓는 뮤지션이다. 뭐든 재미가 있어야 제 맛이라고 생각하고.
2집은 그런 면에서 재미있는 협업 작업이었다.
“(음반이) 갈 방향으로 잘 간 것 같다. 스스로 만족한다. 다른 사람들의 도움이 많았는데, 사공이 많아도 산으로 가지 않아서 좋다. (웃음) 디어 클라우드의 기타 ‘용린’과 같이한 트랙은 1시간 만에 끝냈다. 나도 만족하고 저쪽도 만족하는 지점을 찾았다. 타이틀곡인 「날 사랑하는 게 아니고」는 MOT의 이언과 한 달 동안 메신저 등을 통해서 음악 파일을 주고받으면서 합일지점을 만들었다.” ‘장기하와 얼굴들’의 베이스를 맡고 있는 정중엽도 그를 빛내주는 세션이다.
그의 표현으로는 이건, WBC에서의 김인식 감독의 용병술. 적절하게 어울릴 법한 선수들을 직감적으로 선택했고, 그것이 주효했다.
“좋아하는 음악인들과 같이할 수 있었던 것이 영광이고 정말 좋았다.” 더구나, 이런 재미있는 작업이 선배 음악인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에 그는 꿈인가, 생시인가, 마법 같은 순간이라고 황홀해 한다. 유희열은 그를 ‘홍대 여왕’이라고 부르고, ‘언니네이발관’의 이석원은 올해 발매된 음반 중 오지은 2집이 최고라고 치켜세웠다.
그러니까, 오지은이 음악을 계속하지 않았으면 어쩔 뻔했나. 휴~ 안도의 한숨을 쓸어내려도 좋다.
지은, 평범함에서 길어 올리는 음악
오지은은 어느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평범한 일상의 사람들이 일상의 배경음악으로 자신의 음악을 들어줬으면 좋겠다고. 그에겐 평범함이 가장 소중한 가치다. 그는 또한 그런 평범함을 지키고 유지하는 것이 힘듦을 안다.
“미디어에서는 김연아의 삶이 여느 회사원의 삶보다 중요한 듯 다뤄지는데, 그건 아니다. 각자의 인생이 있고, 각자 머릿속의 엄청난 생각을 다른 사람들도 다 갖고 있지 않나. 그렇지 않아도 인생이 괴로운데, 보통 사람들이 내 노래를 듣고 안식이나 휴식, 감정을 다스릴 수 있는 효용을 얻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도 직장 생활을 해 봤는데, 음악, 소설 등 예술작품이 주는 효용이 있었다. 그걸 주고받을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여느 보통의 존재는 그렇다. 이타적이기도 한 동시에 이기적인. 우리는 각개 동떨어진 존재가 아니다. 그런 평범함이 한데 엮여 우리 사회 전체를 만든다. 그리고 어떤 창작자들은 이런 사회를 조망하거나 엮어서 서사를 만든다. 가장 보통의 존재에 감응하는 재능이다. 그 재능.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감정이입의 능력이 있어야 하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사고도 갖춰야 한다. 중국이 억압한 티베트에 대해 노래한 「작은 자유」를 듣자면, 그는 분명 그런 재능이 있다.
그의 노래가 사적이라지만 그것이 그의 안에서만 침잠하지 않는다. 1집과 비교해도 그렇다.
“조금 더 철이 든 것 같다. 시선이 바깥으로 가고 있다고 느낀다. 나도 어떤 방향인지는 몰라도 그 시점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감정에 맡겨서 음악 작업도 계속할 거다. 3집은 그래서 나도 모른다.”
때로 그의 노래는 푸르름이다. 일관성이 떨어지는 대목도 있지만, 그래도 그는 그것이 자연스럽다.
“(이번 앨범의) 5번에서 7번 트랙이 뜬금없거나 음악적으로 떨어진다는 얘기도 있지만, 개의치 않는다. 나의 우울을 극대화하는 건 어떤 종류의 거짓말 같다. 사람이 늘 우울한 것도 아니고, 그러다가 시시덕거릴 수도 있지 않나. 자기 우울에 파고들지 않고 빠져나올 수 있었다는 것도 중요하다. 현재의 나는 ‘(음악적) 설정’에 대해서는 거부감이 있다. 좀더 원숙한 음악가가 되면 그게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말하자면, 까르페디엠(Carpe Diem). 자신의 얘기를 한다는 큰 울타리 안에서 여러 개의 톤을 지닌 자신을 상황에 맞게 드러내는 것. 지금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하는 그다. 그럼에도 그는 상승 욕구가 없다고 말한다.
“상승에는 끝이 없는 것 같다. 30평 아파트를 마련하면 40평이 욕심나고, 40평을 가지면 100평을 욕심내고 또 이것이 충족되면 여러 채를 가지려고 하잖나. 목이 마른 상태라고 그런 거다. 나는 지금 목이 마르지 않고, 계속 목이 마르지 않은 상태로 있고 싶다.”
어찌 보면 생경한, 욕망을 제어하려는 이 이십 대 여성의 태도는 대체 어디서 나온 걸까. 아까 언급과 같이 경제적 궁핍이 안겨 준 고민의 산물이기도 하지만, 그는 한 권의 책을 든다. 숭산 대선사의 가르침(설법)을 벽안의 현각 스님이 엮은
『선의 나침반』.
“극도로 우울할 때 읽은 책이다. 숭산 대선사의 큰 뜻을 얼마나 알았는지 모르겠지만, 분명 영향이 컸다. ‘오직 모를 뿐’이라는 설법이 크게 와 닿았다. 모르는 상태도 괜찮다는 것. 자신에 대한 긍정을 알려줬다. 상황을 지배하려는 건 오만임을 가르쳐줬고, 나를 구렁텅이에서 꺼내준 책이다.”
지은, 무정형의 사람
그는 정해지는 걸 두려워한다. ‘나는 이런 이런 사람이다.’라고 규정하는 그런 것 말이다. 몇 년 지나면 달라질 수도 있고, 한계를 만드는 것일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일까. 곡을 만들 때는 이성이 개입하지도 않고, 음반을 만들 때는 책이나 영화, 음악을 듣지도 않고 보지도 않는단다. 음반이 나오고 나서야 그는 모든 것을 즐겁게 흡수한다. 자연스럽지 않은 상황을 경계하는 것.
음악에도 그래서 전면에 메시지를 드러내고 싶지 않다. 팩트만 얘기하면서 세상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던지는.
“사회나 정치에 관심이 많지만, 의견이 달라도 나쁜 것은 아니다. 내부에서 생각이 익어가야지, 외부에서의 계몽은 좋지 않다고 본다. 노래로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싶지 않다.”
그는 바보 같은 여행도 선호한다. 그날 나의 상태와 마음에 따라 발걸음을 옮기는 그런 여행. 나를 찾아서 떠나는 여행, 같은 명분은 위험하다. 못 찾으면 어쩔 것인가. 여행은 그저 여행. 뭔가를 꼭 얻겠다는 생각보다 그것 자체로의 즐김. 돌아오는 순간에 느끼는, ‘그래도 파이팅하면서 살아봐야지.’ 하는 그런 느낌이 좋다. 자신의 음악을 듣는 사람들도 그랬으면 좋겠단다. 일상의 정형을 벗어나는 순간을 만끽하게 되길.
그렇다면 3집을 벌써 꺼내 들어도 될까. 역시나 그는 아직 모른다. 그러면서도 정규 음반이 아닌, 생각지도 못한 것을 하지 않을까 싶다.
“잠깐 오지은이 아닌 무엇을, 자기 복제나 자기 소모를 안 하기 위해서 좀더 즐겁게 하고 싶다. 1~2집은 슬픈 얘기가 많아서 무대 위에서 운 적도 있는데, 새로운 작업을 한다면 무대에서 즐길 수 있는 그런 것을 하고 싶다.”
참, 잊지 않고 얘기해야겠다. 그는 번역 일도 한다.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선 알려진 작품인
『커피 한 잔 더』. 현재 2권까지 나왔는데, 커피 한 잔에 담긴 우리네 사람살이를 맛깔 나게 담은 작품이다.
“무척 좋은 작품이라 번역에 아쉬움을 갖고 있다. 번역일은 명예직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좋은 작품을 번역하게 돼서 명예롭기도 하고.” 따뜻한 감성이 돋보이는 SF만화인
『토성 맨션』도 그가 번역했다.
오지은은 여전히 실험 중이며 전진하고 있다. 완결형이 아니다. ‘홍대 인디신의 여왕’이라는 수사에 압도당할 필요는 없다. 그저 그의 음악이 당신과 매칭된다면 좋은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다른 음악을 찾으면 그만일 터. 그럼에도 상냥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그의 말은 자연 곱씹게 된다. 그는 상냥한 사람을 이렇게 표현했다.
“사근사근한 그런 것이 아니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그런 사람이다. 친구나 주변 사람한테 구원받은 적이 많다. 밥도 사주고, 자고 가라고도 그러고. 정말 무척 많은 위로를 받았다. 멋진 친구, 언니, 오빠들로부터. 그런 보살핌이 지금의 나를 세운 것이다.”
그의 노래가 어쩌면 발레리나의 발 같은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모든 걸 내던지면서 타인과 교감할 수 있는 그런 마음이 담긴 노래. 그는 기교 부리지 않고 노래를 참 자유롭게 부른다. 그것도 마음을 드러내면서. 재능이 세상을 섬기게 될 때 그 가치는 더욱 돋보이게 마련이다. 그의 사적인 마음은 세상과 연대하기에 마냥 개인만의 것이 아니다. 자기 욕망에의 실현에 천착하지 않는 그의 마음 때문에라도, 나는 그의 노래가 세상을 덜 슬프게 만들어주지 않을까 기대한다.
물론 그는 큰 야심을 갖고 있지 않다고 했다. 그럼에도 나는 그가 야심가라고 해야겠다. 김혜리 씨네21 편집위원의 말을 빌려. 어떤 지위를 확보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탁월한 뮤지션이 되는 일이 점지된 운명이자 소명임을 의심치 않는다는 의미에서 야심가다. 좋은 예술가는 찬사까지 이겨내고 살아남아야 한다는 사실. 그가 찬사에 짓눌리지 않는 상냥한 사람이 되길 나는, 바랐다. 그리고 흥얼거렸다.
“착한 사람이 되고 싶어/매일 내가 되고 싶어/웃을 때 이빨이 8개가 보이도록/친구가 되어준 너에게/나를 좋아라해 준 너에게/연락은 자주 못하더라도 사랑해요♪” 응? 나도 그러고 싶어. 착한 사람. 상냥한 사람. 참, 이 상냥한 사람(의 노래)을 만나고 싶다면, 31일 마포에서 열리는 그의 단독 공연을 찾으시라. 아마, 후회는 않을 거다.
p.s.
오지은의 속살(?)을, 오지은이 기뻐하고 푸념하는 풍경을 만나고 싶다면, 지은닷컴(
www.ji-eun.com)을 권한다. 나는 오지은을 만나기 전, 그곳을 둘러보며 괜히 미안했다. 그가 좋아하는 것, 외출 안 하기. 본의 아니게 좋아하는 것을 못하게 만든 죄 때문에. 그리고, 해 보니까 이건 딱이다.
<지은>을 들으면서
『커피 한 잔 더』를 읽으며 마시는 드립 커피 한잔. 완전 딱이다. 정말이다. 해 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