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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책 人터뷰]감독 원태연의 감성적인 스토리, 슬픔보다 더 슬픈 이야기

감성적 시인의 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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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태연, 내가 아는 그는 아주 감성적인 시인이었다. 사랑에 빠지면 유행가 가사가 모두 내 이야기처럼 느껴지듯 그의 시가 그랬다. 연애만 할라치면 유독 심적으로 다가와서 마음을 울렸다.

원태연, 내가 아는 그는 아주 감성적인 시인이었다. 사랑에 빠지면 유행가 가사가 모두 내 이야기처럼 느껴지듯 그의 시가 그랬다. 연애만 할라치면 유독 심적으로 다가와서 마음을 울렸다. 하지만 그 사랑이 끝나고 홀로 남았을 때 그 낯간지러운 시를 대하노라면 그토록 유치(!)할 수가 없다. 『넌 가끔가다 내 생각을 하지 난 가끔가다 딴생각을 해』 『손끝으로 원을 그려봐 네가 그릴 수 있는 한 크게 그걸 뺀 만큼 널 사랑해』라는 시집의 제목만 봐도 그렇다. 그러고 보면 감성적이란, 연애와 비슷한 것 같다. 그래서일까? 오래전에 떠나보낸 이름도 가물거리는 옛사랑을 추억하며 ‘아, 그땐 좀 유치했었지?’라는 생각이 드는 것처럼, 오랜만에 그의 이름을 듣게 되었을 때 감성적이라는 생각보다는 ‘아, 그 좀 낯간지러운 시를 쓰는….’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겐 그런 느낌의 그가 이번엔 시가 아닌 소설과 영화로 우리 앞에 섰다. 여전히 감성적인 제목의 『슬픔보다 더 슬픈 이야기』란 타이틀로 말이다.

연기자들의 과하지 않고 은근하게 우러나오는 슬픔에 감동!

영화보다 소설을 먼저 읽게 된 나는, 사실 소설에 대해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굳이 핑계를 대자면 난 이제 나이를 먹었고, 연애 중이 아니며, 이런 이야기쯤에 감동을 받기엔 세상을 너무 많이 알아버렸고, 에, 또…. 뭐 이런 같잖은 핑계를 댈 수 있겠지만 아무튼 그런 기분이었다. 그래서 영화마저 그다지(!) 기대를 하지 않고 시사회를 보러 갔었다.



 

기대를 하지 않은 덕분이었을까? <슬픔보다 더 슬픈 이야기>는 뻔한 스토리였지만 텍스트에서 느꼈던 그 유치함이 영상에선 꽤 멋지게 살아났다. 이미 스토리를 알고 있는 데다 반전이라면 반전일 내용까지 다 알고 있는 상황이라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있었지만, 이보영의 이야기에선 그녀, 크림의 마음을 알고 있기에 그만 참지 못하고 살짝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더구나 슬픈 스토리였음에도 연기자 모두 과하지 않는 연기 실력으로 은근하게 우러나오는 슬픔이 영화를 돋보이게 했다. 애인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애인을 생각하며 ‘내가 과연 케이라면, 크림이라면?’ 하고 고민하게 할 것이고, 애인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같이 영화를 본 친구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거리를 만들어주는 것 같다. 감독인 원태연 역시 그걸 바랐다고 하니 감독 데뷔 첫 작품치곤 썩 괜찮았다는 생각이 든다.

시사회가 끝난 후 작가이자 감독인 원태연과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있었다. 사진으로만 봤던 그가 나왔는데 시에서 느꼈던 그 여린 감성이라곤 눈을 닦고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시를 쓰는 사람치곤 체격이 꽤 좋은 분이었다.(체격 좋은 사람은 시 쓰지 말란 법도 없는데 말이다.) 이런 분이 낯간지러운(!) 시를 썼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알고 보니 원태연 감독은 체육학과를 나왔다고 한다. 사격선수까지 했던 그는 “체육학과를 나왔기 때문에 시를 쓸 수 없다는 것은 생각의 차이다. 나는 지구력이 없는 편이다. 그러나 운동을 하면서 나와 싸우는 방법, 나를 찾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도 체육학과 학생이 시를 썼다고 하면 다들 의아해한다.”고 했다. 그는 누나들 덕분에 여자의 마음을 잘 알아 감성적인 글을 쓸 수 있었던 것 같다고 홈페이지에 적기도 했다.


어느 독자가 『사랑해요 당신이 나를 생각하지 않는 시간에도』에 나오는 「참 예쁜 우리 채연이」를 군대에 있을 때 감명 깊게 읽었다고 하자 “참 좋아하는 단편”이라고 했다. 이어 중고등학교 때 읽은 책 중에 『사랑의 톓험수기』라는 책이 있었다며 지금 그의 시집처럼 많은 사람이 읽었다고 한다.(사실 비슷한 세대라면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때 읽은 이야기 중 폐결핵에 걸려 시골로 요양 온 한 여자의 이야기가 있었는데 마음에 많이 와 닿았다. 첫 단편을 쓸 때 유독 그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렇게 해서 나온 단편이 바로 「참 예쁜 우리 채연이」이다. 그런 의미에서 좋아하는 단편이기도 한데 제목을 기억해주는 분이 있어 고맙다고 했다.

그는 등단한 시인이 아니다. 출판사에서 일을 하며 첫 시집을 냈는데 150만 부라는 판매 부수를 올리고도 인세 계약을 하지 않아 계약금조차 받지 못했다. 그땐 시집을 내고 싶어 하던 사람들이 많았고 돈보다는 본인의 이름으로 된 시집을 펴내는 게 더 좋았기 때문에 그런 것은 상관없었단다. 그러나 등단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아직도 시인으로서 인정을 받지 못한다고 한다. 그런 까닭에 이제 “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좀 지겹다.”고 말한 기사를 읽었는데 시집으로 베스트셀러를 내고도 시인으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은 감성적이든 아니든 본인에게는 충분히 상처가 되고도 남았을 것 같다.


하지만, 그의 감성적인 글은 시뿐만 아니라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많은 가수들의 노래 속에서도 등장한다. 박명수의 사랑 이야기를 듣고 「바보에게 바보가」를 작사했으며 성시경의 「안녕」, 장나라의 「눈물에 얼굴을 묻는다」와 이문세, 솔리드, 김민종 등 많은 가수들의 노래에 작사를 했다. 또한, 군대를 제대한 후에는 시나리오 작업을 2년 정도 하였고, 하다 보니 욕심이 나서 결국 이번 영화 <슬픔보다 더 슬픈 이야기>의 감독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글이랑 영화는 다르다. 같은 주제이지만 책에선 가능한데 영화엔 표현하지 못하고 또 그 반대인 경우도 있다. 영화를 시작하고 케이 역을 맡았던 권상우가 소설하고 영화하고 뭐가 다른지 물었단다. 그는 “소설은 소설이고 영화는 영화다.”라고 대답을 했다며 웃었는데 그가 생각하는 영화는 영화처럼 표현하고, 소설은 소설처럼, 작사는 작사처럼 그 나름대로 표현하는 게 맞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말했다고 했다.

감독은 욕심 나는 일, 기회가 된다면 또 해보고 싶은 직업

많은 사람이 <슬픔보다 더 슬픈 이야기>가 누군가의 경험담이 아닌지 궁금해 했다. 하지만 아니라고 한다. 시나리오 작가와 같이 집필했으며 이런 이야길 나눌 수 있었던 것은 예전에 그의 팬이었던 사람이 3년 동안, 주로 사랑에 관한 글을 써서 보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연락을 끊었다고 한다. 1년쯤 지나고 나서 그의 친구라며 메일이 왔는데 “원태연 시인은 알아야 할 것 같다.”며 팬이었던 그 남자가 사랑하는 사람 때문에 자살을 했다고 했다. 그때 그는 ‘사랑 때문에 죽는 사람이 정말 있구나!’라고 실감했고 그게 모티브가 되어 시나리오로 나온 것이다.


그렇다면 ‘슬픔보다 더 슬픈’ 이야기를 집필한 작가로서의 원태연에게 가장 슬펐거나 눈물을 많이 흘리게 했던 책은 무엇이었을까? 한 독자가 물으니 그는 아사다 지로의 책을 말했다.(제목이 생각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동안 70~80년대 한국소설 많이 읽었지만 아사다 지캷의 책을 우연히 펼쳐 책 날개에 적힌 작가 약력을 보고 그 약력이 재미있어서 책을 읽게 되었다고 한다.(책날개에 적힌 아사다 지로의 약력엔 명문가의 자제로 태어나 집안이 몰락하는 충격을 겪었고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몰락한 명문가의 아이가 소설가가 되는 경우가 많다”는 문장을 읽고 소설가의 꿈을 품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정확하게 기억이 나진 않지만 50대의 회사원이 정리해고를 당하고 집에 가는 길에 아버지를 보게 된다. 집에 가서 아내에게 그 얘길 하니 아벒가 안아준다. 그리고 그 집엔 커다란 침대가 있고…. 아버지에게 버림받는 아들의 내용인데 슬펐다. 그리고 버림받는 아들이 영화 속 케이로 각인되었다고 한다.


 

원태연 감독은 앞으로도 기회가 주어진다면 감독을 하고 싶다고 한다. 그는 38살이 되도록 스스로에게 직업을 준 적이 없었다. 시인이나 작사가를 직업이라고 하기도 그렇고 해서 직업을 갖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영화를 하면서 그의 성격과 잘 맞아 이거야말로 직업이라는 생각이 들었단다. 영화판에선 한번 움직이면 70명 정도가 같이 움직인다. 그렇게 같이 움직이는 게 그는 좋단다. 또 그들과 대화하는 것 역시 좋아하는 편이다. 더구나 영화감독은 한번 빠지면 못나오는 것 같단다. 영화를 다시 보면서도 만들 때만큼 민감해지고, 몇 번을 봤는데도 계속 보게 된다. 그래서 제작자가 다시 감독을 하라고 하면 또 만들 것 같다고 한다.

시사회를 보고 난 후라 아주 짧은 대화를 가졌다. 그 짧은 시간으로 감독으로서의 원태연을 다 알 수는 없었지만 그가 말했듯이 시인이나 작사가로서보다는 감독으로서의 그가 어쩐지 더 잘 어울리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감성적인 시인이 만들어 내는 감성적인 영화는 언젠가 이보영이 인터뷰에서 말했듯이 직접 글을 쓰고 그 의미를 알기에 영화로 표현해낼 때도 훨씬 감성적으로 잘 표현해냈는지도 모른다.

화이트데이 특수로 인해 초반 흥행엔 성공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아무쪼록 ‘화이트데이 특수’라는 수식어가 빠지고도 좋은 결과가 생겨 다음 작품에서도 감독 원태연으로서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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