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와 휴대전화를 먹을 순 없지요
흙 논 쌀 밥
나는 이른바 ‘대도시’에서 나서 자랐지만, 논밭의 모습은 그리 낯설지 않다. 내가 초등학교 중학년이던 1970년대 중반만 해도 우리 집 바로 뒤로는 논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넓은 의미의 김포평야의 한 자락이었다.
나는 이른바 ‘대도시’에서 나서 자랐지만, 논밭의 모습은 그리 낯설지 않다. 내가 초등학교 중학년이던 1970년대 중반만 해도 우리 집 바로 뒤로는 논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넓은 의미의 김포평야의 한 자락이었다.
그런데 푸른 곡창지대가 뭉개지는 것은 다만 시간 문제였다. 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우리 집 뒤편으로는 단독주택들이 들어섰다. 조금 있으니 그 너머로는 아파트 단지가 세워졌다. 어린 시절 논밭은 가까이 있었지만, 농사의 속내는 전혀 모른다. 우리 동네에 농민은 거의 없었다. 내가 알기로는 내가 태어난 셋방의 안집 주인아저씨가 유일했다.
‘흙에 살리라!’ 한때 서툴게나마 귀농을 꿈꾼 적이 있으나 내게 그것은 불가능하다는 엄연한 현실을 깨닫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나는 오갈 데 없는 ‘도시내기’다.
『흙』(EBS 흙 제작팀 지음, 낮은산, 2008)은 TV 자연 다큐멘터리를 토대로 한다. 2005년 6월 22일 교육방송을 통해 방영되어 “많은 감동과 호응을 이끌어냈다.”는 본래의 프로그램을 나는 못 봤다. (사실 나는 아무리 뛰어난 자연 다큐멘터리라도 푸른 하늘, 흰 뭉게구름, 타는 저녁놀을 육안으로 직접 보는 것만 못하다고 여긴다.)
‘원작’과 『흙』의 출간은 3년의 시차를 보인다. 나는 3년 가까운 뜸들임이 미덥다. 적어도 졸속 출판물은 아니라는 점에서. 책장을 넘기면 페이지마다 이 책에 들인 공저자와 편집자의 정성이 묻어난다. 마치 흙이 만져지는 듯하다. 흙냄새가 나는 것 같다. 표지 문구처럼 『흙』은 흙에서 “함께 숨 쉬는 생명들의 희로애락(喜怒哀樂)”을 다룬다.
“흙이란 40억 년 전 생긴 지각, 쉽게 이야기하면 지구의 표면이 서서히 부서지면서 생긴 광물질을 말한다. 이 흙 자체는 무생물일지 몰라도, 식물이 자신의 몸을 내맡기고 영양분을 흡수하는 원천이며, 그 식물을 먹고 자라는 동물이 발을 딛고 살아가는 터전이 된다.”
돌을 씹기 전까지 나는, 농업 관련 신문사 출판국에서 펴내는 월간지의 사진기자로 일하는 저자가 사진을 찍고 글을 쓴, 『논 : 밥 한 그릇의 시원(始原)』(최수연 지음, 마고북스, 2008)에 푹 빠졌다. 이 책을 보고 읽으며 쏟아져 나오는 외국여행기는 단지 ‘뽀샤시’할 뿐인 헛된 것이라는 생각마저 들었으니 말이다.
“논은 물을 가두어 벼를 심는 땅이다. 바닥을 평평하게 고르고 가장자리에 흙을 둘러 논두렁을 만든 다음 그 안에 물을 채워 벼를 재배한다. 논의 용도는 주로 벼를 재배하는 것이지만 다른 작물을 심는 경우도 있다. 물이 있는 상태에서는 벼, 미나리, 연근, 피 등을, 물을 뺀 상태에서는 보리, 밀, 호밀, 마늘, 자운영 등을 재배한다.”
논의 이로움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논은 홍수를 조절하고 지하수를 저장한다. 오염된 대기와 수질을 정화하기도 한다. 한여름 논에 담긴 물은 대기의 온도를 낮춰주며, 논둑은 흙이 물에 쓸려 내려가는 것을 막아준다. 생태계를 보전하고 녹지 공간으로 환경을 보전하며 도시인의 삭막한 심신을 어루만져주기도 한다.
“밭에서 벼를 재배하면 2~3년에 한 번은 연작 피해가 나타나지만 논은 한자리에서 수천 년 동안 벼농사를 지어도 연작 피해가 나타나지 않는다. 그 비밀은 논을 가득 채우고 있는 물에 있다. 물이 연작 피해를 막아주는 중요한 구실을 하기 때문이다.”
외국의 일부 극소수 환경 분야 전문가는 논을 지구 온난화를 가져오는 요인의 하나로 지목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나는 이를 서구 문명의 공세, 백인 우월주의의 작태, 제3세계에 책임 뒤집어씌우기의 한 양상으로 간주한다.
“논이 없어지면 당장 지구 온난화에도 큰 영향을 끼친다. 논이라는 녹지가 사라지면서 산소발생량이 줄어들고 이산화탄소가 흡수되지 않아 온난화는 가속화되고 강수량이 줄어들 것이다.”
농기계가 사람의 손을 덜어주긴 하지만 농사일은 여전히 고되다. 농촌의 생활 여건 또한 누추하다. 이런 사실을 모르지 않는 내가 논 중심의 시골 풍경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은 필시 내가 고된 노동과 누추한 생활 여건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이리라! 그래도 농사와 관련한 우리말과 이를 말밑으로 하는 우리말이 더없이 아름다운 것은 어찌하기 어렵다.
이 책의 구수한 ‘밥맛’을 곱씹고 곱씹을 즈음, 나는 돌을 씹고야 만다. 우지직. 그것도 엄청난 크기의 바윗돌이다. 성한 치아가 드문 나한테 이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 나는 넌지시 비친 지은이의 ‘친정부 성향’에 화들짝 놀란다.
“통일벼가 전국적으로 보급되기까지는 정부의 강한 의지와 공무원들의 끈질긴 노력이 있었다. 정부는 통일벼 심기를 꺼리는 농가에서 일반 볍씨를 뺏어 갈 정도로 강력하게 밀어붙였고, 정부에서 수매한 통일벼는 정부미라는 이름으로 시중에 유통되었다.”
칠순에 이른 장모님은 여적 농사를 짓는다. 십 년 남짓 먼발치서 바라본 우리 농촌의 현실은 팍팍하다. 하급 공무원부터 농업 관련단체 종사자, 가스배달원과 유선방송설치 기사와 그 밖의 자영업자, 그리고 군내 버스 운전수에 이르기까지 농촌에 살면서도 손에 흙을 묻히지 않는 자들은 하나같이 농민 알기를 우습게 안다.
이 책 저자가 몸담은 신문사는 그런 무리에서 예외일까? 정부미의 밥맛은 굳이 따지고 싶지 않다. 나는 “세계적인 녹색혁명을 가능케 했던 밀의 유전자가 우리 토종 밀에서 나왔다니 놀랍지 않은가” 하는 ‘동양 최대의 장충체육관’이라는 식의 표현 또한 못마땅하긴 하지만 이에 대해선 말수를 줄인다.
“처음부터 논이 될 수밖에 없었던 우리의 논은 영원히 논으로 지켜야 한다. 이는 우리의 생명과 문화의 뿌리를 보존하고, 더욱 뻗어 나가게 하는 길이다.”(김동수 외 지음, 『논 왜 지켜야 하는가』, 따님, 1994)
‘잘먹고 잘사는 법’ 시리즈(김영사)의 하나인 『쌀』(최선호 지음, 2004)은 우리가 잘 모르는 쌀에 관한 101가지 이야기다. “벼는 볏과에 딸린 한해살이풀로 그 열매는 식량으로 이용된다. (…) (벼의) 줄기 끝에 달린 열매를 이삭이라 하는데, 가을이 되어 누렇게 익은 벼를 털어 껍질을 벗긴 것을 쌀이라 한다.”(11. 벼와 쌀의 사전적 풀이)
“쌀은 도정하는 정도에 따라 맛과 영양이 달라진다. 맛으로 보자면 까칠한 현미가 부드러운 백미를 따라잡지 못한다. 현미는 단단한 쌀겨층 때문에 백미에 비해 소화되기도 힘들다. 그러나 도정도가 커질수록 맛과 소화흡수율은 좋아지지만 단백질과 섬유소, 비타민 B군의 함유량은 크게 떨어진다.”(21. 영양은 현미, 맛은 백미)
‘85. 쌀 덜 먹기 운동’에 대해선 할 말이 좀 있다. “한때 정부는 식량증산운동과 더불어 모든 국민들에게 분식과 보리혼식을 장려했다. 보리혼식은 식량자급의 한 대책으로 1960년대에 와서 보리의 증산과 함께 시도된 것이다. 보리혼식의 장려는 국민계몽운동에 의해 이루어졌다.” 말이 ‘계몽’이지 압박이 몹시 심했다.
“주로 쌀보다 보리에 비타민, 단백질 등이 많이 들어 있어 영양적인 면에서 보리가 쌀보다 우월하다는 점이 강조되었다.” 그때는 이와 병행하여, 거의 비슷한 맥락으로, 영양 면에서 분유가 모유보다 백배는 낫다고 떠들던 어이없는 시절이었음을 상기하자.
“보리혼식은 초?중?고등학교에서 강제적으로 이루어져 쌀과 보리의 비율을 7대 3으로 하라는 지시가 내려지기도 했다. 1972년부터는 일주일에 한 번씩 각종 음식에 쌀을 쓰지 않는 날(무미일)을 제정하여 각종 음식점과 학생들의 도시락을 검사하면서 절미운동의 위반은 중대범죄로 규정하고 단속을 벌이기도 했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었다. 당시 학교에선 도시락을 싸온 학생의 혼식 여부에는 대단히 민감했으면서도 집안 형편이 어려워 도시락을 싸오지 못한 학생에게는 대체로 무관심했다. 나는 어이없던 그 시절을 그리워하거나 그 시절의 어이없음을 못 겪어 봤기에 무작정 박통을 존경하는 인간은 덜 떨어진 ‘밥통’이라고 생각한다.
“‘오늘의 메뉴는 쌀보다 영양이 많은 분식을’이라는 표어가 전국에 나붙고, 정부에서는 분식 예찬론을 펼치며 밀가루 음식이 균형 잡힌 식사의 표본인 양 선전했다.”
여기서 김지하 시인의 『밥』(분도출판사, 1984)을 거론하는 것은 부적절하지만, ‘따뜻한그림백과 002’ 『밥』을 언급하는 것은 무난하다. ‘따뜻한그림백과’는 3~7세 어린이를 위한 백과사전이다. 다시 말해 『매일 세 번 꼭꼭, 밥』(그림 안지연/글 재미난책보, 어린이아현, 2008)은 정보그림책이다.
실감나는 그림이 짧은 설명 글과 제법 잘 어울린다. 하지만 모내기 장면에서 “농부들이 봄에 볍씨를 뿌리고, 여름 내내 잡초를 뽑아 줘요.”라고 한 것은 글자 수가 제한된다는 사정을 고려하더라도 다소 아쉽다. 논농사 과정에서 가장 힘든 ‘김매기’는 세 번으로 족한 까닭이다.
이 그림책은 두 가지 뜻의 밥을 보여준다. 좁은 의미의 쌀밥과 끼니로 먹는 음식이라는 넓은 의미의 밥이 그것이다. “하루 세 끼를 다 못 먹는 사람들도 많아요. 어떤 나라에서는 온 나라 사람들이 다 굶기도 하고요. 날마다 맛난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건 고마운 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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