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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난 날의 저녁 해처럼 나의 모든 것을 사로잡은 요시모토 바나나

요시모토 바나나, 소설『왕국』 홍보하기 위해 내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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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모토 바나나는 2박 3일이라는 짧은 일정으로 민음사에서 새로 나온 소설『왕국』을 홍보하기 위해 내한하였다. 1995년 첫 작품을 한국에 펴낸 후 이번 3권짜리 신작까지 모두 17권의 작품이 번역되었다.

지난 5월 26일 일본 작가 요시모토 바나나가 한국에 왔다. 요시모토 바나나, 한때 그의 작품에 심취하여 신간이 나오는 족족 의무적으로 책을 사 보던 때가 있었다. 일본 작가라고는 무라카미 하루키만 알던 시절이었고 한국 작가의 작품들은 대부분 심각한 내용들만 다루던 때였다. 그런 때 담백하고 간결하며 산뜻한 문장과 내용으로 혜성처럼 나타난 요시모토 바나나가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비록 다른 나라의 작가였지만 동양의 정서로 감수성이 강한 젊은 시기의 감정을 꽤 발랄하게 표현했었다. 『키친』을 필두로 하여 『허니문』 『암리타』 『히치의 마지막 연인』 『하드보일드 하드 럭』 『도마뱀』 『슬픈 예감』까지 어느 한 작가의 첫 작품이 마음에 들면 그의 전작을 읽게 되고 마는 모든 독자들처럼 나 역시 그의 작품은 모두 섭렵하며 그의 문체에 공감하고 좋아했었다. 하지만 『불륜과 남미』를 읽을 땐 ‘어? 바나나가 좀 달라진 것 같아’ 하다가 『아르헨티나 할머니』를 읽었을 땐 ‘바나나를 이젠 그만 놓아야겠다(?)’ 하고 혼자 다짐을 했었다지. 그래서 내심 요시모토 바나나의 기자 간담회에 가 달라는 요청을 받고도 ‘난 이제 그에게 애정이 없잖아? 하지만 한국 작가도 아니고 내가 언제 요시모토 바나나를 만날 것인가? 가야 해? 말아야 해?’ 짧은 순간 꽤 갈등을 했었다. 그러나 작가를 만나보고 나면 그 작가의 작품을 한결 더 이해하게 되더라는 이제까지의 경험을 토대로 그를 만나게 되었고 그의 신작 『왕국』을 읽은 후엔 놓았던 그를 다시 잡게 되었다.

새로운 작품 『왕국』에 대한 요시모토 바나나의 생각

요시모토 바나나는 2박 3일이라는 짧은 일정으로 민음사에서 새로 나온 소설 『왕국』을 홍보하기 위해 내한하였다. 1995년 첫 작품을 한국에 펴낸 후 이번 3권짜리 신작까지 모두 17권의 작품이 번역되었다. 이중 민음사에서 나온 15권의 판매 부수가 110만 부를 넘는다고 하니 가히 베스트셀러 작가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한국에 독자들이 많다는 걸 알면서도 한국을 찾지 못했던 이유는 이제 다섯 살인 아들이 어려 방문할 여유가 없었단다. 하지만 자신의 작품으로 논문을 쓰겠다는 한국 학생들의 이메일을 받고 답장을 해줄 정도로 독자들과 교류하고 있다고 한다.

이번 신작 『왕국』은 할머니와 단둘이 산속에서 살다가 도시로 나온 한 소녀가 각기 다른 사람들을 만나 삶과 세상을 배운다는 이야기로 ‘우화’에 가까운 판타지 소설이다. 해리포터가 나왔을 무렵 그도 그 나름의 근사한 판타지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그러려면 주인공이 다른 세계에서 오는 요소가 중요했기 때문에 산속에서 살다가 내려온 설정을 하게 되었다. 이번에 3권까지 나왔지만 앞으로 두 권이 더 나올 예정이란다.

그의 작품에서 죽음은 중요한 테마로 등장한다. 하지만 그 죽음들은 현실적인 죽음이 아니라 우화 속에 등장하는 죽음이며 살아남은 사람들의 죽음이다. 그는 죽음이야말로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절대적으로 평등한 의미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일본에서는 젊은 사람들의 자살률이 매우 높은데 그 자살을 근본적으로 낮추기 위해 씨앗을 뿌리는 마음으로 글을 쓰고 있단다.

『왕국』의 등장인물들은 사회적 소수자들로 약한 존재들처럼 보인다. 할머니를 비롯하여 맹인 점술가인 ‘가에데’, 그의 동성애인 ‘가타오카’ 그리고 선인장과 영적으로 교감하는 원예가 ‘신이치로’까지 세상에 당당하게 발을 내딛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왕국’이라는 제목은 세상과 잘 교류하지 못하고 감수성이 강한 인물들을 합쳐서 ‘그들만의 왕국’이라는 뜻으로 정했다. 그가 이런 소수자의 인물들을 다루는 이유는 그 자신이 그런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 의미를 말하자면 그는 레즈비언도 게이도 아니지만 주변엔 그런 사람들이 많으며 그들과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보통 평범한 사람들이 하는 평범한 일을 그가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그 자신은 특별한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다.

신작 『왕국』의 홍보차 내한한
요시모토 바나나
또한 그의 대부분의 작품은 ‘치유’라는 코드를 보여주고 있다. 이 책 『왕국』에서도 그 의도가 드러난다. 그는 마음의 상처를 지닌 독자들이 그의 소설을 읽은 뒤 온천에서 씻고 나온 것 같은 개운함과 한차례 여행을 끝낸 듯한 홀가분한 아픔으로 치유했으면 좋겠다고 한다. 그리고 그가 의도했든 아니든 치유의 코드가 가장 잘 드러난 작품은 『막다른 골목의 추억』이라는 한국에는 번역되지 않은 작품이다. 아이를 갖게 되면 고통스러운 생각을 하며 글을 쓰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으로 쓴 작품이다. 지금까지 상처를 치유하는 작품으로 납득할 수 있었던 유일한 작품이다. 그는 그가 안고 있는 어떤 괴로움과 고통을 소설로 썼을 때 같은 아픔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굉장한 힘이 된다는 걸 알고 있단다.

『왕국』에서 정원은 치유의 공간으로 나온다. 주인공은 식물과 대화를 하고 인간보다는 식물에 친근감을 느끼는 사람이다. 인간을 봐도 그 인간과 잘되고 있는지 아닌지를 감지하지는 못한다. 허나 식물을 보면 건강한지 아닌지 금방 알게 된다. 그런 어떤 모순된 상황을 그려보고 싶었기에 정원을 치유의 공간으로 선택하게 되었고, 에이즈로 죽은 어떤 사람이 가꾼 정원을 찍은 사진집을 보면서 그 모습을 『왕국』에 싣게 되었다.

『왕국』에 나오는 인물들 중 가장 애착을 갖는 사람은 주인공 ‘시즈쿠이시’의 할머니이다. 할머니는 앞으로 발표할 두 권의 책에서도 굉장한 역할을 할 것이다. 실제의 어떠한 인물을 모델로 정해 두고 설정한 것은 아니지만 엄마도 있고 다른 지혜로운 사람도 있는데 굳이 할머니를 선택한 이유는 복합적인 의미에서 모성을 가지고 있으며 너무 현실적인 엄마에 비해 성별이 없는 존재로서 인생의 지혜를 알려줄 수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 반면에 주인공인 ‘시즈쿠이시’는 어렵고 까다로운 인물로서 일인칭으로 쓰기가 무척 힘들었다고 한다.

요시모토 바나나에 대해 궁금한 몇 가지

요시모토 바나나의 본명은 요시모토 마호코(吉本 眞秀子)이다. 1964년생으로 문학평론가인 아버지와 하이쿠를 쓰는 어머니 밑에서 태어났다. 1987년 데뷔한 이래 ‘가이엔 신인 문학상’ ‘이즈미 교카상’ ‘야마모토 슈고로상’ 등의 여러 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일본 현대 문학의 대표적인 작가로 꼽히고 있다. 특히 1988년 출간한 『키친』은 지금까지 200만 부가 넘게 판매되었다. 붉은 바나나꽃을 좋아하고 성별이 구분되지 않으며 세계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는 과일이어서 ‘바나나‘라는 이름을 사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출산 후 그는 은퇴한 작가처럼 살았다. 그는 여러 가지 일을 하는 데 있어 스스로 납득할 때까지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한다. 아이가 태어나서 십 년이 지나는 동안 거의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최근에 아이의 영향이 작품에 드러나기도 했으며 일본에서 출간한 작품이나 출간될 작품에는 아이를 낳지 않았다면 나올 수 없었던 작품들이 있다고 한다. 그렇지만 아이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은 쓰기가 힘들다. 그의 소설은 대부분이 일인칭이기 때문에 아이가 주인공이 되면 동화나 그림책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12살에서 14살의 아이가 나오는 소설은 지금까지 여러 권 쓰기도 했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남자의 심리를 깊게 몰랐다. 아들을 키우면서 남자가 어떤 존재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소설에서는 남자를 굉장히 예쁘게 그리지만 앞으로 쓰는 작품에서는 남자로서의 이미지가 좀 더 생생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아들로 인해 그는 목숨보다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도 알게 되었다. 그런 이야기를 여러 번 쓰고 싶었으나 그동안 못 쓰고 있다가 최근에야 쓰게 되었다.


요시모토 바나나는 작가가 되기 전에는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고 괴로움과 분노를 발산하기 위해 글을 썼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작가들이 그렇듯이 작가가 된 후에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위해 글을 쓰고 있다. 독특한 글쓰기 비법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하면 장소를 불문하고 아이에게 젖을 먹이면서도 글을 쓴단다.

그는 자신의 작품에 독자들이 열광하는 이유에 대해 세계 어느 나라든 젊은 시기에 여러 가지 처리하기 힘든 일로 인해 감수성이 강한 시기를 지나는 젊은이들이 많기 때문에 자신의 작품을 읽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오에 겐자부로가 일본 젊은 작가들이 역사적, 사회적 현안을 외면한다고 비판하면서 요시모토 바나나를 지목한 점에 대해 그는 소설에서 사회적인 문제를 전혀 다루지 않은 것은 아니고, 다만 깊이 감추어져 있기 때문에 잘 드러나지 않을 뿐이라고 했다. 북한 문제나 자연 파괴, 현대 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가정 파괴 같은 이슈도 다루고 있다. 정말 두고두고 깊이 읽어 보면 그걸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오에 겐자부로나 무라카미 하루키도 그의 작품을 읽어본다면 어떤 사건을 숨겨 놓고 다루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요시모토 바나나는 그의 작품이 한국에서 많이 읽히고 있는 점에 대해 실감하지 못했는데 이번 방한으로 알게 되었다고 한다. 나라 요시토모가 몇 년 전 한국에서 전시회를 가진 후 활동하던 독일보다 이젠 한국이 좋다고 말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그도 이탈리아에서 제법 인기가 많은 편인데 앞으로는 유럽보다 아시아 쪽으로 눈을 돌릴 생각이라며 그 역시 나라 요시토모와 마찬가지로 한국이 좋아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사람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가장 나쁜 것과 가장 좋은 것이 함께하는 법

요시모토 바나나는 『뱀에게 피어싱』 『애시 베이비』 『아미빅』을 쓴 ‘가네하라 히토미’를 주목하고 있다고 한다. 이건 나로서는 좀 놀라운 일인데 가네하라 히토미의 작품이 일본에서는 순문학으로 통한다 할지라도 내 정서로는 도저히 소화하기 힘든 작품들이었기에 그의 추천이 새삼스러웠다. 그가 가네하라 히토미를 주목하는 이유는 가끔 추상적인 작품들이 있긴 하지만 훌륭한 작품은 굉장히 훌륭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말에 귀가 얇은 나는 용기를 내어 가네하라 히토미의 『아미빅』을 펼쳤다. 과연 읽어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요시모토 바나나에게 섭섭한 점도 있었다. 그건 그가 한국 작가를 단 한 사람도 알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비록 우리나라 작가의 작품이 일본에서 인기가 없고 번역된 작품이 얼마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의 작품에 열광하는 독자들을 위해서라면 단 한 명의 작가라도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이 예의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왕국』 1권에서 할머니가 말한다. “사람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가장 나쁜 것과 가장 좋은 것이 함께하는 법”이라고. 그 뜻이 이 글에 어울리는 글은 아니지만 나는 다르게 패러디하였다. 한국에서는 이례적으로 많은 책을 판매한 작가로서 자리매김했지만 항상 좋을 수는 없는 거다. 그가 가네하라 히토미의 작품에 대해 좋은 것은 굉장히 좋고 아닌 것은 정말 아니라고 말했듯이 그의 작품 역시 항상 좋은 작품이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사람이 있는 곳에는 나쁜 것과 좋은 것이 공존하듯이 그의 작품에도 좋은 것과 나쁜 것이 공존할 것이다. 그러나 이렇든 저렇든 그 모든 것은 누군가에게 관심을 받는다는 것이고 그건 작가에게도 행복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전작을 모두 읽으면서 좋아하다가 실망하다가 다시 좋아지는 변덕을 부린 그다지 도움이 안 되는 독자이지만 그럼에도 그에게 보낸 나의 첫정이 남아 있어 다행이었다. 요시모토 바나나를 만나고 나니 내가 아직도 그를 열 손가락 안에 드는 ‘나의 작가’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다. 아무튼 변화를 주기보다는 변함없는 작가로 남는다는 게 더 힘든 일일 것이다. 그러니 요시모토 바나나가 십여 년 전 첫 책을 냈을 때와 마찬가지로 앞으로도 순수한 마음으로 작품을 써 주길 원한다면 너무 큰 욕심을 바라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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