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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한 파묵 “우리 안에 있는 금기 허물고 싶었다”

『이스탄불』의 작가 오르한 파묵 2006년 노벨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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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빨강』『검은 책』의 작가 오르한 파묵이 한국을 찾았다. 2006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그는 미술에 대한 깊은 조예, 독특한 구성법으로 고정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다. 국내에선 특히 『내 이름은 빨강』이 독자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

“사람들은 보통 우러나오는 대로 행동하지만, 다른 사람이 말하지 않으면 무엇이 금기인지 잘 몰라요. 정치적인 의미보다는 우리 안에 있는 경계와 금기를 허물고 싶었습니다.”

『내 이름은 빨강』『검은 책』의 작가 오르한 파묵이 한국을 찾았다. 2006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그는 미술에 대한 깊은 조예, 독특한 구성법으로 고정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다. 국내에선 특히 『내 이름은 빨강』이 독자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번 그의 한국 나들이는 신작 『이스탄불』의 출간 기념과 국제출판협회(IPA) 총회 참석을 목적으로 이루어졌다. 독자들은 파묵의 방한 소식에 매우 들뜬 분위기였다. 온라인 서점, 책 관련 커뮤니티 등을 통해 파묵의 내한 소식과 신간정보가 올라오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띄었다.

12일(월) 오후 교보문고 강남점에서 열린 사인회 현장에는 수백 명의 팬들이 몰려 인산인해를 이루기도 했다. 파묵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는 행사였다. 새벽부터 올라와 줄을 섰다는 지방 독자, 파묵의 전작을 양팔에 안고 순서를 기다리는 독자 등 열혈 팬들이 서점 안을 가득 메웠다.

사인회에 앞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파묵은 ‘금기’에 대한 다양한 생각을 털어 놓았다. 그에게 금기란 창작의 중요한 밑거름이자 작가로서의 생명력을 지탱해주는 버팀목처럼 보였다. 창작은 물론, 정치적 탄압에 대한 이야기도 함께 오갔다. 파묵의 생생한 육성을 고스란히 옮겨 본다.

참고로 여기엔 파묵이 들려주는 방금 탈고를 끝낸 미발표 작 『순수박물관』과 신작 『이스탄불』에 대한 목소리도 담겨 있다.

Q) IPA 기조연설에서 소설의 안과 밖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세요.

“정치적인 의미보다는 우리 안에 있는 경계와 금기를 허물고 싶었어요. 사람들은 보통 우러나는 대로 행동하면서 다른 사람이 말하지 않으면 무엇이 금기인지도 잘 모르거든요. 작가라는 직업은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부문에 접근하는 거예요. 소설 쓸 때 항상 독자가 ‘아, 나도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라는 반응을 보일 것을 생각하면서 글을 씁니다.”

『이스탄불』을 쓴 오르한 파묵

Q) 그런데 선생님의 소설은 읽을수록 어려운 것 같아요.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읽을 수 있도록 쉽게 쓸 생각은 없나요?

“저는 보통 작품을 쓸 때 ‘충동’에 의해 써요. 사실 바로 며칠 전 끝내고 온 소설 『순수박물관』을 끝낸 후 독자가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문장을 짧게 바꿔볼까 고민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저의 가장 큰 행복은 내가 만든 덫에 독자가 걸려들어 복잡하고 신비한 것을 함께 나누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제 소설은 한 번 읽으면 어려울 수 있지만, 여러 번 읽으면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겁니다.

이번에 쓴 『순수박물관』 작업은 에디터와 조교가 함께 도와줬어요. 작품을 점검하면서 30쪽에 나온 물건이 570쪽에 다시 나오면 어떤 독자가 그걸 알겠느냐는 비판을 받기도 했죠. 그만큼 복잡할 수 있다는 건데. 하지만, 전 꼭 그렇게 하고 싶었어요. 삶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어릴 때 만난 사람을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다시 마주치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에요.

톨스토이와 프루스트는 제가 무척 좋아하는 작가인데요. 그들은 아주 오래전 나보다 훨씬 많은 분량에 달하는 작품, 쉽지 않은 작품들을 써냈지요. 저 역시 그들처럼 훌륭한 문학작품을 쓰고 싶어요.”


Q) 이번 작품 『이스탄불』에 대해서 소개해 주세요.

『이스탄불』은 스물두 살 때까지의 자전적인 이야기입니다. 아름다운 도시 이스탄불에 대한 나의 생각과 아름다움에 깃들여진 요소들을 내 나름의 관점으로 제시하고자 했습니다. 작가가 된 사람이 젊은 시절 어떤 분노와 고민, 번뇌를 갖고 있었는지에 대한 수기이기도 하죠.”

마음이 우울하고, 불행해지고 심심해지면 아무에게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집에서 나가, 아래층 고모의 아들에게 놀러 가거나 할머니가 사는 아파트로 가곤 했다. 내부가 서로 너무 비슷비슷하고 그릇 세트에서 시작해서 설탕통, 소파에서 재떨이까지 많은 물건들이 똑같았음에도 불구하고 각 세대는 전적으로 다른 세상, 전적으로 다른 나라처럼 여겨졌다. 물건들로 꽉 찬 그 모든 음울한 모습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이러한 이유로, 할머니의 거실에 가서 놀고 박물관 같은 거실, 꽃병, 사진틀, 작은 탁자의 그림자 아래서 상상을 하고, 이곳이 다른 곳이라고 꿈꾸는 것을 좋아했다.
- 『이스탄불』 본문 중에서


Q) 미발표작 『순수박물관』도 궁금해요. 어떤 소설인가요?

“아주 분량이 많아요. 무려 600페이지나 되거든요. 6년이라는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집필이 끝나서 얼마나 홀가분한지 몰라요. 형식을 말하자면 1975년부터 현재까지 이어지는 파노라마식 소설이에요. 상류사회의 돈 많은 남자가 먼 친척인 가난한 여자를 사랑하는 것이 기본 골격입니다. 이스탄불 상, 중류층 문화를 많이 다루고 있는데요, 특히 이들이 얼마나 서구화하기를 원하는지를 파노라마식으로 보여준 작품이에요.”

Q) 어린 시절에는 화가를 꿈꿨고 대학에서 건축학을 전공한 선생님이 소설가가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뭐라 하나로 답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아주 오랜 시간 고민해 왔던 질문인데, 이번 책 『이스탄불』을 쓰면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었지요. 저는 15살 때부터 이스탄불 거리에 나와 그림을 그렸는데 그것이 저를 너무나 행복하게 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그게 싫어지더라고요. 마치 사랑하는 여자를 갑자기 사랑하지 않게 됐는데, 그 이유는 찾을 수 없는 것과 같았죠. 그리고 대신 글을 쓰는 기쁨을 알게 됐는데, 왜 그랬는지는 정말 모르겠어요. 그걸 알고 싶으면 제 모든 소설을 전부 읽어보세요. 그래도 사실은 잘 모르실 거예요” (웃음)

노벨상 받았지만, 더 좋은 작품 쓰고 싶어


Q) 2005년에 한국을 방문하신 적이 있죠. 그때와 비교해 스스로 달라진 부분이 있다면 어떤 건가요?

“집 문 앞에 경찰들이 더 많아졌다는 것 같은데요. (웃음) 저는 터키의 비민주적인 정치에 대한 비평을 써서 테러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경찰의 보호를 받고 있는데 2005년 때보다 지금이 더 심해졌어요. 그 밖에 달라진 점이라면 내가 쓴 많은 책들이 외국어로 번역되고 노벨상도 받았다는 겁니다. 3년 전 한국에 왔을 때는 이스탄불에 살고 있었는데, 지금은 매년 가을 학기에 미국 컬럼비아대학에서 강의하고 있다는 점도 변화라고 할 수 있겠네요. 노벨상을 받으면 많은 작가들이 은퇴하는 분위기가 되는데 난 젊은 나이에 상을 받았기 때문에 더 열심히 글을 쓰고 있어요. 개인적으로는 노벨상에 준하는 작품을 쓰기 위해 굉장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Q) 작품마다 세계적으로 많은 독자층을 갖고 있습니다. 어떤 이유 때문에 독자들이 선생님의 책을 찾는다고 생각하세요?

“나라마다 인기 있는 책이 다른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내 이름은 빨강』 같은 경우 한국과 중국에서, 『이스탄불』은 이탈리아, 스페인에서, 『눈』은 유럽과 미국에서 많이 팔렸어요. 『눈』이 미국에서 인기 있는 것은 미국이 이슬람주의에 관심이 많기 때문이고 『이스탄불』이 스페인에서 호평 받은 것은 스페인 사람들이 겪는 어린 시절과 비슷하기 때문이 아닐까 해요. 『내 이름은 빨강』은 한국, 중국 사람들이 갖고 있는 예술에 대한 관심 때문에 인기를 얻고 있는 것 같습니다.”

Q)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늘 소설을 끝내고 나면 다음에는 무얼 할거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그때마다 ”아무 것도 안 할 거야!”라고 말하곤 했어요. 그러면, 전처와 딸은 “얼마나 가나 두고 보자. 보나 마나 또 얼마 안가 뭘 쓸 거야”라고 하죠. (웃음) 우선 지금은 하버드 대학에서 강의하고 있는 소설예술에 대한 책을 쓸 계획이고, 다음에 어떤 작품을 쓸지 구상하고 있는 것은 있지만 여기서는 밝히고 싶지 않네요. 이 자리에 와주신 모든 기자 분들께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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