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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럼, 시작해볼까?” - <GO>
요즘처럼 이런저런 계획을 세우며 걱정이 많을 때는 이 대화를 생각하며 용기를 얻곤 합니다. 인간 정신의 근본은 새로운 경험에서 나온다는 말을 되새기기도 하면서 말이죠.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들을 자막도 없이 몰래 보던 시기를 지나고, 일본문화가 개방되면서 처음 접했던 영화는 유키사다 이사오 감독의 <GO>였습니다. 영화가 시작되면서 괴상한 머리의 쿠보즈카 요스케를 보고는 좋은 눈을 가진 캐릭터란 생각에 흥미가 생겼고, 인트로 부분의 지하철 씬에서부턴 연출에 압도당해 영화 속으로 깊숙이 빠져들어 처음부터 끝까지 시간가는 줄 모르고 봤었죠. 원작이 소설이라는 이야기에 가네시로 가즈키에 대해 알게 되었고 원작 소설인 『GO』도 무척 재밌게 보았습니다. 평소 문학을 영화로 옮기는 과정은 매우 힘들고 터프한 작업이라 생각하고 있으며, 문학이 가지고 있는 이야기나, 문체가 가지고 있는 힘, 단어 하나하나에 실려 있는 감정의 움직임은 스크린으로 옮기는 과정에선 많은 부분 소멸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설령 잘 옮겨진 영화라 하더라도 그건 일란성 쌍둥이와 같이 외모는 거의 같지만 다른 내면의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처럼 전혀 별개의 작품이라고 생각하고 있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GO>는 원작에 굉장히 충실한 영화였던 것 같습니다. 텍스트를 눈으로 좇는 동안 영화의 장면들이 계속 오버랩 되며 지나갔고 캐스팅도 좋아서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느낌과 상당히 매치가 잘 되었습니다. 뭐 물론 소설을 먼저 보고 영화를 본 케이스였다면 다른 느낌으로 받아들일 수 있겠지만, 양쪽 다 박수 칠 수 있을 만큼 좋은 결과였다는 것엔 변함이 없을 것 같습니다. <GO>와 연관해서는 여러 가지 생각나는 것이 많습니다만, 그중에서 역시 백미는 이 부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지금 네 주먹이 그린 원의 크기는 대충 너란 인간의 크기다. 그 원 안에 꼼짝 않고 앉아서, 손닿는 범위 안에 있는 것에만 손을 내밀고 가만히 있으면 넌 아무 상처 없이 안전하게 살 수 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겠냐?”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가 말을 이었다. “너는 그런 것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나는 잠시 생각한 후 대답했다. “늙은이 같이.” 아버지는 싱긋 미소 지은 후 말했다. “권투란 자기의 원을 자기 주먹으로 뚫고 나가 원 밖에서 무언가를 빼앗아오고자 하는 행위다. 원 밖에는 강력한 놈들도 잔뜩 있어. 빼앗아오기는커녕 상대방이 네놈의 원 속으로 쳐들어와 소중한 것을 빼앗아갈 수도 있다. 게다가 당연한 일이지만 얻어맞으면 아플 것이고, 상대방을 때리는 것도 아픈 일이다. 그런데도 넌 권투를 배우고 싶으냐? 원 안에 가만히 있는 편이 편하고 좋을 텐데.” 나는 아무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배울 겁니다.” 아버지는 또 싱긋 웃고 말했다. “자 그럼, 시작해볼까?”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것에 도전한다는 것은 굉장히 두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한 발자국만 내딛으면 시작할 수 있지만, 그 무거운 한 발자국을 내미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지요. 새장 속에 갇혀 지내던 새는 새장 문을 열어줘도 나갈 수 없는 것처럼 지금 존재하는 내 삶의 울타리에서 나가 새로운 세상을 경험해보는 건 굉장히 흥미로우면서도 두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요즘처럼 이런저런 계획을 세우며 걱정이 많을 때는 이 대화를 생각하며 용기를 얻곤 합니다. 인간 정신의 근본은 새로운 경험에서 나온다는 말을 되새기기도 하면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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