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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씨, 책에 말을 걸다 - KT&G 상상마당 갤러리

홍대 ‘KT&G 상상마당’은 카페, 전시공간, 영화관 등이 하나로 모여 있어서 늘 젊음의 열기가 끊이지 않는 공간인데요, 이곳 3층 갤러리에서 오늘까지 “글씨, 책에 말을 걸다”라는 전시가 열린다고 해서 아이와 함께 가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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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 전철역에서 나와 홍대 쪽으로 올라가다가 주차장 골목으로 들어가면 맨 끝자락쯤에 ‘수 노래방’이 나오고 바로 그 옆에 새로 문을 연 재미있는 복합문화공간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KT&G 상상마당’입니다. 이곳은 카페, 전시공간, 영화관 등이 하나로 모여 있어서 늘 젊음의 열기가 끊이지 않는 공간인데요, 이곳 3층 갤러리에서 오늘까지 “글씨, 책에 말을 걸다”라는 전시가 열린다고 해서 아이와 함께 가보았습니다.

KT&G 상상마당 앞에서

글씨와 책이 만난다고? 어떤 전시일까 도저히 감이 안 잡혔는데 전시장 문을 빠끔히 열고 들어가는 순간 “오호~~ 정말 멋진데?” 하는 탄성이 절로 나왔답니다. 어디서부터 감상을 할까 두리번거리는데 마침 전시장 한쪽에 계시는 강병인 선생님을 만날 수 있었답니다. 그래서 선생님께 전시장 안내를 부탁하고 전시를 둘러보았습니다.

“글씨, 책에 말을 걸다” 전시회 전경

강병인 선생님의 명함에는 '캘리그라피스트'라는 글씨가 씌어 있었는데요, ‘캘리그라피’란 무엇인가 여쭈어 보았습니다. ‘캘리그라피’란 ‘아름답다’라는 뜻의 calli라는 단어와 ‘글씨’라는 뜻의 graphy라는 단어의 합성어인데 우리말로는 ‘손글씨’라고 부른다고 해요. 보통은 붓을 사용한 붓글씨를 뜻하기도 하지만 팝Pop글씨와는 또 다른 분야로 문자가 이미지와 상징을 가지고 전혀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는 예술이라고 볼 수 있답니다.

캘리그라피스트 강병인 선생님과 함께

강병인 선생님이 디자인한 캘리그라피 작품으로는 우리가 즐겨 애용(?)하는 배상면 주가의 ‘산사춘’, 진로 ‘참이슬’의 글씨, 드라마 <내 남자의 여자> 타이틀, 그리고 책으로 『육일약국 갑시다』의 타이틀 등 다양한 분야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붓과 우리 한글이 만나 새로운 디자인이 탄생하는 현상을 두고 디지털에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불어넣는 ‘디지로그’적인 현상이라고까지 말하기도 하지요.

나뭇잎 대신 종이와 예쁜 전구로 장식된 나무 앞에서

오늘 전시는 특히 글자가 빠질 수 없는 것 중에 하나인 ‘책’이라는 것을 주제로 하여 캘리그라피스트와 북디자이너가 함께 만나 새로운 디자인의 세계를 보여주는 재미있는 전시회라고 하셨습니다.

전시장 한쪽 벽에는 90년대 이전 우리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작품인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전혜린 평전』『빠빠라기』『꽃의 소묘』『사랑의 기교』 등 주옥같은 작품을 담은 책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전시회에서는 이 책의 표지를 새로 쓰고 그려서 함께 전시를 해놓았더군요. 작가들의 풍부한 상상력이 마음껏 발휘된 책 디자인은 이전의 것보다 훨씬 더 책의 내용을 잘 나타내주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특히, 고등학교 때 가방에 넣고 다니며 읽었던 전혜린의 책이 인상적이었는데 전혜린의 얼굴이 강하게 부각되고 그 아래 하얀 글씨로 쓰인 그녀의 이름 석 자 ‘전혜린’은 아직도 그녀의 아우라를 강하게 느끼게 해주어서 잠시 동안 발길을 붙잡았답니다.

디자이너 김지선 님이 새로 디자인한 전혜린 책 앞에서

멋진 손글씨가 담긴 종이를 읽어보고 있다.

이런 책표지 디자인의 재해석 말고도 한쪽에는 일상생활에서도 얼마든지 책과 함께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한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답니다. 예로, 우리가 늘 쓰는 종이컵에 예쁜 색을 입히고 거기에 책의 한 구절 등을 담아 놓은 것이 있었는데 강병인 선생님은 늘 사용하는 이런 종이컵도 그냥 커피를 먹고 버리는 일회용이라기보다 이렇게 글을 새겨 놓으면 차를 마시며 잠시라도 문학의 향기가 함께하는 멋진 순간을 선물하지 않겠느냐고 하셨습니다. 또 그 옆에는 택배나 소포를 보낼 때 자주 사용하는 테이프에 멋진 글씨로 여러 가지 책의 표지를 인쇄해 놓았어요. 마찬가지로 소포 포장지에도 책의 멋진 한 구절을 담아놓았더군요.

손글씨로 책의 한 구절이 담겨있는 종이컵

캘리그라피로 제작된 소포 포장지와 테이프

강병인 선생님은 요즘은 누구나 택배를 보내고 받는 것이 일상이 되어 있는데 특히 책을 선물하거나 책을 보내는 출판사, 또는 YES24같이 고객에게 책을 보내는 회사의 경우, 다른 택배와 차별을 둘 수 있는 방법으로 이렇게 택배 박스나, 포장용 테이프, 포장용지 등에 캘리그라피를 이용한 고유의 디자인을 활용한다면 받는 사람들에게 더 감동적이지 않겠느냐 하시더군요. 저도 멋진 캘리그리피가 인쇄된 예쁜 택배 박스에 담긴 책을 받는다면 아마도 한 번 더 그 박스를 재활용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것 같았습니다.^^

캘리그라피스트와 디자이너의 공동 작업으로 실제 택배 상자 같은 일회용품에도 시간적, 정서적인 여유를 주었다.

“엄마, 이거 정말 구겨도 돼?”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데 아이가 불쑥 이렇게 물어보네요. 뒤돌아보니 전시장 중간에 의자가 있고 거기에 앉아서 편안하게 구겨진 종이를 펴보고 나서 다시 구겨 놓도록 한 작은 퍼포먼스가 있었어요. 저도 아이와 함께 앉아 종이뭉치를 하나 펴서 보니 거기에는 이철영 님의 글을 강병인 선생님이 옮겨 적은 글이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글씨여서일까… 잠시 숨을 고르고 쭉 읽어 보았습니다.

“흔적의 차이…. 어제 새벽바람이 낙엽으로 낸 길을 오늘 아침 다시 보았습니다. 사람들이 지나간 그 자리에 부서진 나뭇잎들만 어지러웠습니다. 바람이 지나간 흔적과 사람이 지나간 흔적에는 이 만한 차이가 납니다.”

‘흔적의 차이’

손글씨가 주는 묘한 감동이 마치 누군가가 이 가을의 끝에 나에게만 주는 편지 같아서 감히 구겨버릴 수가 없었어요. 하지만 다음 사람을 위해 예쁘게 뭉쳐서 제자리에 놓았습니다.

“한글은 참 멋진 감동이 있어요. 저기 있는 ‘포옹’이라는 글씨만 해도 그래요. 한쪽으로 약간 기울어 있는 것이 마치 두 글자가 서로 기대어 포옹하는 듯한 느낌을 주지요? 차가운 글씨가 아닌 사람 냄새 나는 글씨로 따뜻한 감성을 불어넣는 재주가 바로 캘리그라피에 있답니다.”

강병인 선생님의 안내로 둘러본 전시장은 하나 가득 살아 움직이는 글씨, 한글의 재발견장이기도 했습니다.

정성껏 방명록에 이름을 쓰는 아이

어느새 딸아이는 입구에 마련된 방명록을 쓰기 위해 팔을 걷고 붓을 들고 있네요. 묵향이 코끝을 간지럽히는 이 멋진 순간을 아이는 기억할까요? 서투르게 붓을 잡고 제 이름 석자를 정성스레 써내려가는 아이를 보며 아이가 살아갈 미래에는 지금보다 더 아름답고 멋진 디자인과 글씨로 만들어진 책들이 등장하여 세상을 변화시켜 나가지 않을까 생각해보았어요. 그리고 이번 연말에는 전시장에서 구입한 예쁜 글씨와 글이 들어 있는 종이컵에 차를 담아 지인들과 함께 따뜻한 시간을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엄마, 나도 이제부터는 나만의 글씨체를 만들어야겠어. ‘이소미체’ 이런 거 말이야.”
“뭐라고? 하하하.”
겨우 글씨 몇 자 썼는데 코끝과 손에 온통 먹물을 묻힌 딸아이의 포부도 당당한 말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습니다. 글씨라면 늘 삐뚤빼뚤 쓰기 싫다고 징징거리던 녀석이었거든요. 그렇게 멋진 전시회를 뒤로하고 아이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TIP]
강병인 홈페이지 //www.sooltong.co.kr
KT&G 상상마당 홈페이지 //www.sangsangmad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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