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정혜윤 PD의 그들은?
변영주
“그래야만 하는가? … 그래야만 한다.”
그날 우리들은 인사동의 커다란 나무 밑에 앉아서 베토벤이 마지막 순간 그의 전 재산을 남긴 불멸의 여인을 찾아나서는 영화 <불멸의 연인immortal beloved>의 한 구절 ‘그래야만 하는가? … 그래야만 한다.’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뮌헨에 첫눈이 온 날, 서울의 가을바람은 커다란 손을 가진 선량한 남자의 뺨을 어루만지는 손길 같아서 늦가을로도 초겨울로도 좋았다. 그날 우리들은 인사동의 커다란 나무 밑에 앉아서 베토벤이 마지막 순간 그의 전 재산을 남긴 불멸의 여인을 찾아나서는 영화 <불멸의 연인immortal beloved>의 한 구절 ‘그래야만 하는가? … 그래야만 한다.’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과연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던 베토벤의 불멸의 연인은 누구였던가? ‘그래야만 한다.’라는 말은 누구에게 바쳐진 말이었던가?
‘그래야만 하는가?’라고 묻고 어느 정도 침묵의 시간을 흘려보낸 후 ’그래야만 한다.’라고 대답하는 그 영원 같은 찰나, 찰나 같은 영원이 우리에게 환기시켜 주는 것은 삶의 가벼움과 무거움에 관한 것이다.
「묵직함은 진정 끔찍한 것이고 가벼움은 아름다운 것인가? 가장 무거운 짐이 우리를 짓누르고 허리를 휘게 만들어 땅바닥에 깔아 눕힌다. 그런데 유사 이래 모든 연애시에서 여자는 남자 육체의 하중을 받기를 갈망했다. 따라서 무거운 짐은 동시에 가장 격렬한 생명의 완성에 대한 이미지가 되기도 한다. 짐이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우리 삶이 지상에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우리의 삶은 보다 생생하고 진실해진다. 반면에 짐이 완전히 없다면 인간 존재는 공기보다 가벼워지고 날아가 버려, 지상적 존재로부터 멀어진 인간은 기껏해야 반쯤만 생생하고 그의 움직임은 자유롭다 못해 무의미해지고 만다. 그렇다면 무엇을 택할까? 묵직함, 아니면 가벼움? 이것이 기원전 6세기 파르메니데스가 제기했던 문제이다. 그는 가벼운 것이 긍정적이고 무거운 것이 부정적이라고 답했다. 그의 말이 맞을까? 이것이 문제이다. 오직 한 가지만은 분명하다. 모든 모순 중에서 무거운 것-가벼운 것의 모순이 가장 신비롭고 가장 미묘한 모순이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중에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는 ‘그래야만 하는가? 그래야만 한다. 그래야만 한다(muss en sein? es muss sein! es muss sein!)’을 마지막 악장으로 달고 있는 베토벤의 현악 4중주곡 16번에 대한 언급이 두 번 나온다. 첫 장면은 토마스가 연인(이라기보다는 바구니에 실려 강물을 따라 자기에게 흘러온 갓난아이 같은) 테레사를 따라서 안정된 직장을 버리고 차를 몰아 스위스 국경을 넘어가며 자기들의 도시 프라하를 짓밟을 소련제 탱크를 보기 직전까지. 또 하나는 그보다 오래전 소도시의 하급 여점원이었던 테레사가 코냑을 주문하며 책을 읽던, 출장 온 외과의사 토마스에게 여섯 겹의 우연을 뚫고 코냑을 전해주러 걸어갈 때, 바로 이 음악이 흐르는 것이다. 소설은 테레사와 토마스가 피아노와 바이올린 소리에 맞춰 마지막으로 스텝을 밟으며 춤을 추는 장면으로 끝난다. 테레사는 그날 밤 토마스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며 이렇게 생각한다. “이상한 행복, 이상한 슬픔을 느꼈다. 이 슬픔이란 우리는 마지막 역에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 행복은 우리는 함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쿤데라는 그날 밤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슬픔은 형식이었고 행복이 내용이었다.”
‘슬픔은 형식이었고 행복이 내용이었다.’ 나는 이 문장을 아주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변영주 감독에게 들려줄 것이다(꼭 흥행대작이 없다는 의미만은 아님). 아마 그녀는 웃음 또는 울음을 참는 방식의 바로 그 무뚝뚝한 표정으로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그래야만 했는가? 그래야만 했다.”
<낮은 목소리> <밀애> <발레 교습소>의 변영주 감독에게 어린 시절의 라따뚜이는 스팸이라고 말할 정도로 그녀는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은 아이였다.
“부모님 둘 다 일을 하고 있었고 언니 오빠랑 나이 차이가 심해서 오후 한두 시경부터 저녁 10시까지 거의 혼자 지내야 했어요. 엄마는 매일매일 용돈을 주면서 그것으로 어떻게든 견뎌보라고 애길 했었죠. 어린 시절 즐겨먹던 음식이 미군 부대 캔이라 생각하면 좀 슬프지만 어찌 됐건 어느 날 서점에 가서 책을 뒤지는데 『춘향전』이 있더라고요. 서서 좀 읽어봤는데 어린 것들이 연애질하고 술 먹고 놀더라고요. 그래서 그 책을 사가지고 와서 읽는데 가슴이 두근두근했어요. 걸리면 혼나지 않을까 두려웠는데 뜻밖에도 너는 용돈으로 책을 사는구나, 하고 마구마구 칭찬을 하는 거예요. 그때부터 책은 아! 혼나지 않는 것! 뭐 이렇게 생각이 되었죠. 『아라비안나이트』도 음험하고 잔인한데 그것도 칭찬을 받았어요. 내친 김에 《선데이서울》도 사서 봤는데 그건 야단을 무지 맞았어요. 내가 보긴 《선데이서울》이나 『춘향전』이나 그게 그것인 것 같은데 말이죠. 그때 깨달았죠. 《선데이서울》은 혼이 나고 책은 칭찬을 받는구나! 책은 안전하구나! 라고 말이죠. 어린 시절엔 쾌락, 욕망, 탐식, 이런 것들을 죄악이라고 배우는데 그런 것들을 굉장히 칭송하는 글들을 읽으면서 배반의 기쁨 같은 것을 느꼈고요”
배반의 기쁨이란 그녀의 표현을 듣자하니 이상하게 칠레 작가 안토니오 스카르메타의 『빅토리아의 발레』가 생각이 났다(그녀의 영화가 <발레 교습소>란 점에서 그럴지도 모른다). 『빅토리아의 발레』에는 이런 장면이 나온다. 학교에서 쫓겨나게 된 빅토리아(그녀는 앙헬을 처음 만난 날 자신을 ‘라 빅토리아’라고 불러달라고 한다. 그녀는 독재에 저항하다 목이 잘려 죽은 채 발견된 아빠가 일하던 바로 그 학교에 다닌다.)가 시험을 통과해야 하는데 남자 친구 앙헬(그 둘은 <음란 천국의 엠마뉴엘>이란 일본 영화를 상영하는 삼류극장 앞에서 처음 만난다. 감옥에서 막 출소한, 잘생긴 앙헬은 자신을 이렇게 설명한다. “난 딱히 기억할 만한 친구나 과거가 없어. 그래도 나는 내가 행복해지리라는 것을 믿어. 난 맛있는 초특급 핫도그를 담그고 있는 위 같은 사람이야.”)이 공부를 도와주는 장면이다.
“1989년 천안문 광장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지?”
“베이징에서 군대와 탱크가 많은 사람을 학살했어.”
앙헬은 머리를 빅토리아의 가슴으로 가져간 뒤 젖가슴에 대고 원을 그렸다.
“우리가 갑자기 대기권을 벗어나면 어떤 일이 벌어지지?”
“터져버리겠지”
“신체에 축적되면 땀을 분비하고 신경통을 일으키는 합성물질은?”
“요산.”
“끝내주는데 빅토리아, 한 문제도 안 틀렸어.”
“너랑 공부하니까 훨씬 쉽다. 전 과목이 다 외워지는걸.”
“단일생식이란 뭐지?”
“수컷 없이도 번식하는 거야. 그건 그렇고 너 콘돔 썼어?”
어쨌든 이 장면은 사력을 다해 미래를 위해 공부하는 장면이지만 어른들을 기절초풍시킬 만한 배반의 명장면이다. 나이 어린 변영주의 배반은 음험한 배반이 아니라 마치 산티아고의 앙헬과 빅토리아처럼 어떻게든 혼자 겪어내야 하는 사람들이 선택할 수밖에 없는, 서글프고 제 딴에는 엄숙한 배반일지 모른다. 배반함으로써 복종하지 않을 수 있단 점에서 인생에는 배반이 꼭 필요한 순간이 있다는 알려주는 그런 종류의 배반. (하지만 배반이 기쁜 것은 아직 진짜로 배반하지는 않았을 때란 점에서 배반은 슬픈 운명을 갖는다. 아이들의 배반은 언제나 슬프다.)
그런 그녀가 책에 진짜로 본격적으로 빠진 첫 번째 시기는 초등학교 6학년 겨울 중학교 진학을 앞둔 긴 방학 때였다. 친구들 대부분 영어를 배우러 다니거나 과외를 받을 무렵 그녀는 우연히 그녀의 아버지가 길거리에서 10년 전에 산 《이광수 전집》을 발견한다.
“언어가 아동 언어와는 차원이 다른 거예요. 묘사도 리얼하고요. (‘소설이 야동이야?’라고 생각되는 부분을 발견했다 하는데 나는 고상하게 ‘좀 성적으로 느껴졌군요.’라고 고쳐 말해 줬다.) 아동문학가들의 글보다 훨씬 세련되었고 무엇보다도 상처받은 사람의 글이란 걸 처음 봤어요. 『유정』『무정』이 특히 좋았어요. 나중에 생각하면 ‘세기말을 산다는 게 이런 거구나, 식민지의 청년이란 게 이런 것이구나’ 하고 어렴풋이 짐작했던 것 같아요.”
그녀가 리어카에서 산 《이광수 전집》을 읽던 시기는 정말로 라디오 시대였고 대마초로 인한 오랜 칩거 생활을 마무리한 조용필이 <창밖의 여자>로 심금을 울리던 시기이기도 했다.
“<창밖의 여자>랑 이광수 소설이 어찌나 잘 맞는지, 그 쓸데없는 비정함이 두고두고 기억이 나요. 그때 아버지가 언니 오빠가 하도 공부를 안 하니까 베란다를 막아서 공부방을 만들었었어요. 굉장히 좁은 방 한쪽에 LP턴테이블이 있고 그 앞엔 LP들이 있었는데 LP와 턴테이블 사이의 밀폐된 곳에서 라디오를 들으면서 책을 보면 온몸이 붕붕 뜬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숀 캐시디 음악과 《새소년》. 조용필와 이광수 이런 식으로요. 하지만 이광수를 오래 좋아하진 않았어요. 나중에 나스메 소세키를 읽고는 이광수 글보다 더한 충격을 받았어요. 말하자면 나쓰메 소세키는 절망감을 표현하는 데 목숨을 건 사람처럼 여겨졌어요.”
절망감을 표현하는 나쓰메 소세키라면 이런 장면이 떠오른다. 이를테면 『그 후』의 아름다운 장면. 다이스케가 동백꽃이 툭 떨어지는 소리에 잠을 깨 오른손을 심장에 얹고 늑골 끝 맥박을 확인하며 다시 잠을 청하는 첫 장면과 친구의 아내가 된, 예전부터 흠모했던 여인 미치요가 가난과 피곤에 지쳐 돈이라도 꿀 요량으로 다이스케를 찾아와서는 목이 마르다 말하고 채 마실 물이 오기를 기다리지 못하고 그 방에 있던 은방울꽃이 꽂혀 있는 수반의 물을 마셔버리는 장면 같은 것. 이런 장면들에서 촉감과 향기가 표현하는 것은 다름 아닌 바로 절망이다. 그의 서간집 『소가 되어 인간을 밀어라』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소가 되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일세. 우리는 어떡하든 말이 되고 싶어 하지만, 소는 웬만해선 될 수 없네. … 서둘러서는 안 되네. 머리를 너무 써서는 안 되네. 참을성이 있어야 하네. 세상은 참을성 앞에 머리를 숙인다는 것을 알고 있나? 불꽃은 순간의 기억밖에 주지 않네. 힘차게, 죽을 때까지 밀고 가는 걸세. 그것뿐일세. 결코 상대를 만들어 밀면 안 되네. 상대는 계속해서 나타나게 마련일세. 그리고 우리를 고민하게 한다네. 소는 초연하게 밀고 가네. 무엇을 미느냐고 묻는다면 말해 주지. 인간을 미는 것일세. 문사를 미는 것이 아닐세.」
‘무엇을 미느냐고 묻는다면 말해주지, 인간을 미는 것일세.’ 이런 문장을 절망을 겪어본 누군가의 목소리로 들어본 일이 있다. 진짜로 못 견디게 따뜻하다. 무엇을 미느냐? 인간을 민다. 다시 되새겨 봐도 이건 정말 절망적으로 따뜻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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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적 저널리즘을 꿈꾸는 라디오 피디. 세월호 유족의 목소리를 담은 팟캐스트 [416의 목소리] 시즌 1, 재난참사 가족들과 함께 만든 팟캐스트 [세상 끝의 사랑: 유족이 묻고 유족이 답하다] 등을 제작했다. 다큐멘터리 [자살률의 비밀]로 한국피디대상을 받았고, 다큐멘터리 [불안], 세월호 참사 2주기 특집 다큐멘터리 [새벽 4시의 궁전], [남겨진 이들의 선물], [조선인 전범 75년 동안의 고독] 등의 작품들이 한국방송대상 작품상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삶을 바꾸는 책 읽기』, 『사생활의 천재들』, 쌍용차 노동자의 삶을 담은 르포르타주 『그의 슬픔과 기쁨』, 『인생의 일요일들』, 『뜻밖의 좋은 일』, 『아무튼, 메모』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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