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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진실한 사랑, 소유의 욕망, 섹스, 가슴앓이… 생각이 정리되질 않는다. 진실은 어디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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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관심사를 뜨거운 햇살 아래 반짝이는 백사장의 모래알처럼 드러내준 작가가 있다. 매년 노벨 문학상 단골 후보인 밀란 쿤데라.

고매한 가르침은 말한다. 진실하고 올바른 사랑은 상대를 소유하려 들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 말은 아름다운 거짓말에 불과한 것. 나만의 사람을 만들고자 하는 배타적 욕망이 사랑의 출발점이다. 사랑의 배타적 속성이 없다면 얼마나 심심할 것인가. 일단 세상의 온갖 소설과 영화의 상당 부분은 폐기처분되어야 한다. 애달픈 노랫말도, 절절했던 가슴앓이의 추억들도 다 쓸모없는 것이 된다. 그런데도 왜 그렇게 가르치는가. 상대를 소유하려 들지 말라고. 원래 세상의 가르침이란 하기 힘든 것만 요구하는 경향이 있지만, 좀 거창하게 파악해보자면 그건 아마도 힘 있고 능력 있는 자의 ‘더 많은 소유’를 제한하고자 하는 자본주의 체제의 고육책으로 여겨진다. 아울러 인간의 본성으로는 아무래도 무리인 일부일처 제도를 유지시키기 위한 방편으로도.

꽤 오래전 일이다. 탤런트 서갑숙의 책 『나도 때론 포르노그라피의 주인공이고 싶다』가 한창 화제일 때 나도 한번 TV 토론회에 불려 나갔다. 이혼까지 경험한 40세의 여자가 평생에 걸쳐 11명의 남자와 관계를 가졌다는 게 그리도 이상한 일이냐는 나의 발언에 보수적인 입장을 대변해 나온 분들은 기가 막혀하며 분개하는 표정까지 지었다. 민망하기도 하지. 아무리 줄여 기억해도 나 자신부터 서갑숙이 경험한 수효를 넘는다. 날라리나 매춘부이기는커녕 내 상대들은 모두 이른바 양갓집 규수이거나 전문 직업인들이었다. 가슴 뜨거운 사랑을 나눈 상대도 있고 호감이 발전해 즐겁게 테니스 한 게임 치듯 한 경우도 있었다. 과연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은 그 보수파들과는 한 하늘 아래 다른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인가.

진실한 사랑, 소유의 욕망, 섹스, 가슴앓이… 생각이 정리되질 않는다. 진실은 어디에 있는가. 이런 관심사를 뜨거운 햇살 아래 반짝이는 백사장의 모래알처럼 드러내준 작가가 있다. 매년 노벨 문학상 단골 후보인 밀란 쿤데라. 1990년대 내내 문화 언저리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가장 자주 언급한 이름이 일본의 무라카미 하루키와 체코 출신의 프랑스 작가 밀란 쿤데라였다. 하루키는 고립된 자아의 고독과 페이소스로 사람들을 적셨고, 쿤데라는 까놓고 드러낸 농담 같은 생의 진실을 낱낱이 일러줬다. 쿤데라의 그 진실이란 바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제목이 너무 많은 것을 말하고 있다. 쿤데라는 소설의 시작 부분에서부터 선택을 강요한다.

“… 가장 무거운 무게는 동시에 가장 집약적인 삶의 충족 이미지다. 무게가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우리의 삶은 더욱더 땅에 가깝다. 그것은 더욱더 실제적이고 참된 것이 된다. 이와는 반대로 무게가 전혀 없을 때 그것은 인간이 공기보다도 더 가볍게 되어 둥둥 떠올라 땅으로부터, 세속의 존재로부터 멀리 떠나게 한다. 그래서 인간은 절반만 실제적이고, 그의 동작은 자유롭고 동시에 무의미한 것이 된다. 자, 그러니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인가? 무거운 것을? 아니면 가벼운 것을?”

문장을 옮겨 적어놓고 보니 퍽 심오하게(?) 읽힌다. 그게 아니라…… 아, 영화를 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다니엘 데이 루이스와 줄리에트 비노슈, 레나 올린이 얽히고설킨, 카우프만의 썩 잘된 영화 〈프라하의 봄〉이 바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토마스로 나오는 다니엘 데이 루이스는 정처없는 바람둥이처럼(나는 그가 바람둥이라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 비쳐지고, 줄리에트 비노슈는 삶을 이해하지 못한 채 사랑의 격랑에 휩쓸려 다니는 촌여자 테레사를 보여주고, 레나 올린은 응시와 관조의 태도로 한발짝 물러서 있는 신비스러운 여인 사비나의 역할이다. 존재의 가벼움과 무거움을 가를 때 어느 쪽이 테레사이고 어느 쪽이 사비나인가? 그리고 가운데 선 남자 토마스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야지. 지금 여기서 말하고 싶은 주제는 ‘진실’에 관해서다. 좁혀서 말하자면 유행가 제목에도 있는 ‘사랑의 진실’에 대해. 무엇이 사랑의 진실인가. 고매한 말씀의 상공을 내려와서 실제를 보자. 우선 우리나라는 진실한 사랑을 하기가 참으로 쉽다. 당신이 만일 남자라면 한번 실험해보라. 어떤 여자를 무지무지 좋아하는데 섹스나 스킨십만 참는다면 당신은 금방 점잖은 사람이 되고 진실한 사랑을 하는 사람이 된다. 얼마나 손쉬운 일인가. 포르노물이 가르치는 확실한 거짓이 있는데, 육체적 충동이란 게 실제로는 포르노에서처럼 그렇게 대단한 것도, 못 말리게 참기 힘든 일도 아니라는 사실이 그것이다. 사내들은 그걸 다 안다. 정말로 참기 힘든 건 사랑하는 상대에게 특별한 존재가 되고 싶어 하는 열망이다. 자, 당신이 만일 ‘진실한 사랑’을 하고 싶다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무거움과 가벼움 혹은 실제적이고 참된 것과 자유롭지만 무의미한 것 사이에서.

이야기를 나 자신으로 끌어와볼까? 하지만 무슨 고백 체험수기를 쓰겠는가. 그러나 어쨌든 사랑의 감정은 항상 나를 아프게 했다. 욕정만이 있었다면 한결 편안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상대의 하반신에만이 아니라 대뇌피질에도 기억을 남겨두고 싶어 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무거움 또는 자의식.

쿤데라의 주인공들은 어떠했는가. 번역자 송동준 씨가 역자 후기에서 훌륭한 암시를 준다. 먼저 남자 주인공 토마스는 여인 개체의 자아가 각기 숨기고 있는 독특성을 성교 때 각기 상이한 반응 및 태도에서 찾아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수백 명의 여인들과 교접을 한다. 즉 여성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성실한 이해를 위해서 그는 섹스를 추구하는 것이다. 한편 예술가인 사비나의 삶은 배반의 연속으로 이어진다. 아버지를 배반하고 공산주의를 배반하고 남편을 배반하고 그 대신 생의 자유로움을 안겨주는 토마스와 구속 없는 애정관계를 누린다. 거기에는 토마스에 대한 종국의 배반도 포함된다. 사랑은 배반에 의해 완성된다는 은희경의 유명한 교설은 사비나에게서 힌트를 얻었는지도 모른다. 사랑을 할 수 없게 된 오늘날의 인간들이 사랑을 한다 함은 자신을 속이거나 아니면 다른 사람을 속이는 것으로서, 자신의 생각에 대한 배반이거나 아니면 실제에 대한 배반이라는 게 사비나의 행각을 빌은 쿤데라의 주장. 배반만이 사비나의 진실이다. 그럼 촌여자 테레사는? 그녀는 자신의 생을 객관적으로 이해하지 못한다. 물론 자기 주관으로 생을 개척해나가는 데도 실패한다. 그런 그녀에게 사랑이란 상대에 대한 함몰을 의미하는 것이다. 한없이 빠져들고 한없이 집착하고 한없이 질투하는 테레사. 그런데 토마스를 획득하는 현실적인 사랑의 승리자는 테레사다.

쿤데라를 함께 읽은 친구의 말. “우리나라 여자들은 죄다 테레사야.” 우하하하하. 그건 그렇지. 나와 세련된(?) 테니스 섹스를 나눈 상대들이 언제나 예외 없이 묻는 말이 있다. “다른 여자들하고도 이렇게 가볍게 관계를 갖나요?” 자신이 사소하게 취급되는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것에 대한 불안감. 그러니까 자유로움의 이면에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무거움, 테레사의 그림자가 언제나 자리하는 것이다.

과연 사랑의 진실이란 무얼까. 토마스의 자유, 사비나의 배반, 테레사의 함몰, 과연 어느 것인가. 또한 사랑의 진실에서 섹스가 차지하는 질량은 어느 정도일까. 체험을 뒤져보는 게 역시 쉽다. 물론 나에게도 떠올리기 싫은 기나긴 테레사 시절이 있었다. 간절했고 열렬했고 그래서 깨졌다. 이어서 다른 인생이 찾아왔다. 쉬운 만남과 쉬운 헤어짐. 진지하지 않은 적은 없었지만, 적어도 집착으로부터는 해방될 수 있었다. 자,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인가. 내가 만난 여자들에게는 어떤 공통점이 있다는 사실이다. 처음부터 알았던 것은 아니지만 나중에 저절로 그 속성을 깨닫게 되었다. 내가 만난 여자들의 공통점이란, 부디 나를 얼간이로 여기지 말기를 바라면서 말하건대, 모두가 이른바 객관적으로 ‘잘난 여자’들이라는 사실이다.

잘난 여자들에게는 대략 세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순진하다. 순진할 수밖에. 의사가 되는 과정에, 기자나 프로듀서를 하는 가운데, 화가나 작가로 이름을 날리게 되는 과정에, 혹은 유학 가 학위를 마치고 돌아와 대학 선생이 되는 과정 동안에 어찌 무수한 만남과 감정의 사술詐術을 익힐 틈이 있었을 텐가. 잘난 여자들은 자기 성취를 위해 바빴던 터라 대개 친구가 드물고 외롭다. 순진하고 순진할지니 얼마나 사귀기가 쉬운가. 둘째, 잘난 여자들은 상대의 세속적인 조건에 별로 구애되지 않는다. 남자의 직업이 어떤지, 수입은 어느 정도인지, 집안은 어느 수준인지 별로 따지려 들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자기에게 자신감이 있으니까. 상대의 조건에 따라 그다지 좌우될 게 없으니까 현실적인 득실보다는 오직 하나, 매력만 크게 보는 것이다. 외모든 조건이든 거의 최악에 가까웠던 나로서는 거기 구애받지 않을 상대라고는 잘난 여자를 만나는 수밖에. 사람의 매력이란 얼마나 주관적인 것인가. 잘난 여자의 세 번째 특징은 보안유지가 철저하다는 점이다. 통념상 드러낼 수 없는 아슬아슬한 만남들. 세상에는 그런 걸 함부로 드러내 낭패를 보게 만드는 사람도 흔히 있다. 그러나 잘난 여자란 자기가 더 가진 게 많기 때문에 쉬쉬 드러내지 않으려 애쓴다. 내밀한 관계 유지를 위해 별달리 애쓸 필요가 없으니 얼마나 좋은 일인가.

자, 이런 복잡한 머리 계산을 깔고 나는 데이트를 했다. 그런 만남에 진실한 사랑은 없다고 꾸짖으시려는가. 어디선가 너 같은 자는 사랑의 진실을 말할 자격이 없어! 하고 질타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우리나라에 훌륭한 말씀을 늘어놓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는 점이다. 사랑 혹은 섹스에 대한 온갖 가르침들을 접하노라면 내가 품고 있는 진실이란 혹시 외계인의 것은 아닌지, 또한 사랑의 감정에 대해 적나라하고 섹스에 대해 개방적인 서방 사람들은 모두 무지몽매한 오랑캐라고 보는 것은 아닌지 의문스럽다.

사랑의 소유욕에 대해 혹은 진실한 사랑에 대해 전전반측하다 보니 길은 오리무중이다. 그게 다 내 존재가 참을 수 없이 가볍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그 부황한 쌍팔년 올림픽의 해 끝머리에 처음 나온 쿤데라의 책을 접하고 뒤통수를 얻어맞고 앞머리가 땡기는 체험을 했었다. 모름지기 인간이란 이렇게 해야만 하고 저렇게 살아야만 한다는 뼈에 사무친 가르침들에 대해 쿤데라는 숨겨놓았던 생의 이면을 불쑥 들춰내주는 거였다. 냉소와 역설 또는 철학적 담론으로. 그의 또 다른 역작 『불멸』이 그러했고 『생은 다른 곳에』가 그러했고 『농담』이나 『웃음과 망각의 책』이 한결같이 그랬다. 나는 쿤데라식 초절 기교의 농담 앞에서 웃음이 나오기보다는 숨이 막혀왔다. 왜 쿤데라가 말하는 생의 진실은 엄숙하기보다는 우스꽝스럽게 그려지는 것일까. 그러고 보니 그의 농담에는 모두 전체주의 사회라는 배경이 깔려 있다. 전체주의 사회 속에서 진실의 표정은 참 엽기적으로 웃긴다. 한국사회에서 사랑의 윤리 도덕 그리고 성관념은 참으로 웃긴다. 참, 어떤 사회가 웃긴다고 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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