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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의 『리진』

책 읽는 사람들과 함께 오늘 읽을 책은 신경숙의 ‘리진’입니다. 프랑스 초대 공사 콜랭의 눈과 마음을 빼앗은 궁중 무희 리진. 분명히 존재했으나 흔적조차 발견할 수 없는 리진의 삶은 작가 신경숙에게서 새롭게 태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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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 처음으로 파견된 불란서 외교관이 조선의 궁중 무희에게 첫눈에 반해 그녀와 함께 파리로 건너갔다’

‘그녀가 눈을 감은 채 말을 하기 시작하면 프랑스 사람들은 그녀의 열정에 이끌려 그녀가 구사하는 독특한 리듬의 언어를 황홀한 표정으로 경청했다...’

이 짧은 몇줄의 기록으로부터 작가 신경숙의 ‘리진’이 탄생됩니다.

안녕하세요, 책 읽어 주는 사람 신윤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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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사람들과 함께 오늘 읽을 책은 신경숙의 ‘리진’입니다.

무대 중앙에 놓였던 목단화준이 옮겨지고 그 자리에 길이가 여섯 자는 될 정교한 문양의 화문석이 깔렸다. 박 소리가 울리자 손을 여민 무희가 나막신을 신은 듯한 걸음걸이로 무대 위에 자태를 드러냈다. 박 소리가 그치자 무희의 입에서 고운 소리가 흘러나왔다.

무희가 사를 마치고 펼쳐든 두 팔을 뒤로 뿌리며 얼굴을 옆으로 돌릴 때였다. 포도주를 한잔 따라 마시려던 콜랭은 놀라서 몸을 반듯이 세웠다. 스쳐 지나간 무희의 눈동자. 콜랭은 바짝 긴장해 다시 한번 무희의 눈동자가 자신을 스쳐 지나기를 기다렸다. 새가 두 날개를 편듯이 두 팔을 양옆에 펼치고 화문석 위를 빙글 돌 때 콜랭의 눈이 무희를 뚫어져라 보았다. 그녀다!

콜랭의 입에서 깊은 탄식의 숨소리가 흘러나왔다. 왕과의 첫 알현이 있던 날 금천교 위에서 만났던 그 여인. 얼결에 봉주르! 라고 프랑스 말로 인사를 했을 때 놀라지도 않고 다정한 얼굴로 봉주르!라고 응답을 했던 그 궁녀였다.

프랑스 초대 공사 콜랭의 눈과 마음을 빼앗은 궁중 무희 리진. 분명히 존재했으나 흔적조차 발견할 수 없는 리진의 삶은 작가 신경숙에게서 새롭게 태어납니다.

INT : 신경숙

제가 잘 아는 분이.. (중략) 100년전에 프랑스에서 나온.. 조선에 관한 책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책에서.. 재미있는 그러면서 굉장히 슬픈 어떤 내용이 있더라.. 그래서.. 나한테 도움이 될 것 같아서.. 그것을 번역을 했으니까.. 한번 읽어봐라.. 그 대목만 딱 번역을 했대요. 그래서 보여줬어요.. 그게 이제..

처음에는 그런 일 있었나.. 한번 스윽 읽고 말았는데.. 저녁에 와서 집에 와서 자세히 보니까.. 한 여자가.. 그러니까 같은 동시대인이 보지 못한 것을 일찍 경험하고 본 한 여자가.. 제 표현대로 하면.. 울고 있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었어요. 그래서 아 내가.. 이 여자를 책속에서 기록속에서 끌어 내와서.. 이 세상에서 살게 해 줘야겠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시작을 했습니다.

흔적없는 리진을 다시 살게 하는 일은 그녀에게 어미며 가족이며 고향의 궤적을 만들어 주는 일입니다. 그리고, 작가는 그녀 삶의 한 가운데에 내밀한 구중궁궐에서 리진이 결코 비껴갈 수 없는 존재.. 자식 잃은, 슬픈 황후를 데려다 줍니다.

INT : 신경숙

명성황후에 대한 상처는 개인적인 것이 아니잖아요. 누가 들쑤시기만 하면 어쩔 줄 모르겠는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그런 순간을 갖게 하는.. 그런 황후인데.. 그.. 저도 역시 마찬가지였어요.. 시대가 그 시대이니까.. 아?.. 어쩌면 좋지?.. 그런 마음.. 그 애정.. 그리고 이 황후를.. 기존의 박제된 이미지

그런 것 말고 나는 명성황후의 내면, 그러니까 기록을 보면 이 명성황후는 많이 불행했던 사람으로 여겨져요. 아이도 굉장히 많이 유산을 했고, 여자로서 아내로서 또 많은 아이를 잃어버린 슬픈 모성을 가진 어미로서 리진과 결부를 시켰습니다. 그러니까 아기나인때 리진이 궁으로 들어 오는데 궁궐에서 명성황후와 둘을 좋아하게 돼서 정신적인 모녀관계처럼 그려놨습니다.

조선의 법도가.. 궁중의 모든 여자를 왕의 소유물이라 규정함을 알 리 없는 프랑스 공사 콜랭은 왕에게 리진을 사랑한다 고백하고, 그녀와 함께 살게 해달라고 간청합니다. 그리고, 이 가당치 않은 일을 가능하게 한 것은 리진의 정신적 어미, 명성황후의 노력이었습니다.

그렇게 빠리로 떠나간 리진... 그 곳에서 그녀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생각했을까요?

낭독 : 신경숙

중궁마마. 아침에 제가 꼭 하는 일은 신문을 보는 일입니다. 신문을 보고 있으면 이 나라에서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속속들이 알 수 있습니다.

정치적인 일 뿐 아니라 파리 몽마르트르 대로에 있는 그레뱅 밀랍 박물관에 어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는지, 내일 날씨는 어떨 것인지까지 상세히 알 수가 있답니다.

제게 신문을 읽는 일은 다양한 사람들의 자유로운 의견을 알 수 있는 소중한 시간입니다. 처음엔 파리 시민 모두가 신문을 읽었던 건 아니라 합니다. 귀족이나 부자들만이 볼 수 있을 정도로 구독료가 비쌌다고 합니다. 게다가 대혁명 이전에는 언론에 대한 검열과 탄압이 심했다고 합니다.

대혁명을 통과하면서 ‘사상과 의견의 자유로운 의사소통은 인간의 귀중한 권리들 가운데 하나이며, 모든 시민은 자유롭게 말하고 글을 쓰고 인쇄할 수 있다’는 선언서가 생겼다 합니다.

만약 조선 궁궐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투명하게 알 수 있는 신문이 조선에서 만들어진다면 어떻게 될까? 상상을 해보았습 니다. 어쩌면 그것이 조선을 이롭게 하지 않을까요?

아름다운 여자
한 페이지 반의 기록에 갇혀 있던 여자
우리가 잊어버린 여자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여자......

그녀의 이름은 리진입니다.

오늘 들으신 프로그램 KBS 홈페이지 kbs.co.kr과 온북티브이 홈페이지 onbooktv.co.kr을 통해 언제든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책 읽어 주는 사람 신윤주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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