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감, 그릿, 넛지, 긍정심리학, 무의식의 힘 같은 심리학계의 블록버스터급 아이디어들은, 엄청난 조회수의 TED 강연, 베스트셀러 도서, 단순한 처방, 전염성 강한 메시지 덕분에 우리 시대의 지배적인 사상이 되었다. 그런데 이 아이디어들의 근간이 되는 과학의 상당 부분이 오류가 있다면 어떨까? 뒤늦게 부실한 연구, 데이터 조작, 주장 철회, 재현 성공률 25%라는 불명예스러운 진실이 밝혀졌다면? 『손쉬운 해결책』은 현대 심리학의 8가지 초대형 히트작(자존감, 긍정심리학, 그릿, 넛지, 무의식의 힘, 파워 포즈, 편견 검사, 청소년 슈퍼범죄자 설)을 전방위적으로 분석, 비평한 책이다.
저널리스트로서 대중 심리학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20대 때 저는 사람들이 왜 애초에 어떤 것에 동의하지 않는지를 궁금해했습니다. 그러다 조너선 하이트(Jonathan Haidt)와 그의 도덕 기반 이론(Moral Foundations Theory)을 접했고, 이후 프린스턴 공공정책대학원에서 공부하면서, 인간이 어떻게 사실이 아닌 것을 믿도록 자신을 속이는지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어요. 여러 학문 중에서도 특히 행동경제학 분야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이를 통해 매우 의심스러운 아이디어들이 심리학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잡지 <뉴욕>에 이런 아이디어로 글 몇 편을 실었는데, 제 에이전트가 이걸로 책을 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어요.
한국에서도 심리 해결책이자 자기계발 도구로 자존감, 그릿, 긍정심리학을 다룬 도서가 선풍적인 인기를 누렸습니다. 대중 심리학 도서를 접할 때 유의해야 할 점은 무엇일까요?
저는 자조나 자기계발에 반대하지 않습니다. 누군가 그런 책들을 읽어 도움을 받았다면 정말 좋은 일입니다. 제가 걱정하는 것은 거짓되거나, 입증되지 않은 과학적 주장에 빠지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그릿(끈기 혹은 인내)과 다른 긍정적인 요인의 통계적 상관관계는 생각보다 훨씬 약하며, 연구자들은 그릿을 향상해 성과를 높이는 신뢰할 만한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그릿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마음 한구석에 간직할 수는 있겠지만, 데이터에 의해 뒷받침되지 않는 특정 주장에 현혹돼서는 안 될 것입니다.
대중은 과학적 기반이 허술한 심리학적 방법에 쉽게 현혹될 수 있는데 여기에는 전문가 집단의 책임도 있지 않나요?
연구자들이 근거가 별로 없는 아이디어를 대중화하는 데 기여해왔다는 점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여기에는 여러 유인이 있습니다. 모든 연구자가 자신과 소속 기관, 동료들이 널리 인정받기를 원하고, 연구 지원금을 받고, TED 강연을 하길 바라는 것이죠. 그래서 연구에 약간 손을 대고, 보도 자료를 약간 과장하고 싶은 유혹이 항상 따라다닙니다. 어느새 이러한 행동이 습관이 되어 입증되지 않은 이론을 자신 있게 발표하는 연구자들이 생겨납니다.
'자기(self)'는 매우 복잡하고 정의하기 어려운 개념인데 '자존감(self-esteem)'을 비롯해 자기와 관련된 개념들이 엄청나게 많이 연구되고 있습니다. 이론적으로 합의되지 않은 개념에서 많은 파생 개념이 나오고, 또 이런 개념들이 연구되는 현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자존감은 연구자들이 데이터와 이론을 갖추기 전에 섣불리 앞서 나가서 거대한 주장을 펼친 좋은 예입니다. 미국에서는 자존감 커리큘럼이 일부 학교의 교과과정에서 꽤 큰 부분을 차지했고, 기본적인 질문에 대한 답이 나오기 훨씬 전에 이미 강좌와 서적 등을 통해 개별 소비자에게 판매되었습니다. 연구자들은 자존감 향상이 성적 향상으로 이어지는지, 성적 향상이 자존감 향상으로 이어지는지, 아니면 두 가지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는지 등을 둘러싼 인과 관계조차 충분히 규명하지 못했습니다. 이런 상황인데도 자존감 개입이 매우 중요하고 많은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대중에게 주장하기 시작했죠.
또 다른 예로는 개인의 암묵적 인종 차별 수준을 측정하는 암묵적 연관 검사(IAT)가 있습니다. 이 검사는 암묵적 편견이 정확히 무엇인지, 이를 효과적으로 측정할 방법이 있는지, 암묵적 편견이 어떤 인과적 영향을 미치는지 같은 매우 기본적인 질문에 연구자들이 답을 내놓기도 전에 미국에서 수천만 또는 수억 달러에 달하는 블록버스터가 되었습니다. 이 검사는 엉망진창인데도 미국에서는 여전히 널리 사용되고 있습니다. 과학적 발견을 과대 포장하면 이런 일이 벌어집니다.
'손쉬운 해결책(quick fix)'에 대한 심리학 연구들이 양산되는 이유 중에 심리학계 자체의 문제는 없을까요? 이를테면 방법론이나 접근 방식 말입니다.
저는 심리학의 역사나 관련 분야의 전문가는 아닙니다. 하지만 사회심리학이 인류학이나 사회학처럼 현장 연구 등을 수행하는 대신 실험실 환경에서 한 사람 한 사람을 측정하는 데 집착하면서 무언가를 잃었다고 주장한 『The Disappearance of the Social in American Social Psychology』(미국 사회심리학에서 '사회'의 실종)이라는 책의 주장에 공감합니다. 이런 접근 방식에 집착하고 실험실에서 멋진 도구와 저울, 기기로 인상적인 결과를 도출하는 데만 집중하다 보면 잘못된 길로 빠져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심리학 연구가 조금만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었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알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손쉬운 해결책'으로 원하는 답(행복, 경영의 효율성, 연구의 용이성 등등)에 도달할 수 없다면, 사람들은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요?
이런 질문을 받게 되어 영광이지만, 저는 여기에 답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굳이 말하자면, 가족, 기독교 교회나 유대교 회당, 혹은 이슬람 사원, 정당과 같은 자신에게 의미 있는 사회 구조에 속해 있다면 행복하고 충만한 삶을 누리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말하고 싶어요. 고립된 사람일수록 더 위축되기 마련이죠. 하지만 이러한 질문에 대한 해답을 알았다면 두 번째 책을 썼을 테고, 대박이 났겠지요!
한국인들은 누구보다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사람들입니다. 당신의 책이 한국인들을 보다 실질적인 행복의 길로 인도하길 바랍니다. 한국 독자들에게 한말씀 부탁드립니다.
이 책이 손쉬운 해결책을 피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면 좋겠어요! 제 책을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하지만 저 자신을 인간의 행복 같은 심오한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전문가로 묘사하고 싶지는 않아요. 이는 제 책에서 다룬 몇몇 주제와 마찬가지로 똑같은 오류에 빠지는 일이니까요.
*제시 싱걸 저널리스트. <뉴욕 타임스>, <애틀랜틱>, <슬레이트>, <보스턴 글로브> 등에 글을 쓰고 있다. 격주로 발행되는 종합지 <뉴욕>의 기고 작가로, 이 잡지의 온라인 자매지인 <사이언스 오브 어스>의 전 편집장이며 <블락트 앤 리포티드(Blocked and Reported)> 팟캐스트의 공동 사회자이기도 하다. 로베르트 보슈 재단 장학생으로 베를린에서 수학했으며 프린스턴대 국제정책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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