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암흑 시기에 나는 여러 가지 희한한 일들을 겪었는데, 충분히 '증세'라고 불러야 할 만한 것들이기도 했다. 나를 가장 괴롭혔던 것은 일종의 기억 상실 같은 것이었다. 꼬마는 커다란 빗자루를 들고 다니며 'M 같아 보이는 것들'을 싹싹 지웠다. 쌓여 있는 물건에 대한 공포가 책에만 집중되었던 것처럼 이 증세도 오로지 글 쓰는 분야에만 관련되어 발생했다. 나는 내가 읽은 책의 내용이나 문학과 관련해 만났던 사람들을 심하게 기억하지 못했다. 다른 문제에는 멀쩡하니 기억력이 또롱또롱해서 나는 이 격차에 여러 번 당황하고 심한 자괴감을 느꼈다.
특히, 평론가들은 아무리 유명하고 자주 뵌 분들이라도 거의 틀림없이 잊어버렸다. 평론가라니, 내가 한 일을 이러쿵저러쿵 '평가질' 하는 사람들이 아닌가! 꼬마가 생각하기에 그들은 M과 95% 유사성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당연히 깨끗이 지워야 했다. 평론가만큼은 아니더라도, 시인이건 소설가든 편집자든 글 쓰는 세계에 관련된 사람과 사물들은 앗 하는 사이에 기억에서 지워져 사라졌다. 출판사의 송년회처럼 수많은 문단 사람들이 모이는 행사에 초대받으면 아는 것도 아니고 모르는 것도 아닌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어떻게든 그들이 누구인지 기억하려 몸부림쳐야 했다. 등단한 지 15년이 넘어가자 나는 점점 더 유명한 분들과 같은 테이블에 앉도록 안내되었는데, 나는 그런 분들조차 알아보지 못하고 애매하게 웃으며 그가 누구인지 눈치로 알아맞히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다. 그것은 흔히 겪는 낯섦이나 어색함과는 색깔이 많이 다른, 미칠 것 같고 수렁에 빠진 것 같은 암담한 기분이었다.
사회생활을 안 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서, 어느 해 어느 출판사의 송년회에서 나는 어느 남자 작가와 같은 테이블에 앉게 되었다. 그는 나에게 친절한 미소로 인사를 건넸다. 아는 분인 것 같은데, 나는 그를 알아볼 수 없는 그런 상태였다. 나는 가짜 인사를 나눌까 첫인사를 다시 나눌까 고민하다가, 그나마 내 입장에서는 좀 더 솔직한 방향인 두 번째를 선택하기로 결심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소설을 쓰는 심윤경이라고 합니다."
그러자 그가 친근한 미소를 얼굴에서 싹 지우고, 벼락이라도 맞은 것같이 허리를 직각으로 굽히며 각 잡힌 신병처럼 다급하게 관등 성명을 외쳤다.
"아! 예! 안녕하세요! 저는 소설가 이기호라고 합니다!"
나는 꼬마가 칠판에서 평론가나 작가들의 이름을 싹싹 지우곤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게 마음에 들지는 않았으나, 꼬마 입장에서는 그럴 만도 하다고 어느 정도 이해가 되기도 해서, 그냥 그런 선에서 적당히 지내기로 피차 상호 협정을 맺은 상태였다. 이날 꼬마가 한 발짝 더 나아가 아무나, 정말 중요한 사람까지도 함부로 마구 지워대고 있음을 깨달았다. 비록 모든 것이 뒤죽박죽인 혼돈의 세계에 오래도록 살고 있었으나 소설가 이기호는 내가 '잊어버릴 수도 있는 사람'의 명단에 넣을 수 있는 사람이 도저히 아니었다. 그는 나와 동갑이었고, 나는 그가 중요한 문학상들을 받은 근황을 알고 있었다. 오래전 나는 그에게 '소설은 유머라는 수단으로 영상 매체와 대결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져 꽤 날 선 토론을 벌이기도 했는데, 우리는 둘 다 그 문제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었다. 그는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로 오래전 내가 했던 질문에 대해 군더더기 없는 대답을 내놓았고, 나는 그 소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았다. 그런데 나는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이기호 작가를 알아보지 못한 충격에서 헤어나기도 전에 2차 충격파가 덮쳐 왔다. 카페의 문이 열리더니 또 다른 중년 남자 소설가가 들어왔는데, 그는 행사장을 한 바퀴 둘러본 후 곧바로 우리를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나는 그를 안다. 나는 그를 여러 번 만났고 그의 작업실에 찾아가 차와 환담을 나누고 식사를 함께 하기도 했다. 분명히 아는 사람이다. 그러나 나는 그가 누구인지 도저히 떠올릴 수 없었다. 저 사람조차 못 알아보고 또다시 처음 뵙겠습니다, 를 할 수는 없다. 그럴 수는 없다. 그를 기억해 내야 한다. 그는 나에게 다가오고 있다.
기적이 일어났다. 시간이 느리게 흐르기 시작했다. 갑자기 나를 둘러싼 사람과 사물들이 슬로 모션으로 움직였다. 기억해 낼 수 없는 그 소설가가 나를 향해 다가오는 동안 세상의 타임 스케일은 1/10 프레임으로 쪼개져 느리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그는 천천히 다리를 내딛고, 천천히 목에 두른 목도리를 풀었다. 그를 생각해 내! 그를 기억해 내! 놀랍게도, 영상이 느리게 움직이자 송년회의 북적이는 소리들도 마치 너무 여러 번 재생과 복사를 반복한 나머지 형편없이 늘어져 버린 카세트테이프 소리처럼 불안정한 저음으로 늘어져 들렸다. 세상을 바라보는 정신 질환자들의 혼란스러운 인식들을 웅웅거리는 소음과 슬로 모션으로 표현하는 것이 영화인들의 재치 넘치는 표현력이 아니라 실제 사람의 감각에 그런 식의 인지 변형이 일어난다는 것을 나는 그날 경험했다.
온몸을 쥐어짜내 그의 정체를 알아내려 몸부림치는 동안 내 존재의 심연에서부터 어떤 느리고 마지못한 목소리가 솟아올랐는데, 그 목소리 역시 테이프가 늘어진 고르지 못한 웅웅 소리로 들렸다.
제에에에에에에에............
제?
서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억................
석?
성석제!!!!!!!!!
그의 이름 세 글자가 역순으로 어렵사리 떠오른 순간, 시간은 갑자기 미칠 듯한 패스트 모션으로 흘러 지연된 흐름을 만회한 다음 제 속도로 돌아왔다. 그러니까 내 눈에는 성석제 작가님이 목도리를 풀며 다가오는 모습이 1/10배속으로 느리게 보이다가 마지막 몇 발자국은 8배속으로 갑자기 빨라진 다음 의자 등받이를 손에 쥐고 끌어당겨 내 맞은편에 앉는 장면부터는 정속으로 보였다. 그의 일련의 동작들이 그렇게 슬로 – 패스트 - 정속의 흐름으로 들쑥날쑥하게 흐르는 동안 나는 승차감이 거지 같은 시간 여행 캡슐에 탄 것처럼 미친 듯이 심장이 뛰었고 어지러움과 멀미를 느꼈다.
이기호 작가를 못 알아보고 성석제 작가의 이름이 거꾸로 떠오른 그날 나는, 내가 그냥 사람을 좀 잘 까먹고 부주의한 정도를 넘어 무언가 비정상적이라고 할 만한 상태인 것을 비로소 인지했다. 무언가 고집스럽고 비뚤어진 손이 내 무의식의 기억 저장 창고를, 그것도 문학과 관련된 부분만, 단단히 움켜쥐고 원활한 인출과 수납을 교란하고 있었다.
그런 괴상한 일들을 나는 수없이 여러 가지로 경험했다. 그중 가장 심했던 것은 다음의 예다. 2021년 출간된 『영원한 유산』은 1966년 화재로 소실된 유럽식 대저택 벽수산장을 무대로 한 이야기였고 그 소설로 나는 제5회 이호철통일로문학상을 수상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창이던 때라서 사회적 거리 두기가 완화되기를 기다리느라 시상식은 거의 연말께로 미루어졌다. 내가 수상자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시점에서 시상식까지 거의 반년의 시간차가 있었다. 시상식에서 나는 아주 겸손한 자세로 "이호철 선생님의 작품을 접해 보지는 못했지만 그분의 문학적 성취를 기리는 이 중요한 상을 받게 된 것이 크나큰 영광"이라고 말했다. 불행히도 그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심사 위원들은 "이호철 선생님이 이 작품을 보셨더라면 정말 기뻐하셨을 것"이라고 여러 번 강조했는데 나는 그것이 의례적인 덕담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 모든 행사가 다 끝나고도 한참 시간이 흐른 어느 날, 나는 『영원한 유산』을 쓰면서 이호철 작가의 『서울은 만원이다』를 참조해 정리해 놓은 노트를 발견했다. 『서울은 만원이다』는 고향을 떠나 팍팍한 서울살이를 헤쳐가는 1960년대 청년들의 삶을 그린 작품이다. 나는 내가 살아보지 못한 1960년대 서울의 모습, 낯섦과 동경, 두려움과 울분과 체념이 뒤범벅된 그 시대 소시민들의 꼬질꼬질하고 옹색한 삶을 그 작품을 통해 체득하고 내 작품 속에 재구현했다. 그래 놓고 나는 내 기억 속에서 이호철을, 『서울은 만원이다』를 깨끗이 지웠고, 그분의 이름을 따라 제정된 상을 받으면서도 그분과 나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을 수도 있다는 일말의 가능성조차 떠올리지 않았다. 작품 속에 분위기가 비슷한 지점들이 많이 있는데, 그분의 영향을 받은 것이 정말로 없냐는 질문까지 받았는데 안타깝지만 그런 부분은 전혀 없다고 단호하게 대답했다. 잠깐이야 까먹을 수도 있겠지만, 몇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호철 선생님과 나의 작품이 그토록 격렬한 형태로 포개졌는데도, 나는 그런 사람과 작품을 전혀 모른다고 여러 번 단언했다. 베드로처럼 의도적으로 부인한 게 아니라, 나는 정말로 내 앞에서 십자가를 지고 매맞으며 지나가는 저 남자가 누구인지 백 번 천 번 보아도 도무지 알아볼 수 없었을 뿐이다.
『서울은 만원이다』의 여러 장면과 문장들을 내 손으로 정리한 그 노트를 앞에 두고 내 심정이 어땠는지를, 정말이지 형언할 길이 없다. 2021년 무렵에는 내가 어느 정도 자신감과 마음의 건강을 회복했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었으므로 더 충격이 컸다. 이건 정말 말도 안 된다, 비정상이다, 정말이지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을 또, 아직도 저지르다니 믿을 수 없다고 며칠이나 자괴감에 빠져 스스로 머리를 쥐어뜯었다.
정말 왜 이러는 거냐고, 빗자루를 들고 말똥말똥 쳐다보는 꼬마에게 묻고 싶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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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윤경
소설가. 장편 소설 『나의 아름다운 정원』, 『영원한 유산』, 『설이』 등과 에세이 『나의 아름다운 할머니』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