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 평론가 미묘의 ‘언박싱 케이팝’ 칼럼이 격주 수요일 연재됩니다. 최신 이슈부터 앨범 패키지에 담긴 이야기까지 지금 케이팝의 다채로움을 전합니다. |
카드(KARD)의 'ICKY' 뮤직비디오는 깔끔한 호텔 복도나 물 없는 수영장 등을 배경으로 골랐다. 리미널 스페이스(liminal space)를 연상시키는데, 곧 '있을 법한 것이 사라져서 기이한 감상을 주는 공간'이다. 혈액 등 체액이 묻었던 자리에서 일어나는 루미놀 반응처럼 형광 녹색의 얼룩이 드러날 때면, 탄성이 절로 나온다. 여기는 단지 스산하게 비워진 것이 아니라, 생체의 흔적이 인위적으로 제거되었기 때문에 깨끗해진 공간이다. 그리고 그곳은 생활이 불가능한 부조리한 공간으로, 또는 사이버네틱으로 연결된다. 그러나 바닥이 액화하며 쏟아지고 거울에서 타자가 나타나는 등 초현실적이거나 초자연적인 현상이 일어난다. 또는 지하의 하수도로부터 쥐처럼 기어 올라온다. 이 깨끗한 공간에 그렇게 생체가 흔적으로, 또는 침입자로서 존재한다.
'ICKY'는 사뭇 지독하다. 지우의 중저음으로 시작하는 곡은 사뭇 직선적인 구조 틈새로, '이끼'를 불길하게 연호하는 모티프를 밀어넣는다. 후렴도 'Imma get icky icky icky'를 반복하다 후반에 보컬이 한 번 휩쓸고는 다시 예의 모티프로 돌아온다. 축축하고 주술적이며 신경질적이다. 가사도 '로맨틱한 어필보다 아찔하게 끌어내 Gasping'처럼 육체적인 내용에 집중한다. 사실 미니 앨범 전체가 그렇다. 'Been That Boy'는 케이팝 아티스트로서의 자신을 지칭하는 데에 'yellow'라는 형용사까지 사용하고, '이런 케이팝은 본 적 없지(you ain't seen a K-pop like this)'라며 과감하게 단도를 들이민다. 'Cake' 역시 몸과 욕망을 노래하며 '입에 묻혀, 침이 흘러'처럼 비교적 과감한 표현을 사용한다. 내내 저돌적인 음반에서 그나마 숨을 돌리게 하는 것은 비교적 통상적인 '라틴팝'의 자장에 있는 3번 트랙인데, 그것이 마침 'Fxxx you'다. 매우 선명한 발음으로 욕설을 들려주는 이 곡은, 케이팝에서 최근 욕설의 사용이 늘고 있다고는 하나 그 궤를 분명 달리 한다. 이를테면 감정이 너무 격해서 'f 워드'로 강조한다거나, 상대가 너무나 나쁜 인물이라 저주한다든가 하는 '정당화'의 자리가, 이 무척 섹슈얼한 곡에는 보이지 않는다.
카드는 특유의 라틴 기조의 음악적 색깔을 2019년부터 유독 저돌적이고 공격적인 방식으로 달리면서, 어떤 의미에서 가장 독한 케이팝 그룹이 되어 왔다. 그래서 4월 'Without You'가 선공개됐을 때, 2018년까지 카드가 보여주던 선선하고 상쾌한 '필굿' 케이팝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기대하기도 했던 게 사실이다.(정작 이 트랙은 미니 앨범으로 감상했을 때는 그마저도 숨가쁜 긴장이 더 강화돼 들리기도 한다) 케이팝에서 '독한 이미지'라고 한다면, 어둡고 심각한 내러티브 위에 풀어내는 강렬하고 자극적인 이미지를 흔히 떠올린다. 섹시함을 강조할 때에도 매력적인 외양의 전시와 직결된다. 그것은 콘셉트와 실제 인물이 연속적이지 않음을 전제로 한다. 즉 콘셉트는 상업적, 예술적 이유에서 임시로 선택하는 껍데기라는 것이다. 카드에게 이것은 가장 중요한 화두의 하나였는데, 남녀 혼성 4인조 구성과 육감적인 연출이 줄 수 있는 부담감 때문이었다. 동아리 같고 남매 같은 건조하고 건전한 관계성을 보여주거나 혹은 인지하게 함으로써 난관을 해결한 경우다.
그런데 ICKY는 멤버들의 섹시한 매력을 보여준다기보다는 불온하고 격렬한 섹슈얼한 이미지를 표현하는 데에 집중하고, 이를 위해 손을 더럽히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럴 때 이 독한 끈적임은, 이미 6년 반의 커리어를 두고 새삼스럽지만, 일시적인 콘셉트보다는 차라리 이 팀이 가진 어떤 근원적인 부분에서 비롯되는 것처럼 보이게 된다. 예를 들어 이것이 솔로라고 치면, 점잖은 성격을 지녔지만 무대 위에서는 아주 색정적이거나 과격한 내용을 보여주는 아티스트를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다. 지금 카드의 섹시함과 '더러움'은 그처럼, 아티스트로서의 표현 욕망과 결부된 확고한 정체성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속 편하게 말하자면 '차별화'지만, 해외에서 더 큰 반응을 얻어온 카드에게 그것은 조금 다른 층위로 다가오기도 한다. 케이팝으로서 소구되지만 동시에, 케이팝이 차마 건드리지 못하는 영역에 과감하게 손을 뻗어 움켜쥠으로써, 비-케이팝적인 '화끈함'을 구현하는 것 말이다. 다만, 여전히 흥미로울 수밖에 없는 것은, 이같은 카드의 디테일들이 결국 한국어와 한국 맥락을 알 때에야 더 '비-케이팝적'으로 다가올 만한 것들이라는 점이다. 한국어 가사와 함께 읽을 때 더 분명해지는 가사의 의미와 뉘앙스라든지, 케이팝에서 흔히 표현되고는 하는 수위의 제한이 그렇다. 플랫폼 앨범인 '포카앨범' 버전을 제외하면 피지컬 음반을 한 가지 버전으로만 발매하는 점이나, 애초에 남녀 혼성 그룹이라는 점과 그것이 곡과 뮤직비디오를 구성하는 데에 가져오는 차이점들도 마찬가지다. 그런 모호한 영역에 모호하게 발을 넣거나 빼고 있는 카드의 발자국은 그러나 'ICKY'가 선언하듯 보여주는 바이기도 하다. 분명 있었던 것을 걷어내고 흔적마저 지움으로써 얻어지는 깨끗하고 완벽한 세계와, 그럼에도 불안스럽게 꿈틀거리며 기어 올라오거나 흩뿌려지는 생체의 '더러움'을 통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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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묘(대중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