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파(aespa) 'Welcome to my world (Feat. nævis)'
비로소 문제의식에 도달한 것일까, 아이브, 르세라핌, 뉴진스의 유례 없는 동반 상승으로 걸그룹 간 어깨싸움에서 밀려난 에스파(aespa)가 그들의 상징과도 같은 차가운 기계 무장을 벗어던진다. 'Savage', '도깨비불', 'Girls'에서의 과격함은 내려놓고 그 자리를 보편적인 낭만과 신비로 대체하는, 새로운 챕터의 시작이자 대중을 향한 저돌적인 접근이다. 넷플릭스 시리즈 <아케인 (Arcane)>의 삽입곡 'Playground'가 연상되는 만화적 분위기에 화려한 오케스트레이션을 더한 점층적 구성과 자연음의 증대는 현실로의 침투를 청각적으로 형상화하며 전후의 방향성을 분명하게 연결한다. 전자음이 내어준 자리만큼 존재감을 끌어올린 멤버들의 보컬 역시 더욱 위력적인 모습이다. 사운드의 파괴력으로 대표되는 기존의 특장점을 잃지 않으며 거둔 결과이기에 더욱 고무적이다. 잠시 내려놓은 기대를 다시 걸기에 부족함이 없는, 완성도와 상징성을 두루 갖춘 쾌조의 새 출발이다.
류수정 'Love or hate'
러블리즈의 노래와 달라서 기존 팬들은 류수정의 변화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겠지만 그는 단호하다. 사랑하거나 미워하거나. 그룹 해산 후 자신의 레이블을 설립한 류수정은 그동안 하고 싶었던 음악에 대한 욕구를 이 곡에 쏟아 부은 것 같다. 직접 작사, (공동) 작곡한 'Love or hate'는 사랑스럽지도, 설레지도 않는다. 오히려 자존감 가득 찬 자신감으로 너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라며 무분별하게 악플 다는 사람들을 타이른다. 가사에 힘을 싣기 위해 드림팝 밴드 콕토 트윈스나 2022년에 세상을 떠난 줄리 크루즈의 노래처럼 사운드를 몽롱하고 신비롭게 부풀려 가사가 선명하진 않지만 그는 당당하다. 음악을 위해 변신을 두려워하지 않은 류수정에게 미움이 아닌 애정을 보낸다.
더 보울스(The Bowls) 'BBA'
더 보울스의 팝 지향성이 농익고 있음을 보여주는 싱글. 귀에 가장 먼저 들어오는 것은 '빠빠빠'를 반복하는 코러스로 이처럼 중독성 있는 멜로디는 이들의 전작을 고려했을 때 유례없이 새롭다. 셀링 포인트가 될 수도 있건만 이들은 이에 기대어 가지 않는다. 허스키한 보컬은 음울한 가사로 밝은 분위기에 제동을 걸고, 기타, 베이스, 신시사이저 등의 악기는 섬세하게 교차하며 밴드 사운드의 매력을 뽐낸다. 이런 풍성함은 팝에 대한 더 보울스의 뚝심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더 보울스는 블루스, 사이키델릭 등 다양하고 깊이 있는 장르를 소화하는 동시에 많은 대중에게 닿는 방법을 고심하며 팝을 지향해 왔다. 2020년 이래 타히티 80의 베이시스트 페드로 레센데의 프로듀싱과 함께하며 이들은 자신의 역량과 지향 사이의 활로를 찾았다. 가뿐한 분위기 속에서도 정교한 사운드를 지키는 야심만만함이 그것이다. 더 보울스가 최근 찾은 색깔은 점점 그들만의 것으로 짙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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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