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산책이 주는 아름답고 무용한 유익을. 나의 걷기에는 목적지와 최단 경로와 이어폰만이 있을 뿐이었다. 주변을 소거시키는 데 재능이 있다고 해야 할까. 도시에서 나고 자란 덕분인지 거리에 난무하는 시청각적 기호들로부터 일말의 고통 없이 무감각했다. 가령 엄마가 집에 오는 길 어디에 꽃집이 생겼더라, 그 옆은 공사 중이더라, 또 어느 가로수를 기어코 잘라냈더라, 하고 이야기하면 나는 좀처럼 맞장구를 치지 못했다. 수천 번 다닌 길의 아무것도 떠올리지 못하는 나를 엄마도 나도 순간 황당스러워하긴 했어도, 그것이 별로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나에게 도시는 유기적으로 연결된 무엇이 아니라 내가 도착해야하는 수많은 점들의 집합이었고, 걷는다는 것은 너무 피곤하고 따분한 행위에 불과했다. 나는 늘 걸음을 멈추고 공간에 머무르는 편을 선호했다.
하지만 '좀 문제인가'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책을 읽다보면, 사람들을 만나다보면, 특히 글을 쓰는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산책'은 늘 예찬의 대상이 되곤 했다. 몸을 일으켜 깨우고 목적 없이 걷다보면 마주하게 되는 사유의 맑음... 걷기와 생각의 고귀한 관계를 나만 모르는 듯 했고, 그 관계를 깨닫지 못하면 좋은 글을 쓸 수 없을 것 같은 극단적인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렇다고 산책을 적극적으로 시도하지는 않았다.
서른 중반에 나는 산책을 피할 수 상황에 놓이게 되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얼마나 산책을 할줄 모르는지도 몰랐던 것이다. '설화'라는 이름을 가진 사랑스러운 개를 군산에서 서울로 데려오는 동안에도 내내 몰랐다. 군산에서 설화는 우리 가족을 보자마자 겁에 잔뜩 질려 똥을 싼 이후로 똥을 참았다. 배변 패드를 깔아주고 유도해보았지만, 오줌과 똥을 꾹꾹 참다가 3일째 되던 날 하울링을 했다. 그 모습을 보고 너무 놀란 나는 설화를 안고 나가 아파트 정원에 내려놓았고, 그 즉시 설화는 똥을 세 번이나 쌌다. 태어나서 목줄을 해본 적 없는 설화가 도망갈 위험이 있으니, 산책을 자제하고 조심해달라는 보호사의 말이나 실내 배변 훈련을 하면 편하다는 인터넷 정보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설화와 함께 매일 산책을 나가야 한다는 결정은 쉬웠다. 하지만 산책 첫 날, 설화와 나는 아파트 입구에서 옴짝달싹을 하지 못했다. 급기야 설화는 아스팔트 바닥에 주저앉았고, 나는 꽤 오래 진땀을 흘렸다. 어디로 가야할지, 어떻게 가야 할지, 어떤 속도로 걸어야 할지, 어디쯤에서 돌아와야 할지 아무것도 모르겠고, 진정 우리에게 산책이 가능한 것인지 막막하기만 해서 설화를 안고 들어왔는데, 눈물이 찔끔 났다. 첫 산책의 기억.
집에서 십분 거리에 있는 경의선숲길을 주 산책로로 삼은지 3년이 다 되어간다. 폐기된 철길을 조성해 만든 연남동 경의선숲길은 1.2km에 달하는 선형 공원이기도 하고 조경이 잘 설계된 편이어서 사람들이 몰리는 시간대가 아니라면 개와 함께 산책하기에 서울에서 이만한 곳도 없다고 생각한다.
산책을 통해 설화가 내게 가르쳐 준 것들의 목록을 적는다면 얼마나 될까? 그 목록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될 것은 식물 이름. 설화가 내게 식물에 대해 가르쳐주는 방식은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1. 잘 걷다가 잠깐 뭔가를 놓친 것처럼 몇 걸음 되돌아가 땅에 코를 박고 킁킁거린다. 발로 살짝 흙을 파내는 시늉을 하더니 냅다 누워 몸을 비벼댄다. 뒤집어 누워 춤을 춘다. 맨 흙에서 왜저러지 싶어 허리를 굽혀 유심히 본다. 팻말에 '노루오줌'이라고 써 있다. 집에 와서 검색해보니, '뿌리를 캐어 들면 오줌 냄새와 비슷한 냄새가 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나온다. 사진을 보니 꽃가게에서 종종 보던 아스틸베와 같은 것이다. 설화에게 화장대가 있다면, 맨 앞에 있을 향수. 노루오줌.
2. 설화는 똥이 마렵다. 아무데나 쌀 수는 없고 구석지고 자연적이고 약간 푸석한 느낌이 나는 곳을 찾는다. 자주 애용하는 식물 변기가 맥문동이다. 맥문동이 심겨진 곳이 좀 외지기도 하고,
군락지어 있고, 잎이 가늘고 부드럽기도 하고, 무엇보다 설화의 엉덩이를 찌르지 않을 정도의 높이로 자라서 그런 것으로 짐작된다. 나는 똥을 수거하며 무의식적으로 이게 도대체 무슨 풀이야? 옆 사람에게 묻게 되고, 뭔동, 맥뭐시기, 맹문동 정도로 몇 번 부르다가 결국 제대로된 이름을 외우게 된다. 나중에 마당이 있는 집에 살게 되면, 맥문동을 꼭 심어야겠군 생각하면서. 여름이 되면 보라색 꽃이 피고, 겨울이 오기 전에 까만 열매를 단다. 꽃과 열매가 있을 때는 설화도 맥문동에 일을 보지 않는다.
3. 벼 같이, 붓 같이 생긴 풀이 한 여름 땡볕에 반짝이는 물결을 이룰 때가 있다. 그 풍경은 사람을 얼마간 환상 속에 머무르게 한다. 하지만 이내 나의 개가 끈을 당기고 꼬리를 한껏 쳐든다. 설화 꼬리랑 똑같네, 그래서 강아지풀이라고 하나? 근데 강이지풀이 이렇게 큰가? 생각하다가 흔들리는 꼬리와 풀을 보며 웃는다. 며칠 뒤 지인이 SNS에 올린 사진을 보니, 수크령이라고 써 있다. 아주 힘센 풀이라고 한다. 가끔 장난으로 냄새 맡기에 심취한 설화의 꼬리를 손으로 잡을 때가 있는데, 꼬리에도 감정이 있는 것처럼 단호하게 물리친다. 빛나는 힘센 꼬리 같으니라고.
4. 밤 산책을 하다가 설화가 화단 울타리를 넘겠다고 쳐다본다. 안쪽을 보니 아무것도 없어서 허락해주었다. 낮은 울타리를 살짝 뛰어넘은 설화가 얼음이 되었다. 가자고 해도 뒷발 하나를 들고 요지부동이다. 왜그러지 살펴보니 가시덤불이 설화 배 안쪽 피부와 엉켜있다. 밤이라 보이지도 않고 손의 감각만으로 조심히 떼어내려는데, 가시 하나를 떼어내면 다른 쪽 가시가 또 엉겨 붙는다. 혹여 설화 피부가 찢어질까 내 손이 아픈 줄도 모르고 겨우 다 떼어내고 집에 돌아오면서, 지난 계절에 그곳에 피어있던 꽃을 떠올렸다. 찔레장미였다. '장미의 가시'라는 클리셰가 손끝에 붉음으로 맺힌 날이었다.
아직도 도무지 알지 못한다. 산책의 고차원적 유익을. 그저 설화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설화가 알려주는 아름다운 것들을 보고 오! 아! 정도의 소리를 가끔 낼 뿐이다. 그렇지만 뭐 어떤가. 매일, 내가 걸으며, 어떤 풍경을 기억할 수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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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미
201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건축과 건축역사·이론·비평을 전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