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아웃] 고양이와 언어와 소설 쓰기 (G. 김혜진 소설가)
소설은 언어를 구조적으로 쌓아 올리는 일인데, 그 언어를 별로 신뢰하지 못하고 항상 정확하게 전달이 된다는 생각을 잘 해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어떻게든 의미를 전달하려 하고 있는 작업이라는 게 되게 모순되지 않나, 라는 생각을 종종 하거든요.
글ㆍ사진 임나리
2022.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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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임해수입니다. 이 편지를 받고 놀라실지도 모르겠네요. 어쩌면 제 이름을 완전히 잊으셨는지도 모르죠. 누군가에게는 죽어도 잊을 수 없는 일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쉽게 잊히는 일이 되기도 하니까요. 잊을 수 없는 사람은 피가 마르는데 잊은 사람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살아간다는 게 어떻게 가능할까요. 

김혜진 작가의 소설 『경청』에서 읽었습니다. 이 편지를 쓴 화자는 많은 사람들에게 사과를 하려고 편지를 쓰기 시작하지만, 매번 편지를 완성하는 데 실패하고 그래서 편지를 부치는 일에도 실패합니다.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저지른 악인. 용서받지 못한 가해자. 어쩌면 가혹한 누명을 뒤집어 쓴 피해자. 역경에 굴복한 패배자. 지금 그녀는 어떤 사람일까, 라는 질문을 통해 삶의 복잡성을 듣고 들여다보고자 한 소설. 김혜진 소설가의 다섯 번째 장편을 만나보겠습니다. <황정은의 야심한책>, 시작합니다.



<인터뷰 – 김혜진 소설가 편>

안녕하세요. 황정은입니다. 오늘은 언제나 사람이 궁금하다고 말하는 소설가를 모셨습니다. 새 장편 소설 『경청』을 쓰셨죠. 김혜진 작가님입니다.

황정은 : 이번 소설의 표지에는 한요 작가님이 그린 고양이 한 마리가 등장합니다. 『경청』 안에는 고양이 두 마리가 등장을 하잖아요. 그 중에서 '까미'네요.

김혜진 : '까미'인지 '순무'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황정은 : 순무는 치즈 아닙니까?

김혜진 : 그렇죠. 외형상으로 보면 까미에 더 가까울 거라고 생각됩니다.

황정은 : 저도 이 고양이가 순무가 아니라 까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어젯밤에야 했어요. 그동안 책을 읽으면서는 얘가 당연히 순무일 거라고 생각을 했거든요. 순무가 화자에게 대단히 중요한 계기를 주는 고양이 아닙니까. 그런데 책을 다 읽고 나서 표지를 덮고 다시 보니까, 일단 치즈가 아니고, 그래서 순무가 아니고 까미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웃음) 그런데 '경청'이라는 제목하고 (표지의) 이 고양이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잘 모르겠는 표지인 거예요. 그래서 소설 내용이 되게 궁금해지는 표지였어요. 작가님에게는 어땠나요?

김혜진 : 이제 책이 나오기 전에 표지가 여러 개 나오잖아요. 이게 제목과 이미지가 좀 멀다고 하면 그건 조금 더 가까웠어요.

황정은 : 뭐였는지 궁금하네요.

김혜진 : 소설에 나오는 공터 같은 데 앉아 있는 어떤 여자가 수풀에 있는 고양이들을 보는 이미지였는데, 그것도 좋았거든요. 이게 두 번째 안이었는데, 그것보다는 조금 더 눈에 들어온달까요. 좀 그런 게 있었던 것 같아요. 이 이미지가 편집부에서도 좋다고 했고 저도 좋아서 이걸로 결정하게 됐습니다.

황정은 : 저도 좋습니다. 말씀하신 표지도 궁금하긴 한데 이 표지가 아까 말씀드린 이유로 되게 궁금하고, 책 내용을 궁금하게 만들기도 하고. 그리고 이 소설 안에서 순무가 화자에게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주는 고양이긴 하지만, 그대로 얘기하면 스포일링이 될 것 같기는 한데, 그 고양이한테 다다르게 하는 과정에서 까미가 되게 중요한 몫을 하잖아요. 그래서 까미로 추정되는 고양이가 등장하는 표지는 참 적절한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김혜진 : 저는 까미라는 생각을 한 번도 안 해봤거든요.(웃음) 그런데 생각을 해보니까 까미와 많이 닮아 있구나, 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황정은 : 네, 이 표정을 보십시오. 뭐라고 묘사를 해야 될까요. 강단 있는. 그리고 꼬리의 치솟은 각도가 반가움의 감정 표현 아닙니까? 저는 좋았습니다.

김혜진 : 강단 있는 이미지, 저도 좋습니다.(웃음)

황정은 : 작가님도 혹시 고양이를 데리고 있나요? 

김혜진 : 한 마리 있습니다. 사실은 제가 지난해 소설 쓸 때...

황정은 : 구조하셨다고요.

김혜진 : 네, 한 마리를 데리고 왔는데 걔를 키울 생각은 아니었어요. 정말로. 좋은 집에 입양 보낼 생각이었거든요. 그런데 아프니까 보낼 수도 없고 맡을 사람도 없고 그래가지고 결국 저랑 살고 있습니다.

황정은 : 네, 오래오래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황정은 : 『경청』의 주인공인 임해수는 유능한 상담사입니다. 방송에 출연해서 자기가 잘 알지도 못하는 유명 배우에게 신랄한 말을 하잖아요. 그러고 나서 얼마 뒤에 그 배우가 스스로 세상을 등지면서 임해수는 사람을 죽인 상담사로 사회적 비난을 받게 되거든요. 직장도 잃어버리죠. 이 소설은 어떻게 만드셨어요? 어디서 시작됐나요?

김혜진 : 음... 소설이 다 써지고 난 뒤에 항상 이런 질문을 받게 되잖아요. 어떻게 구상하게 됐느냐 언제 생각하게 됐느냐 이런 질문을 항상 받는데, 그때마다 제가 어떤 답을 찾아내려고 노력은 해요. 그렇지만 그게 언제 어떻게 시작이 됐는지는 사실 저도 정확히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냥 이 소설에 대해서는 한 2년 전에 어려움에 처한 어떤 사람, 인생에서 어떤 힘든 순간을 맞이한 어떤 사람에 대한 얘기를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앞에 조금 썼는데 잘 진행이 되지 않았어요. 

그래서 이렇게도 쓰고 저렇게도 쓰고 하다가 그걸 그냥 두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지난해 봄에 본격적으로 쓰게 됐고, 처음에 구상한 거랑은 좀 다른 방식으로 쓰여진 것들도 있고 추가가 된 부분들도 있고, 그렇게 해서 완성이 된 것 같습니다. 이 소설을 본격적으로 쓸 때는 그런 생각을 좀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이 사람이 삶에서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는 것은 맞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런 순간에 자신과 화해해야 되잖아요. 자기를 좀 받아들여야 한다고 해야 될까요. 그런 게 어떻게 가능할까?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지? 이런 생각을 좀 했던 것 같습니다.

황정은 : 2020년에 출간된 『불과 나의 자서전』은 '당신의 정의와 분노는 어디에서 오는가'를 묻는 소설이었는데요. 저는 이번에 『경청』을 읽으면서도 그 질문이 이어지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작가님이 생각하기에는 어떤가요?

김혜진 : 『불과 나의 자서전』에는 홍이라는 인물이 나오거든요. 그리고 『경청』에는 임해수라는 사람이 나오는데, 비교를 굳이 하자면 홍이라는 사람은 자기 안의 기준이 조금 더 명확한 사람 같아요. 

황정은 : 홍이가 남일동에 사는 인물이었죠. 『불과 나의 자서전』은 재개발 이슈를 다룬 소설입니다. 

김혜진 : 네, 맞습니다. 홍이가 '이것은 잘못됐다, 이것은 옳다', '이렇게 바꾸고 싶다, 변화하고 싶다'라는 것들이 좀 명확한 사람이라면, 임해수라는 사람은 그것을 자기가 다 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전혀 모르고 있었던 사람이기도 하고, 소설이 결국 그런 걸 찾아가는 과정 속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두 인물은 조금 다른 캐릭터이지 않나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황정은 : 다른 캐릭터인데 작가님 말씀을 듣고 보니까 두 인물이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왠지 임해수라는 인물이 홍이라는 인물의 이후 버전인 것 같기도 하고, 홍이가 갖고 있었던 명확함 이런 것들이 흔들리고 깨지고 부서진 사람이 임해수인 거잖아요. 그런 면에서는 둘이 연결이 돼 있기도 한 것 같은데 어떤가요?

김혜진 : 말씀을 듣고 보니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예전에는 저도 어떤 사안에 대해서, 혹은 어떤 것에 대해서 옳고 그르다, 항상 모든 것에 명확하게 판단을 할 수 있었거든요. 그런데 점점점 시간이 지나고 나이가 들수록 그런 것들이 참 쉽게 되지는 않는 것 같아요. 

황정은 : 그렇습니다. 너무나 많은 삶과 또 타인의 고통을 더 많이 접하면 접할수록 그 경계가 대단히 모호해지는 것 같아요. 


황정은 : 소설은 임해수가 쓰는 편지로 시작이 됩니다. 임해수는 사건과 관련된 모든 이들에게 편지를 쓰는데 이 편지들이 대개 '나는'으로 끝난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는데요. 화자는 무슨 이유로 '나'를 반복하고 있을까요?

김혜진 : 사실 이 질문을 받기 전까지는 몰랐어요. 그래서 좀 생각해 보게 됐어요, 처음으로. 이 사람이 뭔가 해명하고 싶어서 계속 편지를 쓰는 거잖아요.

황정은 : 그렇습니다. 화자는 사실 사과하는 편지를 쓰고자 하지만 결국은 내용이 그렇게 되죠. 

김혜진 : 그렇죠. 항의이거나 자기변명이거나 혹은 자기의 억울함에 대한 이야기이거나, 그런 얘기를 결국에는 하게 되는데. 어쨌든 나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하고자 하니까 '나'라는 주어에서 끝나는 게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좀 들었고요. 두 번째는 작가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사과를 하고 싶지만 쓰다 보면 그런 식으로 진행이 되지는 않는 거예요. 

황정은 : 그렇죠. 마음에 담긴 게 워낙 크기 때문에.

김혜진 : 네, 그래서 항상 거기에서 중단이 되는 거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보게 됐습니다.

황정은 : 김혜진 작가님이 이 편지들이 '나는'으로 끝난다는 걸 몰랐다고 하셨는데, 저는 그 이야기를 들으니까 '김혜진 작가님이 이 편지를 쓰실 때 임해수라는 사람의 내면에 대단히 깊게 몰입했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자기도 모르게 임해수가 하고 싶은 말로 끝을 낸 거잖아요.

김혜진 : 그럴까요.(웃음)

황정은 : 네, 저는 그런 생각이 드네요. 왜냐하면 대단히 고집스럽게 '나는'으로 끝나기 때문에, 그래서 저는 그런 생각이 들어요. 


황정은 : 소설에서 해수는 '정확한 단어로, 분명한 문장으로, 자신의 입장을 전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버리기로' 마음을 먹기도 하는데요. 이렇게 의미 전달이라든지 말이라든지 소통을 생각하는 일은 소설을 쓰는 작가도 늘 하는 고민이잖아요. 김혜진 작가님도 그러시나요?

김혜진 : 네, 그런 것 같아요. 소설은 언어로 쌓는 어떤 세계잖아요.

황정은 : 옛날에 '집'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어요. '언어로 짓는 집'이라고 하셨죠.

김혜진 : 네. 언어를 하나씩 하나씩 구조적으로 쌓아 올리는 일인데, 그 언어를 별로 신뢰하지 못하고 항상 정확하게 전달이 된다는 생각을 잘 해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어떻게든 의미를 전달하려 하고 있는 작업이라는 게 되게 모순되지 않나, 라는 생각을 종종 하거든요. 한편으로는 정확하게 가 닿지 않기 때문에 소설을 쓸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하게 돼요. 

황정은 : 그러네요.

김혜진 : 정확하게 과녁에 도달할 수 있는 언어를 가진다면 굳이 소설을 쓸 필요가 있을까, 우리가 이렇게 많은 말을 할 필요가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황정은 : 이렇게 에둘러 갈 필요가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죠. 말이 제대로 전달되거나 그 말을 듣는 상대에게 제대로 도달하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은, 그 말을 받는 타인이 내 삶의 맥락을 모르고 나는 또 그의 맥락을 모르잖아요, 그래서 발생하는 의심인 것 같기도 합니다.

김혜진 : 맞아요. 말은 나 혼자만 갖고 있는 게 아니라 항상 사람 사이에 있는 거니까.

황정은 : 그렇죠. 그리고 말은 항상 각자 개인의 삶 속에서 구축되면서 약간씩 의미가 달라지잖아요. 그런 불안 때문에라도 그런 의심을 늘 갖게 되는 것 같기도 해요.



*김혜진

1983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201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치킨 런」이 당선되면서 소설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2013년 장편 소설 「중앙역」으로 제5회 중앙장편문학상을, 2018년 장편 소설 「딸에 대하여」로 신동엽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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