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현, 오선영, 장희원, 황유미, 송유나. 나이도 사는 곳도 관심사도 가지각색인 다섯 명의 작가가 모여 '여성'과 '공포', '공간'을 주제로 단편 소설을 썼다. 흥미롭게도 작품들은 우리가 살면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집'과 관련한 으스스하고도 섬뜩한 순간들을 포착한다. 소설 속 그녀들이 느끼는 공포에 소설 밖 당신 또한 기시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일상에서 몸을 오싹하게 하는 한기를 경험해 본 적 있는 당신이라면 분명 그럴 것이다. 과연 그 집에서 그녀들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문밖에 누군가가』에 참여한 작가들과의 대화를 통해 이야기의 내막을 살짝 들어 보았다.
소설가이자 독립출판사 '네시오십분'을 운영 중인 김지현 작가가 이 앤솔러지를 기획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여성', '공포', '공간'이라는 주제를 선정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네 명의 다른 작가들을 어떻게 섭외하게 되었는지도 들려주세요.
김지현 : 소설가로 데뷔하기 전인 2018년도부터 독립 출판을 하며 '네시오십분'이라는 이름으로 부산에서 1인 출판사를 운영해오고 있는데요. 주로 제가 쓴 에세이를 출간하며 간간이 청년 잡지나 청소년 잡지를 공동 기획하여 만들기도 했습니다. 독립 출판으로 먼저 출판계에 입문하여 독립 서점, 독립 출판 창작자들과 교류하며 활동을 시작했고, 이후 소설로 등단을 하며 지역의 소위 주류 문학장에서도 활동을 하게 되었는데요. 글을 쓰고 문학 활동을 하는 의미는 같지만, 여전히 경계가 공고한 다른 장에서 활동하면서, 더불어 서울이 아닌 지역에서 독립 출판과 문단 활동을 하며 느끼게 되는 것들이 많았습니다.
독립 출판으로 활동을 시작하여 대중들에게 이름을 알리며 활발하게 활동 중인 작가임에도 등단한 작가가 아니라는 이유로 문예지 청탁이 거의 없거나 문학상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든지, 등단한 작가이지만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기 때문에 서울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작가들에 비해 다양한 기회를 얻지 못한다든지 하는 문학장 안팎의 경계를 허무는 작업들을 해 보고 싶었습니다.
등단한 작가와 독립 출판 작가, 서울 작가와 지역의 작가가 함께하는 기획이 활발해져서 조금 더 시간이 흐르면 작가의 데뷔 지역과 장이 작품 활동을 제한하는 지표가 되지 않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기획하게 되었어요. 그 첫걸음을 함께 해 줄 의미 있는 작가들로 단숨에 떠올리게 된 작가님들인데요. 작품 활동 초창기부터 지켜봐 온 작가님들이기도 해서, 우리가 함께 목소리 낼 만한 의미 있는 주제이면서, 동시에 각자의 개성이 발휘되었을 때 재미있는 키워드는 무엇일까 고민하다가 여성과 공포에 공간을 더하여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소설집 전체를 읽어 보면 각 소설에서 집 안팎의 공간들이 중요한 장소로 드러나지요. 「4:30, 508호」과 「어니언마켓」에서는 일종의 집과 집의 사이라 할 수 있는 복도나 아파트 입구가 「원영」과 「타깃」에서는 창가가 부각됩니다. 「가리어진 섬」은 측간으로 표현되는 화장실이 인상적으로 등장하고요. 장소를 한 곳 한 곳 이동하는 느낌으로 각 작품을 쓴 작가에게 질문을 드리려 합니다.
가장 첫 작품인 「4:30, 508호」에서 '나'는 한밤중에 옆집에 몰래 침입합니다. 옆집에 혼자 살던 노인이 며칠 전 죽어서 그곳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아는 '나'는 그 집 어딘가에 있을 돈을 훔치러 왔지요. 노인의 집을 뒤지는 와중에 '나'의 앞에 노인의 기억인 듯한 장면들이 펼쳐집니다. 환상인 것 같기도 사실인 것 같기도 한 이 장면에 대한 설명을 좀 더 듣고 싶습니다.
김지현 : 노인과 '나'는 옆집에 사는 것 외에는 표면적으로는 특별한 교류가 있거나 내밀한 관계는 아닙니다. 노인이 죽고 그 집에 있는 돈을 훔쳐서 내가 살아나갈 여건을 마련하겠다, 라는 이야기가 그래서 가능하기도 하지요. 하지만 노인의 체취가 여전히 남아 있는 그 집에 들어가서 노인의 흔적들을 세밀하게 살펴보는 과정이 일종의 교감의 과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가족도 없이 혼자 늙어가다 죽은 한 여성의 삶과 그 뒤의 세대로 자기만의 안전한 집을 마련하기 위해 애쓰는 젊은 여성의 삶을 나란히 놓아 보고 싶었습니다. 이야기의 착상 단계에서 해 둔 메모 중 하나가 '늙은 여자의 돈을 훔쳐 살아남는 젊은 여자'였어요. 도시에서 홀로 안전한 공간을 마련하기 힘든 여성들의 과거와 현재는 어떠한가를 쫓아가다 보니 숱한 공포를 맞닥뜨리며 한평생을 살아온 늙은 여자의 삶을 젊은 여자가 마주해 보는 이야기가 그려졌고, 환상으로나마 두 세대의 여성들의 삶을 포개어 보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어니언마켓」을 읽다 보면, 인터넷 중고 거래에서 정말로 일어날 법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내가 별다른 생각 없이 적은 글들을 응시하며 그것들을 그러모으고 있을 누군가가 있다고 생각하면 무척 오싹해집니다. 그런데 정도의 차는 있겠지만 이렇게 불특정한 다수의 시선이 교차하는 공간이 인터넷이라는 공간이 아닐까요? 알 수 없는 누군가가 나를 바라보고 있듯이 나 또한, 무수히 많은 다른 이들을 바라보고 있지요. 소설의 주인공인 '재희' 또한 사실은 상대가 물건을 팔기 위해 올린 정보들을 보며 그 사람의 생활을 추측하고 상상하였던 것처럼요.
오선영 : 김지현 작가님으로부터 '여성 공간 공포'라는 키워드를 들었을 때 제가 주목한 부분은 공간이었습니다. 인터넷 공간은 분명히 실제하는데 실제하지 않는 것 같은, 우리 삶과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지만 다소 모호하고 불분명한 공간이지요. 그렇기에 이 공간에서, 손으로 잡을 수 없는 시선의 공포와 구체적인 물건을 매개로 한 손에 잡을 수 있는 공포를 결합시킨 이야기를 해 보고 싶었습니다.
누군가의 생활을 추측하고 상상하는 것과, 그 사람의 물건을 수집하고 그러모으는 과정은 인터넷 공간의 모호함을 찢고 나오는 실재적 공포 같아서요. 그 공포와 폭력이 단단한 요새라고 여겼던 '재희'의 집을 침범할 때, 재희가 느낄 수밖에 없는 여러 감각에 대해 쓰고 싶었네요.
「원영」을 읽으며 저 또한 제 몸을 예민하게 느끼게 되었던 일을 떠올렸답니다. 낯선 이가 내 몸을 뚫어져라 보던 시선, 사람들로 가득 찬 대중교통 안에서 은밀하게 내 몸을 훑던 누군가로 인해 온몸이 떨렸던 일 등등. 이상한 것은 친구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모두가 이런 일은 한 번쯤은 겪었다는 사실이었지요. 물론 거기에 대처하는 방식은 친구마다 달랐습니다. 소리를 지르며 화를 냈다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애써 모르는 척 눈을 질끈 감았다는 친구도 있었습니다. 어쩌면 소설 속 '원영'처럼 안전한 집 안으로 숨어드는 친구도 있었을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소설 속에서는 그렇게 숨어든 집마저 안전한 곳이 아니었지만요. 소설 끝에 '나'가 간절히 바라듯 원영은 햇빛을 받으며 평온하게 사람들 사이를 걸을 수 있을까요?
장희원 : 누구에게나 낯선 사람이 자신을 쳐다보았던 경험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럴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물론, 제가 미처 알지 못하는 복잡한 맥락과 미묘한 상황 같은 부분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그 상황에서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실재적인 공포나 꺼림직함에 가까운 폭력적인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자신의 존재가 굉장히 납작하고, 한없이 '대상'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 아주 오래전, 병원을 방문했다가 나오는 길에 한 노인이 저를 노골적으로 보았던 경험이 있습니다. 그 상황에서 순간적으로 그의 눈길을 모른 척했지만, 내가 왜 모른 척을 해야 하나... 하는 마음에 고개를 들어 그를 노려보았고, 그는 제가 기분 나빠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제 '몸'을 뚫어지게 쳐다보아서 당황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 어떤 여성도 자신의 존재를 '몸'으로 국한시키고 싶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소설 속에서나, 혹은 제가 만났던) 노인의 눈으로 보는 그 '몸' 또한 진짜 여성의 몸이 아닐 확률이 높습니다.
소설 속 '나'가 바라는, 정말 아무것도 아닌, 그 평범한 장면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일입니다. 누군가의 폭력적인 시선에서 벗어나, 한낮의 거리를 아무런 걱정 없이 걷는 것... 세상이 하루아침에 달라져서 더는 그런 상황이 없었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언젠가 원영이 그런 시선은 결코 자신의 존재를 건드릴 수 없다는 것을, 결코 진짜 '자신'을 겨냥할 수 없는, 힘없는 것에 불과할 뿐이라는 것을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있는 그대로 온전한 모습의 '원영'이 햇빛을 받으며 나른하게 거리를 걷는 모습을, 굉장히 아름다운 장면으로 상상하고 싶습니다.
「타깃」은 『문밖에 누군가가』에 실린 소설 중 가장 센 소설이 아닐까 싶습니다. 특히, 소설의 마지막 부분은 '지원'이 평소 즐겨 보던 피가 난무하는 영화 속 한 장면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소설의 결말을 보고 나면 소설 초반에 나왔던 '여자의 애인이 범인'이었다는 말이 더욱 의미심장하게 느껴지는데요.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타깃'이 각기 다른 인물이 될 수도 있는 소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처음부터 결말을 정해 놓고 쓰신 건가요? 아니면 소설을 쓰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것인지요?
황유미 : 「타깃」은 제 소설 중 드물게 결말을 정해 놓고 쓴 소설입니다. 오래전부터 내가 알던 사람의 다른 얼굴을 보고 공포를 느끼는 사람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습니다. 연애할 때 사랑하는 사람이 내가 알던 것보다 별로인 사람이라 실망하는 경험은 흔하죠. 그런데 실망이 아닌 감당할 수 없는 공포를 느낀다면 어떨까요. 공포에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파괴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인물을 그려 보고 싶었습니다. 언젠가부터 온라인에서 벌어진 여러 건의 사이버 불링 사건을 바라보며 내가 타깃이 되지 않기 위해 다른 타깃을 골라 저격하는 '폭탄 돌리기' 같다고도 느꼈습니다. 제목인 '타깃'은 그러한 현상에 대한 씁쓸함을 반영한 것이기도 합니다.
『문밖에 누군가가』의 마지막 작품은 「가리어진 섬」입니다. 소설집 전체를 두고 보면 집 바깥에서 집 안으로 이동하는 흐름을 보이다가, 「가리어진 섬」에 이르러서는 기존의 집을 버리고 새로운 곳으로 향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 작품의 초대장에도 언급되어 있듯이 「가리어진 섬」은 '아버지와 어머니, 육지와 섬, 이성과 미신'이 충돌하는 소설입니다. 무녀인 '나'의 입을 통해 이야기되는 세계는 이성의 언어로만 읽어내려 할 때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세계이기도 할 텐데요. 이러한 이야기를 구상하게 된 동기가 무척 궁금합니다.
송유나 : 「가리어진 섬」은 부산의 '영도'라는 섬을 염두에 두고 쓴 소설입니다. 소설을 쓰면서 영도의 지역성은 많이 희미해졌지만, 제가 영도에 실제로 방문하여 느꼈던 인상이 소설 전반의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학원에 진학하면서부터 어쩐지 서사 연구의 차원에서 영도라는 지역과 자주 만나게 되었습니다. 관련 프로젝트에도 참여했고, 소설도 썼고, 좋은 기회로 영도문화도시센터에서 아카이빙 작업을 짧게 돕기도 했습니다.
사실 작품상에서는 이렇게 길게 영도에 대해서 이야기할 만큼 그 존재감이 잘 드러나지는 않습니다. 의도적으로 감추기도 했습니다. 독자분들은 어떤 섬이든 자유롭게 상상하시며 읽으셔도 좋습니다. 그저 소설을 쓴 입장에서 동기라 한다면, 길가에 쌓인 고철 더미나 멈춰 선 선박들, 회색빛 바다, 해무에 둘러싸인 봉래산, 대동대교 맨션 옆면의 거대한 깡깡이 아지매 벽화 등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근대 산업의 발전과 영화가 휩쓸고 지나간 섬에서 여전히 불씨처럼 잔재하는 남성적이고 원초적인 욕망을 느꼈고, 또 그것의 무용한 일면도 보았습니다. 그래서 한창때의 섬으로 돌아가서, 대결해 보고 싶었습니다. 모험 만화의 주인공들이 대단한 강자를 맞닥뜨렸을 때 대책 없이 싸움을 걸곤 하는 것처럼요.
자, 이제 마지막 질문입니다. 『문밖에 누군가가』를 보면 '초대장'이 눈에 띕니다. 각 작품 앞에 다른 작가가 그 작품에 대한 초대장을 써 주었지요. 이 초대장 덕분에 독자들은 이야기의 장소로 은밀하게 초대된 느낌을 받지 않을까 싶은데요. 이러한 형식을 취한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요?
김지현 : 요즘에는 다양한 앤솔러지 작품집들이 출간되며 개성 있는 작가들의 작품을 한 권의 책으로 만나볼 수 있습니다. 일전에 '코로나19'를 소재로 한 공동 작품집에 참여한 적이 있는데요. 다른 색깔을 가진 작가들이 공통의 주제를 다채롭게 풀어내는 구성이 좋았지만 조금 아쉬운 점이 있더라고요. 같은 주제로 한 권의 책을 만든 공동 저자이지만, 대부분 책이 출간되기 전에는 서로의 작품을 확인할 수 없다든지, 서로 간의 교류가 전혀 없이 기획을 한 출판사에서만 주도하는 과정이 다소 아쉽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앤솔러지는 특히 함께 작업한다는 의미가 중요하지 않나, 라는 생각으로 서로 떨어져 있는 작가와 작품을 어떻게 연결할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서로가 서로에게 추천사를 쓰는 형태로 개별적인 작품들에 다리를 놓아 보고 싶었습니다. 그 구조를 책의 구성으로 삼아 앞의 작가가 뒤의 작품에 초대장을 쓰고 작품 앞머리에 배치했어요. 한 작품의 문이 닫히면 그 작가가 뒤에 오는 작품의 문을 열어 준다는 느낌으로요. 초대장 외에도 책을 만드는 과정들을 한 단계씩 작가님들과 모두 공유하며 함께 만들어 낸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했어요. 돌아보면 출판사가 척척 알아서 해 주면 될 과정들을 공유하여 귀찮으셨을까 싶기도 한데, 그 의미를 모두 알아주셔서인지 출판 작업을 마무리하며 모두 한목소리로 함께 하는 과정이 뜻깊었다고 해 주셨습니다.
*김지현 1991년 부산에서 태어나 북쪽 끝 동네에서 살고 있다. 2019년 <부산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오선영 1981년 서울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자랐다. 2013년 <부산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소설 「해바라기 벽」으로 등단하였다. *장희원 1993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201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소설 「폐차」가 당선되어 등단했으며 2020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다. *황유미 아침엔 읽고 낮에는 쓰고, 밤에는 생각한다. 쉬는 날엔 동네 서점에 가는 동네 작가. 1989년 경상남도 창녕에서 태어났다. 아홉 살 때부터 쓰는 삶을 상상했고, 학창 시절 유일하게 좋아한 과목이 문학이라 자연스럽게 독어독문학을 전공했다. 불안할 때는 글을 쓰고 브런치에 올린다. *송유나 2020년 <광남일보> 신춘문예 소설 부문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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