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알피피의 돌고 도는 세상
우연한 만남이 새로운 발견으로 귀결되는 과정, 티알피피는 존재 자체로 흥미로운 세렌디피티(Serendipity)다.
글ㆍ사진 이즘
2022.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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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적인 코드와 서브컬쳐 음악 사이에서 탄생한 티알피피(TRPP)는 전형을 거부한다. '부캐'와 '코리안 슈게이징'을 섞은 이 조합은 유쾌하면서도 독특한 매력으로 인디 신을 교란하기 시작했다. 몽환적인 연주에 흐릿한 목소리를 얹은 의 질주는 이제 1년이 지났을 뿐이지만, 숨 가쁘게 돌아온 는 등장의 들뜬 분위기를 잠시 잠재우며 느긋한 발걸음을 옮긴다.

따스한 감성으로 중심을 잡는 싱어송라이터 윤지영, 노엘 갤러거 내한 당시 오프닝 무대를 책임진 밴드 바이바이배드맨의 프론트 맨 정봉길, 유쾌한 밴드 일로와이로의 기타리스트 강원우. 새로운 지붕 아래 모인 인디의 선봉장들은 얼터너티브, 드림 팝 등의 재료들을 편견 없이 배합한다. 'Clue'에서는 1990년대 다부지고도 처량했던 록의 대표주자 스매싱 펌킨스를 회상하고 'Rainbow spell'과 같이 잔잔한 곡에서는 브릿 팝의 서정성을 우리말로 번역하기도 한다.

최종적으로 혼탁한 사운드의 슈게이징이 정갈한 모습으로 자리 잡는다. 첫 만남의 설렘을 풍기던 1집처럼 'Lifetime'과 'Higher than the sun'등의 트랙에서는 들뜨기도 하지만 다소 잠잠한 흐름이다. 이는 노이즈 록의 아들 격인 이 장르에 드나들 수 있는 편안한 출입문 역할을 하면서도, 그 소음이 선사하는 미가공과 날것의 매력을 반감시키며 양날의 검으로 작용한다. 비슷한 부류의 음악과 다르게 안온한 감상을 선사하지만, 반항적인 구간의 결핍 탓으로 무료감에 빠지기도 쉽다.

스산하고 몽롱한 분위기를 풍기는 가운데 그 아래 새겨진 정체성은 데뷔작에 비해 더 확고하다. '반사'와 '명상' 등의 노랫말 안에는 티알피피만의 추상적이고 현학적인 색깔이 선명하게 묻어나고, 삶의 윤회를 논하는 'Circle'과 'Here to stay'는 번역 그대로 이들의 기행이 '원'처럼 돌고 돌아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질 것'을 선언한다.

엉성한 콘셉트 아래 감춰져 있던 티알피피의 실마리를 풀고 그 뜻을 설득하기 위한 해설서 역할을 충분히 수행했다. 신보를 기점으로 이 기묘한 회합의 출발선을 되짚어보면 과거 음악의 짙은 향수로부터 비롯된 슈게이징의 매력을 다시금 눈치채고 받아들이게 된다. 우연한 만남이 새로운 발견으로 귀결되는 과정, 티알피피는 존재 자체로 흥미로운 세렌디피티(Serendipity)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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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