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해외 음반] 음악 마니아들을 행복하게 한 해외 팝 10선
음악 마니아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을 2022년을 다시 되돌아볼 팝 앨범 10장을 정리했다.
글ㆍ사진 이즘
2022.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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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사이를 가로막던 장벽이 붕괴하자 다른 나라가 그렇듯 '고요한 아침의 나라' 역시 손님맞이에 눈코 뜰 새 없이 분주해졌다. 매일 새롭게 들려오는 해외 아티스트의 내한 소식은 물론, 공연과 페스티벌로 점철된 SNS 피드를 바라보며, 자기도 모르게 미소를 띠며 일정을 확인하는 경우가 얼마나 잦았던가. 음악 마니아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을 2022년을 다시 되돌아볼 팝 앨범 10장을 정리했다. 글의 순서는 순위와 무관하다.



비욘세(Beyonce)

여성 뮤지션의 약진을 진두지휘하는 흑인 음악의 대변자는 달라도 확실히 달랐다. 모두가 펑크(Funk), 디스코로 회귀할 때 비욘세는 뒤를 이어 등장한 음지의 전자 음악 '하우스'를 들고 돌아왔다. 먼지 쌓인 댄스 플로어를 재정비하기 위한 춤곡 모음집이 코로나 위기의 세상을 하나로 뭉쳐 차별 없는 지하 세계로 끌어들인다.

클럽 안에서는 누구나 평등하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같은 공간에 모여 같은 음악을 즐길 뿐이다. 이것이 음악의 의미이고, 그 의지는 비욘세가 계승한다. 수많은 참여진, 담긴 내용, 여러 장르를 응축하는 힘으로 현세를 응집한다. 2022년이 의 해라 단언 할 수는 없지만, 비욘세의 '부흥기, 전성기, 르네상스'임에는 틀림없다.  (임동엽)




로살리아(Rosalía)

리키 마틴과 샤키라가 이끌었던 새천년 전후를 거쳐 'Havana'와 'Despacito'를 주역으로 한 2010년대 후반 이후, 라틴의 세계 침공은 이제 파티 음악에 그치지 않는다. 배드 버니의 가 스트리밍 신기록을 세우며 대중적인 위력을 펼쳤다면 그 맞은편에는 로살리아가 있었다. 레게톤과 플라멩코를 접목해 현재와 과거를 잇고, 안팎을 뒤집어 해체와 융합을 시행한 가 그 주인공이다. 헬멧 하나만을 갖춘 괴물이 모든 장벽을 깨부쉈다.

매 순간 쉬지 않고 예상을 뒤흔드는 역동적인 전개와 청아한 목소리가 만나 무질서 속의 아름다움을 피워냈다. 다양한 스타일과 레퍼런스 차용을 동력 삼은 산발적인 공습은 가족과 친구, 내면에서 발굴한 텍스트로 가지런히 모아져 가수 고유의 힘을 드러내는 장치가 된다.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의 바르셀로나 출신 가수가 과거 식민지였던 라틴 아메리카 문화를 전유한다는 논란은 한편으로 보면, 세계화에 따른 라틴 음악의 무국적성을 보여주는 지표이기도 하다. 국경과 장르의 틀을 넘어 뻗어나가는 라틴, 좋든 싫든 그 선봉장에 로살리아가 존재한다.  (한성현)




제이아이디(J.I.D)

애틀랜타 힙합 크루 스필리지 빌리지에서 마이크를 잡던 무명 래퍼에서 2017년 제이 콜이 이끄는 드림빌 레코드에 사인한 슈퍼 루키로 거듭나기까지 착실히 실력을 증명하며 성장해왔다. 실력보다도 개성, 눈길을 끄는 재미가 중요한 힙합 신의 경쟁 홍수 속에서도 좋은 음악과 랩으로 무시할 수 없는 족적을 남겼다. 성실한 노력과 가파른 성장 곡선은 에서 결실을 맺는다. 여전히 다수 대중에게 낯선 이름이지만 그를 더 이상 단순 루키로 규정짓는 건 무리로 보인다.

근래 이렇게 충만한 감상을 선사하는 앨범이 또 있었나. 더 날카로워지고 물오른 래퍼의 플로우가 대번 청각을 장악하고 옛 재즈와 소울의 향취를 가득 품은 프로덕션은 아름다운 선율의 향연이다. 자신의 역사를 치열하게, 입체적으로 풀어낸 자전적 메시지는 또 어떤가. 언뜻 진부할 수 있는 가족 이야기도 그의 펜 끝에선 한 편의 영화로 재생된다. 탄탄한 랩, 수준 높은 프로덕션, 여운 진한 메시지 어느 것 하나 놓치지 않았다. 제이아이디는 현존 최고의 래퍼 중 하나다.  (이홍현)




레드 핫 칠리 페퍼스(Red Hot Chili Peppers)

명불허전이다. 레드 핫 칠리 페퍼스는 올해만 와  두 장의 정규 음반을 연달아 발매하며 왕성한 생산력을 뿜어냈다. 오랜 파트너 프로듀서 릭 루빈의 손길과 환갑을 넘어선 노장들의 관록이 깃든 고품격 앙상블에 잠들어있던 록 인구는 열렬한 지지로 화답했고, 대중의 환대마저 흡수해 몸집을 키운 는 빌보드 앨범 차트 1위에 안착하며 팀의 완숙기를 연장했다. 40여 년의 역사를 간직한 베테랑들의 창작 욕구를 자극한 건 영광의 시절을 함께한 기타 히어로 존 프루시안테의 재합류가 결정적이었다.

돌아온 기타리스트의 존재감은 실로 거대했다. 그는 잠시 전자 음악에 몰두했던 최근 이력이 무색하게 견고한 록 기타 연주로 리듬 파트와 보컬 사이를 부지런히 오가며 치밀하게 사운드의 틀을 짜 맞췄고 매끄러운 코러스와 맹렬한 기타 솔로로 자신을 대체할 수 없음을 우회적으로 선포했다. 멤버 재편성으로 발산된 화학 작용은 펑크 록과 그런지, 재즈 등 폭넓은 장르 소화력으로 불씨를 옮겨 서로 즉흥의 재간을 겨루는, 견고한 음악 회합으로 완성됐다.  이후 16년, 전설들의 장엄한 재회식이 레드 핫 칠리 페퍼스의 시곗바늘을 거꾸로 돌렸다.  (김성욱)




위켄드(The Weeknd)

이즘 필진들은 위켄드가 음반을 낸 해의 연말이 되면 늘 고민한다. '올해도 위켄드 음악을 올해의 앨범이나 싱글로 뽑아야 하나?'가 난상 토론의 주제지만 결국엔 선정할 수밖에 없다. 그 어떤 음악보다 좋으니까.

의 DNA는 1980년대다. 신시사이저뿐만 아니라 보컬과 드럼에 리버브를 많이 걸어 사운드를 풍성하게 추출하는 방식도 당시의 유행을 따랐다. 이 음악적 유산을 현대적 감각으로 포장하는 것도 능력이며 여기에 맞는 멜로디와 비트를 뽑아내는 것도 실력이다. 칼리드, 이달의 소녀 등 국내외 여러 뮤지션들이 위켄드의 사운드를 괜히 따라 하는 게 아니다. 러닝타임이 50분이 넘는 컨셉트 앨범이라는 것도 반갑다.  (소승근)




미츠키(Mitski)

귀를 잡아채는 멜로디와 장르를 넘나드는 작곡 능력도 만개했지만, 미츠키의 핵심은 역시 멜로디와 단어를 조화롭게 꾸며내는 융합력이다. 'Your best American girl'이나  등의 대표작은 자아를 강하게 표출하며 구미(歐美) 사회에 스며든 '동양계 여성 싱어송라이터'로서 정체성을 줄곧 단단하게 응집해왔다. 커리어 정점으로 등반 중 돌연 은퇴 선언, 이를 번복한 은 승리의 월계수에서 날카롭게 벗겨 낸 삶의 지옥 같은 단면까지 체화하며 거룩한 귀환을 알린다.

돌아온 미츠키는 스스로 전자 음악의 연회를 거행한다. 과거를 계승한 신스팝 'The only heartbreaker', 디스코 넘버 'Love me more'의 경쾌한 선율과 '누군가를 사랑하니 분명 외로울 것('Should've been me')'이라는 처연한 가사가 서로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변화를 위한 과정이었다는 소회처럼 뚜렷한 반전의 미학은 날카롭고, 관계와 사랑의 곁가지조차 손질해내는 도도한 표현 역시 세밀하다. 내면으로 깊게 침투한 가시마저 가다듬어 재개장한 정원에 방문객은 연신 감탄을 보낼 수밖에.  (손민현)




데인저 마우스 앤 블랙 소트(Danger Mouse And Black Thought)

흑인 음악의 축을 차지하는 두 장인이 2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연마한 힙합 앨범엔 각기 다른 색들이 이음새 하나 찾을 수 없이 완벽하게 접합해있다. 다만, 그 질감은 절대 부드럽지 않았다. 오랜 명작에서 빌려온 샘플을 기반으로 둔탁한 드럼과 베이스로 제련된 란 금속은 시공간과의 반응을 거칠게 거부하며 세월이 지나도 부식하지 않는 영원성을 획득했다.

마치 축음기처럼. 이 년 전 세상을 떠난 엠에프 둠을 비롯해 과거를 지향하는 한편, 붐뱁의 다음 단계를 제시하는 콘웨이 더 머신을 통해 현재까지 보듬는 복잡한 흐름이 데인저 마우스가 일궈낸 고풍스러운 원반 위로 정렬한다. 음구(音溝)를 통과하는 바늘의 역할은 블랙 소트의 날카로운 래핑. 묵직한 목소리가 진동을 일으키며 세대와 주파수를 맞춘다. 어찌 보면 고루할 수 있는 작법을 끊임없이 담금질하며 다수의 공감을 구할 걸작으로 탄생시켰다. 시대를 소환하지만 잠식되지 않고 고유 색채를 발현하는 점에서 이미 '클래식'이란 칭호의 영예를 부여받기에 모자람이 없다.  (손기호)




찰리 XCX(Charli XCX)

보통은 이러지 않는다. 앨범 다섯 장 계약의 메이저 레이블과의 종결이라면, 게다가 그 13년간 지속적으로 현저한 제작 자유의 침해를 경험한 경우라면 그 작품은 제목처럼 충돌과 분노의 화염 아니면 키스 앤 텔의 폭로일 소지가 크다. 거기에다 음악가의 본령인 '실험'에 충실해 온 주체임을 감안했을 때 막상 결과물이 지극히 레트로적, 타협적, 상업적임은 놀랍다. 뉴 잭 스윙, 디스코, 펑크(Funk), 신스팝, 하우스 팝 등 재래적 요소들을 순차적으로 배열하면서 유사 히트곡 컴필레이션을 꾸려냈다. 굿판은 걷어치웠다.

이러한 역공이 도리어 우호적 시선을 유발한다. 기존 질서로 향하는 '타락한 팝의 하수인'(이즘 리뷰 한성현)일지 몰라도 거기엔 음악 세계와의 화해 나아가 자신에 대한 다독거림이 있다. 예술적 아이콘 대신 '대중가수적 인격'을 택한 것이다. 세상과의 연결점을 놓치지 않으려는, 다수의 배제를 피하려는 안간힘 발버둥 몸부림은 아름답다. 실은 작은 도발들의 연속이다. 'Good ones', 'Beg for you', 'Used to know me' 등 짧게 끊어치는 곡들이 숨 가쁘게 이어지는 실한 수작 소품집!  (임진모)




잭 화이트(Jack White)  

지난 11월 10일 예스24 라이브 홀에서 열린 내한 공연은 여러모로 화제였다. 고밀도 사운드와 퍼포먼스가 호평받았고 록 마니아들은 젊은 거장의 연주에 화답했다. 사운드 적으로 양단에 선 두 음반 와 으로 래콘터스(The Raconteurs)와 데드 웨더(Dead Weather)의 지휘자이자 위대한 기타리스트 겸 음악감독에게 2022년은 남달랐다. 포스트 펑크 리바이벌의 중핵 화이트 스트라입스의 마지막 정규 앨범 을 낸 지 어언 15년, 잭 화이트는 화이트 스트라입스에 비견할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다.

할퀴는 듯한 음색과 이펙트 잔뜩 걸린 기타 톤의 은 잭 화이트 특유의 날카로운 사운드를 반영했다. 변칙적 곡 구성과 아트 록에 개러지 록을 접붙인 실험적 사운드스케이프는 화이트의 고유 영지며 도입부 기타가 명징한 'What's the trick?'이나 현란한 효과음의 'Taking me back'으로 주의를 붙들었다. 어 트라이브 콜드 퀘스트를 이끌었던 래퍼 큐 팁(Q-Tip)이 참여한 'Hi-de-ho'로 재즈 랩과 록을 혼합하는 실험성에도 대중 음악의 흡인력을 놓치지 않았다.  (염동교)




빅 시프(BIg Thief)

사후 세계의 입구를 여는 어쿠스틱 종교 의식. 공터에 버려진 플라스틱 인형들의 정겨운 캠프파이어. 우연히 주운 로파이 카세트에 녹음되어 있던 동화집 내레이션. 빅 시프의 에서 연상되는 수식은 분명 이보다 더 많을 것이다. 정말이지 그렇다. 이들의 목가적인 합주는 언뜻 가벼워 보여도 이명이 남을 만큼 묵직하고, 곧 울음이 터질 것만 같은 아드리엔 렌커의 보컬은 쓸쓸하고도 동시에 온정적이다. 수많은 감상이 존재하는 이 공간에서 그들에게 수여된 인디 포크 신의 메시아라는 훈장은 너무나도 마땅해 보인다.

모든 것은 변한다. 손에 잡히지 않는 바람과 물처럼, 산들거리며 정처 없이 떠도는 나뭇잎과 나비('Change')처럼. 하물며 우리가 두려워하는 죽음조차도 그들의 초연함 앞에서는 그저 변화의 일부일 뿐이다. 그렇기에 모든 것은 남는다. 빅 시프의 선율에는 시간을 머금고 조금씩 바뀌며 전승되어 온 여러 아티스트의 정신과 흔적이 깃든다. 밥 딜런의 낭만과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투쟁, 그리즐리 베어의 거리감, 피오나 애플의 즉흥성, 그리고 카시트 헤드레스트의 투박한 질감까지. 그야말로 마법 같은 1시간 20분이다. 잘 짜인 한 편의 판타지 소설을 읽는 기분이다.  (장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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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