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지연 "우리의 궁극적인 진로는 '사는 것'"
은호를 둘러싼 어른들, 엄마든 카페 사장님이든 아빠든 모두가 불완전하고 서툰 사람들이잖아요. 그러니까 우리한테는 사실 완벽한 어른이 필요한 게 아닌 것 같아요.
글ㆍ사진 신연선
2022.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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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막 스무 살이 된 '은호'에게는 자신과 열여덟 살 차이가 나는 엄마가 있다. 무능력하고 이기적인 아빠는 거의 없는 존재나 마찬가지였으므로 엄마는 은호와 동생을 위해 억척스럽게 살아야만 했다. 이 상황에서 은호가 할 수 있는 것은 공부뿐이었고, 그렇게 대학에 진학해 가족의 굴레에서 잠시 벗어나나 싶었다. 그러나 조그만 자취방에 다시 엄마가 찾아온다. 전공을 잘못 선택한 것은 아닌지, 연애는 제대로 하는 것인지, 엄마와는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것투성이인 가운데 은호는 생각한다.

'내가 진짜 원하는 건 뭐지?'

제1회 성장소설상 대상 수상작 『이 와중에 스무 살』을 쓴 최지연 작가는 살면서 누구에게나 한 번은 찾아오는 성장통에 주목했다. 자신의 스무 살이 그러했던 것처럼 변화 앞에서, 자아의 성장 앞에서 방황하기도, 당황하기도 하는 인물들을 그려보고자 했다.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계속 돌이켜볼 수 있는 것'을 성장이라고 말하는 최지연 작가. 그의 말대로라면 성장은 노년에도, 지금도, 바로 이 순간에도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불교에서 '한 생각 돌이킨다'는 표현을 하거든요. 크게 상황이 변하거나 나의 역량이 변하는 것처럼 많은 일을 겪어야만 성장이 일어나는 게 아닌 것 같아요. 그냥 지금 이 순간에 기존에 생각했던 방식과 다른 방식으로 생각할 수 있다면 성장이라고 할 수 있을 거예요. 내가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던 생각과 마음을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능력, 한 생각 돌이키는 것, 그게 저는 성장이라고 생각해요."



성장의 본질은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드려요. 소식 듣고 어떠셨어요? 

진짜 너무 깜짝 놀랐어요. 수상 발표하는 시기가 가까워지던 때라 떨어졌다고 생각하고 마음을 놓고 있었거든요. 그런 상태에서 전화를 받았어요. 너무 놀라고, 감격스러웠죠. 중간에 목이 메어서 말도 못하고 그랬어요.

'성장소설'상이잖아요. '성장'이라는 키워드가 분명히 있었기 때문에, 어떻게 『이 와중에 스무 살』이라는 이야기를 떠올리게 됐을지 궁금하더라고요. 

실은 공모 소식을 알기 전에 대충 완성된 원고를 가지고 있었어요. 성장을 염두에 두고 쓰진 않았던 건데요. 도서관에서 공모 포스터를 보고 이 이야기도 적합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가 원래 희망이나 기대를 잘 갖지 않는 편인데 그 포스터를 봤을 때는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를 하게 됐어요.(웃음) 마치 소설 속에서 은호가 상담실 포스터를 봤을 때의 심정처럼요. 그때를 돌이켜보면서 '나한테 필요한 것을 찾는 재주가 있었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소설을 쓰면서는 딱히 은호의 성장을 염두에 두지는 않았지만요. 성장이란 언제나, 노년이든 중년이든 있을 수 있는 거잖아요. '누구나 성장한다'는 문구가 공모 포스터에 있었는데요. 제가 쓴 이야기에도 은호에게 눈에 띄는, 손에 잡히는 성장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인물의 마음이 바뀌고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가 조금이나마 바뀌는 지점이 있다는 걸 알았어요. 그것이 성장의 본질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죠.

은호가 어느 순간 "내가 진짜 원하는 건 뭐지?"(87쪽)라고 스스로 질문하잖아요. 갑자기 다른 사람이 아닌 나를 보게 되는 순간이었는데요. 그때 엄청난 도약이 일어나는 것 같았어요. 성장이란 그런 게 아닐까 생각도 했고요. 

그렇죠, 은호는 그전까지 계속해서 자기의 안 좋은 지점들을 엄마에게 투사하고 살았잖아요. 그러던 은호가 어느 순간 자기를 한 걸음 떨어져서 볼 수 있는 시각이 생긴 거예요. 그런 시각이 생긴다는 것 자체가 성장으로의 도약이 아닐까 생각해요.

처음 이 이야기는 어떻게 시작된 건가요? 변화하는 스무 살의 풍경이 오게 된 장면이 무엇이었는지 궁금해요. 

소설의 씨앗이 된 건 소설에도 등장하는, 횡단보도 앞에서 갑자기 주변 풍경이 뚜렷해 보이면서 살짝 어지러운 듯하면서도 인식의 지평선이 열리는 듯한 느낌을 갖는 장면이었어요. 실제로 제가 20대 초반에 횡단보도 앞에서 느꼈던 것이거든요. 이제는 까마득한 과거인데도 지금까지 그 장면이 생생하게 남아 있어요. 그 순간 '이거 뭐지?' 했던 것 같아요. 보통의 일상이었고 그저 횡단보도를 건너는, 하루에도 수없이 마주하게 되는 순간 중 하나였는데요. 그동안 내가 잠을 자듯 살았다는 생각이 불현듯 오면서 뭔가가 깨어나는 느낌이 왔어요. 그 장면으로 소설을 시작하게 됐어요.

특별히 스무 살이라는 나이가 불려 나온 이유도 있었을 것 같아요. 그 시기의 특별함이랄까요. 

이 시기가 재미있는 것 같아요. 제가 대학을 졸업하고 대안학교 교사로 활동을 했었는데요. 그때 인간학, 교육학에 대한 공부를 많이 했어요. 거기서 스무 살이 유년기를 정리하고, 부모로부터 온 것들을 정리하면서 홀로 서는 시기라는 내용을 봤거든요. 자아가 독립하는 시기라는 거였죠. 교육학에서의 인간 발달 단계를 공부하면서 그 시기를 많이 생각하게 됐어요. 마침 횡단보도 앞에서의 경험과 결합이 되면서, 스무 살이 하나의 허들을 뛰어넘는 시기라는 것을 깨달았죠. 이 시기에 느끼게 되는 감각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그 감각을 충분히 앓고 지나가는 게 좋다는 생각도 했고요. 

저 같은 경우 20대 초반에 그 감각이 왔지만, 누구에게나 그 경험이 그 시기에 오는 건 아니에요. 내가 나를 독립된 사람으로 바라볼 수 있는 때가 조금 일찍 오는 사람도 있을 수 있고, 혹은 30살이나 40살에 오는 사람도 있어요. 어쨌든 그 순간 마음 고생을 굉장히 많이 하잖아요. 그 와중에 그걸 스무 살에 겪는다는 것은 무척 흥미롭죠. 불안도, 걱정도 많은 시기이고 자신이 딱 세워지지 않은 시기인데 정신력과 체력은 최대인 때잖아요. 그때는 아무리 정신적으로 앓아도 그거를 돌파해낼 체력이 있는 것 같아요. 나이 들어보니 알겠더라고요.(웃음) 안타깝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고 그런 시기가 20대라는 생각을 했어요. 



심리적인 탯줄을 끊어야 

주인공은 은호는 이른바 'K장녀'예요. "엄마가 원하는 딸이 되고 싶었다"(86쪽)는 문장도 나오는데요. K장녀라면 공감할 묘사가 정말 많이 등장하죠. 그래서 이 인물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혹시 여기에 작가님이 많이 담긴 건 아닐까 생각도 하게 되더라고요.

은호는 동생이 한 명이지만요. 저는 동생이 둘인 K장녀예요.(웃음) 특히, 첫째 딸이 야무지면 야무질수록 엄마가 기대를 하는 것 같은데요. 그만큼 의지도 되고 하니까요. 그래서 제가 엄마에게 느꼈던, 제가 동생들을 대하면서 느꼈던 감정들이 되게 많이 들어갔어요. 그런 경험이 현실적으로 그려지지 않았나 생각해요.(웃음)

"화해 없이도 새로운 싸움을 시작할 수"(125-126쪽) 있는 관계가 엄마와 딸의 관계라는 문장도 있었죠. 

정말 그렇잖아요. 되게 많이 싸우는데 화해한 기억이 없다는 게 신기했어요. 저는 그게 오히려 이 관계의 돈독함을 보여주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꼭 화해로 매듭 지어야 하는 것은 오히려 더 약한 관계이기 때문이기도 한 것 같은 거죠. 그렇다고 화해가 안 좋은 건 아니지만요. 엄마와 딸의 관계는 워낙 밀착되어 있고 돈독하다는 생각을 해요. 그러니까 아무리 싸우고 아무리 날카로운 말들을 쏟아냈어도 상대가 진짜로 날 미워하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는 것 같고요. 때문에 화해가 없이도 또 새로운 싸움을 시작할 수 있지 않았나 싶어요. 그런 진한 애정, 끈끈함이 있어서 더 힘들기도 하고, 더 극복해낼 수 있는 서로 힘도 갖는 것 같아요.

그 끈끈함이 가끔은 너무 날 것으로 가기도 하죠. 그래서 더 공격적인 대화를 반복하게 되는 양상이 있는 것 같아요. 책에 그런 표현도 있었잖아요. 다들 이런 갈등이 있다면 이걸 어떻게 풀어나갈지에 대한 매뉴얼이 있을 법도 한데 왜 없나, 하고요. 생각해보면 관계마다의 경험만 있을 뿐 공통된 답이 없다는 것이 또한 모녀 서사의 특이한 점이 아닐까 싶기도 해요. 

남들이 겪어봤다고 해서 그걸 나에게도 그대로 적용하거나 대충 짚고 넘어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아무리 똑같은 문제라 하더라도 직접 내가 한 번은 돌파해내야 하기도 하고요. 부모와의 맺은 관계를, 이전까지 아무리 밀착되어 있었다고 해도 스무 살 이후에는 심리적인 탯줄을 끊어야 되는 것 같아요. 스무 살이 그런 시기 같거든요. 그러면서 건강한 경계를 세우고, 나 자신까지도 나를 거리 두고 지켜보고, 엄마도 거리를 두고 보면서 서로의 건강한 거리를 지킬 수 있는 단계가 필요한데요. 거기까지 가기 위해서는 수없이 많은 모녀 관계들이 겪었던 것을 나도 결국 밟을 수밖에 없구나, 대충 건너뛰고 넘어갈 수 있는 게 아니구나,라는 생각도 했어요.

세상에 편하고 좋기만 한 모녀 관계는 없겠지만, 특히나 엄마의 짐을 같이 짊어지고 있는 은호 입장에서는 엄마에 대한 애증의 마음이 엄청나잖아요. 엄마 캐릭터는 어떤 고민을 하면서 만드셨어요? 

억척스러움을 묘사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엄마의 억척스러움이 약간 다른 느낌이었으면 했거든요. 은호의 엄마는 아직 젊고, 여전히 매력이 있는, 그러면서도 본인의 매력을 잘 모르는 인물이에요. 사실 본인에게 주어진 엄마의 역할을 스무 살도 전에 이미 시작했죠. 그 역할을 감당하기가 엄청나게 어려웠을 거예요. 엄마는 그런 스무 살을 통과해낸, 그래서 굉장히 생활력이 강해진 캐릭터고요. 때문에 쓰면서도 엄마가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안쓰럽고 그랬어요. 그런 두 가지 이미지를 다 주고 싶었죠. 아직은 본인의 뜻을 펼칠 수 있는 가능성이 많은데, 그런 걸 모른 채 그냥 억척스럽게만 살아가려고 하는 그런 캐릭터를 말이에요. 

주변에 아이 키우는 언니들, 친구들이 많은데요. 자녀에 대한 고민이 다들 굉장히 많아요. 본인의 인생을 다 내려놓고 자식에게만 이렇게 집중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는 최고의 엄마는 그냥 자기 인생 잘 사는 엄마라는 얘기를 하곤 하는데요. 책에도 그런 이야기를 좀 담아보고 싶었어요.



모두가 불완전하고 서툰 사람들

그 와중에 작가님은 은호한테 다양한 가능성, 여러 선택지를 주고 싶으셨던 것 같아요. 커피도 배워볼 수 있겠다, 아니면 글을 써볼까, 공무원을 할까, 하면서 고민을 이어 나가잖아요. 그렇게 썼던 마음도 듣고 싶어요. 

소설의 마무리를 들어가면서 은호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뭔가 은호에게 조금 더 뚜렷한 것, 손에 잡히는 것을 주고 싶기도 했거든요. 물질적인 것이라기보다 조금 더 구체적인 뭔가를 주고 싶었는데요. 생각하니까 그것이 또 저의 불안감 같은 거예요. 뭔가 구체적인 것을 보여주는 것이 부모가 자식을 바라보는 마음일 수 있겠구나, 나의 불안감일 수도 있다, 하는 걸 깨달았고요. 그래서 오히려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났어요. 은호가 뭘 하게 되든 지금 이 사람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과 자신을 바라보는 시각이 넓어지고 단단해졌다는 게 중요한 거니까요. 그 마음이라면 뭘 하든 무너지기만 하지 않고, 실패에서도 배워나가고, 이것이 삶이라는 것, 이게 살아가는 거라는 것을 이해하고 잘 해 나가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렇게 좀 믿어주는 마음을 담아서 구체적인 것으로 안 나가고 여기서 마무리하자고 생각했어요.

그게 또한 진실 같기도 하네요. 설령 스무 살에 구체적이고 확실한 뭔가를 가지고 있었다고 해도 그것이 시간에 따라 흐려지거나 바뀌기 마련이기도 하잖아요. 그저 가능성을 은호에게 주는 걸 보면서 따뜻하게 은호의 등을 떠밀어주는 느낌을 받았어요. 또한 그 마음이 가장 많이 담긴 게 상담사 선생님일 것도 같고요. 

여기서 상담사 선생님은 이름이 없는데요. 제가 마음속으로 그 상담사 선생님의 이름을 '백지애'라고 지었거든요.(웃음) 백지 같은 사람을 은호에게 주고 싶었어요. 캐릭터를 그릴 때는 구체적이고 복합적인 걸 주려고 노력을 하는데, 상담사 선생님만큼은 캐릭터를 일부러 구체적으로 주지 않았어요. 정말로 은호의 마음이 백지처럼 적히는, 백지 같은 사람이 필요했으니까요. 그래서 은호가 나중에 글을 써볼까 생각하잖아요. 쓰는 것이 어딘지 상담과도 비슷하다고 생각했어요. 어떤 방식으로든 자기의 이야기를 글로 쓰는 게 상담사 선생님이 은호에게 해주었던 역할이 되어주지 않을까 하고요. 그래서 꼭 상담을 통해서가 아니라 글쓰기 위한 백지를 만나는 기회로 상담사 선생님이라는 도구를 가져왔던 거예요.

은호는 상담을 한 것이지만 어떤 면에서는 계속 글을 쓰고 있었던 거네요. 

그럴 수 있겠네요. 이 이야기에서는 상담을 한 것이지만 내적으로는 글을 쓰고 있었던 셈이에요.

자신의 얘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 갖는 힘이 있는 것 같아요. 한편으로는 너무 흔들려서 넘어지거나 벼랑 끝으로 떨어지지 않게 막아주는 상담사 같은 존재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는 생각도 들고요. 

그런 사람은 진짜 필요해요. 나아가서 내가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어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하는데요. 그런 사람이 되어본 경험이 다시 또 나를 더 단단하게 하는 것 같아요. 나한테 그런 사람을 찾는 것도 중요하고, 내가 그런 사람이 되면서 단단해지기도 하고요. 그래서 관계가 좋은가 봐요. 은호는 좋겠다고 하는 독자분들이 있어요. 어쨌든 카페 사장님, 준우, 윤지 선배 등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있고, 기회도 있었으니까요. 되게 복된 거죠. 그런데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면 내가 준우나 윤지 선배, 상담사 선생님 같은 사람이 되어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주변에 있는 가까운 사람에게, 내가 사랑하고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그런 사람이 되어주고 싶어 하는 그런 마음을 대하면 마음이 꽉 차는 것 같아요. 

보면 은호를 둘러싼 어른들, 엄마든 카페 사장님이든 아빠든 모두가 불완전하고 서툰 사람들이잖아요. 그러니까 우리한테는 사실 완벽한 어른이 필요한 게 아닌 것 같아요. 저는 이미 기성세대라서 많이 생각하게 되는데요. 내가 아이들이나 청년들, 또는 내 주변 사람들을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내가 굳이 완전해야 될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이렇게 서툴고 불안전한 사람들이지만 그런 사람들을 통해서도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얘기하고 싶었어요.



살아 있다는 감각

『이 와중에 스무 살』에 나오는 모든 사람들은 어떻게든 내 삶을 자신의 힘으로 살아보려고 애쓰는 성실한 사람들이에요. 엄마는 말하죠. "나는 지금이 좋아. 내 힘으로 먹고사니까 누구한테 아쉬운 소리 안 해도 되고, 나 싫으면 그만둘 수도 있고. 돈이 뭐 전부니."(244쪽) 이 감각 또한 참 중요하게 느껴졌어요. 

제가 감동받는 사람들은 매일같이 노동하는 사람들이에요. 그런 모습 보면 늘 감동을 받아요. 저도 힘을 받는 것 같고요. 제 부모님이 매일 노동을 하시는 모습을 보면 항상 가슴이 아프면서도 존경스러웠던 것 같거든요. 그래서 노동을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조금 더 생각을 해보면 은호는 노동에 대해서 중요하게 생각은 하지만, 아직은 어려서 미숙한 생각을 다 깨뜨리지 못하기도 해요. 그건 은호가 어리다는 문제도 있지만, 우리 사회가 노동에 대한 어떤 시각을 어떻게 가지고 있는지를 생각하게 하는 부분인데요. 예를 들어 엄마가 식당에서 일하는 모습을 되게 마음 아프게 느끼잖아요. 식당에서 서빙을 하든 건물 청소를 하든 노동의 가치가 충분히 존중 받는 사회였다면 은호가 그런 감정을 안 느꼈겠죠. 그게 사실은 더 궁극적인 문제인 것 같아요. 모든 사람들이 어디서 어떤 노동을 하든지 그 자체의 노동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사회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그밖에 멋진 문장이 많아요. "누군가는 답도 없는 고민을 한다고 한심하게 보겠지만 답이 있는 고민만 하는 건 인간적이지 않잖아?"(54-55쪽)라는 말도 의미가 컸는데요. 이 사회가 너무나 효율을 따지니까요. 

물론 답 없는 고민만 계속하면 안 되겠죠. 하지만 특히 요즘 대학생들은 스무 살을 누릴 새도 없이 곧바로 취업을 고민하고, 취업에 도움이 되는 것들을 준비해야 하잖아요. 자격증도 따야 되고요. 계속 몰아치는 삶을 사는 것 같아요. 눈에 보이는 것만 찾게 되죠.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지치는 순간이 올 거라고 생각해요. 저도 당연히 그랬었고요. 그래서 그런 답 없는 고민, 효율을 떠난 고민들을 생각하게 됐어요. 그런 고민이 인간을 인간답게 해주는 것 같거든요. 사는 걸 사는 것 답게 해주고요. 답 있는 고민, 물질적인 사고를 탓하고 싶은 마음이 아니고요. 안타까운 거예요. 얼마나 불안하고 현실이 빡빡하면 물질적인 사고만 할까 싶어서요. 물론 그런 고민은 삶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겠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니까요. 답이 없는 고민을 함께 하면 삶이 훨씬 더 풍부해진다는 점을 많이 느낄 수 있다면 어떨까 생각해요.

방금 말씀은 작가님께서 은호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으로도 들려요. 

은호가 진로도 고민하고 가족 관계나 연애 관계도 고민을 하지만요. 궁극적으로는 삶 자체를 고민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횡단보도 앞에서의 경험처럼 살면서 순간순간 내가 살아있다는 감각을 느끼는 게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었어요. 대의나 커다란 목표, 예를 들면 취업이나 1등, 시험 점수 몇 점 만들기 같은 목표를 향해 가는 것도 응원해 주고 싶은 일이기는 한데요. 그것을 위해서 지금 내 현재의 삶을 사는 것 같지 않게, 살아있는 감각을 다 죽이고 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러니까 내일 과제 제출을 해야 하는데, 그냥 놀라는 게 아니라 과제 제출을 위해 준비하는 이 순간에도 내가 살아 있다는 걸 느끼면서 이 순간의 나를 좋아해 주었으면 하는 거죠. 과제를 하는 이 시간이 삶의 일부분이라는 거를 충분히 느끼면서 살기를 바라는 거예요. 

저는 은호의 궁극적인 진로가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게 삶의 목표라면 우리는 사실 매 순간 꿈을 이루며 살고 있는 거예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주어진 과제들, 주어진 삶을 헤쳐나간다면 많이 쓰러지지 않을 것 같아요. 물론 흔들리겠지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만큼의 고통 정도를 누리면서 살지 않을까 생각해요.



*최지연

단편 소설 「착장」으로 제20회 평사리 문학대상을, 「라온빌라 301호」로 제27회 김유정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22년 『이 와중에 스무 살』로 제1회 성장소설상을 수상했다.




이 와중에 스무 살
이 와중에 스무 살
최지연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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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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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굴짱

2022.12.10

3시간을 정신 없이 읽어 내려갔습니다. 유명 작가 외 소설책을 이렇게 재미있에 읽었던 적이 있었나? 생각들었습니다. 어떤 분인지 궁금해서 찾아보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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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연선

읽고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