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재식 작가가 들려주는 우리나라 도시에 숨겨진 과학 이야기. 매주 화요일 채널예스에서 만나 보세요. |
울산 시내의 전망 좋은 호텔 고층에 가면 창밖으로 공업 단지가 이루어 놓은 경치가 보인다. 해운대의 호텔에서 푸른 바다의 수평선이 보이고, 속초의 호텔에서 설악산의 산세가 보인다면, 울산의 호텔에서는 강철로 만든 기계들이 산처럼 높은 크기로 여러 겹 겹쳐 있고 수많은 파이프와 전선이 끝없는 공장을 연결하며 정글처럼 펼쳐진 모습이 보인다. 실제로 울산의 공장들을 대표하는 굴뚝 중에는 150미터를 넘는 것이 있어서, 그 크기가 50층 건물에 가깝다. 2009년에는 그런 굴뚝 중 하나에 커다란 그림을 그린다는 소식이 실리기도 했는데, 모르기는 해도 그만큼 높고 거대한 그림은 전국에서도 드물 것이다.
그런 막대한 규모의 다양한 공장들이 울산에서는 서로 연결되어 있어서 각각 다른 물건을 만들고, 그 물건을 쉴 새 없이 주고받으며 1년 365일 하루 24시간 계속 돌아간다.
울산의 공장 풍경을 위성 사진으로 촬영해 놓은 것을 보면, 서로 다른 여러 공장의 장비들이 규칙적인 도로망과 연결관으로 이어져 있어서, 무슨 복잡한 전자 제품의 부품과 회로 같은 느낌이 든다. 그렇게 보면, 울산의 공장 지대는 기계로 가득 찬 거대한 숲이다. 그 강철의 산과 기계의 정글을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일하는 사람들이 울산이라는 세계를 끊임없이 움직인다. 이를테면 울산을 대표하는 산업인 자동차 산업의 경우, 울산에서는 하루 평균 6,000대의 자동차를 생산해 낼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하루 6,000대라면, 약 16초에 한 대씩 새 자동차가 나온다는 뜻이다.
좀 과장해 보자면, 우리가 지구상의 공장에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의 모든 물건을 울산에서 만들어 낼 수 있다고 해도 별로 지나치지 않다. 예를 들어 울산에서는 사람들이 마시는 술의 주성분인 알코올을 만들어서 판매하는 공장이 있는가 하면, 어마어마하게 거대한 배를 만드는 공장도 있다. 2014년에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규모였던 컨테이너 화물선을 울산에서 만들어 바다에 띄운 일이 있었는데, 이 배는 길이 400미터 폭 58.6미터로 한 번에 컨테이너 1만 9,000개를 실을 수 있는 크기였다.
심지어 울산에는 공장 그 자체를 만들어 내는 공장도 있다. 다른 공장을 건설하고 운영하는 데 필요한 재료와 설비를 만들어서 팔기도 하고, 아예 공장을 통째로 만들어서 파는 곳도 있다. 과장이 아니라 바다 위에 띄워서 작업용으로 사용하는 거대한 설비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바다에 띄워 놓은 공장이라고 해서 두루두루 해양 플랜트라는 식으로 묶어 부르기도 하는데, 거대한 배를 만들 기술이 있으니까 바다에서 작업해야 할 때 아예 배 위에 공장을 만들어 놓고 일하면 된다는 발상에서 탄생한 제품이다.
2010년대에 화제가 된 제품으로는 FPSO 즉, 'Floating Production, Storage and Offloading'이라는 선박이 있다. 번역해 보자면 부유식 생산, 저장, 하역 배라고 할 수 있겠다.
석유가 나오는 유전 중에는 바다 밑의 땅속에서 석유를 뽑아내는 곳이 있는데, 여기서 나오는 석유는 그냥 뽑아내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육지의 처리 공장으로 옮겨서 가공해야 한다. 그런데 바다 한가운데에서 쏟아지는 석유를 그때그때 재빨리 옮기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사람들이 생각한 것이 석유를 뽑자마자 물 위에 띄워 둔 거대한 배에 만든 공장에서 적절히 처리하고, 저장 창고도 커다란 규모로 배 위에 만들어 놓는다는 발상이었다.
이런 식으로 물 위에 떠 있는 공장을 울산에서, 울산 사람들이 만들어 낸다. 2015년 초에 완성된 세계 최대 규모의 FPSO도 울산 사람들이 만들었다. 이 FPSO는 거대한 덩치에 어울리게 성경에 등장하는 거인의 이름을 따 '골리앗'이라고 부른다.
'골리앗'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쇳덩어리는 땅속 깊은 곳에서 석유를 빨아올려 1억 5,000만 리터 이상 담고 있을 수 있다. 크기만 해도 지름 112미터 높이 75미터에 달해서 20층 건물보다 더 높다. 모습도 대단히 특이해서 평범한 배 모양이 아니라, 둥근 원통 모양에 이런저런 장치가 붙어 있는 형태다. 외계인의 비행접시 같은 모양이라고도 하는데, 당시 울산 사람들은 높은 데서 내려다보면 피자 같아 보인다고 말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미지와의 조우> 같은 SF 영화에 나오는 거대한 비행접시와 닮은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스티븐 스필버그가 감독을 맡은 <미지와의 조우>에 등장한 비행접시보다는 오히려 울산에서 실제로 제작된 골리앗 FPSO가 더 거대하다.
완성된 골리앗 FPSO는 울산을 떠나 자신이 일할 노르웨이 인근의 바다를 향해 먼 길을 떠났다. 대양을 가로질러 움직이는 배 역할도 제대로 해낸 것이다. 애니메이션 영화판으로도 유명한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라는 소설이 있는데, 소설 속에 움직이는 성이 나온다면 울산에서 만든 골리앗은 움직이는 공장이다. 골리앗은 소설 속의 성보다도 훨씬 더 크다. 움직이는 성은 소설가의 머릿속에서 나온 상상일 뿐이지만, 움직이는 공장 골리앗은 울산 사람들이 과학 기술의 힘으로 현실에서 만들어 낸 제품이다.
울산은 한국 경제의 심장이고 한국 경제의 엔진이다. 울산에서는 정말로 엔진 그 자체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길가에서 워낙 흔하게 접하는 것이 자동차다 보니, 자동차란 현대 사회에서 으레 볼 수 있고 별 대단할 것 없는 기계라고 생각하기 쉬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동차, 특히 엔진은 결코 만드는 것이 간단하지 않다. 따지고 보면 놀라운 장치 아닌가? 소도 없고 말도 없는데, 석유만 넣으면 맹렬하게 뛰쳐나가는 자동차라는 장치를 조선 초기 사람들이 보았다면 마법이나 환상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휘발유를 이용하는 자동차 엔진의 기본 원리는 불이 잘 붙는 연료를 꾸준히 넣어 주면서 박자를 맞춰 계속 전기 스파크로 불을 댕기면, 그때마다 연료가 폭발하면서 주위를 밀어내는 힘으로 바퀴 굴리는 장치를 밀도록 연결해 놓은 것이다.
박자를 맞춘다고 했지만, 엔진 속의 폭발 속도는 사람이 음악에 따라 박자를 맞춘다고 할 수 있는 정도의 속도보다 훨씬 빠르다. 그렇게 빠른 폭발이 일어날 때마다, 그 폭발하는 힘에 밀려나는 부품, 그 밀려나는 부품에 연결되어 돌아가는 부품, 그 돌아가는 부품에 연결되어 다시 톱니바퀴를 돌리는 부품 등이 절묘하게 같이 맞물려 작동하면서 결국 한 방향으로 힘차게 바퀴를 움직이고, 동시에 다음 폭발이 제때 박자에 맞게 일어날 수 있도록 짜 맞추어 놓아야 한다.
폭발이 일어나 바퀴를 돌리는 일은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1초에 몇십 번씩 일어나면서도 조금의 오차도 없이, 몇 시간이고 헝클어지지 않으면서 정확히 똑같이 계속 반복되게 해야 한다. 그래야만 엔진이 정상 작동하고 자동차가 제대로 움직인다.
이런 장치를 믿을 만하게 만든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현재 울산에서 자동차를 생산하고 있는 회사만 하더라도 1980년대에는 자체 개발 엔진이 없었다. 일본 회사에 돈을 주고 엔진 도면을 빌려 와서, 그것을 보고 엔진을 만드는 수준이었다. 당연히 울산에서 자동차 엔진을 만들 때마다, 일본 회사에 기술료를 내야 했다. 일본 회사는 앉아서 돈을 벌 수 있었다.
처음에 일본 회사에서는 설마 한국인들이 자동차 엔진을 만들어 낼 수 있겠느냐는 식으로 얕보기도 했던 것 같다. 그러면서도 시간이 흐르자 한국 회사의 자체 엔진 개발을 경계하기도 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한국 회사에 기술을 빌려주던 그 일본 회사의 경영자는 2차 대전 당시 일본의 대표 전투기로 악명 높았던 제로센, 즉 0식 함상전투기 개발에 참여했던 구보 회장이었다고 한다. 자동차 엔진 개발에 참여했던 이현순 박사가 2007년 한 강연에서 소개한 바에 따르면, 구보 회장은 한국 회사가 엔진 개발 연구소를 폐쇄하면 기술료를 대폭 할인해 주겠다는 제안을 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고 한다. 한국 회사로서는 당장 그만큼 비용을 절약해 돈을 더 벌 수 있으니 이익이고, 구보 회장으로서는 한국 회사가 기술을 키워 장래에 경쟁하게 될 가능성을 꺾어 버릴 수 있으니 이익인 제안이었다.
그러나 장래를 내다본 한국 회사는 구보 회장의 제안을 거절하고 꾸준히 엔진 개발을 진행했다. 이현순 박사가 개발 과정에서 특히 고민했던 골치 아픈 문제는 '열변형'이었다고 한다. 모든 물체는 대체로 차가울 때는 오그라들었다가 열을 받아 뜨거워지면 크기가 조금 늘어나는 경향이 있다. 엔진의 재료인 쇳덩어리도 예외가 아니라서 그 속에서 계속 휘발유가 폭발하면서 열을 내뿜으면 뜨거워진 부분일수록 크기가 조금이나마 늘어나게 된다. 사소한 정도지만 그 때문에 나머지 부분과 치수의 차이가 생기고 점점 미세하게 뒤틀리는 곳이 생길 수 있다.
그래 봐야 작은 변화일 수도 있다. 그러나 수십 개의 정교한 부품이 완벽하게 맞물려 돌아가면서 자동차 한 대라는 무거운 무게를 버티는 동시에 대단히 빠른 속도로 움직여야 하는 엔진 부품은 이런 작은 변화 때문에 어긋나거나 헛돌며 망가질 수 있다. 설령 몇 분 혹은 몇십 분 정도 잘 움직인다고 하더라도, 자동차를 마음 놓고 타려면 몇 시간을 작동해도 문제가 없을 정도로 이런 뒤틀림은 줄여야만 한다.
엔진 개발팀 사람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작은 엔진에 수백 개의 온도 측정 장치를 달아 놓고 온도가 어떤 조건에서 얼마나 변하는지를 수없이 실험하며 연구했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1991년 최초의 국내 개발 자동차 엔진으로 손꼽히는 '알파 엔진'이고, 이후 더 좋은 제품들이 계속 개발되면서 울산의 공장에서도 꾸준히 자동차 엔진이 생산되었다. 그러면서 한국의 자동차 공업도 같이 성장했다. 2021년 한국자동차사업협회 통계를 보면, 한국의 자동차 생산량은 전통적인 자동차 강국인 독일을 제치고 세계 5위에 이를 정도로 성장하게 되었다.
자연히 울산은 경제적으로도 풍요로운 곳이 되었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2020년까지, 21세기 진입 이후 울산은 줄곧 1인당 GRDP 전국 1위를 지키는 도시다. GRDP란 일정 기간 동안 그 지역에서 생산된 경제적 가치를 말하는데, 2021년 말 발표된 자료를 보면 22년 연속으로 전국 1인당 GRDP 1위 지역이 울산이다. 한국 사람들은 보통 덴마크·스웨덴 같은 북유럽 국가들을 부유한 선진국이라고 부러워하곤 하는데, 평균 소득 수준을 보자면 울산은 이미 덴마크·스웨덴 같은 나라와 비슷하거나 오히려 넘어서 있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선진국의 시대로 가장 앞서서 나아가 있는 도시가 울산이라고 할 수도 있다.
나는 산이나 강 풍경이 아름다운 곳이 관광지가 될 수 있다면, 노동자들의 땀으로 건설된 거대한 울산 공업 단지의 모습도 멋진 풍경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수천 명의 사람이 붙어서 커다란 배를 만드는 풍경이나, 밤새 불빛을 밝히고 움직이는 공장의 기계가 모여 있는 모습은 멀리서 내려다보면 분명히 멋진 광경이다. 그런 경치를 지켜보면서 산책할 수 있는 길이나 앉아 쉴 수 있는 전망대·조망대 같은 곳 중에 다니기 편한 장소가 있다면, 나는 자주 가 보고 싶다.
사람이 없는 호젓한 자연의 모습을 볼 때 드는 느낌도 소중하지만,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과 그 성실한 사람들이 힘을 합쳐 만들어 가는 일터와 기계를 볼 때 드는 이런저런 감정도 삶에 꼭 필요할 때가 있다고 본다.
또한, 이런 현대 기술 문명의 부유함을 일구는 데는 항상 고생하고 희생한 사람들이 있다는 이야기도 꼭 덧붙이고 싶다. 공업 단지나 산업 시설이 만들어지면, 흔히 선거에서 정치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어느 정치인이 저 공단을 만들었다", "누구 정치인 때 저 공장들이 생겼다"는 말을 자주 한다. 한편으로는 "어느 회장님이 저 공장을 지었다", "누구 사장님이 저 배를 만들었다"는 말도 자주 나온다. 그러다 보면 그 정치인, 그 경영자를 비판하기 위해서 그와 함께 떠오르는 공단이나 공장, 산업 시설이 문제가 많다거나 쓸모가 없다는 식으로 같이 비판하게 되는 일이 생긴다.
하지만 대체로 공장이나 산업 시설이 만들어지려면 정치인이나 경영자보다 훨씬 많은 노동자, 과학자, 기술자가 열심히 일해야 한다. 어떤 공장이나 제품이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정치인이나 회장님도 역할을 해야겠지만, 정말 결정적으로 힘을 쓴 사람들은 과학 기술인을 포함한 노동자들일 때가 적지 않다.
나는 울산의 공장 풍경이 자랑스러운 만큼, 그 공장을 만드는 데 애쓴 기술인들과 노동자들을 함께 기억할 기회가 자주 생기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또한, 경제 발전의 과정에서 산업 현장의 안전사고로 희생된 노동자들을 기억하고, 한편으로 더 안전한 산업 현장을 만들기 위해 국가와 공동체가 지원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 생각할 기회가 있다면 더 좋을 거라고 본다. 이런 일에서도 한국 경제의 엔진이자, 가장 먼저 미래에 도달해 있는 도시인 울산이 멋진 모습을 보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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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식(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