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위기 특집] 기후 위기를 뚫고 가는 '이동시'의 픽션 - 정혜윤 PD
질문은 사소하고 힘이 없었지만 창작 집단 '이동시'의 활동가 정혜윤 PD의 말은 살아 있었고 거대했으며, 무엇보다 아름다웠다.
글ㆍ사진 기낙경
2022.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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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은 사소하고 힘이 없었지만 창작 집단 '이동시'의 활동가 정혜윤 PD의 말은 살아 있었고 거대했으며, 무엇보다 아름다웠다. 그녀의 말처럼 우리는 우리를 움직이게 만드는 새로운 이야기가 필요하다.


'이동시'는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어느 날 김한민 작가와 이런 대화를 했어요. 

"만약 우리한테 돈이 있다면 뭘 할 수 있을까?"

당시 제가 레이첼 카슨의 책을 읽은 지 얼마 안됐는데, "돈이 있다면 소나무 숲을 사서 생추어리(동물 보호 구역)를 만들고 싶다"고 했던 그의 말이 떠올랐죠. 자연스레 동물 축제에 관한 이야기를 했어요. 동물을 괴롭히지 않는 축제, 지금 우리가 함께 살아 있는 걸 기뻐하는 축제를 하고 싶다고요.

반응이 어땠나요?

평소 상상했던 이야기를 처음 입 밖으로 꺼냈는데 크게 호응해 주더라고요. 김한민 작가는 해양 환경 보호 단체 시셰퍼드에서 일하고 있지만 '이동시'라는 이름을 개념적으로 지어 놓고 기후 위기 시대에 함께할 수 있는 활동을 하고 싶어 했거든요. 제 이야기를 듣고 한번 해보자고 말했고 긴팔원숭이를 연구하면서 야생 동물에 대해 깊은 애정이 있던 생명다양성재단의 김산하 사무국장도 합류했어요. 2030년까지, 향후 10년은 끝까지 가보자고 셋이서 모였는데, 다른 창작자분들과는 우정의 공동체 형식으로 그때그때의 활동 주제에 따라 같이 작업하고 있어요.

'이동시'는 이야기와 동물과 시의 준말인데요. 각각 어떤 뜻이 담겼나요?

우선 '이동'이라는 단어는 '어디론가 가고자 한다, 움직인다'는 거잖아요. 살아 있는 존재인 우리는 구속을 싫어해요. 늘 움직이고 싶어 하죠. 코로나19 때 답답했던 이유이기도 하고요. 그 때문에 이 단어에는 이미 '우리는 어디론가 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어요.

또, 인류는 '이야기'하는 존재예요. 자기 삶을 언어로 바꾸는 존재죠. 그렇다면 이 이야기가 성장이나 부동산 대신 동물에 대한 이야기라면 어떻게 될까요? 기후 위기에 대한 것이라면요? 우리는 우리가 관심을 갖고 보살피는 이야기를 따라가게 돼 있어요. 우리에겐 새로운 이야기가 필요하고 그 새로운 이야기가 우리를 데리고 간다는 게 저희의 생각이에요.

'동물'을 가운데에 넣은 이유는 지구에서 가장 부자유한 존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목소리도 없고, 힘도 없고, 가장 하찮게 취급되는 존재를 마음의 중심에 두고 싶었어요. 하지만 이 중심 단어는 바뀔 수 있어요. 동물의 자리에 쓰레기가 올 수도, 기후 위기가 올 수도 있죠.

'시'는 문학 작품의 시가 아니에요. 우리를 한 걸음이라도 더 앞으로 나가게 하는 것을 '시적인 것'이라고 봤고요. '이동시'의 이름으로 이런 생각을 품고 앞으로 나가보겠다 했을 때, 우리를 밀어주고 끌어가는 모든 것이 시적인 거라고 생각해요.

동물의 입으로 「동물시국선언」을 낭독했던 퍼포먼스 「절멸」은 동명의 책으로도 출간되었습니다.

「절멸」은 코로나19가 아니었으면 나올 수 없는 주제예요. 코로나19를 지나며 제가 가장 많이 한 말이 '인수 공통 감염병'이라는 단어였어요. 코로나19는 사람들끼리 옮기는 '인인 공통 감염병'이 아니에요. 우리와 동물 사이의 질병이죠. 그래서 이제야말로 동물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새롭게 고민해 봐야 하는 시기라고 생각했는데 우리 사회는 마스크 이야기, 중국 봉쇄 이야기, 신천지 이야기를 하다가 '백신이 들어오네, 안 들어오네'로 끝나가는 것 같더라고요. 여기에 저항한 게 '절멸'이에요. 35명의 예술가가 지구상에 절멸하고 있는 존재인, 동물들의 입이 되어 선언한 것이죠.

작가님은 박쥐의 입으로 말했고요. 어떤 마음으로 이야기했나요?

가장 멀리 가는 여행은 다른 생명체의 마음을 상상해 보는 거예요. 박쥐가 된 저도 정말 멀리 갔어요. 일단 서식지를 잃고 날아올랐는데 '내가 갈 곳이 없구나'라고 느꼈죠. 또, 어떤 바이러스를 내가 옮겼는데 다른 동물이 죽는 거예요. 그래서 박쥐가 된 저는 말해요. 

"나는 죽겠다. 내가 죽을 테니 돼지와 천산갑과 밍크, 내 동물 친구들은 건드리지 말아달라." 

우리에겐 이렇게 다른 생명체에 깃들어 상상하고 말을 해보는 경험이 필요해요.

'이동시'의 메시지는 저항군의 타전처럼 비장한 느낌이 있어요. 지금, 우리가 '저항'해야 하는 건 무엇일까요?

기후 위기 시대에는 저항군이 필요해요. '무슨 식민지 시대 같은 단어야?'할지 모르지만 저항하지 않으면 변하지 않아요. 변하지 않고 맞이하는 미래는 나쁜 미래이고요. 우리는 모두 미래를 알고 싶어 하고 미래를 알고 있다는 사람은 우리에게 힘을 행사할 수 있는데요. 예언에 대한 정의가 있어요. 예언은 "너의 미래는 좋지 않을 것이다." 앞에는 조건문이 하나 더 붙어요. 

"네가 만약 지금과 똑같이 산다면..."

이동시의 저항은 이처럼 우리를 지금과 똑같이 살게 만드는 힘에 대한 저항이에요.



*정혜윤

CBS 라디오 PD. 세월호 참사와 조선인 전범을 다룬 다큐멘터리로 한국방송대상 작품상을 수상했으며, 지은 책으로 『슬픈 세상의 기쁜 말』, 『아무튼, 메모』, 『앞으로 올 사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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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낙경

프리랜스 에디터. 결혼과 함께 귀농 했다가 다시 서울로 상경해 빡세게 적응 중이다. 지은 책으로 <서른, 우리가 앉았던 의자들>, <시골은 좀 다를 것 같죠>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