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데뷔 소설 『콜카타의 세 사람』으로 '불에 휘감기듯 사로잡히는 소설', '변덕스럽기 짝이 없는 운명의 장난으로 독자를 할퀴는 역작' 등 열렬한 찬사를 받으며 단숨에 아마존과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른 작가, 메가 마줌다르. 2022 서울국제작가축제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한 그를 이주혜 소설가가 만났다.
이주혜 : 안녕하세요, 마줌다르 작가님. 서울에서의 며칠은 어떻 보내셨는지요?
메가 마줌다르 : 제가 참석해야 하는 축제 행사 외에 서울을 두루두루 구경하고 있어요. 오늘은 노량진 수산 시장에 갔다 왔고 커다란 궁궐에도 다녀왔습니다. 한옥이라고 하나요? 전통 건축물들이 무척 아름답고 고요한 느낌을 주더군요.
이주혜 : 지난 토요일 저녁에는 작가님의 『콜카타의 세 사람』이 낭독 공연으로 무대에 올랐습니다. 저도 그 자리에 참석해서 함께 공연을 지켜봤는데요. 연기자들이 한국어로 공연을 해서 언어가 굉장히 낯설었을 텐데 어떻게 보셨는지 궁금합니다.
메가 마줌다르 : 굉장히 마법 같은 순간이었어요. 공연은 제게 외국어로 진행이 되었지만, 연기자들이 전하고자 하는 분위기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어요. 공연자들이 보여준 춤이랄지, 마임, 연기 등이 모두 하나로 어우러져, 제가 소설을 통해 전달하고자 했던 중요한 핵심이랄까, 정수를 전하고 있는 것 같았어요. 낭독자들의 창의적인 모습과 감정을 지켜볼 수 있어서 굉장히 영광이었습니다.
이주혜 : 이제 본격적으로 『콜카타의 세 사람』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어 볼까요? 소설은 지반, 러블리, 체육 선생 이렇게 세 사람의 관점으로 번갈아 진행됩니다. 제게 '3'이라는 숫자는 균형과 불균형 사이의 묘하게 아슬아슬한 느낌을 주는데요. 소설을 세 명의 인물로 나누어 진술하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메가 마줌다르 : 좋은 질문이네요. 점점 우경화되고 국가주의가 심해지는 사회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자신의 꿈을 놓치지 않고 계속해서 추구할 수 있을까 하는 커다란 질문에서 소설을 시작했습니다. 워낙 커다란 질문이라 잘게 쪼개야 했고, 결국 세 명의 다른 인물로 나누어 형상화했던 거지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한 백 명 정도로 나누고 싶었답니다. 하지만 세 명 정도면 각 인물의 내면세계로 깊숙이 들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아 셋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당신은 어떤가요? 다양한 캐릭터를 만들어 소설을 쓰는 편인가요?
이주혜 : 아, 제겐 멀티 캐릭터가 너무 어려워요.(웃음) 그보다는 한두 명의 인물을 집중적으로 묘사하는 편이 좋아요. 다시 질문드리겠습니다. 소설이 보여주는 세계는 현대의 인도, 구체적으로는 콜카타지만, 소설의 내용이 특정 지역의 특수한 상황으로만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다시 말해 소설이 보여주는 세계가 현대 사회의 보편성과 인도 콜카타의 특수성을 동시에 띠고 있는 것 같았는데요. 세계의 해석자로서 작가의 책무랄까, 그런 관점에 대해 평소 많이 생각하고 소설을 쓰는 편인가요?
메가 마줌다르 : 깊은 질문이네요. 작가로서 제 책무랄까, 의무는 이런 거예요. 제가 쓸 수 있는 가장 복잡한 이야기를 써서 인물의 삶을 아주 구체적이고 세부적으로 묘사하죠. 인물 내부의 그리고 인물 사이의 갈등이나 모순까지 드러내는 일을 주저하지 않고 아주 작은 부분까지 묘사해 인물의 유머, 분노, 슬픔 등 세세한 모습을 파고들면 결국 반대편에서 보편성과 만나지 않을까요? 제게 진실하게 느껴지는 것들을 그리면 인도에 가보지 않은 독자들도 제가 느낀 진실성에 가닿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하고 또 그렇게 되길 희망합니다. 당신은요? 당신이 생각하는 작가의 책무는 어떤 거죠?
이주혜 : 비슷한 맥락이에요. 인물을 가장 구체적이고 진정성 있게 그려내는 것이 곧 세계를 제대로 그려내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반'은 젊은 여성이고, 무슬림이며, 경제적 약자로, 이른바 여러 겹의 소수자입니다. '러블리는 히즈라'라는 트랜스 여성이고 영어에 취약한 소수자죠. 작가님의 소설에는 이렇게 소위 약자들이 많이 등장하는데요. 작가로서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이나 어떤 소설을 쓸 것인가 하는 창작 의도에 소수자를 바라보는 시선이 실제로도 중요하게 작용하는지 궁금합니다.
메가 마줌다르 : 골똘한 생각을 하게 만드는 놀라운 질문이네요. 국가의 권력과 힘에 대해 생각해보거나 우리 사회의 취약한 사람들의 삶을 살펴보지 않고서는 소설을 쓰기가 어렵습니다. 삶의 변화를 겪는 사람이랄지, 빈곤에서 부유한 삶으로 사다리를 올라가고자 하는 사람들은 때론 도덕적인 선택과 맞닥뜨리게 되지요. 이때 그 선택이 자신의 야망과 부딪히는 경우 자신을 위한 선택을 할 것인지, 아니면 정의와 공평을 위해 타인을 위한 선택을 할 것인지 갈등하게 되죠. 사회가 어쩔 수 없이 그런 선택을 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그런 선택의 한가운데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
이주혜 : 작품의 중심인물 세 사람이 모두 입체적인 캐릭터로 그려졌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체육 선생은 다른 두 인물에 비해 악역을 담당하고 있지만, 마냥 납작한 악당 캐릭터만은 아니죠. 작가는 캐릭터를 구축할 때 어쩔 수 없이 그 인물에 감정 이입을 하게 되잖아요? 그런 면에서 체육 선생을 만들 때 개인적으로 가장 복잡한 심정이 되지 않았을까 막연히 짐작했어요. 실제로 어떠셨나요?
메가 마줌다르 : 그 인물을 그런 식으로 해석해주셔서 굉장히 기쁩니다. 원래 체육 선생은 자신이 좋은 일을 한다고, 즉 스스로 선의를 품은 인물이라고 생각하지요.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점점 도덕적으로 탁한 선택을 하도록 내몰리지요. 저는 독자와 인물 사이에 약간의 거리를 확보해서 독자들이 '내가 그 사람의 상황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까?' 생각할 기회를 주고 싶었어요. 그러면 그 사람이 원래 악한 사람이 아니라 사회가 제시하는 선택의 폭이 너무 좁아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요? 1차원적인 악당을 묘사하기보다 내면에 여러 모순을 지닌 인물로 그리고 싶었습니다.
이주혜 : 바로 그런 면을 입체적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제 러블리 이야기를 해볼까요? 러블리는 말 그대로 러블리한 사람인데요. 개인적으로 가장 공감이 되고 연민도 쏠린 캐릭터였어요. 스포일러가 될 테니 구체적으로 말씀드리지는 않겠지만, 작가로서 러블리의 '마지막 선택'을 선택하셨을 때 기분이 어떠셨나요?
메가 마줌다르 : 마냥 희망적인 소설을 쓰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최대한 진실에 가까운 이야기를 쓰고 싶었기에 그런 마지막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지만, 저 역시 슬프고 마음이 많이 아팠어요. 그 캐릭터는 평생 수치와 모욕과 억압의 삶을 살아왔는데 아주 약간의 힘이랄까 권위가 생긴 거예요. 그에겐 그 선택이 자신의 꿈을 이루고 지독한 현실에서 탈출할 유일한 기회이겠죠. 조금이라도 진실한 이야기가 될 것 같아 그런 결말을 쓰게 되었지만, 저 역시 정말로, 정말로 가슴이 아팠습니다.
이주혜 : 더 가슴 아픈 질문인데(웃음) 저는 지반의 최후를 설명하는 문장을 읽고 굉장한 충격에 사로잡혔습니다. 꼭 이런 결말에 도달해야 했을까 하고 작가님을 원망하기도 했는데요. 혹시 이런 결말을 쓰기까지 망설임은 없었는지, 처음부터 결말을 염두에 두고 소설을 구성했는지 궁금합니다.
메가 마줌다르 : 사실 저는 지반이 이렇게 될 거라고 처음부터 알고 있었어요. 사회에서 권력도 가진 것도 거의 없고 인맥이라고 할 만한 사람도 별로 없는 인물이니, 이게 유일한 결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주혜 : 지반의 최후에 대해 한마디 더 여쭙자면, 소설 안에서 지반에게 그런 결말을 안겨준 당사자는 우선 국가로 보이지만, 저는 또 하나의 가해자로 여론 혹은 대중을 떠올렸습니다. 작가님은 평소 대중의 여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그런 평소 생각을 소설에 의도적으로 반영하셨는지 궁금합니다.
메가 마줌다르 : 저는 이 책 안에서 전통적인 미디어와 소셜 미디어 모두에 관심을 두었습니다. 권력이 없는 사람들은 흔히 사법 제도가 해주지 못한 것을 전통적인 미디어를 통해 여론을 형성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고 믿기도 하지만,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을 때가 자칫 있고, 심지어 정의를 관철하기는 커녕 여론의 희생양이 되기도 하지요. 또, SNS에 관해서도 굉장히 잘못 생각하는 것이, 그곳은 뭐든 맘껏 이야기할 수 있는 자유로운 공간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약자들의 경우 인터넷에서 농담을 한다거나 어떤 사건의 견해를 밝힌다거나 하는 행위가 끔찍한 결과를 불러올 수도 있어요. 언뜻 자유롭게 보이는 소셜 미디어의 위험에 대해서도 말하고 싶었습니다.
이주혜 : 소설의 결말을 보고 비관적이나 냉소적이라고 생각하는 독자들도 있을 겁니다. 세계의 현실성을 강조하다보면, 비관적으로 흐르기가 쉽고 희망을 담으려고 하면 비현실적으로 보이기 쉽죠. 창작자로서 저 역시 비슷한 고민을 합니다만, 작가님은 희망의 제시와 작품의 현실성 사이의 거리랄까 틈을 어떻게 메우고 계신가요?
메가 마줌다르 : 인물들에게 자유 의지가 있고 행동할 힘이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제 인물들은 소극적인 꼭두각시 인형이 아니에요. 자신에게 주어진 한계를 잘 알지만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려고 노력하죠. 그 전진 역시 힘들고 고통스럽기만 한 게 아니라 유머와 기쁨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즉, 그들의 여정 안에 춤과 음악과 축제와 우정과 사랑도 함께 깃들어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당신은 어떤가요?
이주혜 : 인물에게 자유의지와 행동할 힘이 있다는 말이 참 인상적입니다. 철학적인 말이기도 하고요. 작가님 말을 듣고 나니 인물을 어떻게 그려내는가는 곧 작품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 혹은 주제와 상통한다는 생각이 드네요. 대학에서 사회 인류학을 전공하고 현재 편집자로 일하고 계신 것으로 압니다. 인류학 전공과 편집자로서의 일이 소설가로서의 작가님의 세계에 어떤 영향을 끼치나요? 그 여러 정체성이 서로 불화하지 않고 사이좋게 지내고 있나요?
메가 마줌다르 : 편집자 일은 바로 얼마 전에 그만두었어요. 인류학은 굉장히 매혹적이죠. 세상에 나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경험을 통해 관점을 이해하는 것이 인류학이라고 생각해요. 타인의 세계를 이해하는 일은 아무래도 한계가 있는데 인류학을 공부할 때 현장에 나가 조사를 했던 경험이 복잡한 픽션을 쓰는 데 굉장히 도움을 주었어요. 또, 편집자는 엄청난 양의 원고를 읽어야 하는 직업인데요. 덕분에 제가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왜 좋아하고 왜 좋아하지 않는지 제 취향을 예리하게 다듬을 수 있었어요. 또, 어떤 책을 읽었을 때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와 실제로 제가 발견한 것 사이의 틈에 대해서도 정확하게 말할 수 있게 배웠죠. 그만큼 제가 어떤 글을 쓰고 싶어 하는지, 무엇을 전달하고 싶은지, 동료들에게 더욱 정확히 전달할 수 있게 되었고요.
이주혜 : 편집자로 일하는 동안 감명 깊게 읽은 책이 있을까요? 그렇게 발견한 작가를 한 명만 소개해주신다면요?
메가 마줌다르 : 많지만 하나만 말한다면 미국에서 10월에 첫 소설을 출간할 예정인 라이언 리 웡(Ryan Lee Wong)의 『너는 어느 편이냐(Which Side Are You On)』입니다. LA에 사는 두 세대의 활동가에 관한 이야기예요. 당장 학교를 그만두고 흑인 인권 운동에 뛰어들겠다는 혈기왕성한 젊은 활동가가 있고요. 그의 어머니는 한국계 미국인인데 90년대 LA에서 일어난 한국계 미국인과 아프리카계 미국인 사이의 갈등 상황에서 많은 일을 했던 구세대 활동가예요. 이 두 사람이 인종차별 반대 운동의 다양한 시각과 여러 활동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재미있는 이야기예요. 한국에서도 곧 출간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이주혜 : 많은 독자들이 작가님의 다음 작품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구상 중인 소설이 있다면 어떤 이야기인지 살짝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메가 마줌다르 : 현재 작업 중인 소설은 배경이 마찬가지로 인도고요. 기후변화로 인한 식량 부족 사태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까지만 말씀드릴게요.
이주혜 : 긴 시간 이야기 나눠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작가님과의 대화는 창작자로서 제게도 많은 영감을 안겨준 뜻깊은 시간이었어요. 서울국제작가축제의 남은 일정 무사히 마치시고 집으로 돌아가서도 한국의 독자들이 작가님의 소설을 기다리며 응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대화 나눠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메가 마줌다르 : 감사합니다.
*메가 마줌다르(Megha Majumdar) 단 한 권의 소설로 '21세기의 찰스 디킨스', '포크너에 버금가는 작가', '차세대 줌파 라히리' 등의 찬사를 받은, 동시대 가장 주목받는 인도 출신 미국 작가. 인도 서벵골주 콜카타에서 태어나 성장했다. 2006년 미국으로 이주해 하버드대학교에서 사회인류학으로 학사 학위를, 존스홉킨스대학교에서 인류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뉴욕에 살면서 온라인 출판 매거진 <캐터펄트>의 선임 편집자로 일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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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77
2022.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