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 어떤 책을 읽힐까?' 책을 고르려고 호기롭게 나섰다가, 수많은 동화책들 앞에서 길을 잃고야 마는 부모들. 이들 부모의 고민을 덜어줄 반가운 책이 출간됐다. 『초등학생이 좋아하는 동화책 200』은 수천 권의 동화책 중에서 초등학생이 찾고 또 찾는 책들을 주제별로 엄선하여 200여 권을 소개해주는 책이다. 이시내 저자는 2004년부터 지금까지 학교 현장에서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고 나눈 현직 교사이자, 교사 연수와 대중 강연 등을 통해 책을 소개하는 그림책·동화책 전문가다.
책에 대한 반응이 좋습니다. 이번에 출간된 책 『초등학생이 좋아하는 동화책 200』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어떤 계기로 쓰시게 됐는지요?
네이버 카페 <제이 그림책포럼>에서 동그라미 북클럽('동'화와 '그'림책을 '나'누는 '미'인들을 위한 모임)을 진행하다 북하우스로부터 책 제안을 받았습니다. 동화 평론서나 그림책 에세이만 있는 출판계에서 기존에 없는 형식이자 단독으로 쓴다는 것이 부담되어 재차 거절했다가, 교실 현장에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동화를 소개받고 싶다는 편집장님의 진심에 설득되었습니다.
어린이 곁에 책을 가까이 건네고 싶은 어른, 내 안의 어린이를 위하고 싶은 어른, 책은 읽고 싶은데 막상 손이 선뜻 가지 않는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동화는 어린이를 위한 문학이지만 문학은 결국 모든 이의 삶을 전하니까요. 동화를 읽는 동안, 잊고 지낸 어린 시절의 마음을 떠올리며 어린이의 입장을 조금이나마 이해하려 노력하게 되고, 미처 몰랐던 세상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친절하고 사려 깊게 서로를 키워주는 세상이 있다는 걸 아는 어른이, 아이와 함께 동화를 읽는 어른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내 아이가 책을 잘 읽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면, 곁에 있는 이가 책을 재밌어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됩니다.
그림책을 읽는 어른은 많은데, 동화를 읽는 어른은 그에 비에 적습니다. 작가님께서는 이 책에서 줄곧 동화를 읽으라고 적극 권하고 있는데요. 작가님께 동화란 무엇이며, 동화에 어떤 매력이 있다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어릴 적 별명 가운데 하나가 '책벌레'였습니다. 책을 좋아하는 이들이 그러하듯 활자 중독증이었죠. 화장실에 앉아 샴푸 통 뒤에 있는 글자를 다 읽을 때까지 일어나지 못하는 아이였습니다. 엄마를 따라 엄마 친구네에 놀러 가면 그 집에 있는 동화를 모두 읽을 때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고 책만 읽는, 엄마의 어깨를 으쓱하게 만드는 아이였습니다.
어린 시절 집 밖에 나가는 걸 귀찮아하던 아이에게 동화는 수많은 이들을 소개해준 세상이자, 교사가 된 뒤로는 잊고 지낸 어린이의 마음을 떠올려주는 안내서였습니다. 동화는 딱딱하게 굳어버린 어른의 시각을 흔들어주고, 나 역시 그런 때가 있었다는 걸 상기시켜주고, 내가 몰랐던 마음을 알려주며, 좁은 시야의 한계를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특히 교사로서 읽는 동화는, 제가 알 수 없는 세상의 아이들에게 함부로 잣대를 내밀지 않고, 아이가 말할 수 없는 사정에 대해 나름 상상하며 배려할 수 있도록 키워주는 영양제입니다.
교실에는 각자 다른 배경과 성향을 지닌 어린이들이 모여 있는데, 동화는 내 경험만이 정답이 아니고, 내 대답이 틀릴 수 있다는 걸 알려주었습니다. 저에게 동화는 어린이의 말에 귀 기울이게 해주는 소중한 나침반입니다. 동화는 아이들의 시선으로 더 선명하고 강렬하게 사건을 직면할 때가 많습니다.
동화를 읽고 나서 책장을 덮고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한 채 휘몰아치는 감정을 어찌할 바를 모를 때도, 눈물이 자꾸만 흐를 때도 있습니다. 그런 동화를 북클럽이나 SNS, 주위에 소개하면 다들 비슷한 반응으로 답합니다. 『초등학생이 좋아하는 동화책 200』에 소개한 동화 역시 누군가에게 그렇게 인상 깊은 책을 만나게 해주는 초대장이 되었으면 합니다.
『초등학생이 좋아하는 동화책 200』에 소개된 책들은 베스트셀러부터, 잘 알려지지 않은 책까지 두루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떤 기준으로 이 책에 소개될 책을 고르셨는지요?
워낙 좋아하는 작가도, 작품도 많은지라 학년별, 계절별, 교과별로 다양하게 기준을 세우면서 책을 골랐습니다. 자꾸 아쉬움이 남아 '왜 아이들에게 동화책을 권하는 걸까?'하고 제 마음에 질문을 던져보았습니다. 이 책을 통해, 아이들이 방문을 닫고 혼자 울고 싶을 때, 화를 내고 싶은데 차마 그렇게 할 수 없을 때, 조용히 아이 곁을 지켜주는 비밀 친구 같은 동화를 건네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가족에서부터 시작해 친구, 학교, 세상으로 점점 주제를 넓혔고, 자신의 취향을 찾아가는 장르, 독서의 재미를 쌓아갈 수 있는 시리즈와 그래픽노블의 책들도 포함시켰습니다. 적절한 비율로 저, 중, 고학년 책을 고루 골랐습니다. 특히 저, 중학년은 그림책에서 동화로 넘어오는 시기라, 이 시기의 학생들을 위한 책들은 더 신경 써서 골랐습니다. 단 한 권이라도 독서의 몰입을 경험했으면 하는 마음에서, 최대한 아이들이 재미있어하는 책, 어른과 아이가 함께 읽을 만한 책으로 골랐습니다.
특히, 후보 책이 많아 고민일 때 제 큰 아이에게도 의견을 물어보았는데, 재미가 없다고 하면 가차 없이 탈락시켰습니다. 덕분에 결정이 빨라졌습니다. 학교에서는 교과 진도 역시 중요하기에 같이 읽을 시간이 부족해 못 읽었지만, 꼭 같이 읽고 싶은 책도 골랐습니다. 좋아하는데 주제가 애매해 빠진 동화가 많아 아쉽습니다. 세상은 넓고, 소개하지 못한 좋은 동화가 여전히 끝도 없이 많습니다. 독자분들께 이 책이 유용한 이정표가 되면 좋겠습니다.
교실에서 어떤 식으로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는지 궁금합니다. 학생들과 함께 책을 읽으며 있었던 일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도 하나 들려주세요.
학년에 상관없이 일주일에 3권 이상의 그림책과 한 달에 한 권 이상의 동화를 읽어주려고 노력합니다. 재량 시간과 아침 시간이 있는 학교일 경우에는 아침 시간을 이용하거나, 교과의 자투리 시간과 온책읽기 시간 또는 프로젝트 수업을 짜서 책을 읽을 시간을 확보합니다. 수업 성취 목표나 근거가 부족한 시간에 책을 읽어주면 다음 날 바로 민원을 받았던 해가 있어서, 덕분에 지금은 그때보다 능수능란해졌습니다. 학교 예산으로 한 아이당 모두 한 권의 책을 같이 사서 읽을 때도 있고, 달마다 한 권씩은 읽기 때문에 제 책을 실물 화상기로 같이 읽을 때도 있습니다.
2학기쯤 되면 몇몇 아이들이 그 달에 읽는 책을 초반에 사서 읽곤 합니다. 그런 경우에는 제발 결말을 미리 말하지 말라고 부탁합니다. 동화를 읽어줄 생각이 없었는데 문득 이 수업과 정말 잘 어울리는 동화가 떠오를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땐 영화 소개 프로그램처럼 짧게 3~5분 정도 소개합니다. 그리고 위기나 절정에 이르러 멈춰버립니다. 특히, 금요일 마지막 시간에 그런 악독한 행동을 자주 합니다.
월요일에 교실 문을 열고 들어올 때 당당하게 책을 머리 위에 올리며 들어오는 아이들을 볼 때 흐뭇합니다. 그 아이 옆에 아이들이 우르르 모여 같이 머리를 맞대고 책장을 넘기는 모습을 보면 행복합니다. 그림책도 아닌데 읽어줄 때마다 아이들이 의자를 끌고 앞으로 나오는 책도 있습니다. 이야기에 푹 빠져 자기도 모르게 자꾸 나오는 거죠. 그렇게 이야기가 끝나갈 즈음 60개가 넘는 눈동자가 제 앞에 모여 저만 바라보는 순간, 온몸의 솜털이 바짝 솟아오르며 짜릿합니다.
주제별로 가족, 친구를 넘어 세상까지, 장르, 시리즈, 그래픽노블까지 다 다뤘습니다. 독자분들께, 이 책을 어떻게 활용하면 좋은지, 유용한 방법이나 팁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처음 이 책을 계획했을 때 만든 기획서를 보면 빠진 주제가 두 개가 있습니다. 3부 세상에서 '환경'이, 4부 장르에서 '스포츠'가 빠졌습니다. 동물권과 더불어 환경 역시 관심을 두고 아이들과 나누는 주제라 꼭 다루고 싶었는데 여러 사정으로 빠졌습니다. 성장 발달 단계에 따라 아이들이 맺는 관계의 순서로 책을 구성해놓아서, 처음부터 차례대로 읽어도 좋지만, 관심 있는 주제, 지금 우리 아이에게 가장 필요한 주제부터 찾아서 읽어도 좋습니다.
『초등학생이 좋아하는 동화책 200』은 꾸준히 동화를 읽은 시간 덕에 나온 책이지만, 그 시간을 흘려보내지 않고 기록했기에 나올 수 있었던 책입니다. 어떤 동화책을 읽으셨다면 반드시 꼭 책 제목, 별점, 마음에 남은 문장 등을 기록해서 모아두시길 바랍니다. 아이와 함께 나눈 대화도 기록하면 좋고요. 그렇게 적은 기록이 언젠가 외롭고 힘들어 빛바랜 나를 살려주는 작은 불티가 되어줄 것이라 생각합니다.
글쓰기, 대중 강연, 북토크 진행, 교사 연수, SNS 활동 등 책 소개를 하기 위해 다양하게 활동하시는 게 인상 깊습니다. 어떤 계기로 책 소개에 관심을 갖게 되셨는지, 책 소개를 지속하게 하는 힘은 무엇인지 무척 궁금합니다.
어릴 적부터 꾸준히 책을 읽었지만, 기록하지 않으니 읽었던 책을 다시 읽고 있더군요. 책이 기억나도 어떤 내용이었는지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연습장에 읽던 책 제목을 쓰기 시작했고, 반 아이들에게 독서록 쓰는 법을 알려주기 위해 독서록을 쓰면서 교환 일기처럼 서로 바꿔 읽었습니다. 그때부터 제가 쓴 글이 타인에게 주는 영향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교실에서만 하던 활동을 블로그와 네이버 카페 등 온라인으로 영역을 넓혀가다 그림책 잡지 <라키비움J>를 만들면서 본격적으로 SNS를 열심히 하기 시작했습니다. 좋아서 하다 보니 강연이나 자료 제작 의뢰가 오는 고마운 일도 일어납니다. 그러면 또 '더 많이 알릴 수 있는 거야?'하고 좋아합니다.
요즘 작가님의 관심사는 무엇인지요? 앞으로의 계획도 들려주세요.
가장 큰 관심사는 체력입니다. 운동은 하기 싫고 건강해지고 싶어요. 부쩍 말을 많이 하는 자리에 서게 되는데, 내 말에 누군가 상처받지 않는 지혜롭고 겸손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수시로 다짐합니다. 그러기 위해 지혜로운 사람들과 좋은 책을 곁에 가까이 두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번 여름에 그림책 수업을 주제로 그림책 잡지 <라키비움J> 발행인 전은주 작가와 초등교사 대상 직무연수를 촬영합니다. 연수 내용으로 책도 출간할 예정입니다. 이제 책을 내고 끝난 줄 알았더니, 다시 출발점 앞이네요. 육아 휴직 중이라 '교사'라는 이름표는 일시 정지이지만 엄마로, 아내로, 저자로 모두와 잘 지내는 게 목표입니다. 복직 전에 이 책의 독자를 많이 만나보는 것도 계획 가운데 하나입니다. 『초등학생이 좋아하는 동화책 200』으로 다정한 시간을 보내시길 바랍니다.
*이시내 책을 읽고, 기록하고, 나누는 초등교사. 2004년에 초등교사가 되었다. 언젠가 아이들이 길을 잃고 헤맬 때 함께 읽은 책이 반딧불 같은 빛이 되어주길 바라며, 틈날 때마다 아이들에게 책을 권하고 읽어준다. 어릴 적 다이어리 꾸미기에 보였던 열정을 '책일기장'(독서 기록 다이어리) 꾸미기에 쏟아부어, 멋지게 꾸민 책일기장으로 아이들의 마음을 홀리는 중이다. 책이 별로라는 아이도 담임이 만든 화려한 책일기장에는 큰 관심을 보인다. "이 책이 그렇게 재밌다고?"하면서 책을 꺼내가는 아이의 뒷모습에 웃는다. 그림책 잡지 <라키비움J>의 기자, 네이버 그림책 카페 <제이그림책포럼>의 운영진이다. 그림책과 동화책에 대한 북토크 진행과 온책읽기 자료 제작, 독서대회 심사위원, 교사 연수, 학부모 대상 강의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 인스타그램 : @booknteach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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