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은 예전의 내가 출퇴근을 당연하게 여겼던 것처럼, 자신이 원하는 때에 원하는 곳에서 일하며 살아가는 삶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다. 가고 싶은 곳이 생기면 언제든 떠나고, 머무르고 싶은 곳에서 시간을 보내는 게 자연스러운 삶. 이때부터, 지금까지 당연하게 생각해 왔던 것들에 하나둘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아침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로 출근하여 일하는 것. 사무실로 출퇴근하기 위해 대도시의 값비싼, 그러나 열악하기 그지없는 월세방에서 생활하는 것. 여행을 떠나고 싶어 몇 달이고 여름휴가만 손꼽아 기다리는 것. 너무 익숙하고 당연하게 여겼던 그것들은 다 무엇을 위해서였을까?”
여러분 오늘 출퇴근길은 어떠셨나요? 이제 엔데믹의 시대라고 하죠. 근 2년여간 재택근무 혹은 교차 근무를 시행하던 회사들도 이제는 정상 출근으로 하나 둘 돌아갔습니다. 물론 재택근무라고 마냥 좋은 점만 있던 건 아니었겠지만, 다시 매일 시루떡 같은 지하철 혹은 버스에 끼어서, 혹은 꽉 막힌 도로 위에서 한 시간씩 운전대를 잡는 생활로 돌아가는 것도 반갑지만은 않지만, 어쩌겠어요. 다들 그렇게 한다는데. 하지만 우리가 이런 이야기는 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정말 매일 아침 정해진 장소로 출퇴근하는 삶이 모두에게 가장 적합한 디폴트 값일까요? 한 번쯤 다른 삶의 선택지에 대해서도 상상해보면 어떨까요? 오늘 요즘산책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어디서든 일하고 살아갈 자유’입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사라지고, 여름 휴가철이 돌아왔습니다. 2년 만에 찾아온 제대로 된 여름휴가! 어떻게 보낼까 설레는 마음이 가득하셨겠지요? 어떤 곳으로 휴가를 갈 예정이신가요? 혹은 벌써 어딘가로 다녀오셨나요? 그런데 혹시, 어렵게 시간 내서 찾은 휴양지가 어마어마한 인파로 ‘사람 반 바다 반’인 상황을 겪지는 않으셨나요?
사실 모두가 이날만을 손꼽아 기다렸으니 그럴 만도 합니다. 그간의 사회적 거리 두기의 여파도 작용했겠지만, 사실 생각해보면 우리의 휴가철은 항상 그래 왔습니다. 매일 아침저녁 출퇴근하느라 견딘 지옥철에서 벗어나고, 지긋지긋한 사무실에서 벗어나고, 좁아터진 원룸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시기가 여름 휴가철이니까요. 탁 트인 자연도 보고 쾌적한 호텔도 누려보고. 이때 아니면 언제 해 보겠어요?
그런데 만약 우리의 평소 일상이 좀 달랐다면 어땠을까요? 휴가철, 연휴 기간이 아니라 평소에도 언제든 여행을 떠날 수 있었다면? 정해진 시간에 꼭 출근 도장을 찍어야 하는 재택근무가 아니라, 집과 사무실이 아닌 어디서든 일할 수 있다면. 출퇴근 시간을 나에게 맞출 수 있었다면. 그랬다면 꼭 복닥복닥한 도심에 비싼 월세를 주고 살지 않아도 되는 거잖아요. 그랬다면 굳이 복잡한 휴가철에 비싼 비행기 값과 숙박비를 치를 이유도 없고요. 어디서든 일하고, 원할 때 여행할 수 있을 테니까요. 너무 꿈 같은 이야기인가요?
그런데 이 책 『원하는 곳에서 일하고 살아갈 자유, 디지털 노마드』를 보면 꼭 불가능한 일만도 아니더라고요. 이 책은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작가, 또 스스로 디지털 노마드로 살아가고 있는 도유진 님이 사무실을 떠나 전 세계 어디서든 일하고 살아가는 70여 명의 디지털 노마드와 원격 근무를 시행하고 있는 글로벌 회사들의 경영진을 심층 인터뷰한 책이에요. 사실 이 책은 <원 웨이 티켓>이라는 다큐멘터리로 먼저 제작하고 있었는데요. 영화가 나오기 전에 그 제작 과정을 책으로 먼저 담아 출간했습니다. 무려 2017년에 나온 책이에요. 재미있는 것은 다큐멘터리도 거의 대부분이 원격 협업으로 이루어졌다는 거예요.
그런데 사실 책이 나왔던 당시만 해도 해외 사례도 많고 흥미롭기는 하지만 아직 우리 실정에는 맞지 않는다고 치부하던 분위기였어요.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요? 계기야 어찌 됐든 우리는 디지털 노마드들보다 더 자유롭게 리모트 워크 툴을 사용할 줄 알게 되었습니다. 줌 같은 화상 미팅에 거리낌이 없고, 슬랙 같은 툴도 예전보다는 더 일반적이 되었어요. 단 2년 만에요. 사실은 가능했던 거예요. 모든 게 온라인으로 가능하다는 걸 체감한 거죠.
그럼에도 우리는 이제 팬데믹이 끝났으니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자고 이야기하고 있어요. 그게 저는 굉장히 답답하더라고요. 팬데믹이 트리거가 되긴 했지만, 그게 아니었어도 우리의 일하는 형태와 방식은 계속 다양해져 가고 있잖아요. 여전히 9 to 6로 일하는 방식이 가장 적합하고 효율적인 산업들도 분명 있지만, 분명한 건 그런 산업이 지배하던 구조는 이미 깨지고 있어요. 오늘 이런 이야기를 하려는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이게 꼭 모두가 휴양지에서 칵테일 한잔하며 노트북 하는 삶을 살자는 얘기가 아니에요. ‘선택권'에 대한 이야기에 가까울 것 같아요. 이런 방식도 있고 불가능하지 않다는 것. 사실 저도 처음 디지털 노마드라는 삶의 방식에 관심을 가질 때에는 ‘어떻게'에 중점이 있었던 것 같아요. 어떤 툴을 쓰고, 어떤 일을 해야 가능한가에 관심이 있었는데 지금 와서 보니까 사실은 ‘어떻게’가 중요한 게 아니더라고요. 이미 우리에게는 기술적인 기반은 모두 갖춰져 있었던 거예요.
그런데 디지털 노마드란 뭘까요? 사실 우리가 디지털 노마드적인 삶을 살지는 못해도 이 '디지털 노마드'란 단어는 너무 많이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이 단어 자체가 많이 왜곡되거나 변질된 감이 없지 않아요. 단순히 여행하는 사람들이 디지털 노마드일까요? 요즘에는 마케팅적으로 돈벌이 방법들과 연결되어서도 많이 소비되고 있는 것 같고요. 그런데 사실 이 디지털 노마드는 어떤 사람이나 직업을 일컫는 게 아닙니다. 어떤 삶의 방식을 이야기하는 거죠. 이 책에선 이렇게 설명하고 있어요.
“디지털 노마드는 단순히 끝없이 여행하며 일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어디에서 일하고 살아갈지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의미한다.”
디지털 노마드는 하루아침에 생긴 단어가 아닙니다. 학자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디지털 노마드의 등장을 예고해왔다고 합니다. 1970년대에 캐나다의 미디어 이론가가 ‘노마디즘'을 이야기했고, 1997년 히타치 그룹 전 CEO 쓰기오 마키모토와 작가 데이비드 매너즈가 디지털 노마드라는 제목의 책을 펴내기도 했죠. 이 책에서 이들은 앞으로 컴퓨터가 더 가벼워지고 작아지면서 미래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세계를 떠돌며 살 것이라고 예측했죠. 1998년에는 프랑스 석학 자크 아탈리가 『21세기 사전』이란 책에서 21세기의 현대인은 누구나 노마드가 될 것이라고 말했고, 『호모 노마드 유목하는 인간』이라는 책에서는 이런 말도 남겼어요. “인류 역사 전체를 볼 때, 농경 생활과 함께 시작된 정착 문화는 결코 인류의 표준적인 삶의 방식이 아니며 ‘유목'이야말로 21세기를 대표하는 가장 핵심적인 특징이 될 것”이라고요. 2007년에는 장소에 구속받지 않는 삶에 대해 다룬 팀 페리스의 『4시간』이라는 책이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40여 개의 언어로 출간되면서 디지털 노마드가 널리 알려지는 기폭제가 되었죠.
그럼 왜 모두들 이런 변화를 예측했을까요? 저는 이 책에서 흥미로웠던 것이 단순히 기술적인 변화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세대의 변화에 대한 관점을 이야기한다는 것이었어요. 1980년대 초에서 2000년대 사이에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가 산업을 이끄는 시대가 되었으니까요.
“이들은 각종 정보 통신 기술에 능통할 뿐 아니라 이전의 어떤 세대보다도 삶의 질과 개인의 행복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세대다. 특히 금융 위기 이후 밀레니얼 세대가 부모들이 평생을 보낸 전통적인 업무 환경과 ‘내 집 마련'이라는 인생 목표에 의문을 가지고 또 다른 대안을 찾아 나선 것은 어찌 보면 필연적인 선택이다. 이들은 평생을 일해도 빠듯한 내 집 마련에 목매거나 자동차 같은 재화를 소유하기보다는 여행이나 새로운 경험, 배움의 기회에 돈과 시간을 투자하려는 경향이 매우 강하다고 알려져 있다. 이 젊은 세대들을 필두로 원격 근무를 원하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고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창업가와 프리랜서들이 합세하면서, 점점 더 많은 이들이 장소와 제약에서 벗어나 보다 적극적으로 이동의 자유를 누리기 시작했다.”
저도 밀레니얼 세대인데요. 굉장히 와 닿았어요. 평생을 같은 도시, 집, 회사에 머물면서 사는 게 어떻게 보면 불가능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으니까요. 그럴 바에는 차라리 그보다 더 효율적이고 자유로운 길을 택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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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민(크리에이터)
밀레니얼 인터뷰 채널 '요즘 것들의 사생활'을 운영하며 『요즘 것들의 사생활 : 먹고사니즘』 등을 썼다. 나다운 삶의 선택지를 탐구하는 사람.